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물론 이론의 전장] 1강 후기 말하기는 언제나 '함께-말하기'다

정군
2024-02-08 00:21
280

이번 겨울 방학, 세미나 신청자들을 읽기의 감옥으로 몰아넣었던 <신유물론 이론의 전장>(이하 <신유물론 강의>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

 

본격적인 후기에 앞서 잠깐 설명드리자면, 공지에서 여러 차례 말씀드린 것처럼, 올해부터 문탁에서는 세미나와 강의를 결합한 형태의 강의 형식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세미나강의'인데요, 강사 선생님에게 강의를 듣기 전에 3-4주 정도 미리 세미나를 하면서 해당 주제에 관해 공부하고, 그 과정에서 도출된 질문들을 중심으로 강사 선생님의 강의를 진행하는 형식입니다. 세미나까지 모두 소화하는 게 가장 좋은 케이스일테고요, 이번에는 강의만 듣는 선택지까지 포함하였습니다. 후자의 경우에 체감이 어떠실지 조금 걱정되기도 합니다만, 이 경우에 관해서는 선생님께 드리는 질문안에서 최대한 배경 지식을 들을 수 있는 형태로 구성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첫번째 강의가 끝난 결과, 기획하고 세미나 진행하고 북치고 장구친 제 나름의 평가는 '그래도 괜찮았다' 입니다. 물론, '이게 다 무슨 소리인가' 싶은 기분이 드실 수도 있지만, 이건 '신유물론'이라는 주제 자체가 워낙 새롭고(낯설고), 어려운지라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오히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신유물론'에 관한 개론적인 지식을 얻기에 충분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강의를 통해 얻게 된 키워드들을 이용해서 공부를 지속해 갈 수 있는 계기는 만들지....않았을까요?

 

강의를 들으면서, (나중에 문탁샘께서도 질의응답 중에 말씀하셨지만) '신유물론'의 이론적인 작업을 전체 철학사 또는 철학에 대한 '회절적 독해'로 요약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말로는 '재독해', '재해석'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테고요. 이를테면, 신유물론은 고대 원자론, 근대 기계론, 맑스의 유물론에 대한 비판적 독해 속에서 나타난 흐름이라고 입니다. 가령 들뢰즈의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만 보더라도 들뢰즈 자신이 고래로 전해져온 철학들을 재독해 하면서 차이와 반복, 시뮬라크르, 기관없는 신체, 개체화 등과 같은 특유의 개념들을 주조합니다. 저는 그 텍스트들이 '재독해'의 훌륭한 표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런 작업을 왜 하느냐, 그러한 '재독해'를 통해서 '오늘의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통상적인 '정치'에 대한 표상(의회정치, 선거, 대의제 민주주의)에 따라 보자면 공허한 질문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공허함은 당장 프라임타임 뉴스만 봐도 실감할 수 있고요. 도대체 저기(여의도와 용산)서 일어나는 일이 내 삶과 무슨 상관이 있냐는 생각이 안 들수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강의 말미에 나왔던 '사물들의 의회', '물질적인 것의 정치'와 같은 형태로 '정치'를 상상한다면, 우리는 모든 곳에서 '정치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당장 내가 먹고, 입고, 타고, 걷고, 보는 모든 것이 '정치'가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가운데에서 '말'하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그것들은 우리 '말'과 '생각', 이른바 우리가 생산하는 '담론'의 조건을 이루는 셈입니다. 이를 신유물론자들은 '물질적인 배치의 국소성'이라고 말합니다. 요컨대 우리가 어떤 담론을 생산할 때, 그것은 항상 내가 처한 물질적 배치에 의존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모든 말하기는 결국 '함께-말하기'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을 영원히, 궁극적으로 설명해내는 초월적 로고스 같은 것은 결국 하나의 착각이 되고 말고요(저는 이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신유물론'의 새로움은, '물질'을 '실체'나 '원리'로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되기', '물질이 되어감' 또는 '개체화', '발생 중인 것'으로 본다는 점입니다. '말'은 그것 자체로만 놓고보면 '재현적'인 겁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신유물론의 관점에 따라서 보자면 그러한 '재현적인 것을 통해 비재현적인 것'을 볼 수 있고, 봐야하죠. 이때 중요한 것이 재현적인 것을 통해 비재현적인 것을 상상하는 사유의 역능으로서 '사변'이나 감지되지 않는 것을 감지함으로서 발휘되는 감지의 역량으로서 '감응'과 같은 능력들 입니다.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같은 '말'을 둘러싼 온갖 힘들의 흐름 등을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관점의 변화가 가져오는 장점은 대단히 큽니다. 일단, 물질을 실체적인 것으로 봄으로써 일어날 수밖에 없는 문제를 피해갈 수 있습니다. 그 문제란 '그럼 정신은 어디서 생긴거야?' 같은 문제가 그것이죠. 신유물론에 따르면 이 문제는 사실 가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물질-정신은 따로 나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준영샘은 이 문제를 '철학사 기술의 오류'라고 하였고요. 신유물론적으로 보자면 이 문제들 역시 어떤 담론적 배치 속에서 생겨난 것들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깊이 각인된 당대 그리스의 조건들, 이후 전개된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이 전반이 아마도 '로고스 중심주의'를 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조건을 조성하였겠죠. 그런 이유에서 철학사 전반을 재독해하는 작업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들뢰즈가 플라톤에게서 '시뮬라크르'를 보고, 흄에게서 '관계항에 우선하는 관계'의 선차성을 본 것처럼요.(그래서 그, 철학입문과 철학학교를 쿨럭 권한달까요? ㅋㅋㅋ)

