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가는 왜 소멸했을까?

여울아
2023-06-27 03:50
226

지난 시간 슈어츠의 <중국 고대 사상의 세계>를 통해 묵자의 운명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왜 묵가는 사라졌을까? <한비자>에서 유가와 더불어 현학(유행하는 학문)으로 불리기도 했던 묵가는 진통일 이후로 급격히 스러져서 20세기까지도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전국시대 묵가가 떠오르는 학문이었다는 근거는 많다. 첫째 <장자>에는 이들이 논리학(변증법) 등으로 궤변론자들뿐만 아니라 노자와 도가에도 영향을 미쳤던 기록이 남아있다. 둘째 <맹자>에서 양주와 묵가는 거부되지만, 이것이 이들의 영향력을 입증한다. 셋째 약소국의 전쟁 방어를 위한 폭력과 상벌의 강조 및 인간 본성에 관란 묵가의 태도는 법가의 토양을 준비하는데 도움이 된다. 슈어츠는 묵가를 진제국 통일의 밑거름이라고 평가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쇠퇴의 이유는 첫째 조직의 붕괴이다. 진제국의 중앙집권적 관료주의는 묵가와 공존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 이들 묵가의 행태(어디든 전쟁의 위협에 시달리는 약속국들을 대신해서 싸우는 집단)는 전국시대 유세객들처럼 느슨한 개방 조건에서만 존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는 통치자들에게 묵가의 유세는 매력적이지 못했다. 군주들의 관심은 오직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가의 문제이다. 따라서 전쟁 대신 안전과 생존을 추구하는 것이 장래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묵자의 공리주의적 주장은 공자의 주장만큼이나 허무맹랑할 수밖에 없다. 셋째는 종교적인 측면에서 하늘과 귀신을 의지하려던 묵자는 대중적 호소력을 거의 상실했던 것 같다. 가령 "잘못하면 하늘이 벌을 내린다"와 같은 식. 

 

그러나 당대 유세에 실패한 것은 묵자만이 아니다. 유가 또한 실패했다. 그럼에도 왜 묵가에게 더욱 치명적이었을까? 유가들은 의례 전문가들로 행세하며 통치자들의 그늘 속에 있었다. 이에 반해 묵자들은 엘리트 문화와는 극단적으로 유리되어 있었다. <장자> 천하편에서 "후세의 묵가들이 가죽옷과 털옷에 나막신과 짚신을 신고서 밤낮을 쉬지 않고 일을 함으로써 극도로 스스로를 피곤케 하는 것"이라고 한다. 슈워츠는 묵자의 생각이 극단적이었기 때문에 자칫 비인간적이고, 이들의 논리 그 자체가 진리일 수 없었다고 평가한다. 슈어츠는 묵가의 가장 큰 약점은 문화가 없다는 것, 반문화적이었던 점을 지적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여기서 문화란 인간의 자연적인 감정들이 살아있다는 의미이다. 이에 대해 묵자는 지나치게 스스로를 억제하였고, 이러한 인위적인 노력은 오히려 이들의 입지를 좁힐 수밖에 없었다. 

 

이번 주 마지막 제자백가 세미나는 묵자의 어록과 그레이엄의 묵자편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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