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물론 이론의 전장] 2주차 질문 모음

정군
2024-01-09 01:32
359

여기에 수요일 정오까지 댓글 본문으로 올려주세요.

댓글 17
  • 2024-01-09 21:52

    내일은 하루종일 바쁠 예정이라 먼저 올립니다.
    알듯모를듯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책인지라 한 권이라도 읽어본 사람은 그나마 나은데, 못 읽어본 사람들이 사용하는 개념을 확실하게 이해하는게 쉽지 않네요.

    계속해서 사용하는 개념이고 중요한 개념인 것 같아 좀 확실하게 알고 넘어가고 싶어서 질문합니다.

    간-행(intra-action)에 대하여

    (147) 상호작용(interaction)은 서로 간의 상호작용에 진입하도록 하는 선재하는 개별체들을 전제하지만, 간-행은 각각의 실존을 소유하지 않는 일원론적 사건이나 과정이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간’이라고 할 때도 어떤 ‘항’이 존재해야 그 ‘사이’가 가능할 것 같이 생각된다. ‘서로 간’에 ‘속하는’ 것으로서의 내부(within, inside of)라는 의미를 정확히 모르겠다.
    (199) 강 뿐만 아니라 우리도 간-행 가운데 출현하며 마주침이나 얽힘에 선-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얽힘에 선재하지 않는 행위소는 언제나 간-행을 통해 생겨나고 사라진다. 관계항이 그것을 통해—간-행 가운데 생성하면서—출현하는 마주침 안으로 발을 디딘다. 즉, 현상-내부-관계항이 특수한 간-행을 통해 출현하는 것이다.

  • 2024-01-09 22:31

    전반적으로 개념들이 너무 많이 등장하여 읽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개념들이 여기 저기에서 다른 개념과 뒤섞이고 얽혀서 신유물론의 주요주제로 제시된 세 가지가 셋인지 하나인지도 헷갈립니다. 아마도 재독해 이전에 텍스트 독해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ㅋ 아무튼 질문을 하나만 올리려고 했는데.. 두 개를 올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그런데 두 질문이 하나의 질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그건 아마도 셋인지 하나인지 헷갈린다는 것과 관련됩니다.^^)

    167쪽
    “멸종은 필연성에 머물러 있던 생물계의 한 종이 우발성 안으로 사라져 가는 역과정을 말한다. 만약 이 과정에서 물질적인 것들 간의 번역과 겨루기에서 무언가 다른 우발성이 발생한다면 발생과 멸종의 과정은 다른 방향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도 있다.”

    → 물질에 대한 규정들의 두 번째 관계성과 우발성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인류세-자본세에 우리는 여섯 번째 대멸종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인류세-자본세라는 조건 하에서 일어나고 있는 멸종을 어떻게 볼 것인가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다른 생명의 멸종을 안타까워하고 멸종을 경고하고 멸종을 늦추려고 하는 것 역시 인간중심주의적이고 자연/문화 이분법에 기반하며, 물질 혹은 비인간 존재를 대상화하는 사고방식일까요?
    “물질적인 것들 간의 번역과 겨루기에서 무언가 다른 우발성이 발생한다면”, 이라고 말할 때 포스트 휴먼적인 주체는 어떻게 한다는 것일까요? 존재-인식론적으로 보면 위에 인용한 말에 동의할 수 있는데, 그 존재-인식론이 정치적 실천으로 나타날 때는 멸종을 문제 삼는 정치적 입장과는 어떻게 다른 것일지, 멸종과 관련하여 이분법을 횡단하는 실천은 어떤 것일지 이야기해 보았으면 합니다.

