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 읽기 세미나] 2주차 후기 - 불가식길 이섭대천

경덕
2024-03-23 22:23
105
사실 저는 군나르 시르베크/닐스 길리에의 <서양철학사>가 2016년에 출간되었을 때 바로 구매했답니다. 그리고 당시에 누군가와 같이 읽고 싶어서 사람들을 모집했는데... 한 사람도 모이지 않았어요. 그때 이후로 그 책은 줄곧 책장 어딘가에 꽂혀 있었지요. 다행이 몇 번의 이사를 거치는 동안에도 중고로 팔리거나 분실되지 않고 무사히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우연과 인연으로 함께 읽을 사람이 모여 올해 드디어 문탁에서 함께 읽게 되었네요? 책과의 만남에도 '시절 인연'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회차 세미나에서는 2장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를 읽었습니다. 김이 모락 모락 나는 정군샘의 어니언 스프를 테이블 중앙에 놓고 둘러 앉았어요. 어느 1인 셰프 레스토랑에 들어온 기분으로 소피트스 왈, 소크라테스 왈 하며 스프를 맛나게 먹었습니다. 저희는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상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에 앞서 이런 질문을 나눴어요. 우리는 그들이 말했다고 하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지? 그들은 다른 누군가(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크세노폰...)가 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인데, 그들이 각각의 저자가 지어낸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까지가 경호샘의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루이-앙드레 도리옹의 『소크라테스』라는 책을 참고했어요. 그 책 2장 <사료의 문제와 이른바 '소크라테스의 문제'>가 우리의 질문을 어느 정도 해소해줄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저술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의 증언을 통해서만 소크라테스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럼 각기 다른 증언자들의 증언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어떡하죠? 그 중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요? 이 문제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서 이어져온 기나긴 논쟁의 역사가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역사적 소크라테스의 학설을 재구성하기 위해 철학사가들이 맞서고 또 해결하고자 몰두하는 역사적, 방법론적 문제"를 "소크라테스의 문제"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책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의 문제"와 관련된 논쟁의 역사를 시기별로 요약해볼게요. 1)1818년 '슐라이어마허의 연구를 토대로 한 소크라테스'의 시기입니다. 이전까지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크세노폰의 증언이 주류였는데, 슐라이어마허는 그의 증언이 스승을 변호하는데 과도한 열정을 쏟는 바람에, 오히려 소크라테스를 이해하기 어렵게 했다고 비판합니다. 이후 대략 100년의 시기는 크세노폰을 멀리하고, 플라톤의 증언을 신뢰하게 됩니다. 2)그렇게 플라톤의 증언을 많은 사람들이 신뢰하게 되었지만, 다른 증언자들, 즉 아리스토텔레스와 아리스토파네스 등의 증언을 더 신뢰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또 플라톤의 저작 안에서도 증언들이 불일치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보는 회의론의 시기가 도래합니다. 3)이후에는 지공이란 학자가 '소크라테스의 문제'는 답이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증언들을 문학양식으로 보고 그 허구성과 창작성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증언들 사이의 편차에 주목하는 시기입니다. 
 
이런 저런 '소크라테스의 문제'들을 소개한 후에 저자는 어떤 특정한 증언만을 선택하거나 여러 증언들을 절충하여 해결하는 대신, 증언자들이 제시하는 소크라테스의 다양한 모습을 두루 살펴보며, 증언들을 우리의 철학적 영감의 원천으로 삼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준을 소피스트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소피스트는 한 사람이 아니니까 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참고한 <소피스트 단편 선집>에서는 '대화를 중시한 사상가'란 측면에서 소크라테스 역시 소피스트로 볼 수도 있다고 나옵니다. 이것은 저의 질문과도 이어집니다. "사물들이 언제나 일정 시점에 한 사람이 처한 상황이나 의무에 의해서 규정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난다"고 주장한(이 또한 저자의 해석이지만) 프로타고라스의 "인식론적 관점주의"는, 어쩌면 거리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통해 '보편'에 닿으려고 했던 소크라테스의 사상과도 연결되지 않을까요? 소피스트 중 한 사람인 프로타고라스는 관점에 따라 참과 거짓이 달라질 수 있지만, 관점들 간의 "중첩"과 "유동적 변화"에 따라 맥락이 다르더라도 동일한 것을 인식할 수 있다고 봅니다.(이 또한 저자의 해석이지요) 소크라테스는 공통의 준거틀 위에서의 "대화"을 통해 "참된 앎", "올바른 행위" "행복", "덕"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럼 상황, 관점, 준거틀, 앎 등이 교차하는 어느 지점에서 두 사상가가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소크라테스가 특별한 건 우리의 오류 가능성과 무지함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신의 발견>을 쓴 브루노 스넬은 무지를 고백하면서도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은 소크라테스를 높이 평가합니다.
 
