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과 장자 6회> 내가 본 진인 이야기
기린
2024-05-10 22:53
244
작년에 『장자』의 내편 중 「양생주」편을 읽으면서 다섯 편의 글을 썼다. 양생에 대한 장자의 문장을 조목조목 읽어보며 양생의 지혜를 찾아보았다. 어느 하나 수월하지 않았지만, 번다해진 일상을 정돈하고 싶을 때 그 지혜들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올해는 남은 편들까지 양생의 지혜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장자』는 내편⸱외편⸱잡편의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편은 7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은 여섯 편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품고 있는 양생의 면면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번에는 「대종사」편을 읽어보기로 했다.
사서(四書)에는 훌륭한 인격을 갖춘 군자를 가리키는 문장들이 나온다.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리(利)에 밝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사소한 리에 전전긍긍하는 내가 소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군자의 풍모를 본받고 싶어지기도 한다. 『장자』에는 그보다 급이 더 높은 진인(眞人)에 대한 내용들이 나온다. 「대종사」편에는 특히 많다. “깊은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았으며, 활활 타는 불속에서도 뜨거워지지 않는” 급이기 때문에, 땅에 발을 딛고 다니는 범인으로서는 근접이 불가능한 경지이다. 그래서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는 일상과 괴리되어 터무니없게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일상에서 볼 수 없다는 핑계로 그 이야기 너머가 가리키는 것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1. 고요히 무심하게 일상을 사는 진인
옛날의 진인은, 그 모습이 우뚝 솟았으나 무너지는 일이 없었고, 뭔가 부족하지만 받는 일이 없었고, 홀로 서 있지만 완고하지 않았고, 크고 넓었으나 겉치레가 없었습니다. 밝고 당당한 듯했지만 어쩔 수 없이 부득이한 듯도 했습니다. 환하게 기쁨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고요히 타고난 덕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널리 세상과 어울렸지만 세상의 모든 제약을 초탈했습니다. 일부러 말을 하지 않은 듯했지만 무심히 말을 잊은 듯도 했습니다. 『낭송 장자』 179쪽
MBC 경남에서 제작한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진주에서 한약업사로 60여 년 동안 ‘남성당한약방’을 운영했던 김장하 선생님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약관의 나이에 한약방을 개업한 이후 수익의 대부분을 지역 사회에 환원하는데 전념했다. 가난한 학생들을 지원하는 장학 사업에 앞장섰고, ‘형평사운동’(진주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백정들의 신분해방운동)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형평사 기념사업회를 설립 운영했고, 각종 문화 사업에도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중에는 가정폭력 피해여성들의 쉼터를 마련하는데 필요한 재원을 후원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약방운영과 지역사회를 위한 일에 정성을 기울이다 2022년 5월에 약방을 닫으면서 은퇴하는 과정을 담은 내용이었다.
자신이 한 일을 세상에 드러내기를 한사코 거절했기 때문에 선생님의 인생이 세간에 알려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주변에서 간곡하게 권해서 마지못해 인터뷰에 응했지만,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질문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묵묵하게 넘겼다. 그 외 선생님 일상의 모습에서는 한 톨의 겉치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많은 재산을 일구었지만 평생 자동차 없이 집에서 한약방까지 걸어서 오가며 사셨다. 외투를 걸치는데 팔이 잘못 들어가 다시 입으려는 장면에서 카메라에 잡힌 안쪽 옷깃이 다 헤져서 그 속으로 팔이 들어갔다. 어느 날 당시 노무현대통령 후보가 예고 없이 방문했을 때도, 담담히 차 한 잔 권할 뿐 별다른 요동도 없었다. 자신의 삶이 굳이 조명 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일상 전반에서 당당하게, 그러면서도 고요하게 드러나는 일화였다.
모은 재산 대부분을 지역 사회를 위해 쓰게 된 까닭을 물었을 때 선생님은 조금은 어눌한 듯 담담하게 대답했다. “다른 지식으로 모은 것도 아니고, 아프고 괴로운 사람을 상대로 돈을 벌었기” 때문이었다.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선생님의 어떤 부득이함이 느껴졌다. 먹고 살려고 배운 일이었는데 문전성시를 이루어 식구들 건사하고도 남을 만큼 돈이 쌓였다. 남의 고통을 빌미삼아서 어쩔 수 없이 얻어진 수익이었다. 그것들이 세상에 널리 쓰였을 때에서야 부득이함의 제약에서도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공공연하게 돈만 밝히는 세상에서, 홀로 우뚝 솟아난 김장하 어른의 풍모에서 다른 세상을 사는 품격이 느껴졌다. 고요히 무심하게 드러나는 진인의 품격이었다.
