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물론 이론의 전장] 2주차 후기 - 신유물론이라는 유령

경덕
2024-01-13 22:02
394
"하나의 유령이 문탁을 떠돌고 있다. 신유물론이라는 유령이." _ k.d.
 
신유물론 두 번째 세미나를 마쳤습니다. 이 세미나가 여느 세미나와 다른 점은 세미나에 참여하는 사람과 참여하지 않는 사람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자고 일어나면 세미나 이외의 단톡방에서 책을 읽은 소감이 공유되고, 관련된 여러 참고문헌이 올라오고, 진행중인 다른 세미나 주제(세계 끝의 버섯, 생태적 죽음)와 연결되고, 이후에 열어볼만한 세미나(라투르? 베넷?) 기획이 이루어지는 등, 어떤 횡단적 힘이 세미나와 단톡방, 공동체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정군 샘의 우발적인 지목으로 저는 이번주 후기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저도 텍스트와 세미나 안팎을 횡단하며 수렴 발산하는 자가촉매적 루프를 따라 후기를 작성해보겠습니다.^^
 
박준영 선생님은 책 서문에 이렇게 적습니다. 
 
"신유물론은 학제 간 경계를 허물고 철학과 인문학뿐만 아니라, 물리학과 생물학, 사회과학, 미디어와 예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 이 책은 현재까지 진행된 신유물론의 이론적이고 실천적이며 역사적인 지도를 그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신유물론, 물질의 존재론과 정치학 / 9쪽)
 
그러니까 이 책은 여전히 논의가 뜨겁게 진행 중인 현대 사상을 조망하고 소개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완결된 신유물론 개론서가 아니고 계속 재기술될 여지가 많은 이론적 지도라고 생각해봅니다. 1-2장에서는 신유물론이 '구'유물론과 변별되는 지점을 기술하며 지도를 그려 나갑니다. 세미나에서는 신유물론 지도에 기입, 혹은 기각되는 여러 학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도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개념들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추상적 이론이 구체적 현실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에 관하여 논의했습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부분을 적어보겠습니다.
 
 
제인 베넷, 로지 브라이도티
 
책에서는 생기론적 신유물론의 성과와 한계를 함께 기술합니다. 신유물론은 '생기'라는 요소를 달갑게 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생명과 비생명, 삶과 죽음이라는 이분법이 등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이분법은 '재앙'과 같고(p32),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전망에 있어서 상당히 위험천만한 결과(p79)를 낳게 된다고 강조합니다. 비판의 대상은 '제인 베넷'입니다. 들뢰즈 연구자 콜브룩과 철학적 포스트휴머니즘을 쓴 페란도가 베넷을 비판한 부분을 인용하며 비판에 힘을 싣습니다. (하지만 세미나 선생님들은 제인 베넷을 직접 읽고 판단하고 싶다며, 또 다른 세미나 기획을 암시하셨지요!.!)
 
'생기'라는 말이 그렇게까지 위험한가 싶기도 합니다. 신유물론자로 중요하게 언급되는 로지 브라이도티는 <포스트휴먼 지식>에서 자신의 조에/지오/테크노 정치에 베인 베넷의 '생기'를 포용하는 것 같습니다.
 
"생동하는 물질vibrant matter(Bennett 2010)은 생명적이고 지성적이며 자기-조직화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살아 있는 물질vital matter은 가장 깊숙한 내면의 자유를 표현하려는 존재론적 욕망desire에 의해 추동된다. 욕망 그 자체는 범주적 구분을 무시하는 횡단적인 존재론적 힘이다. 물질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신체화되고 뿌리박혀 있지만 또한 인간과 인간-아닌 타자들과의 관계망 속을 흐르는 포스트휴먼 지식 주체의 구성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라며 '생기'를 긍정적으로 재독해합니다. 생기는 위험하기 때문에 기각해야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재독해해야 할 것이 아닐까요? 애니미즘, 신화적 사고 등에서 느껴지는 미심쩍은 '힘'도 새로운 '번역'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그레이엄 하먼, 브뤼노 라투르, 스피노자, 인류학
 
