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사변은 학이면서 행이다

토용
2024-05-04 00:43
41

고동교의 편지에 대한 답신은 계속된다.

고동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마음의 본체는 본래 밝지만 기질에 구애되고 물욕에 가려서 어두워진다. 배우고(學) 묻고(問) 생각하고(思) 변별하여(辨) 천하의 이치를 밝히지 않는다면, 선과 악의 기미와 참과 거짓의 변별을 자각할 수 없어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에 맡기고 제멋대로 생각할 것이다.”

 

『중용』에 박학(博學), 심문(審問), 신사(愼思), 명변(明辨), 독행(篤行)이 나온다.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히 생각하고, 밝게 분변하고, 독실히 행한다는 뜻이다. 고동교는 학문하는 방법에 대한 주희의 해석이 맞지 않느냐고 묻는 것이다. 학문사변의 공부를 먼저 해야 혹시라도 감정에 따라 제멋대로 행하는 폐단이 없지 않겠느냐는 질문이다.

 

양명의 대답은 대체로 옳은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배웠으면 반드시 행위를 해야한다고 말한다. 입으로 효도를 배웠다고 하면서 실제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배운 것이 아니라는 것. 세상의 어떤 학문도 행위하지 않고서 배웠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에 배움의 시초는 행위(行)라는 것이다. 주희는 박학, 심문, 신사, 명변은 앎의 영역으로, 독행은 행위의 영역으로 구분하여 지(知)와 행(行)을 분리한다. 학문사변을 하고난 후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양명은 학(學)에 지와 행을 같이 포함시킨다. 즉 독행만이 행이 아니라 학문사변이 학이면서 행이라는 것이다. 덧붙여 독행은 이미 학문사변의 배움이자 행위를 하는 상태에서 그 행위를 돈독하게 하여 공부를 쉬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양명은 고동교가 학문사변만을 언급하고 독행을 말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이것은 학문사변만 앎으로 여겨서 이치를 궁구할 때 어떤 행위도 없다고 말하는 것인데, 행하지 않고 배우는 것은 없다고. 인(仁)과 의(義)는 실행하여 궁극에까지 이른 뒤에야 인과 의의 이치를 궁구했다고 할 수 있고 본성을 완전히 실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하지 않는 것은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앎과 행위는 함께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온갖 사물의 이치는 내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천하의 이치를 궁구한다는 것은 내 마음의 양지(良知)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학문사변행의 공부는 내 마음의 양지를 지극한 데까지 확충하는 것에 불과하다. 선악의 기미와 참과 거짓의 분별은 양지에서 체험하고 성찰해야 한다. ‘기질에 구애되고 물욕에 가린다’는 것은 마음의 양지를 구속하고 가리는 것일 뿐이다. 감정에 맡겨 제멋대로 하는 폐해도 마음의 양지에서 천리를 정밀하게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목조목 고동교의 의견에 반박한 후 양명은 자신의 말을 너무 각박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너무 깐깐하게 따졌다는 느낌이었을까?^^ 그럼에도 난 이렇게 세세하게 알려주는 말이 좋다. 한 번 말한다고 해서 다 알아듣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댓글 1
  • 2024-05-09 13:23

    조목조목 반박하고 너무 각박하게 생각지 말라니...흥, 그러면서도 주절이 설명해주는 양명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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