 

어쨌든, 이와 같은 신유물론적 관점에 따라 보자면, '00은 무엇인가'라고 묻기 보다는 '00은 어떻게 기능하는가?' 또는 '00은 무엇을 하는가?'라고 물어야 합니다. 어떤 것은 그것의 '작동'으로 정의되니까요. 요컨대 그것은 '배치-생성'을 묻는 질문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기술적 대상'들을 '접근 가능한 물질'들에 접근하기 위한 역량의 확장, 우리 자신이 속한 배치를 구성하는 일부로서 해석한 부분이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시몽동과 육후이를 읽어봐야 하는 이유를 또 한번 적립한 한판이었고요. 방학 내내 두꺼운 책과 씨름하느라 여전히 좀 회한이 남습니다만, 읽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ㅎㅎㅎ

 

그럼, 이런 저런 '신유물론' 관련 자료들도 좀 찾아보시고, 선생님께서 나눠주신 강의안도 살펴 보시면서 일주일 보내시길 바랍니다.
다음주에 만나요! 뿅.

댓글 4
  • 2024-02-08 09:30

    저는 세미나를 못했기 때문에 강좌를 앞두고 혼자라도 책을 읽어야겠다 싶어서 빨간 벽돌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공부방회원들은 아시겠지만, 계속 화내고 투덜거렸습니다.
    너무 어렵고, 방대하고, 그래서 번다하고...
    요점이 뭐야?
    막 그런생각이 들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그냥 강의 포기할까? ㅎㅎ)

    확실히 강의 듣기 잘했습니다.
    전, 철학자이자 들뢰즈 연구자로서 박준영샘이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여러 신유물론계열의 철학자들을 횡단하면서 '신유물론'적인 태도 혹은 방법 혹은 이론이라고 할만한 것들을 구축하려고 하는지, 좀 이해했습니다.

    특히 정군샘이 쓰신 것처럼,
    신유물론자? 신유물론주의자? (ㅋㅋㅋ)가 된다는 것 (자처한다는 것)은
    그런 문제의식과 관점으로 소위 관념론이라 불렸던 사상가들조차 재독해한다는 것이고
    타자(여기에는 비인간 타자도 포함됩니다^^)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존재론적 얽힘을 이론적으로 윤리적으로 성찰한다는 것이겠지요.
    물론 담론(인식)과 존재를 분리하지 않는다는 것은 신유물론 훨씬 이전부터, 그러니까 제가 페미니스트가 되고, 포스트콜로니얼리즘적 문제의식을 장착한 이후로, 변함없이 견지하는 태도이긴 합니다. ("그(녀)의 말이 아니가 그(녀)가 말하는 자리를 볼 것!!")

    여전히
    들뢰즈로부터 무엇을 더 나아갔을까, 라는 질문이 계속 있습니다.
    그리고 수행적 신유물론자들이 비판했다는 생기적 신유물론자들의 내용에 대해서도 많이 궁금하고 더 읽고 싶습니다.
    카렌바라드와 제인베넷을 읽어야겠지요?
    그동안은 카렌 바라드 번역이 안 되어서 못 읽는다는 핑계가 생겼지만...이제는....ㅋㅋㅋ (준영샘, 진짜루, 무쟈게 고맙습니다. ㅎ)
    둘 다 해러웨이의 동료들인데....음....재밌는 구도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주 강의도 기대됩니다.
    전 버틀러와 관련하여 혹은 '신유물론적 페미니즘'? 과 관련하여 궁금한 것도 많고 질문도 쫌 있습니다.

