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세미나> 한번은 써야 한다, 후기를!

문탁
2020-11-09 13:12
504

1. 칸트의 출발 -에스테틱스

 

요즘 간병 느와르(간병 스릴러인가?ㅋ )를 찍고 있느라 몸과 맘이 몹시 고되다. 칸트세미나도 2주 연속 결석했다. 그리고 그 사이 재판의 서문이 끝나버렸다. 간만에 참여한 세미나에서는 칸트의 초월적 감성학으로 넘어가서 공간을 다루고 있었다.

 

초월적 감성학. 말 자체부터 어려움. ㅠㅠ....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초판 서론에서 칸트가 쓴,  <초월철학의 이념>과 <초월철학의 구분>을 통해, 그리고 잡다한 상식과 이수영선생의 강의를 떠올리며...칸트에게서 ‘초월적’이란, 경험적인 것이 아니면서도 동시에 그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감성론. 에스테틱스! 그것은 어떤 인식도 대상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경험으로부터 시작된다는...따라서 아마도 합리론 비판?!) 것을, 단 버클리나 흄 식은 아니라는 것을 동시에 말하고 싶은 칸트 인식론의 출발점이다.

 

감성론에서 칸트는 개념정리부터 시작하는데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외워야 할?!) 것은 감성 “대상들에 의해 촉발되는 방식으로 표상들을 얻는 능력(곧, 수용성)”이고 그런 능력으로 얻게 되는 것들(동그랗다, 빨갛다)을 직관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감성과 직관을 외우면 다음에 외워야 할 문장은 “감성을 매개로 대상들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고, 감성만이 우리에게 직관들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파심으로 한가지 덧붙이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는 인식이 아니라 표상단계이다. (지금 우리 엄마는 어느 순간에는 인식이 없고 표상만 있는 것 같다. “나쁜 년”, “숨었다”, “자빠져 잔다”,“나가서 노래 부른다”, “자기만 안다”, “말만 번지르하다”, “자기 죽기만 바란다”) 인식을 하기 위해서는 “지성에 의해 사고되며, 지성으로부터 개념들이 생겨”나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인식을 한다는 것은... 그 표상들을 비교하고 모순적인 것을 버리고 나머지 것들을 논리적으로 종합하여 “희경이는 효녀다” 혹은 “희경이는 마음은 있으나 몸이 안 따라준다” 혹은 “희경이는 효녀인 척 한다” 같은 판단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순수직관 – 시공간

 

칸트의 시,공간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 우리는 통념상 시간을 시계나 달력같은 것으로, 공간을 어떤 그릇 같은 것으로 표상하기 때문이다. 버뜨 칸트에게 시, 공간은 그런게 아니다. 그것은 경험도 아니고 개념도 아니다. 그럼 뭐냐고?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선험적 형식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무엇인가를 본다는 것은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일종의 내부의 안경 같은, 스크린 같은 어떤 형식을 통과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래야만...표상들이, 즉 뜨겁다, 빨갛다, 고소하다... 같은 것들이 어떤 위치를 통해 포착될 수 있다.

 

공간이란 외감의 형식인데, 스피노자식으로 말해보면 우리는 태양을 어떻게 지각하냐면 200피트 떨어진 곳의 태양이라고, 즉 공간의 형식을 통해 지각한다. (차이는? 스피노자는 우리의 인식이 신처럼 물 자체를 인식을 할 수 있다고, 그러면 태양은 200피트 떨어진 곳에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한 반면, 칸트는 그런 건 불가능하다고, 우리는 언제나 200피트 떨어져 있는 태양이라는 현상만을 지각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칸트식으로 이야기하면 스피노자에게는 ‘공간’이 없다!!)

 

이에 비해 시간은 내감의 형식이다. 마음이 천변만화하면서 기뻤다, 슬펐다, 우울했다, 불안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나만이 아는 내감인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 역시 내감의 형식이다. 예를 들어 내가 엄마를 두 번 볼 때 그리고 그것이 동일한 엄마라고 지각할 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시간이라는 내감의 형식이다.

 

어쨌든 칸트는 공간과 시간이 선험적 형식이라는 것을 네 가지 혹은 다섯 가지로 증명한다. 대충 감으로 버클리, 라이프니츠, 뉴튼 등을 겨냥하는 증명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솔직히 이들의 주장도 상식적인 수준에서밖에 모르니 칸트의 어떤 문장, 어떤 단어가 누구의 무엇을 저으기^^ 겨냥하고 있는 것인지 팍팍 들어오지는 않는다.

 

 

3. 경험적 실재성과 초월적 관념성

 

지난 세미나의 핫 이슈는 경험적 실재성과 초월적 관념성이라는 두 단어였다. 즉 칸트는 공간, 시간을 경험적 실재성이라고도 말하고 동시에 초월적 관념성이라고도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것과 관련해서 가장 열심히 예,복습을 해온 요요가 알려준 리쩌허우의 설명방식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으로 잠정적 결론을 냈다. 그런데 여전히 나한테는 좀 애매함이 남아있다.

