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인생극장 / 3회> 소탐대실(小貪大失), 멈출 수 없음이 문제다

기린
2019-08-1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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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님도 말씀하셨다. 부귀(富貴)가 사람이 원하는 것이라면, 빈천(貧賤)은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라고. 그래서인지 이것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분투는 마르지 않는 샘 같다. 『사기』에도 그런 인물이 나오는데 진시황을 도와 중국을 통일한 이사다. 그는 곳간에 사는 쥐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반면, 뒷간에 사는 쥐는 부리나케 달아나는 것을 보고 깨달은 바가 있었다. 아, 하물며 쥐도 저러하거늘 사람이 부귀해짐에 있어서야.

전국(戰國)시대는 천하에 일곱 제후국이 전쟁으로 패권을 다투던 때였다. 후반으로 갈수록 진(秦)나라가 두각을 드러냈다. 초나라 시골 출신 이사는 진나라로 들어가 진왕에게 유세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온 천하는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고 진나라는 통일을 이루기 위한 막바지 힘을 모을 인재가 필요했다. 이사는 출신도 미천하고 관직도 없는 자신에게도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다.

 

1.진시황에게 인정받다

 

 이사는 진왕 앞에서 다음과 같이 유세했다.

 

-지금 천하는 진나라가 상승세를 타고 제후들을 눌러온 지 여섯 대가 지났습니다. 그 사이 제후들이 진나라를 두려워해 복종한지 오래되었습니다. 이렇게 약해진 제후국들을 멸망시킬 수 있는 때를 놓치지 말고 서둘러야 합니다.

 

 진나라가 막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한 여섯 제후국은 합종을 통해 진나라를 공격하려고 했다. 그에 맞서기 위한 계책은 주변 제후국의 제후와 신하들 사이를 이간질해 합종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이사는 제후국의 대신을 매수할 전략을 내세웠다. 진왕은 그의 계략이 그럴 듯하다고 여겨 그를 객경으로 삼았다.

 다른 제후국들도 진나라에 맞설 계략을 꾸몄다. 한(韓)나라의 정국이라는 인물이 진나라로 들어와 논밭에 물을 대는 운하를 건설하겠다고 제안했다. 진왕은 이를 수락했는데, 알고 보니 진나라의 재물을 탕진시키려는 의도를 숨기고 있었음이 발각되고 말았다. 진나라 왕족과 대신들이 왕에게 이렇게 간언했다.

 

-제후국에서 들어와 진나라를 섬기는 빈객들은 대체로 자기 나라의 군주를 위하는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그런 자들의 유세는 결국 군주와 신하 사이를 이간시킬 뿐입니다. 이들을 모두 내쫓아야 합니다.

 

 이사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사는 진나라 국경에 이르도록 속수무책이었다. 어떻게 얻는 기회인데 이대로 쫓겨난단 말인가. 이사는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절박한 심경으로 붓을 들었다.

 

-효공이 상앙의 변법을 채용하여 풍속을 바꾸자 백성이 번영하고 나라가 부강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잘 다스려지고 강성합니다. 상앙은 진나라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진나라 사람이 아니면 물리치고 빈객이면 내쫓으려 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태산은 흙 한 줌도 양보하지 않으므로 그렇게 높아질 수 있었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 하나도 가리지 않으므로 그렇게 깊어질 수 있었습니다. 왕은 어떠한 백성이라도 물리치지 않아야 자신의 덕을 천하에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이사의 글을 읽은 진왕은 곧장 빈객을 내쫓으라는 명령을 거두고 이사의 관직을 회복시켰다. 이렇게 진왕의 마음을 얻자 이사에게도 출세의 길이 열렸다. 이십여 년이 흘러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하고 진왕은 시황제가 되었다. 통일 후 여러 신하들이 옛 제도를 본받아 다시 제후를 봉해야 한다고 간언했다. 진시황은 승상 이사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이사는 지금까지의 혼란이 땅을 봉해 준 제후들이 일으킨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일을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왕에게 권력을 집중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강력하게 법을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시황은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이사에게는 진시황의 신임을 한 몸에 받으면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더할 나위없는 시간이었다. 조고의 음모를 듣기 전까지는.

 

 

 

 

2.부귀를 잃고 싶지 않아

 

 시황제 37년 시황제가 다섯 번째 천하를 순수 하던 중에 사구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시황제는 큰아들 부소에게 함양으로 돌아와 장례를 치르라는 유언을 남겼다. 시황제의 옥쇄를 관리하던 조고는 딴 마음을 먹었다. 막내아들 호해를 꼬드겨 유언의 내용을 바꾸기로 했다. 그러자면 승상인 이사의 협력이 있어야 했다. 조고는 이사를 찾아갔다.

