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습록> 없는 '전습록' 후기^^

자작나무
2024-02-27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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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는 <전습록> 71조목에서 83조목까지 읽었다. 단편적인 조목이라서 어느 때는 공자왈을 다루고, 어느 때는 중용과 맹자를 다루더니 정이천과 주자를 '선유先儒'라고 부르며 그들을 다룬다. 똘똘한 제자가 평소의 의심나는 부분을 열심히 공부하고 기억해서 그걸 스승에게 물은 것이다.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는, 학파에 있어서 스승은 제자에 의해서 탄생된다고 말한다. 제자가 선생의 수업이나 말씀에 귀 기울여 경청하기 때문에 스승의 말은 나름의 권위를 가질 수 있으며, 또한 어록체의 경우 기록자는 스승 자신이라기보다는 제자이기 때문에 제자 눈에 비친 스승이 그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호라, 그렇구나! 사서의 경우도, 뭐 공자의 이름이야 오랫동안 유명했지만 제자 주희가 치밀한 주석 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유덕하기 그지 없는 공자가 탄생하지 않았을 터이다. 이러니 생각나는 게, <논어>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공자께서 시냇가에 계시면서 말씀하셨다.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그치지 않는도다."(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논어 자한 제9, 16>)

 

 

시냇가에 있었으니 분명 물을 보고 말씀하신 걸꺼다. 그러면 물이 잘도 흘러가는 구나, 뭐 대충 이런 의미일 수 있다. 그런데 주자는 그것을 아주 길게 해석한다. "천지의 조화가 가는 것은 지나가고 오는 것이 이어져서 한 순간의 그침이 없으니, 바로 도체의 본연이다. 그러나 지적하여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냇물의 흐름만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씀하여 사람들에게 보여주셨으니, 배우는 자가 때때로 성찰하여 털끝만한 간단도 없게 하고자 하신 것이다." 즉 뭔 말인가, 열심히 공부하란^^거다. 공자의 맥락에서 '도'란 '치국지도'이거나 방법이거나 길이었는데, '성즉리' 깔데기로 정리하는 주희에게 있어서 모든 길은 성으로 리로 도로 들어간다. 이렇게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식으로, 그렇게 우주적 섭리까지도 훤히 꿰고 있는 공자가 주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왜곡이면 어떻고 창조면 어떻겠는가. 그렇게 제자에게 생각거리나 창조적 대상이 된다면 스승도 그것도 괜찮아 할 것처럼 보인다. 

엥, 쓸데없는 말이 길었는데 공자-주자 라인의 사제관계처럼, 어록체의 특징상 똘똘한 제자의 기발한 질문이 스승을 더 빛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런데 양명학의 경우, 주자와 같은 제자를 찾지 못했기에 조금은 덜 유명한게 아닐까 라는^^;; 그럼에도 <전습록> 속 제자들은 사서를 종횡무진으로 치닫는다. 문장 하나 하나, 단어 하나 하나 ... 꼼꼼히도 묻는다. ... 나도 이렇게 촌스러우면 촌스럽게 깊이 있으면 깊이 있게 자신의 의문을 잡고 늘어지면서 질문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질문을 못하니 이건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알 수가 없다. .....잘 질문할 수 있도록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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