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철학학교 1] 순수이성비판 5주차 질문들

정군
2024-03-13 17:54
181

여기에 댓글 본문으로 목요일 오후2시까지 올려주세요!

 

댓글 9
  • 2024-03-13 20:28

    1. 344쪽 제목 순수지성개념들의 연역(B판)

    보조교재 <순수이성비판 강의>(북튜브)의 저자인 이수영샘은 "칸트가 연역론을 다시 쓴 것은 초판(A판)의 연역론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판 연역론에서는 인식의 근거를 감성과 지성의 두 가지로 설정했지요. 그 두 원천은 독립적이기 때문에 그 둘 사이에 상상력의 매개를 요청했습니다."(169쪽)

    질문 1) 칸트가 초판(1781년)을 출간 후 6년 후 재판(1787년)을 냈는데, <순수이성비판>의 '심장부'라고 평가받는 초월적 연역 부분을 사실상 새롭게 구성했다고 이야기됩니다. 아렘샘이 앞선 세미나 후기 댓글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초판에서 언급됐던 '상상력'이 재판에서는 거의 '실종'된 느낌입니다.
    반면 통각에 대해선 큰 비중을 할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칸트가 초판의 내용을 대폭 수정한 재판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재판에서 달라진 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합니다.

    2. 344쪽 "그것이 감성적 직관의 결합이든 비감성적 직관의 결합이든 지성 작용이고, 이것에 우리는 종합이라는 일반적 명칭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344쪽 주석 102 "칸트에게서는 '비감성적 직관'은 논의 거리가 될 수 없으므로, 이 구절은 '경험적 직관이든 비경험적(순수) 직관이든'으로 고쳐 읽는 게 좋을 것 같다."

    348쪽 "신(神)의 지성 그리고 신적 지성에 의한 직관을 '지성적 직관'이라 할 것이다. 칸트는 우리에게서 인식이란 언제나 감성을 통해 잡다하게 주어지는 대상을 수용 파악하는 것이므로, 인간에게서 대상과의 직접적인 대면, 곧 직관은 오로지 '감성적 직관'뿐이다. 그래서 칸트는 만약 지성적 직관이 있다면 스스로 대상을 만들어내는 자발적인 지성 곧 신의 직관이나 그런 것일 터라고 생각한다."

    질문 2) 칸트는 인간의 직관을 의미하는 '감성적 직관'과 대비해 존재자(신)에게 속하는 신적 직관을 '지성적 직관'으로 부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직관 또는 감성적 직관만 가능한 반면 신에게는 지성적 직관, 비감성적 직관이 쓰일 수 있는 만큼 직관의 결합을 설명하는 첫 번째 예시 문장에서의 '비감성적 직관'이라는 표현이 의미 전개상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3. 347쪽 "그러므로 내가 주어진 표상들의 잡다를 한 의식에서 결합할 수 있음으로써만 내가 이 표상들에서 의식의 동일성을 스스로 표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통각의 분석적 통일은 어떤 종합적 통일을 전제로 해서만 가능하다."

    347쪽 ※ 설명 "의식의 분석적 통일은 모든 일반 개념들 자체를 따라다닌다...(중략)...그러므로 미리 생각된 가능한 종합적 통일의 힘으로써만 나는 분석적 통일을 표상할 수 있다."

    질문 3) 통각의 통일을 설명하면서 '분석적 통일'과 '종합적 통일'로 나누고 있는데, 개념 규정은 명확하게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위의 내용 중 통각의 분석적 통일은 어떤 종합적 통일을 '전제로 해서만 가능하다'는 문구의 의미가 와 닿지 않습니다. 종합적 통일을 먼저 생각하고 나서야 분석적 통일을 표상할 수 있다는 것 같은데, 구체적 사례로 어떤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 2024-03-13 23:17

    아마도 세븐 샘은 정군님이 올린 그림처럼 손잡이를 재깍 돌리면 하나씩 질문이 나오나벼 ~~~~ ㅎㅎㅎㅎ

    (질문1) 나는 나를 ‘인식’하지 못한다.
    칸트는 내가 의식하고 있다는 ‘통각’을 통하여, “통각의 근원적인 종합적 원칙으로 최초의 순수한 지성 인식을 한다”(p.350, B137)고 말한다. 그런 통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현존재의 규정은 오직 내감의 형식에 따라서, 내가 결합하는 잡다가 내적 직관에 주어지는 특수한 방식에 의해서만 생길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그에 따라 ’내가 존재하는 바 그대로‘의 나에 대해서는 아무런 ’인식‘도 갖지 못하고, 한낱 내가 나에게 현상하는 대로의 나에 대한 인식을 가질 뿐이다.“(p.365. B159)라고 한다. 물자체를 모르는 것처럼, 내가 나를 의식하고 있다고 해서 내가 나를 안다(인식)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Q)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욕망하고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 나아가서 그 정당성도 ’내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실천이성비판에서 어떻게 전개하려고......(또 요상하게 딴소리 하는 것 아닙니까?)