 

-지금 주상이 돌아가신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 태자를 정하는 일은 당신과 제 입에 달려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소?

 

 이사는 나라 망치는 말을 그만두라며 한 걸음 물러섰다. 조고는 물러서지 않고 종용했다.

 

-부소가 돌아오면 그를 모시던 몽염 장군도 함께 돌아올 것이오. 그러면 당신은 실각될 것이 뻔하오. 그걸 감당할 수 있겠소? 승상께서 제 말을 받아들이면 승상의 지위를 유지함은 물론 자손도 보존할 것이오.

 

 이사는 지금껏 누렸던 부귀영화를 빼앗긴다는 말에 흔들렸다. 진시황이 세상을 떠난 마당에 자신을 믿어 줄 사람도 없었다. 결국 이사는 조고의 제안을 수락했다. 시황제의 조서를 꾸며 부소에게 보냈다. 부소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겠다고 조서에 적힌 대로 자결했다. 함양으로 돌아온 이들은 시황제의 죽음을 공표하고 호해를 이세황제로 등극시켰다. 그 후 조고는 이세황제에게 이사를 모함하기 시작했다. 사구의 음모를 아는 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었기 때문이다.

 이사 또한 그것을 알아채고 조고의 단점을 이세황제에게 알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사구에서부터 조고를 믿고 의지한 황제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었다. 결국 이사는 모반을 꾀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조고의 계략으로 끔찍한 심문을 당한 이사는 없는 죄를 자백하기에 이르렀다. 이사의 자백을 전해들은 이세황제는 함양의 시장 바닥에서 허리를 자르는 형벌을 내렸다. 그와 함께 삼족이 모두 죽음에 이르렀으니, 승상의 자리와 왕족과 맺은 혼사의 연도 모두 끝이 나고 말았다.

 조고가 황제의 조서를 바꾸자고 했을 때 이사는 그 자리에서 칼을 뽑아 그의 목을 내리쳐야 했다. 그것이 자신을 믿어준 왕에 대한 의리였다. 하지만 이사는 그저 말로만 안 된다고 했다. 수많은 난관을 뚫고 쌓은 부귀 앞에서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조고는 그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 부귀를 탐하다가 그 나머지를 모두 잃어버린 형국, 소탐대실(小貪大失)이다.

 

 

 

3. 멈출 수 없음이 문제다

 

 어린 시절 책 읽기를 좋아했던 나는 집안에 읽을 책이 없는 것이 늘 아쉬웠다. 학교에도 도서관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나마 학급문고라고 교실 뒤편에 꽂힌 책들도 웬만한 것은 다 읽어치운 터였다. 그런 시절 내가 품었던 꿈이 있었다. 나중에 출세하면 고향에 돌아와서 도서관을 세워야지! 어린 마음에도 출세를 하면 도서관 정도는 세울 수 있게 될 거라고 여겼던 것 같다. 꿈이야 늘 변하게 마련이어서 시간이 흘러 다른 꿈을 갖게 되면서 잊고 살았다.

 이사의 인생을 읽으면서 문득 출세를 바라던 그 마음이 떠올랐다. 자신의 처지에서 결핍을 느끼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마음이야 누구나 갖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이사가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고 이룬 삶은 충분히 인정받을 만하다. 문제는 목표를 이루었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이었다.

 

 

 

 

 대만의 문화 비평가 탕누어는 『역사, 눈앞의 현실』에서 “인간의 경험을 다시 성찰하고 다시 설명하지 않으면, 인간의 진귀한 역사적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양호한 부분을 결국 망각하고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썼다. 이사는 자신의 경험, 즉 진시황을 도와 천하를 통일 했던 그 경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당장 눈앞의 부귀에 집착하여 자신의 선택이 의미하는 것을 설명할 시간도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자 감당할 수 없는 곤경이 밀어닥쳤고 그는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부귀를 향한 욕망을 멈출 수 없었기 때문에 천하통일이 이룩한 진정한 가치를 상실하고 말았다.

 공자님의 말처럼 사람은 부귀를 원한다. 문제는 부귀만 원하는 것이다. 그러느라 추구해 볼만한 다른 모든 가치를 놓쳐버린다면 소탐대실의 회오리는 언제든 우리 앞에 재현될 것이다. 당장 인구에 회자되는 사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그녀는 끝까지 그 사실을 부인했다. 구체적인 표절이 낱낱이 밝혀지기까지 그녀는 완강했다. 결국 남은 것은 표절작가로 추락한 현실이었다. 최근 다시 집필 소식을 전한 그녀는 표절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자신의 대처를 후회하는 심정을 밝혔다. 옛날의 명성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그녀가 가야 할 길이 아득해 보였다.