    220쪽
    미셀세르를 인용한 부분은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미셀 세르는 격정적 토론이 동일한 사유의 틀거리 안에 가둠으로써 횡단성을 심화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세르는 새로운 생각은 물러남과 침묵으로부터 온다고 말합니다. 찬-반 토론이 우리를 어떻게 이분법으로 포획하는가는 이해가 쉽습니다. 저자는 세르를 은둔의 철학자라고 말하면서 거기서 더 나아간 것이 들끓는 목소리를 만나러 광장으로 나서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대체 광장이란 어떤 장소일까요? 우리에게 그런 광장이 있기는 한 것인지 저는 의문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 2024-01-09 22:33

    P216>
    1) 질문은 단순합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언어도 물질이고, 물질이 종전의 환원론적이거나 수동적으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면...우리는 언어에서 언어성을 보기보다는 표현을 봐야 한다는 내용(그러니까 언어성은 표현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에 이어... 이의 일환으로 사이보그적 글쓰기가 나오는 부분입니다. 사이보그 정치투쟁에서 언어의 장은 "에덴으로부터의 추방, 곧 언어 이전, 글쓰기 이전, (남성) 인간의 등장 이전 옛날 옛적의 총체성을 상상하지 말아야 한다." 언어의 장이 총체성을 가질 것이라 여기지 말자는 말은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각각 수식어들이 차지하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2) 아울러 어슐러 르 귄의 글을 인용하면서 '선사시대에도 현대에도 속하지 않는 어떤 비인칭적인 비인간 여성을 화자로 내세우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게 한다' 라고 하는데 저 말도 어슐러 르 귄의 글도 너무나 재현적인 저는 이해 불가입니다. 거기다 분량도 짧아서 어떻게 상상의 날개를 펼치지도 못했습니다. 대강일지라도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언어성을 표현으로 대체하자고 하는데, 언어성(의미)을 묻는 질문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역설도 신유물론에 던져볼 만한 질문인것 같습니다.

  • 2024-01-09 22:45

    p.190
    "그렇다면 우리는 데카르드 이원론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이 이원론을 그저 거부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것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이떻게 하라는 이야기 일까요? 신유물론이 이원론을 다루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 해보면 좋을것 같습니다.
    '극단으로 밀어붙이기'에서 이분법을 체계가 갖는 중심 개념을 파악해서 그 이상으로 밀어붙여서 해체하라고(p.248)하라고 합니다.
    '횡단성의 심화'부분에서는 '횡단성은 이분법을 비껴가면서 그것을 무능력하게 만든다. 이분법을 죽이지 않고, 그것을 표면에서 확장시키면서 이분법을 n분하되, 거기서 이분법을 빼는 것이다(n-1)'(p.221)라고합니다.
    설명이 참 멋진데,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걸까요?

  • 2024-01-09 23:55

    183쪽) 막스 왈터의 인용문으르 통해서 저자는 회절적으로 독해한다는 것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므로 텍스트가 물질로 만들어질 뿐 아니라 세계도 또한 만들어지는 중에 있다.....인식론적이고 존재론적인 둘 모두의 차원을 생각하면, 사유 안에서 하나의 실천으로서 회절은 분리 불가능한 채로 있다." 저자는 각주에서 왈터의 예시를 들길 노인의 걸음걸이에 대해서 그것의 독특한 자세는 "파도로부터도 그의 신체로부터도 기인한 것이 아니며 두 대상의 협력으로부터 기인했기 대문이다." 훌륭한 예이긴 한데, 이것을 인식론적이고 존재론적인 차원의 변형으로 말할 때는 잘 상상되지 않는다. 가령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읽고 난 뒤의 나와 책이 서로 다르다는 식의 표현인 것처럼 보인다. 이럴 때 존재론적으로는 책이, 인식론적으로는 내가 변용했다는 식의 말을 회절적으로 독해한다, 혹은 간-행한다고 하는 것일까.