    (질문2) ‘인식’과 ‘사유’
    “만일 스스로 직관하는 지성(예컨대, 주어진 대상들을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표상함으로써 동시에 자신이 대상을 주고 산출해 낼 터인 신적인 지성)을 상정하려 한다면, 그러한 것의 인식과 관련해서 범주들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p.356, B145) “우리에게 드러나는 사물들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수학적 개념들은 그것만으로는 인식이 아니다”(p,357 B147) 그렇다면, 순수지성적인 수학과 같은 것은 어떻게 인식되나? 특히 인식은 ‘나의 인식’으로써 주관적인 것인데......
    “순수 지성개념들은 순전한 지성을 통해 직관 일반의 대상들과 관계 맺는다. 이때 그 대상들이 감성적인 것이기만 한다면, 그것들이 우리들의 것이냐 다른 유의 것이냐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하기 때문에 순수지성개념들은 그것들을 통해서만은 어떤 일정한 대상도 안식되지 않는 순전한 ‘사유 형식’들이다(p.359 B150)”

    Q) 순수지성 개념이 직관 일반의 대상들과 감성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만 있다면 ‘인식’할 수 있다고 읽히는데, 맞나요?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는 순전한 ‘사유 형식들이다’ 라고 하는데, 범주가 적용되는 ‘인식 형식’과 대비되어 (범주가)적용되지 않는 ‘사유 형식’이 따로 있나요? 아님, 인식형식과 구별하려고 사유형식이라는 말은 쓴 것인가요?

    • 2024-03-14 11:36

      370쪽 첫 문장 "우리는 범주들에 의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대상도 사고할 수가 없고, 저 개념들에 대응하는 직관들에 의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사고된 대상도 인식할 수가 없다."라는 데서 저는 '사유형식'을, '인식한다'와 구별되는 '사고한다'로 읽었습니다만....

  • 2024-03-14 00:35

    질문 아닙니다> 계속 애를 먹이는 지성에 대한 정의가 이제 다 내려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중의 저를 위해 혹은 저같이 느끼는 다른 샘들이 계실지 몰라 여기에 칸트가 말한 지성에 대해 정리를 해 봅니다. 여기에 나오는 술어들은 아마도 1년 내내 따라다닐 것 같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돌아보기 위해 기록을 남깁니다.

    P346~347, B판) 지성은 잡다의 종합이고 아울러 잡다의 통일이다.
    P339~340, A판) 지성은 자발성이고, 사고하는 능력이고, 개념의 능력이고 판단의 능력이다. 한줄로 줄이면 지성은 규칙들의 능력이다.
    --> 감성은 우리에게 (직관의) 형식들을 주지만, 지성은 규칙들을 준다. (규칙은 객관적인 한 그러니까 대상의 인식에 필연적인 한에서 법칙이라 일컫는다)

    질문> 지난 주 세션샘이 종합을 누가하냐며 예리한 질문을 던져주셨습니다. 종합을 감성이 할까요? 아니면 지성이 할까요?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아울러 여러샘들의 의견도 듣고 싶습니다.

    제 생각을 미리 밝히자면.... 위의 요약에서 살펴보듯이 종합은 지성이 합니다. 이번주 범위 곳곳에도 지성이 한다라고 밝히고는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이러한 모든 인식 가능성의 가장 심층적인 차원에 초월적 통각을 놓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여기가 미묘하고 애매해집니다.
    1) 동일한 자기규정이라는 통일자체가 이미 종합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표상들(일단 이것이 감성적인지 지성적인지 구분하지도 맙시다. 그리고 물자체가 아님을 염두에 두고)은 (P347) 그것들이 하나의 보편적인 자기의식 안에 함께 서 있을 수 있는 그 조건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라고 합니다. 이렇다면 감성이 종합하면 이상하다, 지성이 종합해야 한다.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를 하더라도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에 이미 종합과 통일이 있다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2) 범위를 훨씬 넘는 예습 질문입니다. 저보고 이번주 범위중 가장 중요한 key word 를 골라보라면 저는 '통각짱'이라고 하겠습니다.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초월적 통각은 경험적으로 경험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직관 재료를 가질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요즘은 뇌라고 혹은 뇌가 만들어낸 작용이라고 우겨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것이 아니면 저것일 것이다라는 칸트 신공을 써보면, 통각은 지성이 만들어내는 지성개념은 아닐 것이고 혹시 이성이 만들어낸 이념이 아닐까요? 이렇게 멀리 밀어붙이면 우리는 애써 이뤄놓은 칸트의 공든탑이 결국 이성이 만든 이념 거기다 오류추리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아주 혼돈스런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부분은 이번학기 말이나 다음학기 초에 진도에 다다르면 다시 논의해 보시지요. 짧게 줄이면 칸트가 그의 모든 주장의 초월적 근거라고 할 수 있는 초월적 통각(그러니까 통각짱) 이 가상이 아니겠느냐는 질문입니다. 어째 하고보니까 지지난주와 질문이 비슷해졌습니다. 이걸로 에세이 쓰면 안되는데....

