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 세미나] 『언어와 상징권력』6회차 후기

우현
2024-05-07 20:04
35

『언어와 상징권력』 3부 4장 [정체성과 재현] 후기

 

 

오늘은 얼마 안 되는 분량 덕에, 강독을 진행했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장에서 부르디외는 ‘정체성’과 같은 범주적 표현, 경계짓는 행위에 대한 해석과, 그에 대한 과학적 담론들을 바라봐야하는 사회학자들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표상들의 분류투쟁

 우선 앞에서부터 계속 언급하고 있듯이, 범주적 표현들의 원리는 실제 세계에서 일어나는 실천적 현상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다고 이야기해요. 예를 들어 투포 리듬의 저음이 강조된 음악을 ‘힙합’이라는 장르로 범주화하는 것은, 그 객관적 사실과 무관하게 정말 그렇게 느끼게끔 만든다는 것이죠. 이런 식의 범주화작업이나 목록화하는 특성들은, 실제 세계 속에서 표식으로, 징표나 낙인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권력으로도 작용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어떤 음악들은 ‘힙합음악’에 포함될 수 있기 위해서 ‘힙합이라면 응당 해야 할’ 수행적 발화를 한다는 겁니다.

 이렇듯 어떤 이론이 실제 세계에 영향을 주는 건 사실이지만, 막상 실제 세계의 사정은 좀 다릅니다. 언제나 범주화 시도에서 미끄러지는 존재들이 있기 마련이거든요. 정군샘은 음악 장르가 특히 그렇다고 강조했습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범주화할 수 있는 ‘장르’가 몇 없고, 그 안에 모든 음악들을 포섭시킬 수 있었어요. 하지만 특정한 ‘장르성’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시도들, 그러니까 랩을 하고는 있지만 “나는 힙합이고 싶지 않은데?”라고 느끼는 래퍼같은 이들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이죠. 그 결과 지금의 대중음악은 ‘장르’라는 범주화 작업 자체가 굉장히 어색해졌습니다. 이것저것 섞여있고, ‘어떤 장르다’라고 말하기 애매해졌기 때문이예요.

 이런 과정을 부르디외는 표상들의 ‘분류투쟁’이라고 정의합니다. ‘분류투쟁은 보게 하고, 믿게 하며, 인식시키고, 인정하게 하며, 사회세계의 구분들의 규범적 규정을 강요하며, 이를 통해 집단을 만들거나 해체하는 권력을 독점하기 위한 투쟁이다.’(『언어와 상징권력』, 277쪽)라며 말이죠.

 이런 분류투쟁의 시초는 지역적 분류(regio)였고, 그 기원은 왕(rex)이었습니다. 최고 권위를 부여받은 자의 ‘신성한 금긋기’로 이루어지는 분류화 작업이었죠. 이런 분류화 작업도 상징권력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인정’을 토대로 삼는데, 왕이 인정 받을 수 있는 기반은 왕의 신화적 맥락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현대에서 왕의 역할을 하는, 분류화 작업을 하는 이들은 누구일까요? 바로 아욱토르(auctor), 전문가입니다. 전문가들은 과학의 합리성을 기반으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그를 토대로 동물의 종을 분류하는 등, 특정한 경계선을 만들며 그들의 권위를 행사하죠.

 

 

나무가 아니라 숲을

 부르디외는 대상을 범주화하려는 모든 시도와 과학적 담론들은 하나의 주술행위(효력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 주술행위가 권력을 차지하면, 즉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 그것은 마치 자연적인 속성인 것처럼 그 대상에게 녹아들죠. 그 후에는 사람들의 재생산행위-그 범주화에 따른 정체성 재현 등-들이 담론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아무 이론이나 다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인정은 그 담론이 사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지, 즉 그들이 공유하는 문화적이고 경제적인 속성들에 기초하는지에 따라 부여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전문가들이 ‘합리성’에 근거하는 담론들은 분명 ‘주술적’인 측면이 있는데도, 반박되기 쉽지 않습니다. 이 ‘합리성’은 어쩌면 모든 현대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긍정적 감각’이기 때문이죠. 세미나에서는 이 얘기가 중요하게 다뤄졌습니다.

 따라서 부르디외는 사회학자들이 가져야 할 태도로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볼 것을 제안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담론을 주술화하며 실천을 중요해야한다는 ‘주관주의’(표상주의)와, 객관적 이론을 더 중요시하려는 ‘객관주의’의 이분법에 빠질 게 아니라, 두 가지를 같이 보면서 특정 담론과 실천이 어떤 맥락에서 생겨났으며 발전해갔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매주 비슷한 얘기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이렇게 강독으로 하나하나 짚으면서 보니까 이야기할 것들이 많아지네요. 역시 강독은 디테일하게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주에 볼 5장도 두 주에 걸쳐 강독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ㅎㅎ 유기적인 사회학 세미나... 다음주도 화이팅!

댓글 1
  • 2024-05-09 11:53

    아 너무나 빠르고 잘 정리된 후기에 벌써 소멸되어가던 기억과 내용들이 일목요연하게 머리에 쏘옥 정리되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후기는 매우 매우 훌륭하신듯, 이유는ᆢ 비밀^^)

    저도 강독을 하니 어려워서 휘릭 지나갔던 부분들이 해소되니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부르디외는 정말이지 했던 말 계속 하는거 같은데 신기하게도 계속 새로운 얘기를 한다는 점에서ᆢ 참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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