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2 네번째 후기 : 너의 목소리가 들려

스르륵
2021-06-16 12:51
283

수업은 점점 요구하는 바가  많아졌다.  전 시간 공부한 괘를  '외우신 분 있나요?'에서 '안 외우신 분들 있나요?' 로...

하여, 안 외우신 분들은 다음 시간에 선두에 나서서 두 배로 외우시게 되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주역'도 사랑하지만 글쓰기나 발제의 괴로움이 없을 고마운  '주역 세미나'도 사랑했기에 이런 작은 과제에도 무게를 느꼈다. ㅜㅜ  이 와중에 시즌 2에서는 급기야 64괘를 통째로 외우기를 자연스럽게 권유당하고 있다.

나는 복습이야 그렇다 치고 굳이 64괘명을 왜 다 외워야 하는지 (속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부를 하는데 당연히 외움을 게을리 하면 안된다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속으로는 '내 손안에 든 세상'에서 언제든 모든 것이 검색되는데 굳이... 라고 되뇌이며 도통 손과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랬던 내가... 이젠 함 외워볼까...싶은 마음이 '드디어' 일어났다.

 

처음으로 주역의 64괘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그랬더니 새삼스러웠다. 아니 정확히 몰랐던 것이다. 

괘의 순서는 둘씩 서로 짝을 지어 상하로 바뀌거나, 상하로 바뀌어도 그 모양이 같은 괘들은 음양 반전을 하고 있었다.  

(산지박을 뒤집으면 다음괘인 지뢰복이 되고, 산뢰이는 뒤집어도 모양이 같게 되니 음양반전을 해서 다음괘인 택풍대과괘가 된다.)

분명히 내 귀에 몇 번은 울려 퍼졌을 내용들인데  이제야 눈에 들어오다니... ㅜ

 

또 신기한 것은 이렇게 모양으로 연결된 괘들의 내용들이 또 신기하게 앞 뒤 사이의 인과가 분명했다.

이 역시 첨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괘가 진행될 수록 그 인과의 이치가 놀랍고 재미있었다.

 

'하늘(1. 중천건)과 땅(2. 중지곤)이 열리고, 만물이 혼돈으로 가득 차고(3.수뢰둔), 그 혼돈 속에 생겨난 모든 것들은 미숙하고 어리다(4.산수몽). 하여 성장을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 이어지고(5.수천수),  이 양육과 성장의 과정에서는 반드시 다툼이 생긴다(6.천수송). 다툼은 큰 전쟁으로 바뀌고(7.지수사), 전쟁이 끝나면 만물은 서로 가까워진다(8.수지비). 서로 가까워지면 모이게 되고(9.풍천소축), 모이게 되면 서로의 구분이 생겨난다(10.천택리). 이제 서로 비로소 편안하게 지내나(11.지천태) 모든 것은 영원할 수 없으니 다시 불통의 시대가 오지만(12. 천지비), 불통 역시 영원하지 않기에 서로 함께 함을 도모하는 때(13. 천화동인)가 오고, 그러면 하늘의 뜻으로 큰 것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14. 화천대유). 그러나 큰 것을 소유한 때는 겸손해야 하며(15. 지산겸), 겸손하면 반드시 즐겁다(16. 뇌지예). 하여 즐거운 일에는 따르는 이가 많아지고(17. 택뢰수), 그렇다면 반드시 벌레가 좀 먹는 것 같은 고쳐야 할 일들 또한 생긴다.(18. 산풍고). 이렇게 고친 다음에야 크게 더 나아가고 이끌 수 있으며(19. 지택림), 무언가 큰 것을 볼 수 있게 된다(20. 풍지관). 큰 것을 보게 되면 반드시 단호하게 결단하고 시행해서 합해야 할 것들이 생겨나고(21. 화뢰서합), 합해지고 나면 예의와 질서가 정해지는 보기에 좋은 시대가 온다(22. 산화비). 허나 지극한 것은 반드시 뒤집어지니 꾸밈의 시대가 끝나면 민낯이 드러나 깎이는 때가 온다(23. 산지박). 깎이고 나면 반드시 되돌아오고 회복되는 때가 찾아오며(24. 지뢰복), 그렇게 되면  망령되이 움직이지 않게 된다(25. 천뢰무망). 그러면 반드시 큰 것을 쌓을 수 있게 되고(26. 산천대축), 또한 그 쌓은 것은 반드시 길러내야 한다(27. 산뢰이)' ... 까지 공부했다.