신유물론에서 "물질화(mattering) 과정은 관계항 없는 관계들이 안정화되면서 관계항들을 비롯해서 그 관계로부터 창발되는 새로운 관계들을 생산하는 과정"(p160)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관계'와 '과정'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레이엄 하먼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육후이는 하먼이 비환원의 원리에 기반하여 관계가 아니라 비관계성을 받아들인다고 지적합니다. 신유물론에서 정의하는 관계란 무엇일까요? 하먼은 관계를 왜 기각했을까요?
 
이때 라투르가 등장합니다. 하먼은 라투르를 관계의 철학자라고 지정합니다. 하지만 하먼이 관계를 "어떤 모호한 블랙박스라는 새로운 실체에 의해 폐쇄"(p161)된 것으로 논했기 때문에 라투르의 '관계'를 모순되게 규정했다고 비판합니다. 책에서는 라투르가 연결과 접속, 관계의 축적으로 실제적 물질성에 접근했다고 설명하며 "관계의 능력", "번역", "교란" 등의 라투르 용어로 물질화, 횡단성, 우발성을 설명합니다.
 
최근에 번역된 라투르의 책, <존재양식의 탐구>가 화재입니다. 출판사에서 대담 형식의 연속 북토크도 진행하고 있어요. 저는 두 번째 온라인 북토크에 참여했는데요 <존재양식의 탐구>를 편집한 박동수 편집자님과 프랑스 철학을 전공한 베세진 선생님의 대담 중 <존재양식의 탐구> 해제가 아주 좋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습니다. 궁금해서 찾아 읽어보았는데 세미나 책에 나오는 개념들이 많아서 일부 인용해봅니다.
 
"베르그손이 말했듯이 "기성품" 실재, 즉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실재를 가정하는 대신, 실재론은 존재 자체가 "사실을 확립하는" 작업의 과정 속에 있다는 것, 즉 존재가 구성 중에 있으며 만들어지고 있다in the making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야말로 라투르의 저작을 그 시작부터 이끌어온 직관이다. 이는 결국 주체와 객체 사이의 대응이라는 이론을, 어떤 각인에서 다른 각인으로의 변형-번역이라는 이론(즉, <존재양식의 탐구>가 "지시의 연쇄"(125쪽)라고 부르는 것으로 치환하는 일이다." (p709)
 
'물질이 물질화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신유물론'은 '존재는 구성 중에 있다는 라투르의 실재론'과 겹치고, 진리 대응설이 아니라 "간접적이고 비스듬하고, 게걸음 같은" 진리 이동설을 주장한 부분은 "어떤 각인에서 다른 각인으로의 변형-번역이라는 이론"으로 연결됩니다.
 
"이상의 인용문이 보여주는 것은 라투르와 그의 선구자들의 차이가 그 형이상학의 연속성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실천에 대해 보여하는 의미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의미라는 것이 바로 외교이다. 복수의 존재론을 산출하는 대립이나 혼란을 중재하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따라서 어떤 것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타자성의 빛으로 우리 자신을 재서술하기redescription de nous-memes 위해, 우리의 가장 잘 확립된 명증성의 차이를 경험하는 것에 근거한 앎으로서 인류학을 정의하고자 한다면, 이 형이상학은 구석구석까지 인류학인 것이다." (p715)
 
'외교'와 '재서술'하기라는 실천은 '재기술(rewriting)', '회절적 독해'와 연결됩니다. '안티-anti'대신 '리-re'라는 접두어가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대립하지 않는 횡단성으로, 차이나는 반복으로, '외교'를 실천하는 것으로 생각해봅니다. <존재양식의 탐구>의 부재는 '근대인의 인류학'입니다. 인류학 이야기가 나왔으니 북토크에서 알게된 논문 두 개를 소개해봅니다.
 
