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 읽기 세미나] 6주차 질문과 발제문은 여기에 올려주세요

경덕
2024-04-15 10:35
109

Philippe de Champaigne 의 Saint Augustin , c.  1645년 (출처 : 위키피디아)

 

 

6장 중세의 시대로 넘어왔습니다.

기독교와 철학의 만남, 이후 1000년의 시대를 살펴보겠습니다.

질문과 발제는 화요일(4.6) 오후 12시까지 올려주세요^^

 

 

댓글 6
  • 2024-04-15 13:24

    (질문1)
    (p.233~234) 그리스 철학자들은 인간을 우주 속의 피조물 중의 하나로 보았다. 물론 상위의 피조물이기는 했지만, 독특한 위상을 가진 존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이와 달랐다. 신은 이 세상 저편에 존재하는 위격(인격체)이며, 이 세상은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인간 및 신과 비교할 때, 우주는 부차적이다. 모든 것의 창조는 지상에서의 인간의 구원을 향한 투쟁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책에서는 언급하고 있다.
    만약에 신이 있고,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만물을 신이 창조했다면, 신이 굳이 인간을 편애한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것의 창조가 인간의 구원을 목표로 만들어진 것처럼 언급하고 있으니 말이다. 딱히 인간만을 편애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따라서 나는 이 지점에서 반대로 인간이 주체가 되어 나약한 인간의 구원을 목적으로 '신'을 창조한 것은 아닐까? 라는 의심이 드는 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질문2)
    (p.245~246)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치와 도덕/종교 사이를, 군주(정치인)와 사제 사이를 뚜렷하게 구분하지 않았다. 정치가 직접적으로 도덕적 기능을 가졌던 것이다. 정치는 도덕적 악을 통제하는 권위주의적 수단이다. 죄악이 세상에 출현하기 이전에는 인간은 평등하였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때 인간은 본성상 사회적 존재였다고 상정한다. 그러나 죄악의 출현과 더불어 조직화된 국가가, 강제력과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명확한 권력 관계를 갖춘 국가가 필요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와 기독교의 출현 이전에도 인간 사회에서는 선, 악의 개념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데, 위에서 언급하고 있는 '죄악의 출현' 이라는 개념은 다분히 기독교의 원죄론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 보인다. 이 시기에 죄악이라는 개념이 출현하게 된 사회적 배경은 무엇이고, 무슨 목적으로 죄악을 출현시켰을까?

    (질문3)
    (p.301) 루터의 비관주의적 인간론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고 홉스와 니체와 프로이트에게 영향을 미쳤다. 오컴을 따라서 루터도 이성보다는 신앙에 우위를 부여한다. 우리가 신앙의 문제와 관련하여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성서'에 있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믿어야 할 지 알려줄 교부도, 공의회도, 교황도 필요치 않다. 루터는 성서에 대한 비유적 해석이나 철학적 해석도 신뢰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루터가 신앙의 문제와 관련하여 '성서'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고 언급을 하고 있는데, 나는 두가지 측면에서 루터의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루터가 그토록 믿고자 했던 '성서' 자체가 하느님 또는 예수의 말씀을 그대로 기록했다고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고, 또 하나는 한 발 양보해서 '성서'를 신뢰한다고 하더라도, '루터의 성서 해석' 은 절대적으로 올바르다고 누가, 어떻게 증명해 줄 수 있는가?

  • 2024-04-15 18:42

    6장 요약 발제문입니다.

  • 2024-04-15 23:53

    1) 계속해서 나오는 감각경험이란 무엇인가요?

    2) 플라톤의 이데아의 수(number),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학문 중 수학, 아우구스티누스의 수학, 아랍인들의 수학 등 수에 대한 학문은 철학과 어떤 식으로 밀접하게 다루어지는 걸까요? 현시대에 철학은 문과, 수학은 이과 등으로 나뉘는 걸 생각하면 연결되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3) “만물의 중심인 인간. … 신이 모든 것을 인간을 위해 창조한 이상, 그리고 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고 구원을 받을 운명인 인간이 바로 창조의 귀감인 이상, 모든 것의 중심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p.243) / “인간은 고귀한 피조물일 뿐만 아니라 우주 역시 대체로 인간을 위해서, 그리고 인간이 창조주의 목적과 법칙에 자신의 삶을 바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p.255)
    → 인간이 중심이라는 것은 창조주보다 더 위라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요? 계급사회의 기능주의로서 우위를 나누어 <신이라는 진리>와 <인간이라는 내성>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헷갈립니다!

    4) <지식과 의지 (p.255~)> 챕터에서는 “의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즉 믿는다는 것은 ‘어떤 것을 참이라고 믿는 것’ 이 아니라 ‘어떤 것이 참이라고 격렬하게 주장하는 것’“ 이라고 하는데 이는 기독교 신학의 출발점인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에서 ‘우리는 무엇을 믿을 수 있는가’로 바뀐 지점과 연결하여,
    → 플라톤에서는 이데아라는 고립되지 않은 전체론이었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나’라는 주체성을 가지게 되는 초입으로서 둘이 대비해서 보는 것이 맞나 싶습니다.