  • 2024-01-10 01:02

    저는 횡단성을 "회절적 독해"라는 읽고 쓰기의 과정으로 설명한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일상적으로 텍스트 독해를 "인식론적 범역"(181p)에 두고 있지만 저자는 회절적 독해는 텍스트의 물질화 과정이라고 합니다(192p). 저자는 1, 2차 층위를 설명하면서, 이 층위들은 중첩/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206p에서는 이러한 회절적 독해가 "수행적 독해"라고 하며, 구체적인 사례로 맑스의 글쓰기(1차)와 그 독자와의 감응(2차)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후로 시도하는 재독해 텍스트들에서 회절적 독해를 읽어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특히 저자가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재독해하자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원론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방식, 이것을 탈데카르트적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회절적 독해는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요?

  • 2024-01-10 01:14

    (150) "실재하는 것은 멈추어 있지 않으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159) "비선형적 인과성을 형성하면서 선형성을 향해 나아간다."
    (160) "물질화 과정은 관계항 없는 관계들이 안정화되면서 관계항들을 비롯해서 그 관계로부터 창발되는 새로운 관계들을 생산하는 과정이다."
    선형적 상태=안정화된 상태, 그러나 곧 다시 서로 얽히면서 횡단하는 비선형적인 인과성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봐야할까요? 그렇다면 신유물론에서는 찰나의 선형성과 끊임없는 비선형성이 있다고 봐야할까요? 왜 '선형성을 향해 나아간다'고 했을까요? '끊임없이 변화한다'면 선형적일 필요는 없지않을까요?

  • 2024-01-10 08:05

    163p
    "신유물론적 입장에서 이러한 우발성은 자기촉매적 루프를 형성하는 단초가 된다. 하나의 우발적 사태란 그래서 "언제나 어떤 것에 대해 우발적이다" 여기서 '어떤 것'이란 가능한 것, 시간 안에서 필연적이 될 만한 것을 말한다. 우발성은 루프를 통해 필연성이 된다."
    241p
    "이러한 의미의 여성성은 앞서 논한 엘리스적 여성-되기를 실천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이분법상의 대문자 여성이 아니라 차이화 과정 내에서의 '다층적 주체'로 상정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실천이 자가촉매적 루프에 의해 활성화되면 여성-되기로 인한 다층적 주체는 진정한 '비재현적 주체'로 무대에 등장할 것이다."
    위의 문장들에 등장하는 자기촉매적 루프, 자가촉매적 루프가 무슨 말인지요?

  • 2024-01-10 08:23

    (p.150)능산-소산, 능동-수동, 환원가능-불가능이란 이분법으로 나뉘지 않고 서로에게 갈마드는 잠재성의 장이 있다. 또한 (p.156)횡단성은 수렴되지 않고, 소통되지 않는 지점들을 오가는,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고 말 그대로 횡단하는 운동이다. 그래서 환원/비환원의 이분법을 넘어선 이동, 즉 횡단하는 실재를 물질적 객체로 본다.(p.162) 그리고 이러한 횡단적 실천을 강조하여 수행성이라 한다.(p.222)

    여기서 질문은 이런 것이다.
    서로에게 갈마드는 잠재성의 장에서는 구별없이, 부지불식간에, 어떤 상태가, 성질이 넘나든다. 반면 신유물론에서 말하는 횡단성과 수행성은 이분법을 넘나들고, 오고 가지만, 전혀 다른 무엇 사이의 횡단과 수행이라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어, 라면에 계란을 넣을 때 잠재성은 젓가락을 휘휘 저어서 국물과 계란이 혼연일체(물론 계란이 국물이 되진 않는다. 그러나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이 있다.) 되는 듯한 느낌인 반면에, 횡단성과 수행성은 계란을 터뜨리지 않고 유지하면서 먹을 때 한 숟가락에 계란과 국물을 함께 먹는 느낌이 든다. 물론 입의 상하운동과 식도를 타고 내려오는 낙하운동을 거치면서 둘은 차이가 거의 없어진다. 하지만 이 오묘한 차이란 무엇인가?

    두 번째 질문은,
    (p.164)자기촉매적 루프는 재귀과정을 의미하는지요?