1. 진태원<인류세, 신유물론, 스피노자>
2. 조문영<행위자-네트워크-이론과 비판인류학의 대화: ‘사회’에 관한 논의를 중심으로>
 
첫 번째 논문은 제인 베넷 등의 신유물론자가 스피노자의 연장 속성만 강조하고 사유 속성을 간과한다고 비판합니다. (근데 온라인 북토크에 박준영 선생님도 접속하셨거든요! 채팅창 이렇게 남기셨어요. "진태원 선생님의 논의를 보면 다소 일면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대개 제인 베넷의 논의에만 기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두 번째 논문은 '사회'에 관한 '외교'적 작업과 '비판'적 작업의 상호참조적 대화'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년에 올라온 조문영 선생님의 인터뷰도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약자’ ‘카르텔’ 호명에 담긴 윤석열 정권의 분리통치···조문영 “빈곤은 이벤트·브랜드화 아니라 철폐·종식 대상 https://www.khan.co.kr/culture/scholarship-heritage/article/202401031716001)
 
그리고 두 논문을 포함한 인류학 텍스트를 읽는 세미나를 파지사유에서 진행한다고 합니다!!! 참고해주세요^^
 
 
 
멸종, 페미니즘, 횡단성애
 
마지막으로 세미나에서 나온 좀 더 현실적인 질문을 나눠보겠습니다.
 
요요 샘은 '멸종'이 진행되는 인류세 시대에 인간중심적이지 않고, 이분법을 횡단하는 실천을 어떻게 기획할 수 있을지 질문하셨어요. 봄날 샘은 '페미니즘'의 신유물론적 이해에 대해서, 윤경 샘은 신유물론 페미니즘 안에서의 '횡단성애'에 대해서, 보헤미안 샘은 '여성/여성성'을 타고난 정체성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질문하셨어요.
 
요요샘의 질문에는 세미나에서 말씀드린 해러웨이의 책 구절을 다시 공유해봅니다. 
 
"역사적 상황 속의 인간을 포함하여 많은 종들의 세계에서, 멸종은 계속 살아가는 길의 거대한 섬유조직을 풀어버리는 길게 지속되는 느린 죽음이다. 반 두렌은 애도하기가 응답-능력을 배양하기에 본질적인 것이라고 제안한다. 그는 (...) 사랑하는 이들과 터전, 생활양식을 잃고 슬퍼하는 것은 인간들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다른 크리터들도 슬퍼한다. 까마귀들은 상실을 슬퍼한다. (...) 애도의 능력도, 실천도 인간만이 가진 특성이 아니다." (p71), "(반 두렌 인용) 진정한 애도는, 멸종의 가장자리로 내몰린 저 무수히 많은 다른 존재에게 우리가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그들과 우리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자각하게 할 것이다. (...) 하지만 현실은 반성과 애도라는 어려운 문화적 작업의 불가피성에 놓여 있다. 이 작업은 현실의 행위와 대립되지 않고, 오히려 지속 가능하고 현명한 응답의 토대이다." (트러블과 함꼐하기, p72)
 
저도 올해 비질 모임에서 여러 현장을 다니며 비인간 동물의 죽음을 목격하고 애도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게 될 것 같아요. 애도가 어떻게 정치적 실천으로 확장될 될 수 있을지, 현장에서의 얽힘 속에서 비판적이면서도 외교적인 번역 작업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됩니다. 인문약방에서 진행중인 문탁샘의 생태적 죽음 강좌에서도 죽음과 멸종(이중 죽음, 분해의 철학)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어 흥미롭게 듣고 있습니다!
 