그런데 저의 또 다른 질문은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가 공유하고 있는 토대, 즉 "인간 중심적anthropocentric(그리스어: 안트로포스anthropos='사람') 인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책에서는 이 시기를 존재론에서 인식론으로의 전환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인류세Anthropocene의 어근이 안트로포스라는 점을 알게 되었어요. 또 현대철학에서 인식 밖 실재에 다시 주목(사변적 실재론)하고 인식론과 존재론의 분리불가능성으로부터 물질의 정치를 사유하는(신유물론) 흐름들이 떠올았어요. 세미나에서는 인간중심주의, 인류세와 같은 말이 일상에서 어떤 맥락으로 사용되고 있는지도 이야기 나눴습니다.
 
최근에 이런 칼럼도 발견했습니다.

“인류세는 죽었다. 인류세 만세” [오철우의 과학풍경]

 
'인류세'를 공식 용어로 채택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가 있었는데, 국제층서학위원회(ICS) 산하 소위원회에서 12 대 4의 투표 결과로 기각됐다는 소식이에요. 기각 이유로 "인류세의 증거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 시작을 1만년 전 최초의 농업이나 수백년 전 식민지 정복 시대가 아니라 1950년대로 못박는 것은 너무 협소하고 비과학적이다", "인류세를 새로운 지질의 시대가 아니라 지질학적 사건으로 봐야 한다"는 점을 제시했다고 해요. 인류세를 지질의 시대로 보든 지질학적 사건으로 보든, 인류세라는 말은 '지구 위기 시대를 표현하는 생명력 있는 말'로 계속 쓰일 거라고 합니다. 그럼 지금 시대에 '안트로포스'에 관하여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나눈다면 , 소크라테스의 '앎' 역시 새롭게 정의될 수 있을까요? 이후에 공부할 서양철학사의 다양한 흐름 속에서 우리의 '앎'은 어떻게 변화하고 재구성될까요? 플라톤을 읽으면 우리의 논의는 또 어디로 흘러갈까요? 담주엔 경호샘의 발제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ps. 문스탁그램에서 발견한 경호샘의 따뜻한 댓글을 여기에 다시 인용해봅니다.
 
- 저는 저녁으로 1일1식을 하는데, 오늘은 그 1식을 정군샘께서 만들어 주신 어니언 수프로 배를 채웠습니다. 정군샘의 따뜻한 마음을 온몸으로 느끼면서요...^^ 정군샘!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작년 감이당 토요주역스쿨 첫 에세이로 썼던 산천대축 괘 괘사 '불가식길' 을 실천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不家食吉 利涉大川
불가식길 이섭대천
: 집에서 먹지 않으면 길하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
 
저도 재작년 주역 세미나에서 '산천대축 괘'로 에세이를 쓴 적이 있는데요! 문탁에 오려면 한강을 건너야 하니, 저희는 '불가식길' 뿐만 아니라 '이섭대천' 역시 실천하고 있는 걸지도요...^^
 
 
댓글 3
  • 2024-03-23 23:19

    와우~~ 지난 서양철학사 2주차 세미나를 TV 재방송을 다시 돌려 보는 것처럼 질문과 답변, 그리고 책 내용을 적절히 섞어가며 짜임새있게 정리를 잘 해주신 것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경덕샘의 후기 내용을 보며, 작년 감이당 토요주역스쿨에서 써왔던 제 후기글들이 부끄러워질 정도였답니다. 문탁에 와서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고, 이런 저런 많은 것들을 배워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고 설렙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언급해주신 산천대축 괘사 '불가식길 리섭대천' 의 의미는 집에 머물지 말고, 세상으로 나아가 사람들과 교류하고 소통하라는 것이 '불가식길' 의 의미이고, 도와 덕을 마음속에 충만하게 축적했다면 그것을 시행하여 세상의 고난을 구제하러 나서야 한다는 게 '리섭대천' 의 의미라고 배웠습니다. 올해 처음 문탁에 와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여기 문탁은 '불가식길, 리섭대천' 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 같아 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댓글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3주차 발제 준비를 위해 이만 줄입니다.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 2024-03-24 15:43

    우와 경덕샘...바쁘신 와중에도 이런 후기를...! 일단 저도 정군샘께서 해주신 어니언수프가 엄청 맛있었고요ㅎㅎ소피스트들에 대해 나눈 이야기도 인상 깊었습니다. 소크라테스에 관한 것들도 그렇지만 다른 철학가들에 대해서도 저자가 누구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있는 것에서 철학의 무한한 가능성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에다 주역까지 더해지니 우주적 세미나를 한 듯한 기분이네요;; 자주 불가식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화요일에 봬요~

  • 2024-03-25 15:24

    후기글 클릭하면서 순간 잘 못 클릭했나 했는데 이런 이런~~~ 주역공부를 못했던 티를 냈네요^^;;;
    지난 정군샘 강의에서 소피스트와 필로소피에 관한 피타고라스의 일화도 생각이 나네요. 많은 소피스트들이 그리스 정착민이 아닌 식민지에서 건너온 사람들, 외국인들이었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철학담론에서 차별적 대우를 받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자료가 많지 않은 게 아쉽지만 앞으로 전개될 철학사에서 소피스트들이 어떤 식으로 재소환될지도 궁금해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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