 

우선 리쩌허우의 설명을 다시 보자

 

“칸트가 시공간의 문제와 관련해 제기한 ‘초월적 관념성’과 ‘경험적 실재성’은 칸트 철학의 인식론적 특징이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초월적 관념론’이자 ‘경험적 실재론’이라고 칭했다. 인식형식과 구조는 객체로부터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초월적으로 대상(객체)에 부여하는 것이기에 ‘초월적 관념론’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인식의 재료는 모두 ‘물 자체(대상)’가 경험적으로 제공하는 것이기 ‘경험적 실재론’이라 불릴 수 있다. ” (리쩌허우, 『비판철학의 비판』, p114)

 

물론 이 설명은 이해하기 별로 어렵지 않다. 그리고 우리가 장님 코끼리 만지듯 더듬더듬 읽어오면서 깨달은 바에도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런데 나의 의문은 이게 과연 칸트의 아래 문장을 제대로 설명하는 문장인가, 하는 점이다. 칸트의 글을 직접 읽어보자.

 

“우리에게 외적으로 대상으로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것과 관련해서는 공간의 실재성(다시 말해, 객관적 타당성)을, 그러나 동시에 이성에 의해 그 자체로 사념되는, 다시 말해 우리 감성의 성질을 고려함이 없이 취해지는 사물이 있다면, 그런 사물들과 관련해서는 공간의 관념성을 가르쳐준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가능한 외적 경험과 관련해서) 공간의 경험적 실재성을 주장한다. 비록 동시에 그것의 초월적 관념성을 – 다시 말해, 우리가 모든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내버리고, 공간을 사물들 그 자체의 기초에 놓여 있는 어떤 것으로 취하자마자, 공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 주장하면서도 말이다.” (백종현 번역)

 

“대상으로서 외적으로 우리에게 현상하는 일체에 관해서는 공간이 실재성(즉 객관적 타당성)임을 가르쳐 준다. 그러나 우리의 구명은(해설은) 동시에 이성이 물자체 그것을 고려할 때에는 즉 인간 감성의 성질을 돌보는 일이 없다고 한다면, 이러한 물자체 그것에 관해서는 공간이 관념성임을 가르쳐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능한 전 외적 경험에 관해서는) 공간의 경험적 실재성을 주장한다. 동시에 우리는 공간의 초월적 관념성을 주장한다. 즉 우리가 모든 경험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라는 (의미를) 내버리고 공간을 물자체 그것의 근저에 있는 그 어떤 것으로 가정하자마자 공간은 없는 것이다. ” (최재희 번역)

 

 

그러니까 나는 문맥상으로만 보면....위의 문장을 현상과 관련해서는 경험적 실재성을 물자체와 관련해서는 초월적 관념성을 주장한다....로 읽어야 한다고 본다. 즉 이 문장은 물자체와 현상의 구별과 관계되는 문장인 것 같다는 뜻이다. 아마도 이 문장은 경험론과 합리론을 동시에 비판하면서 동시에 다르게 종합하는 칸트 고유의 기획과 관련된 문장 아닐까?

 

그래서 주장하는 게 뭐냐구?

 

음.. 뭔가 머리를 더 쥐어짜면 뭔가 더 나올 것 같지만 아직은 좀 애매하고 (글로 정리되기 어려움)...또 지금 나가봐야 해서 순전히 면피용 후기는 일단 요기까지만.

 

 

피에쑤: 만약 담 세미나 전에 뭔가 더 생각한 게 있으면 댓글로 달게요.

댓글 1
  • 2020-11-12 12:54

    며칠 생각을 만져봤습니다. 경험적 실재성, 초월적 관념성... 남기지 않으면 아마 곧 이런 생각을 했던 사실도 잊을테니 말이 돼건 안돼건 생각을 남겨봅니다.

    1) 단어들을 좀 쪼개봤습니다. 앞의 수식어들은 다 날리고 실재성과 관념성만 남겼습니다. 시공간이 실재성을 갖는 경우는 물자체의 영역에서가 아니라 주관적 조건, 경험영역에서입니다.
    그래서 경험적 실재성입니다. 관념성도 마찬가지로 생각해보았습니다. 시간이건 공간이건 우리의 주관적 조건에서 실재하고, 우리가 감성적 직관의 주관적 조건들을 도외시한다면(제거하고 생각한다면) 시간이나 공간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이 말을 곰곰 생각해보면 시간 공간은 대상들 자체(물자체)의 성질이 아니란 말이기도 합니다. (시간 공간은 대상들에 실체적으로서 속성적으로 귀속되지 않는다 256) 그럼에도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관념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관념성은 있으니, 이는 초월적(경험적 영역이 아니니)이다. 그래서 초월적 관념성???

    2) 상대어를 붙여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경험적 실재성의 상대어는 객관적 실재성, 절대적 실재성, 초월적 실재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칸트에게는 시공간이 객관적 절대적이란 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시공간 모두 주관에 기인한 선험적 인식 조건이니까요. 절대적인 실재성은 알 수 없는 물자체의 영역입니다. 칸트는 257(시간 부분)에서 시간에게 경험적 실재성은 인정하되 절대적 초월적 실재성은 거부한다고 명시합니다. 칸트에게 시공간의 실재성은 경험적 실재성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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