  • 2024-02-08 13:37

    압도적인 정보량으로 인해 세미나도 책읽기도 힘든 시간이었습니다만, 그 압도적인 정보량으로 인해 또한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울러 가장 잘한 일은 역시나 박준영샘의 강의를 들었다는 사실 같습니다.. 사실 저자와의 만남에서도 심도를 찾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두 시간 넘게 나눠주신 강의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궁금함을 해소하였습니다. 제인 베넷이 홀대를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와 토마스 네일이 왜 이렇게 많은 비중으로 다뤄지는가가 제 궁금증이었는데 나름 혼자서 말씀 중에 해결하였습니다. 저는 간혹 보여주신 박준영샘의 허탈한 웃음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길게 적자니 댓글의 범위를 넘으니 간단히 말씀드려보자면...

    1> 제인 베넷이 왜 홀대받는가?
    기존 아카데미 내에서의 신유물론에 대한 납작한 이해에 대한 답답함에서 연유한 듯 보였습니다. 박준영샘은 신유물론 하면 제인베넷이 메인이고 결국엔 속류적 유물론으로 신유물론을 보는 아카데미 내에서의 이해에 홀로 답답해하시고 분노하시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조근조근 차분하게 말씀하셨지만, 저는 제 맘대로 학계에서 방구 좀 낀다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나 답답함을 보았습니다.

    2> 토마스 네일 분량이 왜 이리 압도적인가?
    역시나 기존의 속류적 마르크스 유물론 해석에 대한 답답함 정확히는 마르크스가 아닌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론 해석이 화석처럼 굳어 있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으로 느껴졌습니다. 아카데미 밖에서 방구 좀 낀다는 사람들의 화석화된 마르크스 해석에 대한 대안적 독해로서의 신유물론이었구나 싶습니다. 마르크스에 대한 회절적 독해가 대안인 셈인데 그 후보자로 네일이 제일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 저변에서 답답함과 분노를 봤던 것은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아울러 카렌 바라드를 나눠주신 넓은 마음에 준영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나누고 보답할 방안을 반드시 찾도록 하겠습니다.

  • 2024-02-08 15:14

    책 만큼이나 후기도, 댓글도 남다르네요. ㅎㅎ
    여전히 그 내용이 어렵긴 하지만
    뭔가 알듯 모를 듯한 재미, 쫄깃함이 생기는 것 같은. .
    다음 강좌 잘 챙겨 듣겠습니다.
    정성스런 후기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2024-02-09 11:17

    올해 문탁에서 야심차게 시작한 프로그램이 <세미나+강의>였습니다.
    신유물론에 대해 같이 공부하는 것으로 <세미나+강의>의 스타트를 끊었는데, 우리가 택한 책은 800쪽이나 되는 빨간 벽돌책이었습니다.
    그 책을 읽는 동안 많이 투덜대기도 하고, 세미나가 진행되는 동안 머리에 쥐가 나는 질문과 마주치기도 했지요.
    아무튼 그 책을 다 읽었고, 저자 박준영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박준영 선생님의 <신유물론>은 일반적인 소개서라기보다는 박준영선생님의 어떤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1회차 강의를 통해 그 관점이 보다 선명해지는 것 같아 저는 좋았습니다. 관련된 담론을 접할 때 비교항이 되는 하나의 입장을 알게 된 거니까요.
    책과 강의를 통해 박준영샘 관점의 신유물론의 지형도를 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의를 들으니 조금 읽다가 후순위로 미뤄 둔 제인베넷의 책도, 박준영샘이 번역한 바라드의 글도 꼼꼼히 읽어보고 싶어지더라고요.
    들뢰즈 공부도 더 해야 되겠다 싶기도 하고요.
    다음 주에는 또 어떤 자극과 영감을 얻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겨울방학동안 북치고 장구치며 새로 런칭한 <세미나+강의> 진행을 하드캐리한 정군님이 여름방학에는 좀 쉬자고 소리높여 외쳐댔는데..
    정군님! 다시 이야기 좀 해봐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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