 한편, 스웨덴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는 소탐대실에 직면한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자고 직접행동에 나섰다. 그녀는 지금의 심각한 기후변화를 막으려면 현재 사회의 생활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주장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학교 등교를 거부하고 스웨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현재 그녀는 자신의 주장에 관심을 가지는 세계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세계 곳곳을 여행 중이다. 그녀가 선택한 교통수단은 비행기가 아니라 기차라고 한다. 1㎞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비행기가 285g, 자동차가 158g인 반면 기차는 14g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고향에 갔다가 최신식으로 지어진 도서관에 들렀다. 서가에는 신간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열 살 때는 나라의 세금으로 도서관을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알았다면 장차 출세를 바라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을 찾으려 했을까? 모를 일이다.

 현재 우리는 해마다 최고 기록을 갱신하는 기후의 변화를 직접 겪으며 산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것이 행복한 삶이라 예찬한다. 그 욕망을 탐닉하느라 지구를 더 뜨겁게 한다는 사실은 외면한 채. 바로 소탐대실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어디서부터 멈추어야 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글 : 기린

 

게으르니 프로필.jpg

『사기』를 읽었다.

모든 인간에게는 자기만의 ‘드라마’가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 믿음으로 한 편, 한 편 상영하는 인간극장!

막이 올랐다.

 

댓글 3
  • 2019-08-15 10:34

    내게 무엇이 큰 것이고, 무엇이 작은 것인가를 먼저 따져볼 줄 알아야겠군요...잘 읽었습니다~ ^^

  • 2019-08-21 09:53

    탐하는 것이 무엇이건 그것이 지나치다면 그보다 더 큰 것을 잃게 되는 법! 이라는 뜻으로 읽히기도 하네요. ^^

  • 2019-08-21 14:56

    자녀가 있는 사람과 자녀가 없는 사람 중 누가 기후변화에 더 관심을 가질까, 어디선가 조사를 했다는군요.
    우리의 예상과 달리 조사결과는 자녀가 있는 사람보다 자녀가 없는 사람이 더 관심을 가진다로 나왔다고 하더군요.
    소탐대실, 내 자식의 눈앞의 안위를 바라는 우리의 탐욕이 그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의 한치 앞도 보지 못하게 한다는 이야기로 들리더군요.
    (근데.. 이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인용을 하고 싶지만 그게 당최 생각이 안나는군요.)