페미니즘과 관련해서는 정군 샘이 추천해주신 <신유물론 페미니즘>에 더해서 한나 스타크의 <들뢰즈 이후 페미니즘>을 추천합니다. 복잡한 페미니즘의 역사와 지형을 요약하면서 페미니즘과 들뢰즈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습니다.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의 존재론은 정치와 관련된 페미니즘 이론의 개념화에 여러 구체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차이의 철학이 또한 동일성(정체성)에 대한 비판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가 어려운 것은, 우리가 정치에 대해 말할 때, 정치가 재현(=대표성)을 위해 투쟁하는 특정 정체성 집단과 연루되어 있음을 종종 전재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페미니즘이 대표한다고 여겨졌던 집단은 '여성들'이다. 들뢰즈의 작업과 관련해 이는 문제적인데, 왜냐하면 그에게 정체성/동일성은 토대적 범주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동일성(정체성)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의 이차적이고 임시적인 효과, 즉 차이로서의 존재의 끝없는 확산으로 실존한다. 이것은 세계가 우선적으로 차이들로 이루어져 있고, 다만 가끔 이 차이들이 동일성(정체성)의 효과를 낳는 패턴들로 침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p165)
 
"들뢰즈와 가타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거대 권력 구조나 정체성 위치를 다루는 종류의 정치를 위한 자리가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떤 점에서 이는 가야트리 스피박이 탈식민주의 이론과 관련해 개진한 전략적 본질주의와 공명한다. 스피박은 구체적인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공유된 집단 정체성에 소구하는 것이 유리한 경우들이 있음을 암시한다. 스피박이 들뢰즈, 가타리와 공유하는 것은 정체성에 대한 이러한 소구가 전략적이며, 존재론적인 조건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관념이다. 들뢰즈적인 정치는 몰적 조직의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지만 거기서 끝날 수는 없다. 정치는 늘 분자적 생성(되기)을 위한 공간을 찾게 되어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우리가 거시정치와 미시정치를 동시에 수행하도록 추동한다. (174p)
 
이 부분은 "'정체성(동일성)'에 기반한 정치는 전략적으로 사용될 수 있으나, 정치는 늘 분자적 생성으로 나아가야 한다"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횡단성애'와 관련해서는 폴 B. 프레시아도의 <대항성 선언>을 추천합니다. 퀴어, 트랜스 젠더인 저자는 현실의 여성이 아닌 여성-되기, 현실의 동물이 아닌 동물-되기, 현실의 동성애 행위 없는 횡단적 동성애를 소환하는 들뢰즈의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실천을 비판적으로 끌어안으면서, 본질적인 정체성 너머 섹슈얼리티, 몸의 물질성을 탐구합니다.
 
그리고 지난 세미나에서 저의 질문 중 하나가 어떻게 고대철학, 철학사를 공부하면 좋을까? 였습니다. 후기를 작성하며 다시 그 질문을 생각해보니 여러 개념들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번역, 외교, 재기술, 우발성, 횡단성... 그리고 텍스트 바깥의 구체적 현장에서 마주칠 수많은 객체들, 물질들, 비인간들. 그들과의 얽힘, 간-행 중에 현실화되는 것들. 어떤 한 해를 보내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잠재성의 장에서 끊임없이 횡단중인 입자들을 상상하고 그들의 우발적 움직임을 응원하며, 그들과의 비재현적 만남을 기대해봅니다. 
 
다음 시간에는 3, 4장을 읽습니다(5장은 여유가 되시는 분만). 지금까지 부분적으로 언급되었던 신유물론의 이론가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다음엔 행정편의적 우발성이 누구를 후기 담당으로 지목(개체성, 현실성, 필연성)할지 주목해보겠습니다^^
 
그럼 담주에 뵐게요!
댓글 8
  • 2024-01-14 08:16

    ㅋㅋ... 통 속의 미꾸라지 (왕심재) 같군요. 🥰
    (뭐, 그렇다고 우리가 죽어가고 있던 뱀장어라는 뜻은 아니여^^)

