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가 살아 남는 법

가마솥
2024-03-1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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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10일 째 정리 중입니다.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고, 아들놈 식구가 분가를 하고 나서 집/짐 정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거의 다 했고, 이제 옷방만 털면 됩니다.

 

두 사람만 남으니, 갑자기 공간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이 공간은 뭘로 할까? 쉽게 합의되다가도 어떤 곳은 이*해*충*돌* 합니다.

마치 신혼집을 꾸미 듯이.....(나만 그런가? )

1층 어머니 방은 손님방으로 꾸몄습니다.   오늘은 웬지 밖에서 자고 싶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오세요......ㅎㅎ

 

 

2층 거실의 안락의자 등도 정리해서 그 동안 쓰지않던 엠프 시설(88년산 Inkel)을 설치했습니다.  LP판을 돌려 보니, 어디가 문제인지 조금 큰 음역에서 음이 찌그러 집니다만, 적당한 크기로 틀면 될 듯 합니다.

 

 

이해충돌은 명상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들 부부의 침실을 명상방으로 하겠다고 합니다. 2층에서 끝 쪽에 있는 방이어서 제일 조용하고 창밖으로는  숲속만 보입니다.  O. K !  

명상은 아침에만 하니까, 낮에 혹은 밤에는 연습실로 쓰겠다고 악기를 들여 놓았습니다.  그런데, 어차피 명상방으로 만들었으니 방을 텅 비우자는 것입니다.  아니! 명상할 때는 어차피 눈감고 하는 것 아닙니까? 거기에 키타가 몇대 있다고 방해되지는 ....... 

휭 ~~~  꽃샘 바람이 지나 갑니다.

 

 

4년간 비워 놓았던 공항동 어머니 집을 치우는 일이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너무 오래 집을 비워서 나빠지기 전에 세라도 내어 놓을까 합니다.  보관해야 될 물건과 쓸만한 물건만 챙겼습니다. 장인 어른이 쓰시던 원목 큰 책상이 보입니다.  아깝습니다.  가져다 쓸까 합니다.  무지 무지하게 무겁습니다.  거의 피아노를 드는 무게입니다.  공항동에서 내릴 때에는 사위놈과 고기리에서 2층으로 올릴 때에는 아들놈과 한판 씨름을 했습니다.  하빈이 방을 개조한 나의 공부방에 놓아 보니, 진한 밤색 책상이 아주 멋집니다.

1층, 2층 가릴 것 없이 빈 공간에 채워져 있는 문제의 책들을 정리합니다. 장인이 쓰시던 책장과 우리 책장을 나란히 진열하여 주제별로 책들을 옮깁니다.  이제 문탁을 들락 거리기 시작했으니 내 책은 책장 한 두칸 정도이고, 모두 인디언 책들로 꽉 채워 집니다. 열심히 책들을 정리하고 의기양양하게 "어때?"하며 폭풍칭찬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거 뭐야?"
"어버지가 쓰시던 책상." (불길합니다.)
"그래요?  그거 여기다 놓아 봅시다."(엥?) 
안된다.  그러면 나는 무슨 책상으로.... 그리고 무지하게 무거워서 못 움직인다. 책상이 크면 에세이가 잘 써지냐.  버텼지만. 결국 아들놈을 불러서 책장 앞에 길게 떡하니 놓고는, 아주 만족스런 표정으로......
"좋은데!?"
"엄마.  원장 선생님같어....." 아들놈도 맞장구를 칩니다.  이 자슥이!
"나는 무슨 책상으로......"
"아빠. 우리가 쓰던 식탁있잖어?"    이 새끼가!

결국, 나는 벽면을 마주보고 면벽하는 방향으로 책상대신에 그 자식 밥상을 놓았습니다. 독서실 고딩? 기분 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그 동안 어머니 덕분에 하빈이 덕분에 삼시 세끼를 잘 얻어 먹었는데, 이제 부터는 내 힘으로 잘 보여야 '삼식이 새끼'소리를 면할 수 있으니까요. ㅎㅎ

 

 

 

그라고 보니, 집 치우느라 며칠을 고생했는데, 이노무 집에서 고작 100원짜리 두 개와 500원짜리 한 개를 건졌을 뿐입니다. 

아!  보물을 찾긴 찾았습니다.

고기리 집을 짓고, 집들이로 신영복 선생님이 써준 글씨가 있었습니다. 얼마전 선생님이 돌아 가시고 퍼뜩 글씨 생각이 나서, 그 것을 찾아 온 집안 구석 구석을 뒤져도 소용이 없어 빤쯤 포기했었죠. 그런데, 항상 보고 있는 TV 아래 리모콘등 부속 물건 넣는 곳에 나무렇지도 않게 반쯤 뜯긴 편지 봉투안에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무심코 버릴 뻔 했지요.  표구해서 평창에 걸어 놀까 합니다.

 

 

그나저나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크다'고 하더니만, 어머니도 아이들도 떠나간 공간들이 휑 ~~~  합니다.

봄이 오면 좀 나으려나.......

 

댓글 6
  • 2024-03-10 10:26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샘, 기타를 샘 공부방으로 가져가세요 ㅎ
    (아무래도 곧 그리될 듯^^)

    • 2024-03-10 10:32

      흥 ! 칫! 뿡 !!!!!

  • 2024-03-10 21:52

    저 역시 퇴직 기타인으로서 응원의 한 표 던지고 갑니다. 가마솥샘 홧팅!!(버뜨... 참고로 제 기타는 신발장 옆에 ㅋㅋ)
    언젠가 가마솥샘과 슈퍼 울트라 퇴직 기타인 연대 연주 콜라보...를 하고 싶네요ㅎㅎ

  • 2024-03-10 22:03

    가마솥샘 책상이 전교 1등에 안어울리게 너무 작은데요? 안타깝습니다.
    샘 딜을 해보세요. 기타 빼주는대신 책상 바꾸자고요. ㅋㅋㅋ

  • 2024-03-11 09:08

    와, 신영복 선생님 글씨가 있는 집이군요!!
    4년만에 다시 2인 가구가 되셨으니 이제 은퇴후2막이 시작되나요?^^
    그 출발점이 그동안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영역을 재배치하는 것이군요.ㅎㅎㅎ

  • 2024-03-17 17:49

    책상이 공부하는 건 아니지만…명작이 가능한 책상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