한문이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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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
2024.05.14 | 조회 137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작년에 『장자』의 내편 중 「양생주」편을 읽으면서 다섯 편의 글을 썼다. 양생에 대한 장자의 문장을 조목조목 읽어보며 양생의 지혜를 찾아보았다. 어느 하나 수월하지 않았지만, 번다해진 일상을 정돈하고 싶을 때 그 지혜들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올해는 남은 편들까지 양생의 지혜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장자』는 내편⸱외편⸱잡편의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편은 7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은 여섯 편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품고 있는 양생의 면면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번에는 「대종사」편을 읽어보기로 했다.     사서(四書)에는 훌륭한 인격을 갖춘 군자를 가리키는 문장들이 나온다.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리(利)에 밝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사소한 리에 전전긍긍하는 내가 소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군자의 풍모를 본받고 싶어지기도 한다. 『장자』에는 그보다 급이 더 높은 진인(眞人)에 대한 내용들이 나온다. 「대종사」편에는 특히 많다. “깊은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았으며, 활활 타는 불속에서도 뜨거워지지 않는” 급이기 때문에, 땅에 발을 딛고 다니는 범인으로서는 근접이 불가능한 경지이다. 그래서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는 일상과 괴리되어 터무니없게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일상에서 볼 수 없다는 핑계로 그 이야기 너머가 가리키는 것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1. 고요히 무심하게 일상을 사는 진인   옛날의 진인은, 그 모습이 우뚝 솟았으나 무너지는 일이 없었고, 뭔가 부족하지만 받는 일이 없었고, 홀로 서 있지만 완고하지 않았고, 크고 넓었으나 겉치레가 없었습니다. 밝고 당당한 듯했지만 어쩔 수 없이 부득이한 듯도 했습니다. 환하게 기쁨을 드러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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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4.05.10 | 조회 192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나무를 닮은 사람   다르덴 형제의 <아들(Le Fils/2002>     아들 살해범을 만났다   주인공 올리비에의 아들은 5년 전에 살해당했다. 그 후 올리비에는 아내와 헤어졌고 하던 일도 그만두었다. 지금은 청소년 재활센터에서 아이들에게 목수 일을 가르친다. 아들을 잃은 그가 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의 갱생을 돕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는 올리비에의 뒷모습으로 시작되는데, 그는 자기 아들을 살해한 프란시스가 재활센터에 왔다는 것을 확인하는 중이다. 그가 동요한다는 것은 근접 촬영하는 카메라로 인해 전달된다. 초점은 어긋나고 사각의 프레임 안의 이미지는 흔들린다. 우리에게도 질문이 던져진다. 만약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가 살해당했는데 그 살인범을 지금 만났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하겠는가.     보통 관객들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카메라 시점을 따라 감독이 의도한 바를 따라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너무 가까이, 너무 흔들리는 시점을 보여주기에 ‘영화 보기’에 있어서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카메라가 비추는 이미지 외에 어떤 설명도 따라붙지 않는다. 또 영화음악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사물이 내는 소리나 인물들의 대사와 호흡으로 오롯이 채워 넣는다. 시간이 흘러가도 올리비에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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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우
2024.04.28 | 조회 186
토용의 서경리뷰
신화가 역사가 되다   정치는 실종되고 ‘심판’만 있었던 총선이 끝났다. 공약이 뭐였는지도 모르겠다. 민생은 아랑곳없이 저들만의 욕망을 채우려는 선거를 언제까지 봐야할지.... 의식주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살 만한 세상, 보통 사람들이 소박하게 꿈꾸는 세상일 것이다. 저마다 각자 살 만한 세상에 대한 감각은 다르겠지만, 동양고전 특히 유가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면 살 만한 세상의 전형으로 ‘요순의 시대’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요와 순은 유가에서 가장 존경받아온 성왕이다. 요와 순이 다스렸던 시대는 태평성대라 불렸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통치자가 누구인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통치자도 자신들을 특별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연에 따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나라는 원만하게 잘 운영되며 그 속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에 만족하며 살았다. 유가는 이러한 요순의 정치를 이상적인 정치로 생각했다.   이렇게 대단한 통치자 요와 순은 어느 시대 임금이었나? 안타깝게도 실존 인물이 아니라 전설에 존재하는 임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와 순은 중국고대사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중국의 고대신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신화 속의 요는 반인반수의 모습이라든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나오지 않는다. 마치 어딘가에 살았을 원시 부족의 후덕한 부족장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서경』과 『사기』에서는 요와 순을 역사상 실존한 군주로 기록한다. 『서경』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와 순의 언행을 기록한 「우서(虞書)」, 하(夏)‧상(商)‧주(周) 각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하서」, 「상서」, 「주서」가 그것이다. 「우서」의 처음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은 요와 순이 가진 덕과 그...
신화가 역사가 되다   정치는 실종되고 ‘심판’만 있었던 총선이 끝났다. 공약이 뭐였는지도 모르겠다. 민생은 아랑곳없이 저들만의 욕망을 채우려는 선거를 언제까지 봐야할지.... 의식주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살 만한 세상, 보통 사람들이 소박하게 꿈꾸는 세상일 것이다. 저마다 각자 살 만한 세상에 대한 감각은 다르겠지만, 동양고전 특히 유가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면 살 만한 세상의 전형으로 ‘요순의 시대’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요와 순은 유가에서 가장 존경받아온 성왕이다. 요와 순이 다스렸던 시대는 태평성대라 불렸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통치자가 누구인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통치자도 자신들을 특별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연에 따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나라는 원만하게 잘 운영되며 그 속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에 만족하며 살았다. 유가는 이러한 요순의 정치를 이상적인 정치로 생각했다.   이렇게 대단한 통치자 요와 순은 어느 시대 임금이었나? 안타깝게도 실존 인물이 아니라 전설에 존재하는 임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와 순은 중국고대사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중국의 고대신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신화 속의 요는 반인반수의 모습이라든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나오지 않는다. 마치 어딘가에 살았을 원시 부족의 후덕한 부족장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서경』과 『사기』에서는 요와 순을 역사상 실존한 군주로 기록한다. 『서경』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와 순의 언행을 기록한 「우서(虞書)」, 하(夏)‧상(商)‧주(周) 각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하서」, 「상서」, 「주서」가 그것이다. 「우서」의 처음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은 요와 순이 가진 덕과 그...
토용
2024.04.27 | 조회 172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봄날
2024.04.22 | 조회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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