[다른 20대의 탄생 12회] 지원 - 청년 모임, 이제 됐다 : 해봄, 석운동, 길드다

김지원
2018-12-02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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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20대의 탄생

 

 

대학을 안 가고, 못 가고, 자퇴한 우리들의 이야기. 학교를 관두라는 말, 직장을 관두라는 말은 많지만 어떻게 살라는 말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다른 20대의 탄생은 세 명의 20대가 공동체의 경험을 통해 질문들을 던지고 길을 찾아가는 구체적인 과정을 담은 글이다.

 

 

 

 

 

다른 20대의 탄생 #12

 

 

청년 모임, 이제 됐다 : 해봄, 석운동, 길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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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원 (길드; )

 

천재는 27살에 요절한다던데, 스스로 천재라 믿고 산 나는 28살이 되어버렸다. 대학졸업장도, 자격증도 없다. 대신 지난 5년간 공동체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목수 일을 해왔다. 그 간의 시간들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살 길을 모색해보려 한다.

 

 

 

 

 

 

 

요즘 청년들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 취업, 결혼, 출산, 주거 등 현재의 중년들이 청년기에 당연하게 이루어 냈던 것들을 지금의 청년들은 쉽게 이루지 못한다. 스펙 쌓기 레이스는 고되고, 점점 길어진다. 백수도 많고, 나이가 찬 알바도 많다. 아예 정상적인 루트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가려는 사람들도 있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정상성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취업준비를 위해 인생을, 이 한 몸 바치는 것이 얼마나 비합리적인가를 깨닫는다. 그래서인지 청년은 자주, 걱정 섞인 목소리로 호명된다.

그런데 나에게 청년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어색하다. 입에 붙지 않는다. 내 입에 붙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 입에서 나올 때도 이상하다. 촌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사회적으로 너무 자주 호명되어서일까, ‘뭔가를 해야 하는 사람’,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사람과 같은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부담스럽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난 청년모임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오랫동안 해왔다. 왤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또래 친구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호명에 걸맞게 다들 열심히 산다. 학교로, 직장으로 사라진다. 그러곤 거기에 갇힌다. 나처럼 학교도 안가고, 일도 꽤 자유로운 사람은 심심하다. 그래서 모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모임을 하려고하니, ‘청년이라는 말을 쓸 수밖에 없었다. 2-30대를 부를만한 말이 딱히 없었고, 그런 말을 잘 쓰면 호명에 부응한 대가로(?) 국가나 지자체로부터 약간의 보조금을 받을 수도 있었다.

 

 

술로 지은 집

2013년에 나는 부모님 집을 나왔다. 나에겐 로망이 있었다. 친구들을 초대해 밤새 술 마시고, 아무 데나 널부러져 잠들고, 함께 라면을 끓여먹고, 기타치며 노래도 부르는. 그래서 남들과 달리, 집을 구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던 것은 시끄럽게 굴어도 되느냐는 것이었다. 처음엔 주로 옥탑방을 찾아다녔다. 늘 내 로망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므로. 그러나 월세가 싼 지역은 집들이 워낙 다닥다닥 붙어있어 옥상이 넓은 옥탑방이라도 파티 같은 것을 했다가는 쫓겨날 각오를 해야 했다.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원룸 혹은 투룸 뿐이었다. 그러나 월세가 싼 지역의 원룸들은 하나같이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 일찍 잠드는 사람들의 장소였다. 나는 교외로 시선을 돌렸다.

눈에 들어온 곳은 교외의 작은 목공방이나 부동산, 물류창고 등이 듬성듬성 있는 시골동네였다. 난 거기서 주변에 정말 아무것도 없는 컨테이너 가건물을 발견했다. 20평짜리 직사각형의 텅 빈 창고였다. 교통도 불편하고, 인적도 드물었다. 화장실도 집 밖에 있었고, 주거를 목적으로 만든 곳이 아니다보니 냉난방도 안됐다. 보통 사람이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그 공간을 나는 덥석 계약해버렸다. 인테리어는 직접 하면 될 거라는 목공소 근무 2년차의 자신감과, 집을 찾으러 다니는 누적된 피로감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월세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비쌌지만, 집이 크니까 누구라도 들어와 살게 하면 되겠다.’라고 생각했다. 무대책이 대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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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사가 시작되었다. 목공소에서 장비를 빌려와 공사 준비를 했고, 없는 돈 있는 돈 빌린 돈 다 끌어 모아서 재료를 샀다. 재료 살 돈이 모자라서 일단 공사를 시작하고 다음 월급 때를 기다렸다. 동네에서 빈둥거리는 친구들, 후배들을 전부 불러 모아다가 부루스타에 고기 구워주며, 소주 따라주며 공사를 돕게 했다. 페인트도 칠하고, 나무 자르는 법이나 기둥 세우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술판이 벌어졌다. 돈이 없어 공사를 두 달 가까이 했고, 숙취 때문에 공사를 쉰 날도 많았지만(용케 술 마실 돈은 있었다) 어찌저찌 마무리가 됐다. 지원이가 독립한다는 소식을 들은 문탁 어른들이 생활용품을 장만해주기도 했다. 이런저런 물건들이 들어오니 얼추 사람 사는 곳처럼 되었다.