2.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진인
얼마 후 자여가 병에 걸렸습니다. (....) 그의 창자는 위쪽으로 올라붙었으며, 턱은 배꼽에 파묻혔고, 어깨는 정수리보다 높았으며, 상투만 달랑 하늘을 향해 있었습니다. 음양의 기가 흐트러져 많이 아파 보였으나 마음은 평온해 보였습니다. 『낭송 장자』 188쪽
리 호이나키는 『아미쿠스 모르티스』 에서 남동생의 죽음을 경험하게 된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그의 남동생 버나드는 TV보는 것을 즐기고, 아내와 쇼핑과 외식을 하는 것도 좋아하는, 가끔은 친구들과 푼돈 내기 포커도 치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끝없이 말하고 쓰는 호이나키와 달리, 자신의 생각을 거의 말하지 않았던 동생이 1998년 12월 16일에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식도에 종양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의사들의 진단으로 화학치료 등의 관례적인 암 치료과정을 밟다가 다음 해 2월에 가서는, 그가 더 이상 의료시스템에 있지 않다는 것을 밝히는 편지를 보냈다. 버나드는 편지에서 자신이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것은 “하느님이 내 머릿속에 이런 생각들을 넣어줬다.”(74쪽)고 썼다.
이후 버나드는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죽음에 다가가는 과정을 받아들였다. 동생이 죽음에 임박했다는 소식을 듣고 호이나키가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 버나드의 몸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호이나키는 처음에 침대에 누워있는 그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그의 팔다리는 쪼그라들어 주름진 갈대 같았다 ...... 위와 복부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깊고 움푹 꺼진 공간이 있었다.”(87쪽) 먹을 욕구까지 완전히 사라져 얼음조각 정도만을 녹여 먹을 수 있는 상태였다. 호이나키는 그를 알아보고 그와 동화되며 기도문을 외우면서 그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곧 “인간의 삶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순환, 충만한 순환”(93쪽)이었다. 만약 버나드가 의료시스템에 계속 머물렀다면 깨져버리고 말았을 순환이었다. 그가 첫 편지를 받은 지 정확히 1년이 지난 후, 버나드는 자신이 30년 넘게 살아온 집에서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예전에는 자여가 병이 들어 곱사등이가 되었다는 위의 문장은 과장이 심하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에 버나드가 죽음을 경험하는 과정을 접하고 나니 다르게 읽혔다. 창자는 위에 올라붙고, 어깨가 정수리보다 높아 보이는 것은 몸에 붙은 살들이 다 빠져서 뼈만 남은 상태를 연상시켰다. 그러느라 몸은 통증을 느끼면서도 마음이 평온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버나드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았다면, 자여는 음양(陰陽)의 기(氣)를 통해 도달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버나드의 경험에서 “삶도 좋아할 줄 모르고 죽음도 싫어할 줄 몰라서”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진인, 자여의 모습이 보였다.
3. 가난에 쫄지 않는 진인
자여와 자상은 친구였습니다. 장마가 열흘이나 계속되자 자여는 먹을 것을 싸들고 자상에게 갔습니다. 자상의 집 앞에 이르자 노래하는 것 같기도 하고 곡을 하는 것 같기도 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자상이 거문고를 타면서 “아버지인가 어머니인가? 하늘인가 사람인가?” 라며 힘겹게 읊조리는 소리였습니다.
“자네 소리가 왜 이 지경인가?”
“나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자가 누구인지 생각해보았지만 알 수 없었네. 부모가 어찌 내가 가난하기를 바랐겠는가? 하늘은 사심 없이 모두를 덮어 주고 땅도 사심 없이 모두를 실어 주니, 어찌 하늘과 땅이 사사로이 나를 가난하게 하였겠는가? 나를 이렇게 만든 자를 찾았지만 알 수 없었네. 내가 지금 이 지경에 이른 것, 이것은 운명일세.” 『낭송 장자』 202쪽
3년간의 정규직 일을 그만 두고 6개월간 실업 급여를 받게 되었다. 실업급여는 실직한 근로자에게 일정기간 급여를 지급해 실업으로 인한 생계불안을 극복하도록 돕는 서비스다. 재취업을 위해 취업 교육, 구직을 위한 이력서 제출 등의 활동을 증명하는 증명서를 제출하면, 기존에 받았던 급여를 기준으로 책정된 금액이 지급된다. 그 중에는 고용보험센터로 직접 출석해서 구직 활동 관련 서류를 제출하는 날이 의무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출석일 당일 여유를 두고 센터에 도착했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센터가 위치한 건물 2층 복도에서 도착한 순서대로 줄을 서라고 안내 하는 분이 있었다. 이후로 속속 사람들이 도착했고 머지않아 출석한 사람들로 복도가 빼곡해졌다. 그 밀도가 낯설어지면서 실업한 사람들 틈새에서 내가 한없이 가난하게 느껴졌다.
