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습록> 100조목에서 107조목 후기: 존덕성과 예민함

콩땅
2024-03-20 08:23
62

존덕성

아시다시피, 주희와 양명은 우리 마음의 인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보존하고자 하는 근본 목적은 같다.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 주희는 존덕성(尊德性)과 도문학(道問學)(사물의 이치를 궁구)이 함께 이루어 져야 한다고 보는 반면에, 양명은 심즉리를 말하면서 마음상의 공부만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그렇기에 100조목에서 양명은 학문을 하는 학자가 뜻을 세움에 있어서 사물의 이치에 대한 외적 탐구에 치우치게 되면 덕을 보존하고 기르고자하는 뜻이 자연히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를 주장하면서 주희도 또한 만년에 “비록 글은 읽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나의 일에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이것(천리를 보존하는 것)은 서적을 지키고 언어에 얽메이는 것과 전혀 관계가 없다”라며 후회하고 뉘우쳤다고 자신의 학설을 뒷받침한다. 양명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를 강조하며, 학자들이 가장 중요한 뿌리인 존덕성을 기르고자 하는 일에는 소홀히 하면서 번다한 가지와 나뭇잎같이 사물의 이치를 공부하는 것에 치우치는 병통을 우려한다.

 

양명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비를 분별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어서 무엇이 사욕인지 분명하게 지각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에 사사로운 뜻만 제거하면 된다고 본다. 마음의 본체가 리이기에 학문도 마음이 본 것을 체득하여 합당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한다. 주희를 먼저 만난 후에 만난 양명의 학설은 처음 들었을 때 “개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희의 격물치지는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로 들리지만, 양명은 좀 더 접근성이 쉽게 다가왔다. 그러나 전습록을 읽으면 읽을수록 양명이 어렵다. 덕성의 함양만으로는 리에 대한 참된 인식을 얻기가 어려워서 사욕을 리로 오인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결정장애가 오게 된다. 이 마음이 리인가? 사욕인가? 풀을 뽑아야 할까? 뽑지 말아야 할까? 아이쿠야..... 이런 병폐를 막기 위해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공부가 지금 필요하다.

 

 

예민하고 괴팍하고 까다로운, 오베라는 남자

 

101조목은 선과 악을 이야기한다. 꽃밭의 잡초를 뽑는 사례를 통해 선악을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꽃을 좋은 것으로, 잡초를 나쁜 것으로 여긴다. 사욕에서 비롯되는 사물에 대한 호오(好惡)는 좋아하는 대상을 선으로, 싫어하는 대상을 악으로 규정짓게 만든다. 그러나 호오없이 잡초가 방해가 되면 뽑는 것은 이치이다. 여기에 잡초가 싫어서 뽑는 것은 사욕이 들어간 행위임을 알 수 있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사물자체에는 호오가 없고 우리 마음에서 호오를 만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천리를 따르는 마음의 본체는 호오 작용이 없다고 한다. 호오로써 대상을 선과 악으로 규정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명이 말하는 선악은 마음의 본체인 천리를 따르는 마음이 선이고, 사욕을 따르는 마음은 악이다.

 

101조목을 읽으면서 『오베라는 남자』가 생각났다. 프레드륵 베크만이라는 스웨덴 작가가 쓴 『오베라는 남자』속의 주인공 오베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따라가고자 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하는 59세의 원칙주의자다. 40년 동안 한집에 살고, 같은 일과를 보내고, 30년 넘게 한 직장에서 일한 은퇴자. 그는 새벽마다 동네 시찰을 나간다. 누가 길에 오줌을 쌌는지, 이웃이 제자리에 자동차와 자전거를 주차를 했는지, 분리수거는 제대로 했는지, 담배꽁초를 길에 버리지는 않았는지 신문배달 하는 아이가 정확한 구역에 신문을 놓는지 동네의 아주 작은 변화에도 촉을 세우며 동네 한 바퀴를 돈다. 겉으로 보면 오베라는 남자는 원칙에 어긋나면 불같이 화를 내고, 오지랖 넘치게 이웃일에 관여하는, 성가시고 까다로운 중년남자다.

마음의 본체를 따른다는, 천리를 따른다는, 존덕성의 모습은 어쩌면 넉넉하고 후덕하고 관용적인 모습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 지켜야 하는 도리가 있고, 그 도리는 일부러 좋아서 하고, 일부러 싫어서 하지 않는다. 그저 마땅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키고자하는 그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성가시고, 누군가에게는 오지랖으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음식을 낭비하지는 않는지, 분리수거는 제대로 하는지, 자동차사용을 줄이는지 관심을 가져주는 내 주변의 많은 ‘성가신 친구’와 ‘따뜻한 오지라퍼’들을 다시금 살펴보게 된다.

댓글 1
  • 2024-03-22 01:37

    그쵸. 마음이 천리에 합당한지 아닌지 아는 것이 너무 어렵죠.
    그래서 다시 주자의 격물로 돌아가서 비록 격물치지만 하다가 끝나더라도 그냥 계속 가자, 이런 생각도 드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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