  • 2024-03-14 09:59

    P350 밑5 나는 예컨대 한 선분을 그어야만 하고, 그러므로 주어진 잡다의 일정한 결합을 종합적으로 수행해야만 한다. 그래서 이 행위의 통일은 동시에 의식의 통일이며, 그러써 비로소 한 객관이 인식된다.
    질문) 이부분은 순수 지성 인식의 근본적 원칙은 통각의 종합적 통일임을 설명하는 부분인데요, 여기서 눈에 띄는 단어는 ‘행위’ 입니다. 의식의 통일은 행위의 통일과 동시적인데요, 의식의 통일은 자기의식의 동일성으로 이어지겠죠.(p349윗부분 관련 내용) 그렇다면 좀 많이 나아가서 생각한다면 칸트에게서조차 행위가 주체를 구성하거나 결정한다는 의미까지도 은연중에 함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는 걸까요?
    P351 앞서 말했듯이, 이 마지막 명제( 의식의 종합적 통일은 모든 인식의 객관적 조건이다)는 비록 그것이 종합적 통일을 모든 사고의 조건으로 만들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는 분석적이다. 왜냐하면 이 명제가… 중략
    질문) 위의 내용은 명제의 의미는 종합적 명제이지만 그 자체로는 분석 명제이고 그것이 분석 명에인 이유를 설명한 부분이라고 읽었는데요, 그렇다면 칸트의 코기토, 즉 초월적 통각으로서의 ‘나는 사고한다’도 위의 내용처럼 명제의 의미는 종합 명제이지만 그 자체로는 분석 명제인 걸까요?, 아니면 자체로도 종합 명제인 걸까요? 그리고 만약 종합 명제라면 데카르트의 ‘나는 사고한다’는 내용으로도 분석적이라는 이야기를 16절에서 하고 있다고 보여지는데, 이 경우 ‘나는 사고한다’라는 명제는 같은 명제지만 칸트에겐 종합 명제이고 데카르트에겐 분석 명제인 건가요?

  • 2024-03-14 11:33

    350쪽에 "객관이란 주어지는 직관의 잡다가 그 개념 안에 통합되어 있는 바로 그것이다...따라서 의식의 통일은 표상들이 한 대상과 관계맺음을, 그러니까 표상들의 객관적 타당성을, 따라서 표상들이 인식이 되는 것을 결정하는 바로 그것이며, 그 위에 따라서 지성의 가능성조차도 의거한다."라는 문장이 있고 361쪽에동 "내감을 규정하는 것을 지성이고, 이 지성의 능력은 직관의 잡다를 결합하는 것, 다시 말해 잡다를 통각-이것에 지성의 가능성조차도 근거하거니와-아래에 집어넣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지성의 가능성이 근거, 혹은 의거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객관(?), 즉 통각의 통일에 따라붙는 것 같습니다. 통각의 통일은 자기의식의 초월적 통일입니다.(347) 그렇다면 이 구절은 '선험적 인식'의 가능성과 같은 표현일까요?

  • 2024-03-14 12:30

    360. 칸트는 초월적 종합을 형상적 종합과 순전한 지성적 종합으로 구분하고, 형상적 종합은 상상력의 종합, 순전한 지성적 종합은 “일체의 상상력 없이 순전히 지성에 의거한” 종합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부분에서 상상력의 정의는 “대상의 현전 없이도 그것을 직관에서 표상하는 능력”이고, 직관을 제공하는 조건이라는 점에서 감성에 속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발성의 실행이므로 곧 “우리에게 가능한 직관의 대상에 대한 지성의 최초의 적용”입니다. 달리 말해 상상력의 작용이 지성의 최초의 적용과 같으니 상상력은 지성에 속한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상상력이 감성과 지성의 두 영역에 걸쳐 있게 되고요. 그런데 여기에서 순전한 지성적 종합은 무엇을 말할까요? “일체의 상상력 없이 순전히 지성에 의거한” 종합은 직관이 완전히 배제되고 한낱 사유형식들로부터만 나온 사고, 인식을 낳을 수 없는 종합으로 봐야 할까요. 아니면, 인간적 지성이 아닌 직관을 겸비한 지성, 말하자면 신적 지성의 종합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런데 신에게 애초에 결합이나 종합이 필요할까요?)

  • 2024-03-14 13:42

    뭘 질문해야 할지를 모르겠는.....
    p346 "또한 나는 그것을 근원적 통각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요타의 모든 모든 표상들에 수반할 수밖에 없는 '나는 사고한다'는 표상을 낳으면서 모든 의식에서 동일자로 있는 다른 어떤 표상으로 부터도 이끌어낼 수 없는 자기 의식이기 때문이다."
    인용문이 의미가 있다기보다, 통각이 뭔지가 아직 잘 이해가 안 되는 듯하고, 통각이 자기 의식이다는 것에 대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 2024-03-14 14:05

    질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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