    주체성을 기반으로 ‘나의 욕망’을 들여다보면서 소규모 개인들의 권력장악을 위해 “우리는 모두 본질적으로 똑같은 죄인이기 때문에 이 선택은 임의적이다. 대다수는 지옥살이의 벌을 받겠지만 임의로 선택된 소수는 영원한 연결되기 누릴 것이다. … 신은 모든 것을 알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자유의사로 연결되기 모순을 보인다.” 라는
    → 아우구스티누스의 예정설은 당시 교황과 왕이라는 하늘 위 두 개의 태양이 더 큰 권력 분산을 막고 소규모 상위 계급의 합리화를 위한 담론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예상해볼 수 있을까요?

    미술사를 잠깐 언급하자면 전체주의였던 그리스때에는 권력의 상징으로 연결되기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으나 로마시대부터는 교황과 왕의 초상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5) “우리가 살펴본 아랍의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모두 이슬람교도들이었다. 그들은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에 기초하여 작업하면서 문제들과 결과들을 이슬람화 하지 않았다. … 그러나 종교적 측면에서 볼 때 많은 학문 분야가 쓸모없거나 코란의 세계관의 기반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리스 학문의 이슬람화가 진전되면서 연구 분야의 제한이 초래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 이슬람화가 15세기 정체와 쇠퇴를 초래한 가장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한다.” (p. 321)
    → 현시대는 개인이 공부하는 수준까지 도달해서 ‘개인화’를 진행하는데, 세미나원분들은 공부를 어떤식으로 개인화하여 확장해 나가시는지 궁금합니다 . 그리고 지금 시대에 ‘이슬람화’ 처럼 개인이 아닌 ‘공동체화’가 가능할지도 얘기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 2024-04-16 07:47

    1. (230p.) 로마제국은 기원후 4세기에 분할되었고, 400년이 되기 직전에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지배적 종교가 되었다. 5세기에 게르만 부족들의 침공이 가속화되었고 서로마제국은 붕괴되었다. 고대가 종말을 고하고 중세가 시작된 것이다.

    >> 로마제국은 동로마와 서로마와 분할되어 5세기 서로마제국이 붕괴되었더라도 동로마제국은 남게된다. 그런데도 왜 고대가 종말을 고하였다고 이야기하는 걸까?

    2. (231p.) 헬레니즘 및 로마 시대의 사회적 상황이 아마도 일정한 정치적 체념과 이론 철학에 대한 관심의 결여를 초래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특히 철학은 개인적인 윤리 문제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고대 후기에 이러한 인생 철학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느끼게 되었고 많은 사람이 종교적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개인의 소외로 인해 일어나는 정치적 체념과 무기력이 개인의 안녕과 행복으로 집중하게 된 흐름은 지금 현대 개인들이 집중하고 있는 자기계발과 행복의 흐름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을듯 싶다. 하지만 고대후기에는 이러한 흐름을 타고 종교적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면 지금은 오히려 종교적인 세가 많이 약화 되었다. 오히려 물질주의가 강화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차이의 이유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3. (233p.) 기독교는 철학적 그리고 지적환경에 어떠한 새로운 생각들을 가져왔는가? … 1. 인간중심주의적 인간관 … 그리스 철학자들은 대체로 인간을 우주 속의 피조물 중의 하나로 보았다. 물론 상위의 피조물이기는 했지만 독특한 위상을 가진 존재는 아니었다. … 구원과 죄악의 개념은 덕성이나 좋은 삶의 실현과 같은 그리스의 전통적 도덕관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신을 상정하고 있는 종교관이 어떻게 인강중심주의적 인간관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신에 대한 수동적인 존재로 보고있는 것이 아닐까? 덕성이나 좋은 삶의 실현을 전통적 도덕관으로 내세웠던 그리스가 더 인간중심주의적 인간관을 가졌다고 할 수 있지 않나? 그래서 이후에 진행된 르네상스가 인본주의를 표방하는 것이 아닐까?

  • 2024-04-16 12:06

    245쪽 죄악이 세상에 출현하기 이전에 인간은 평등하였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때 인간은 본성상 사회적 존재였다고 상정한다. 그러나 죄악의 출현과 더불어 조직화된 국가가, 강제력과,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명확한 권력관계를 갖춘 국가가 필요하게 되었다.
    질문 : 여기서 얘기하는 죄악은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아담과 이브가 사과를 먹고 인간이 죄인이 된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성경 외에 다른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257쪽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은 은총을 베풀어 일정한 소수는 그 벌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정설의 내용 중 하나로, 구원받을 사람과 저주받을 사람이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예정되었다는 것은 상정해볼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만, 구원을 받을 사람과 아닌 사람이 정해져있다는 것은 근거가 부족해 보입니다. (물론 유일신에 관련된 것들이 거의 다 근거가 부족해 보이긴 함) 그렇게 치면 모두가 구원 될 수도 모두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우구스티누스는 무슨 생각으로 자기가 그 기준을 안다고 생각했을 지가 궁금합니다.

    295쪽 신이 악의 원인이 아니라고 하는 이유가, 신이 선이라고 이들이 상정하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신이 선을 원한다고 생각한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 위계와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요,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321쪽 아랍의 학문이 왜 정체되고 쇠퇴하였는지에 대하여 저자는 학문을 “이슬람화”하지 않은 것을 꼽습니다. 유일신교는 무엇 때문에 속세의 것들을 두려워할까요? 자신들의 권력이 해체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일까요? 중세 역사를 보다보니 신에는 관심이 없고 권력에만 관심이 있어보여서요!

  • 2024-04-1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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