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기본소득릴레이 11> 밴댕이 소갈딱지의 여유

작은물방울
2020-04-28 12:59
849

위기 상황이 닥쳤다.

남편의 직업특성상 11월까지 월급이 들어오고

12월부터 2월 중순까지는 수입이 없다.

우리는 농한기의 삶을 위해 약간의 적금을 들고 그것을 파먹으며 겨울을 보낸다.

우리 가정의 수입원인 남편은 재수학원에 와서 재수를 하는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자주 이야기했지만 나는 아껴 쓰면 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올해는 남편이 잘 나갈 때에 비해 학생들이 반으로 줄었다. 그래도 아껴쓰면 또 1년은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나의 정신승리를 멈추게 한 것은 코로나였다.

급기야는 적금을 깼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통장의 푼돈들을 모았다.

그도 모자라 우리집에서 가장 돈이 많은 아들의 통장(돌때부터 어른들이 주신 용돈을 모아놓은 통장)을 하루에도 몇 번씩 쳐다봤다.

음식솜씨 좋은 시어머니 아래서 풍족하게 먹고 자란 남편은 미식가임을 자랑하며 잘먹어야 하는 사람이고 그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아들도 대식가를 군자보다 더 좋은 사람처럼 생각한다.

먹을 것들이 금세 사라졌다. 맘에 여유가 없으니 난 그들의 입이 무서웠다. 속으로 미래형 인간은 적게 먹고 오래 버틸 수 있는 인간일 것이라고 중얼거렸다.

 

며칠 전 재난기본소득이 들어왔다. 먹고 싶었던 케이크도 사먹고 우아하게 와인도 사먹었다. (3월부터 배도 부르고 값도 싸고 금세 취하는 주종인 막걸리로 갈아탔었다.) 두 남자들이 먹고 싶다는 갈비찜(호주산이지만)도 사먹었다. 내 돈도 아닌데 동거인 남자들에게 많이 먹으라고 부족하면 더 시키라고 선심을 썼다. 아이가 사달라는 햄버거를 잔소리 없이 사준다. 꽁돈 40만원(아들과 나의 재난 소득을 합쳐)에 마음이 열린다.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었던 코로나가 서서히 잦아들고 오늘은 5월 초 개학에 대한 논의도 뉴스에 나온다. 답답하기만 했던 시간들이 익숙해지고 받아들여지면서 마음도 조금씩 차분해진다. 완화된 코로나 때문인지 꽁돈 40만원 때문인지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아들의 D라인이 자주 사랑스럽다.

 

주말에 재난소득을 사용했다는 문자가 왔다. 헉!!! 벌써 이렇게나 많이 썼다니!! 다시 또 마음이 팍팍해진다. 난 대인배가 되긴 글렀다.

꽁돈이 또 나올 때가 없을까? 정부가 준다는 기본소득이 남아있고, 남편카드에 담긴 20만원도 아직 남아있다. 그리고 우리집 갑부의 통장도 아직 그대로이다. 히히 참으로 다행이다.

기본소득 그것은 나에게 마음의 여유이며 (쫄아든)간이 조금은 확장되는 경험이다. 그리고 같이 사는 동거인들을 사랑스럽게 볼 수 있는 눈이다. 이 여유!! 즐겨보련다.

댓글 6
  • 2020-04-28 14:20

    선생님 남편 카드에 들어있는 재난 소득은 이제 오만원 남았습니다.
    정신차리십쇼

    • 2020-04-28 21:42

      여유를 좀 여유있게 즐기게 잠시 냅두면 안되나? 룡룡선생 ㅋㅋㅋㅋㅋ

    • 2020-04-28 22:15

      크크크 물방울쌤도 자룡쌤도 글솜씨들이 너무 좋으세요 캬캬캬

      • 2020-04-29 19:16

        난 왜 룡룡에게 공감이 더 가는걸까 ㅋㅋ
        물방울 ㅋㅋ

        에잇 오만원 마저 써버려야지!
        바닥을 쳐야지!
        다시 올라오지
        ㅋㅋ

  • 2020-04-28 21:39

    물방울의 마음에 빙의되어 당분간은 내 눈에도 두 남자의 라인이 사랑스러워 보일 듯.ㅋㅋ
    근데.. 어제 저녁에 찬결이가 문탁에서 이렇게 배부르게 먹은 적 없는 것 같다고 말했는데..
    대체 갈비찜은 언제 먹은겨?ㅎㅎㅎ

  • 2020-04-29 12:19

    공감 100% ^^
    나도 4월 내내 쪼들리다 재난기본소득을 받아보려 했지만
    재난기본소득보다 오늘 월급이 먼저 나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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