 

이러한(범박하게 정리한) 괘사의 흐름을 보다보면 중간과정은 사뭇 다르지만 앞부분에서는 성경의 창세기, 천지창조도 생각난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듯이 주역은 요한묵시록과 같은 최후의 심판으로 가지 않는다. 어린 여우가 꼬리를 적시는 그 유명한 화수미제괘로 끝남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점서로서의 주역에 조금 더 매력을 느꼈던 내가 또 다른 주역의 철학적인 얼굴에 한 발 가까워지는 듯 하다.

그러나  그 각각의 괘들안에 들어있는 6효사 안에는 우리의 상상과는 또 다른 반전들이 기다리고 있어 공부해야 할 길은 한참 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찌되었건 '쫌' 재미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시간 공부한 26. 산천대축괘는 망령됨 없는 시대를 거쳐 이제 비로소 큰 것이 쌓이는 때다. 뭔가 큰 것이 쌓인다니 효사에는 좋은 말들만 이어질 것 같다. 그런데 괘사에는 집에서 밥을 먹지 말라는 아리송한 말이 나오고, 효사들은 하던 일도 멈추라 하고, 또 바퀴통이 빠졌으니 달려나갈 수 없을 때라고 악담(?)도 한다. 그러나 또 쇠뿔에 막대를 대듯이, 거세한 멧돼지의 이빨을 못쓰게 하듯이 하면 비로소 하늘의 큰 덕을 쌓을 수 있음이라고 구체적인 격려도 한다. 

대축괘와 함께 공부한 27. 산뢰이괘 역시 산아래에서 우뢰가 움직이는 형상이지만 그 의미는 아래턱과 위턱 사이에 음식물을 넣고 씹어 무언가를 길러내는 상징으로 설명된다. 앞의 대축의 시대에서 쌓인 것을 턱 안에 넣고 씹어 자양분으로 변화시켜 길러내라는 뜻이다. 하여, 씹고 기르는 때라니 열심히 노력만 하면 되지 뭐 별일이 있을까 싶지만  효사들은 거의 하나같이  흉흉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러나 이젠 쬐금 안다. 흉흉하다고 가슴은 쓸어내릴지 언정 좌절할 필요는 없으며, 길하다고 기뻐는 하나 날뛰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자꾸 나대고 또 절망한다 ;;; ㅜ) 대축괘를 보며 소축괘를 떠올려야 하고 이괘를 보며 서합괘를 떠올려야 하지만 여전히 아직은 읽어내는데 급급하다.

 

그러나  언젠가는 ' 1일 1점 ' 할 날과 또 그 점괘에 일희일비 하지 않을 날을 기다려본다...

 

 

 

댓글 3
  • 2021-06-17 06:12

    날씨와 상관없이 스크린에 비 내리는 필름영화  한편을  심야에 본 느낌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내시다니요

    덤으로 외우는 팁 주신 거 아시죠?

  • 2021-06-17 21:05

    우와, 드-디-어!

    철학적으로 주역을 읽는 재미를 아시다니....

    64괘를 모두 훑는 그날,

    스르륵님과 모든 친구들은 주역을 얼마나 애정하게 될지 궁금하네요

    그날까지! 힘!

     

  • 2021-08-18 19:49

    우와~! 이제야 후기를 읽었네요 ㅜㅜㅜㅜ

    이렇게 멋진 후기를..ㅎㅎ

    쫌… 멋지세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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