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학교 1] 4주차 후기

포도나무
2024-03-19 21:55
172

오늘은 네 번째 시간으로『마음공부 첫걸음』을 공부했습니다.

오늘 세미나 중 제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기無記’라는 단어였습니다. 무기는 아뢰야식의 이숙식과 관련이 있는 말입니다. 아뢰야식은 현재 행하는 말과 행위, 생각 등을 종자로 저장한다고 합니다(저장식). 이 과정에서 저장된 종자가 수많은 인과들과 만나 다른 종자로 생기하기도 하는데 이것을 이숙이라고 하고, 이런 아뢰야식을 이숙식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숙식에서는 선인선과, 악인악과 뿐만 아니라 선인낙과, 악인고과가 생기하기도 하는데 이는 이숙식이 ‘무기無記’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구요. 다시 말하면 아뢰야식은 선과 악 양쪽 모두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이렇게 저장되고 이숙된 종자는 다시 또 다른 인과들을 만나 다시 현행하게 됩니다. 현행훈종자가 종자생종자하고 다시 종자생현행하는 순환(순환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것일까요?)이 아뢰야식에서 일어나는가 봅니다.

그런데 요요샘은 이런 아뢰야식이 폭류와 같다고 하셨어요. 아뢰야식의 폭류 속에서 이숙이 일어나는 거라고. 상상해봅니다. 선과 악, 무기가 서로 얽혔다 풀어지고, 합쳐졌다 헤어지는 모습. 그러면 선이 선을 만나 선이 되기도 하고, 선이 악을 만나 악이 되기도 하며, 악이 악을 만나 선이 되기도 한다는 게 그럴 듯 해 보입니다. 왠지 폭류 속에는 흙도 돌멩이도 공기도 막 섞여 있어서 선과 악이 무엇과 함께 얽히고, 무엇에 의해 헤어지느냐에 따라 알 수 없는 결과들이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또 이숙이라는 말에 담기 ‘숙성’, ‘성숙’같은 의미도 생각해 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무르익다’라는 뉘앙스를 포함하면 앞서 상상한 어떤 것과의 관계 속에서 단순히 만나고 헤어지는 것 이상의 무엇이 아뢰야식에는 있을 것만 같아서요. 암튼 아뢰야식은 선과 악, 양쪽의 가능성을 가진 무기이기에 인과가 같은 등류습기도, 인과가 다른 이숙습기도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회심도 타락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말나식은 선악으로 기별할 수 없는 무기無記지만 자기 지향성으로 인해 자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기에 아치, 아견, 아만, 아애로 덮여 있는 유부무기일 수밖에 없다는 것도 마음에 남습니다. 말나식을 좀 저어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말나식도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저어함이 좀 옅어진 것 같아요.^^ 효주샘의 질문에 요요샘이 ‘의심하면 산만해져요’라고 답하신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산만함이 일으킨 불편함이 떠오르면서 그게 번뇌라는 것이 새삼스럽더라구요. 그리고 유식의 마음 분석이 수행과 관련이 있다는 설명에는 절로 유식학 수행승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수행정진이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던데, 덕분에 마음에 대해 이렇게 공부할 수 있고, 공부 덕분에 조금이라도 번뇌에서 가벼워질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요.

 

후기를 적다보니 유식학을 남겨 준 수행승에 더불어 지금 여기에서 공부를 이끌어주고 계신 요요샘과 같이 공부하고 있는 여러 샘들께도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읽고 듣고 후기를 작성하면서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은데, 요요샘과 함께 공부하는 여러 샘들 덕분에 그래도 하루에 한 가지는 마음에 자국을 남기고 있는 것 같아서요. 옅은 자국이라도 없을 때와 있을 때는 뭔가 달라도 다르겠지요? 일단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기고 싶습니다. 하하

댓글 7
  • 2024-03-20 10:45

    포도나무님의 후기를 읽으니 수업내용이 정리가 너무 잘됩니다. 저도 후기를 읽으면서 "무기"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봤습니다."무기"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논리같은데 그래도 선인선 악인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쓰고 보니 선도 악도 상대적인거같고 아~ 머리가 복잡합니다~갈수록~^^