    • 2024-01-14 15:02

      앗.. 유령의 정체가 미꾸라지였군요ㅋㅋㅋ

  • 2024-01-14 18:30

    지난 시간에 저는 ‘000는 인간중심주의적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인간중심주의적 표현‘일 수 있겠다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식의 ’부정‘은 결국 ’변증법-이분화‘를 발생시키고, ’긍정‘을 질식시키고 마니까요. 그래서 ’멸종‘ 문제에 있어서, ’멸종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적으로는 극히 ’인간주의적 관점‘일수밖에 없지만, 자연-인간이 둘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것은 ‘인간-종’의 ‘자연적 관점’으로 ‘긍정’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긍정’은 개봉되기 전에는 진리인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진리 이동설‘에 따라 보자면, 진리는 언제나 ’잠정적 접근‘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다만, 이렇게 되면 이게 ‘구성주의’와 어떻게 변별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런 이유에서 헤러웨이가 ‘불가피한 책임성’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생기론’이 첫 시간부터 논점이 되고 있는데요. 저는 ‘생기는 기각되어야 한다고 말한다‘는 신유물론에 대한 평가가 약간 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배넷의 ’생동하는 물질‘에 관한 신유물론적 응답이 ’생기‘를 ’재독해‘한 결과라고 봐야하지 않나 싶거든요. 옮겨주신 브라이도티의 글이 그 점을 잘 보여주고요. 지금 베넷 텍스트를 조금씩 읽고 있는데, 아직 뚜렷하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생기‘를 가정하는 순간 생겨나는 치명적인 함정들이 있는 것도 사실인 듯 보입니다. 말씀처럼 생명-비생명의 이분법, 그 이분법을 극복하더라도 ‘생기’를 말하는 순간 함께 나타나는 신비주의, 그로부터 끌여나오는 ‘신성한 자연’에 대한 관념까지... (인용한 브라이도티의 글처럼)‘물질이 곧 생기’라고 보는 것과 ‘물질에 있는 생기’라고 보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으니까요. 이런 이유들 때문에 바라드는 ‘행위소(actant)’ 대신 ‘행위성(agency)'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귀속을 받아들이는 기체와 귀속되는 성질 사이의 경계를 짓지 않으려는 것이겠죠.(컴북스 이론총서 <캐런 바라드>6쪽).

    아이고... 그나저나 읽을 게 너무 너무 너너너너무 많네요. 재미있긴 합니다만... 뭐 오지체험이나 극지탐험 같은 것도 재미있기는 하죠. 힘들어서 그렇지 ㅋㅋㅋ 2주 남았네요. 후기 쓰시느라 고생하셨고, 남은 시간도 달려보아요 ㅎㅎㅎㅎ

  • 2024-01-14 20:54

    아무래도 경덕님은 그 유령에 씌인 것 같군요.ㅎㅎㅎ
    감염성이 있는 후기입니다.ㅋㅋ

  • 2024-01-16 20:13

    책비는 정군샘만 내리는 줄 알았어요 ㅋ
    경덕님 앞으로 요주의해보아야 할 듯 ㅋㅋㅋ
    후기 쓰시느라 애쓰셨어요. 잘 읽었습니다^^

  • 2024-01-16 21:34

    신유물론, 갈수록 쉽지 않네요 ㅜㅜ

  • 2024-01-16 22:07

    와우.......
    공부는 이렇게 하는 군요. 후기가 에세이 같고, 경덕님이 정군님 같고......ㅎㅎㅎ
    뭘 읽고 있는 것인지, 저자는 뭘 콕 집어서 말하려는 것인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는데,
    감사합니다!

  • 2024-01-17 09:15

    책 읽는 것도 빠듯한데...경덕님 후기 읽느라 한참 걸렸네요..ㅎㅎ
    신유물론이란 유령, 작명 좋네요..
    같이 공부하면서 항상 느끼지만 사유의 깊이가 남다른 경덕님...부럽고, 따라 배우고 싶네요.
    옆에서 같이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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