  • 2024-01-10 10:05

    161쪽 “그는(하먼은) 환원과 비환원의 이원론 중 비환원의 선택지만을 강하게 밀어붙인다. 그는 이를 ”지식의 다양한 형태를 상대적으로 민주화“하는 것이라고 논한다. 그러나 이는 사이비 민주화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하먼이 말하는 것처럼 각각의 객체가 저마다의 실재를 가진다고 해도, 그것은 물질적 차원에서 언제나 요동치며 연결되고, 위계를 세웠다가 부수며, 한시적인 평등성만을 향유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환원은 유일한 원리가 아니다. 거기에는 언제나 환원의 교란이 있으며, 실제로 그것을 분쇄하기 위한 물질적인 저항들이 세계 여기저기서, 또는 일상적이고 미시적인 사태들 안에서 우글거린다… 육후이는 하먼이 비환원의 원리에 기반하여 관계가 아니라 비관계성을 받아들인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하먼의 비환원주의는 현행화된 물질 이전의 잠재적인 장(물질화 과정)을 부정한다는 의미인가요?

  • 2024-01-10 11:14

    (1) p235-239, '앨리스 되기 과정은 유목적 주체를 가리킨다, 감응적 되기 과정을 통과하면서 사유하고, 차이를 가속화하면서 횡단성애적 역능을 발휘하는 과정을 통해, 여성을 포함한 소수성이 재물질화 된다' 라고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p240에서 여성의 언어가 어떤 종속적 구조에서 구조화되어 있는지와 함께 '그러한 담론들이 착근되고 재현되는 방식이 무엇인가를 질문해야 한다'고 하면서, p241에 여성성을 말할 때 '자신들의 용어로 표현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와 관련해 현재 페미니즘에서는(신유물론 이론과 관련하여) 어떤 식으로, 얼마만큼 전개되고 있는지 간략히 알고 싶습니다.

    (2) 연결하여, 신체와 마찬가지로 여성성도 재물질화 되는 과정속에 놓여 있다고 볼 때, 여성이라는 섹슈얼리티 속에 여성성을 타고 난다는 말이 과연 틀린 걸까요? 저는 타고난 여성성이 끊임없이 재물질화 된다고 보는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고, 여성성을 이야기 할 때 가장 빈번하게 부정당했던 주제라 궁금합니다.

  • 2024-01-10 11:24

    지난 세미나 범위였던 142쪽에 의하면 “주체는 ”하나의 결과(효과)로 결정”되며, “사실상 반성의 인상”으로서 촉발되는 중에 탄생한다. 우리는 이를 ‘초월론적 수동성’ 이라고 부를 수 있다.” 는 구절에서 ‘반성의 인상’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를 못하고 넘어갔는데요, 이번 주 내용을 읽다가 164쪽 우발성을 설명하는 도중에 “여기서부터 우발성은 필연성 안에서 유화된 또는 ”반성된 우발성”이 된다.” 거나 169쪽 “재현은 불완전하고 유한한 인간의 도구일 뿐이다. 이것은 앞서 말한 ‘반성된 우발성’의 한 양태다.” 까지 읽으니, ‘반성’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한자로는 표기가 안 되어 있고, 아마도 프랑스어 인것도 같은데요, 잘 모르겠습니다.

  • 2024-01-10 11:36

    232쪽 횡단성애는 "두 가지 성이라는 두 파편의 공존,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부분 대상들의 공존"을 가리킨다.
    233쪽 즉 이것은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가 마주치는 것과 달리 부분 대상들끼리의 "국지적이고 비특수적인 동성애"라는 것이다...부분 대상 간의 관계.
    234쪽 보다 근원적인 동성애로서 이 '국지적이고 비특수적인 동성애'는 한 인간의 몸 전체, 또는 집합적 신체로서의 인간 전체를 뒤덥고 있다. 그러므로 횡단성애는 "칸막이로 나뉜 듯 분할된 채 이웃해 있는 성들-자아들 혹은 두 부분 대상에 근거"한다.