  • 2024-03-20 10:52

    확실히 이번주 수업의 키워드는 무기였죠? ㅎㅎ
    저는 그 부분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다른 선생님들 덕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재미있는 수업이었습니다! 함께 읽는 재미❤️

  • 2024-03-20 11:42

    말나식과 아뢰야식, 첫인상과 달리 조금씩 알아갈수록 흥미롭고 매력적입니다.
    포도나무샘 말씀처럼 앞선 수행자들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고 있네요.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얼마나 많이 착각하며 혼자만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유식학에서 분류하는 마음을 보면, 사람 다 거기서 거기지, 하며 퉁치고 살아갈 때는 미처 세밀하게 살피지 못했던 것들이 아주 많아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네요. 게다가 그 모든 것이 공부와 수행을 통한 실증적인 결과물들이라니 존경의 마음이 절로 듭니다.
    말나식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아주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다가 찔리고 부끄러웠지만 우리 모두가 다 그렇구나 인정하면 거기가 수행의 출발점이겠구나 싶었어요. 최소한 엉뚱한 곳을 긁어 대며 괴로워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어디가 가려운 지를 제대로 알면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을 대신 긁어 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고 다른 방법을 통해 해결할 수 있잖아요. 동학이, 선우가 중요한 이유가 너무 직관적일까요? ㅎㅎ

  • 2024-03-20 19:27

    선과악, 죄와벌, 참과 거짓, 이렇게 이분법으로 재단하면 세상이 훨씬 더 깔끔하고 심플해지지요.^^
    내가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으로 자신을 정의하고 그렇게 내린 선택으로 세상에 대한 이해를 하기에는 불교가 던지는 묵직한 개념들은 계속 사고하게 만듭니다.
    요요샘의 둘 중 하나가 아닌 무엇이 더 적절한가를 기준으로 생각해보라는 말씀 역시 묵직하게 오네요.
    복습하는 마음으로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2024-03-20 20:11

    세미나 마치고 포도나무님, 은정샘, 해피브레드님, 그리고 오영샘, 도라지샘, 모로샘과 함께 기쁨차와 쉼차를 마셨는데
    은정샘이 에세이에 대해 물어보시더라고요. ㅎㅎ 이번 시즌 끝날 때 에세이 쓴다는 것을 환기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니 <앎의 나무>를 읽으면서도 앞서 읽은 텍스트들을 기억하며 에세이주제도 같이 생각해갑시다.^^
    포도나무님 후기를 읽으면서 알라야식의 무기성도 좋은 주제가 될 수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ㅎ

  • 2024-03-20 20:32

    저는 여전히 말나식과 아뢰야식이 헷갈려요. 그 많던 심소들 또한 익숙해지려면 오래 걸릴테고요.
    유가행파 수행자들이 깊은 선정의 상태에서 알아차린 것들을 그저 글로 익히려니 그러겠지~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더 열심히 읽어야겠네요. 명상으로 마음을 세밀하게 알아차리는 것은 아직 멀~~~었을 테니 말이죠. ㅎㅎ

    지난 시간 요요쌤께서 '다양한 잠재성이 들끓는 생장의 과정. '흐름'으로 아뢰야식을 이해하자"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제가 세상과 어떻게 만나야할 것인지 대한 질문을 만들어가야 하는구나! 라는 아직은 매우 추상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유식을 통해 만난 새로운 개념들이 아직 낯설지만 그 낯섦이 어쩌면 질문을 던지기 좋은 기회가 되어 줄 수도 있겠지요. ^^

    역시 빠른 후기가 빠른 복습을 부르는 군요!
    포도나무쌤의 다정하고 친절한 후기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4-03-21 01:21

    빠른 후기 빠른 댓글들 참 감탄입니다. ^^
    저는 아뢰야식이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하고 만들어 내는 에너지라는 부분이 크게 와 닿았어요. 수풀을 헤치고 보니 소중한 존재가 숨쉬고 있었다고 할까요? 나의 심연 깊숙한 곳에서 아뢰야식이라는 이런 놀라운 활동이 있었다니! 내 과거의 숨과 지금 현재의 숨, 또 미래를 향하여 어떤 숨을 쉬어야 할지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저도 차 함께 하고 싶었는데 일이 있어서 못하게 되었네요. 다음에도 또 기회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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