공사하는 과정에서 공간에 정이 붙은 후배들이 자주 술을 사서 놀러왔다. 차 없이 다니기에는 대중교통이 참으로 불편했는데, 다들 어떻게든 기어 들어와서 술을 마셨다. 게 중 하나는 집에 있어봐야 부모님 잔소리만 듣는다는 핑계로 아예 집에 눌러앉았다. 나의 월세에 대한 무대책이 그 친구 덕에 일부 해결되었다.

판을 깔아놓고 보니 뭔가를 하고 싶었다. 당시 나는 종종 서울의 한 문화공간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즐겼는데, 그곳에선 세미나나 전시, 공연도 했고, 사람들은 술을 마시며 진지한 이야기들을 했다. 그게 참 좋아보였다. 젊은 사람들이 모여서 술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생산적이고 진지한 활동들을 만들어 내다니(!). 난 나에게도 공간이 생겼으니, 그리고 드나드는 친구들이 있으니 그런 것들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청년 모임의 전사前史, ‘해봄

사실 그런 시도는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제대를 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나는 문탁에서 해봄이라는 청년 모임을 만들었다. 문탁은 공부 공동체였고, 대부분의 주체가 4-50대였다. 그 속에서도 충분히 많은 것을 배웠고, 딱히 불만이나 이질감을 느낀 것은 아니었지만, 나에겐 또래 친구들이 필요했다. 예컨대 <감시와 처벌>을 읽으며 내가 느끼는 군대나 학교에 대한 감정들은 그들보다 더 거칠고 생생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너는 그렇게 느끼는구나가 아니라 맞아, 나도 그래였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가끔 문탁에 좋은 강의가 있으면 공부를 하러 오는 20대들을 꼬셨다. 함께 놀고,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처음엔 많지 않은 인원이 모여 세미나를 했다. <88만원 세대> 같은 책들을 읽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겐 문제의식이 생겼다. 우리는 돈도 잘 못 벌면서, 늘 돈을 쓸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다. 친구를 만나기만 해도 돈이 있어야하고,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그래서 학교 다니기도 바쁜데 알바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삶들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래서 돈을 안 쓰고 놀아보자, 그런 일들을 해보자는 의미에서 만든 모임이 해봄이었다. 이 모임은 의 형식으로 운영되었다. 한 달에 한 사람이 2만원씩을 내고, 이렇게 모인 돈으로 각자가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함께 해봤다. 우린 파티도 하고, 운동회도 만들고, 공연도 하고, 함께 농활을 가기도 했다. 5명 정도로 시작했던 모임이 몇 달 뒤엔 20명 가까이 참여하는 회의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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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그저 여가생활 정도로 생각하고 모임에 나오는 친구가 있었는가하면, 이 모임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들은 단순히 노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사실상 돈 쓰며 노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물었다. 반면 학교나 직장에서도 이미 스트레스가 많은데 여기서마저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 회의를 자주하면 나오기 어렵다는 의견을 가진 친구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말들은 늘 충돌했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당연히 갈등은 깊어졌고, 그런 갈등이 부담스럽게 느껴진 친구들은 하나 둘씩 해봄을 나갔다. 1년여를 열심히 하고보니 많은 친구들이 학교로, 직장으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석운동 88-1번지에서 석운동으로

그럼에도 이것이 다시 해보고 싶었던 이유는 이 공간을 드나드는 새로운 사람들 덕분이었다. 난 사람들이 나누는 얘기에 언제나 공통적인 결핍이 있다고 느꼈다. 그것은 때론 학교나 직장에 대한 불만이었고, 때론 삶의 부분들이 온통 돈 버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었으며, 또 어떤 때에는 외로움 같은 것들이었다. 내 생각에 이런 것들은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일단 어느 정도 해결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번엔 좀 더 간단하게 접근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가볍게라도, 계속해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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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 2018-12-10 15:16

    길드다가 초기에 싸울때는 그냥 걱정이 됐었는데

    이제는 (싸우는 횟수가 늘어난 것 같은데도) 그냥 '또 싸웠구나' 하는 ㅋㅋ

    길드다보면 많이 부럽기도 하고, 지원쌤이 친구들을 계속 찾았다는 게 새롭기도하고

    공감도가고!@! 

  • 2018-12-11 00:36

    내가 어렴풋이 생각만 하고 있던 것들이 이 글엔 잘 펼쳐져있는 것 같아서 너무 좋네.

    눈물날 것 같다.8ㅅ8

  • 2018-12-17 18:09

    참석 방법은 어떻게 하면 될까요?

    • 2018-12-17 20:36

      안녕하세요 규헌씨!

      지원의 글을 재미있게 읽주셔서 감사합니다.

      길드다에 대한 참석 방법이 궁금하신 건가요? 저희의 활동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문탁의 '길드다' 게시판과 저희 블로그 (http://guild.tistory.com/)에서 언제든 확인 가능합니다.

      더 궁금한 게 있으시다면 직접 연락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010 2763 9칠팔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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