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물론 이론의 전장] 4주차 후기 - 신명나는 사물놀이 한 판

청량리
2024-01-29 00:44
321

신명나는 사물놀이 한 판

 

 

 

신유물론 세미나 4주차가 지났다. 매주 각자의 질문들을 올리고 서로 답하는 형식이지만, 대개는 몇몇 분들이 주로 의견과 답변을 주고받게 되었다. 혹여 개념을 틀리게 말하게 될까, 지금 제대로 알고 이야기하는 걸까 고민하다보면 주저주저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질문과 맞닿는 지점들이나,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내용을 다른 이들의 질문과 답변을 통해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나라면 뭐라고 답을 할까, 라고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과정도 도움이 되진 않았을까?

 

4주차에는 <신유물론, 물질의 존재론과 정치학>의 ‘6장’과 ‘나가며’부분을 읽었다. 6장에서는 주로 신유물론과 실재론 사이의 논쟁 지점들을 다룬다. 다양한 흐름을 갖는 신유물론 철학자들의 공통점은 어쨌든 물질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대변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인간중심주의와 이분법적이고 담론적인 관념론을 극복하려고 한다.

이러한 부분은 사변적 실재론자들이 “인간의 의식과는 상관없이 존재하는 실재를 긍정”한다는 점에서 신유물론자들의 의견과 결이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인식론과 존재론 사이의 횡단성, 들뢰즈 철학으로부터의 영감, 과학적 성과에 대한 철학적 기반, 정치철학적으로 맑스에 더 우호적인 측면은 신유물론 쪽이 강해 보인다.

 

<출처 : 도서출판 갈무리>

 

6장의 대부분을 할애할 정도로 그레이엄 하먼의 비판과 그에 대한 재비판 등에 힘을 쏟고 있다. 그는 현대 철학에서 사변적 실재론의 핵심 인물이며, 그의 객체-지향-존재론(OOO)’으로 하먼은 세계 예술계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퀑탱 메이야수 역시 그레이엄 하먼과 함께 초기 사변적 실재론을 이끌었던 철학자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퀑탱 메이야수는 사변적 유물론의 입장에서 하먼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두 사람 모두 ‘인간중심주의’와 ‘상관주의’를 극복하려 했으나, 하먼과 메이야수는 오히려 서로를 ‘상관주의’에 해당한다며 비판적 입장으로 대립한다.

인간중심주의는 직관적으로 알 듯하다. 그런데 ‘상관주의’는 뭘까? 쉽게 말해 주체와 객체, 즉 인간과 현실이 어떠한 상관관계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식’ 외에는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이 없기에 사물-자체를 사유할 수는 없다. 즉 인식 바깥에는 어떤 실재도 있을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중심주의 역시 상관주의의 한 갈래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식 밖의 것들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실재 객체는 오로지 감각 객체의 존재를 통해서 도달할 수 있으며 이때 실재 객체 자체는 존재적으로 물러난다, 는 것이 하먼의 물러남의 태제이다. 예를 들어 망치는 ‘못을 박는 도구’로 매개할 때, 즉 그렇게 사물이 현전할 때에만 경험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하먼의 입장에서는 물질보다는 객체 세상을 다루기에 더 적합한 개념이다. 그러나 신유물론자들은 하먼의 개념을 근대철학자들처럼 물질을 수동적으로, 비활성적으로 바라보는 한계가 있다고 비판한다.

 

하먼은 하이데거의 목가적, 복고적인 측면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고 평가받으나, 보수적인 철학을 부활시키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그레이엄 하먼을 찾아보니 작년 7월에 <건축과 객체>라는 그의 책이 출간되었다. 출판사 소개글에는 이런 글이 있다. “하먼은 하이데거, 데리다, 들뢰즈로 대표되는 반실재론적포스트모더니즘 건축 이론을 넘어서 탈관계주의적객체지향 존재론의 준칙들을 제시한다. 객체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되었지만, 객체가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해된 적은 거의 없다.” 객체-지향-존재론과 신유물론은 무엇의 능동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입장을 달리한다.

그러다보니, 6장의 논쟁들이 다소 소모적으로 피곤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세미나 중에도 존재와 관계로 대비되는 하이데거와 들뢰즈를 꼭 떼어내서 볼 필요는 없으며, 어쩌면 그들을 종합하는 또 다른 철학이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있었다.

 

600페이지 이상 신유물론에 대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이유는 ‘물질적인 것들의 정치’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제도적인 것에만 얽매인 ‘정치’와는 달리 ‘정치적인 것’이 현실태라는 매우 탁월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이 개념은 매우 인간중심적이다.”

그에 반해, 물질적인 것들의 정치란 “기후문제, 사이보그 주체, 동물과 같은 비인간을 전경화”하며, 핵심문제는 물질적인 것들의 해방에 있다. 이것은 인류세-자본세의 위기 앞에서도 여전히 좌-우 진영논리만 앞세우는 상황 속 새로운 정치에 대한 탐색이기도 하다.

 

@courtney kesselar, Metal Pliers, 2011

 

게다가 점점 물질적인 것들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미디어와 네트워크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에 대한 방법론으로써 신유물론은 지금까지 이어져 온 유물론을 이론적으로 긍정하고 비판적으로 재독해한다. 이럴 때 ‘변증법’은 어떤 종합을 무리하게 만들어 내는 ‘관념의 놀이’가 아니라, 물질이 갖는 역동성을 발견하고 부정성조차 긍정하는 사물의 놀이가 된다. “이 새로운 철학이 어떻게 결실을 맺을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러나 한 시대의 철학이 그 시대의 정수에 자리 잡고 개념적 양분을 공급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희망적이다.”

 

 

 

댓글 3
  • 2024-01-29 18:15

    거의 800쪽에 가까운 책을 4회의 세미나로 읽어내다니! 참 놀라운 일을 우리가 해냈네요.
    그래서 문탁 주위에는 '겨울방학 돌리도' 라는 원망과 한탄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ㅎㅎ
    책 읽고 질문 올리느라 버거운 4주였지만 나름 보람찬 4주이기도 했습니다.
    신유물론이라는 제목 밖에 모르던 제가 다수의 신유물론 철학자들, 브라이도티, 데란다, 라투르, 바라드, 제인베넷 등의 이름을 앍게 되었고,
    물질의 능동성이니 물질적인 것의 정치니 간-행이니 회절적 독해니 번역이니 하는 말들을 배웠으니 말입니다.
    인간중심주의와 상관주의에 대한 신유물론의 비판이 우리가 세상을 보는 법을 바꾸고 있는 것도 확실한 것 같아요.
    남은 두 번의 저자 직강도 기대가 됩니다.^^
    (근데.. 청량리님, 후기에 살짝 실망했어요. 청량리표 유머가 빠진 진지한 후기여서요.ㅎㅎㅎ 그래도, 네번째 세미나를 다시 생각나게 하는 후기, 고맙습니다!!)

  • 2024-01-29 20:49

    여전히 2주차에 던지셨던 라면과 계란 비유가 생각납니다 ㅎㅎㅎ(사실 어제 다시 봤거든요)
    저는 지난주 세미나 이후에 오히려 하먼을 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청개구리니까요) 어떤 점에서는 '물러남-비관계성'이 오히려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ㅋㅋㅋ 미운 가운데 후기 쓰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 2024-01-31 16:59

    하먼에 대한 설명이 너무 많아서인지 저도 하먼이 궁금해지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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