    아무래도 이성애, 동성애가 어떤 성적 행위를 상상하게 만들어서 횡단성애는 어떤 것인지 잘 상상이 안되어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해러웨이와 애나 칭의 책에서 나온 포자나....자기 팔과의 성애(?기억이 가물가물)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 2024-01-10 11:50

    (3)물질은 비재현적 사건으로 존재한다. p.167
    전통적인 진리론에서 진리는 대상과 인식이 일치하는 것이다. 유물론에서는 이것을 진리 대응설이라는 재현주의로 비판하며 전복한다. 사물과 단어 사이에는 대응과 일치는 존재하지 않으며, ‘간접적이고 비스듬하고, 게걸음같은’ 이동만이 있다면서 이것을 ‘진리 이동설’이라고 부른다. 물질적인 것 일반인 객체는 진리 대응설과 다르게 고정되어 있지 않고 늘 움직인다는 것이다. 또한 대응설의 재현도 관계적으로 발생하는 것일 뿐 절대적인 객체가 될 수 없다는 논리를 시작으로 진리는 사건으로서 존재한다고 전개한다.
    (질문) 인간의 인식이 유한하기 때문에 대상과 인식의 일치를 진리로 삼은 것이 부족할 수는 있어도, 유물론처럼 진리가 사건으로서 존재한다면 어떻게 그것이 진리임을 알 수 있나? 이런식의 사고가 인간중심적 인식이니 유물론의 철학은 다를 것인데, 진리가 혹은 물질이 ‘사건’으로 존재한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셨나요? 저자는 물질을 질과 양뿐만 아니라 유동적 관계성으로(171), 또 이 ‘사건’의 발생을 물질적 흐름이 만나는 ‘관계성’으로 설명하고는 있는데...... 그러한 발생이 진리, 물질인가요?

  • 2024-01-10 11:52

    173p
    "나의 성은 타자성 쪽에 처해지며, 경멸적인 차이로 또는 상대적으로 가치 절하된 상태로 이해된다....그것은 비대칭적 힘의 미분화가 시작되는 위치인 것이다. 이 위치는 지리정치학적일 뿐 아니라, 계보학적이며 시간-구속적이다."
    페미니즘은 신유물론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되는 건가요. 더구나 지리정치학적/계보학적/시간-구속적이라는 의미를 잘 모르겠네요.

  • 2024-01-10 11:55

    177p. 신유물론은 지금의 과학이 접어 보관하고 있는 어떤 시간성, 또는 사건의 조건을 철학이 발명한다고 본다. 이 기묘하게 접혀진 시간은 곧장 근대성과 연관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왜냐하면 그 접혀진 시간에서 우리의 지금/여기와 가장 가까운 시점이 바로 '근대'인 것 같기 대문이다. 사실 근대, 근대인, 근대성은 우리 바로 옆에 있는 가족들의 지금/여기보다 우리의 실존을 더 잘 규정하고, 더 잘 건드리며, 더 잘 알려준다. 그것은 위상학적으로 그 무엇보다 우리에게 가깝다.

    - 지금/여기와 가장 가깝고 우리의 실존을 규정하는 위상학적 '근대'를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데카르트로부터~'로 시작하는 근대, 하이데거의 종말론적 기획 하에서의 근대(형이상학의 종말, 근대의 종말), 라투르의 '존재한 적이 없는 근대', 그리고 신유물론적 시간성에서 고대/근대/현대의 위상학적 상호 접힘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근대를 설명하는 이러한 정의들은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떻게 신유물론적으로 재기술(rewriting)될 수 있을까요? 올해 그리스 철학과 철학사 공부를 앞두고 있어 시기별로 구분된 철학 텍스트를 어떤 태도로 읽으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질문해봅니다.

  • 2024-01-10 13:29

    질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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