인문학 공동체에 접속한 이후 꽤 오랫동안 공부도 하고 밥도 해결했던 환경에서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공동체에서 받은 활동비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의 일정 부분을 충당했고, 부족분은 공동체 안의 상호부조로 해결했기 때문이다. 그날 그 복도에서 나는 근로자에서 이탈해서 생계가 불안정해진 상태로 규정되었다. 재취업을 위한 노력을 증명해야 급여를 지원하겠다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그러자 그동안 별로 느끼지 못했던 가난이 확 와 닿았다. 그러자 저절로 마음이 쫄리고 기분이 가라앉았다.
장마가 열흘이나 계속되어 끼니를 이을 수 없는 지경에서 자상은 노래를 불렀다. 부모도 하늘도 땅도 사심으로 그를 가난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과연 누가 나를 이 지경에 이르게 했는가. 고용보험 센터 복도에서 가난과 마주친 순간 나는 마음부터 위축되었다. 노래는커녕 손가락 하나 까닥이고 싶지 않는 무기력을 느꼈다. 자상은 노래인지 곡인지 헤아리기 어려운 읊조림 끝에 이 가난이 운명임을 깨달았다. 이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으로 인해 어떤 마음의 동요도 일지 않는 상태에서 비롯된 깨달음이 아닐까. 배부름이 기쁨이 아니듯 굶주림도 슬픔이 아닌 것을 깨달은 마음일 때, 비로소 주어진 대로 살 수 있는 운명의 이치를 터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처지에 따라 마구잡이로 요동치는 마음으로는 좀처럼 터득하기 어려운 이치였다. 자상의 노래로 가난을 대하는 내 마음의 수준은 알게 되었다.
「대종사」편에서 읽었던 진인은 깊은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고 활활 타는 불에서도 뜨거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번에 본 진인을 떠올리자니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던 문장이 다시 읽혔다. 삶에서 직면하는 어떤 순간이 마치 깊은 물에 빠진 것처럼 당황하게 될 때, 우리는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대다가 일을 그르치게 되기 일쑤다. 그 때 요동치는 마음을 다잡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을 모색하는 사람이 진인이었다. 그 행동이 결과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수많은 사람을 도울 수도 있고, 자신에게 다가온 죽음도 평안하게 맞이할 수도 있었다. 그 마음이 직면한 가난은 노래가 될 수도 있었다. 그 노래에는 삶의 이치를 체득한 담담함이 담겨 있었다. 내가 본 진인의 이야기에서 불가능해 보였던 어떤 순간이 가능성을 모색하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는 순간으로 다가왔다. 그것이 곧 양생의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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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한, 이어지는 장자 탐구를 응원합니다. 홧팅!!
요동치는 마음을 다잡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요.
진인이 되는 양생의 지혜 넘 잘 읽었습니다!^^
전 장자가 어렵습니다.
근데 샘 글을 읽으니 조금 친해질 수도 있을 듯한 생각이 드네요. 다음 글도 기다려집니다.^^
기린샘의 깨달음이 점점 깊어가는 것 같네요 ^^
장자에서 길어낸 양생 이야기 앞으로도 잘 읽을께요~
삶의 이치를 체득한 담담함이 담긴 노래라... 감동적입니다.
장자와 양생이야기 잘 읽었어요~
잘 읽었습니다~
샘 글을 읽으니 장자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어른 김장하> 저도 보았어요. 정말 감동적이었죠. 아 우리시대에 저런 어른도 있었구나. 참 든든하고 따뜻해졌었는데, 기린샘의 글로 보니 더욱 좋네요.
고요히 무심하게 드러나는 진인의 품격.....이런 품격의 발 뒷꿈치라도 따라가 보려 노력하며 살아야겠어요.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장자, 다시 읽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