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 후기

느티나무
2019-05-1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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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를 제가 쓰겠다고 장담을 하고는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먼 대구의 한 카페에서 이제사 올립니다.


이번 주부터 간도지역의 민중의 삶과 역사에 대한 논문을 읽었습니다.

중국연변대학교 민족역사연구소 소장인 김춘선의 논문 4편을 통해

간도지역 조선민중의 이민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그 지역의 독립운동의 양태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한인들의 북간도 이주는 4개의 시기로 나누어 보면

1시기 정묘. 병자 호란의 시기 후금에 투항하거나 노략당한 강제적인 이주의 시기

2시기 월강죄를 무릅쓰고 빈민들의 살길을 찾아 목숨을 건 이민,

이들의 이주는 청나라의 봉금정책(무인지대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을 폐지하게 했고

이 지역을 개척하는 주도 세력이 되었습니다.

이들로 인해 이후 연변에 조선족의 거주지가 형성되는 기반을 만들게 됩니다.

3시기 이민실변정책(청나라 정부가 변방지역에 국방을 강화하기 위해 이민을 주도한 정책)

으로 한인들에게 치발역복과 귀화입적, 전민제 등을 실시한 시기와 한인들이

조선독립과 중국해방이란 두 임무를 지게 되는 시기

4시기 자유이민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1,2시기 조선인들은 수전경작의 기술로 간도지역의 벼농사가 다시 가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중국의 지주들은 조선족 농민을 모집하여 황지를 개간하였고 조선족이 이주하는 곳에는 벼파도가 넘실거렸다고 합니다.

어떤 의미로는 동북조선족의 이주사는 근대 둥북의 수전발전사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동북의 농업경제발전에 거대한 기여를 하였습니다.

이후 <간도협약>으로 한인들의 거주권 및 귀화 입적을 전제로한 토지소유권이 인정되자

이민자 수가 급격히 증가하여 북간도 전체 인구의 70~80%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이 지역은 경제적 이유 뿐 아니라

정치적 망명자와 항일독립 운동의 기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중국국내의 혼잡한 정세를 이용하여

원세계에게 <남만주와 동부내몽고에 관한 조약> <만몽조약>을 체결하여

남만주와 동부내몽고 지역의 토지상조권을 획득하게 됩니다.

문제는 재만한인들의 토지상조권 적용문제였습니다.

일본은 <만몽조약>을 내세워 <간도협약>의 무효화를 주장합니다.

이것은 청나라와 일본 두 나라 간

서로 자국의 이익에 이 지역을 이용하기 위한 정책 사이에서

한인들이 겪어야 했던 곤혹스러운 입장의 문제였습니다.

청은 치발역복(薙髮易服) 귀화입적(歸化入籍)을 강요하고

한인의 자녀들을 무조건 중국인 학교에 입학시켜 중국인으로 교육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이 지역의 한인들을 자국민으로 만들기 위한 방책입니다.

그리고 그 대안 책으로 전민제(귀화인의 명의로 토지를 구입하는 형태)를 시행합니다.

청나라의 주권보호와 북간도 개발, 비귀화 한인들의 토지소유

세 가지 모두를 만족할 수 있는 방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청일전쟁 이후 일본이 한인들을 일본인이라 주장하며

재만 한인들의 중국귀화를 불허함에 따라 이중국적의 문제가 발생하자

청은 한인들의 귀하를 더욱 압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20년 이후 전민제는 효력을 상실하게 되고 비귀화한 한인들은

토지소유권을 박탈당하거나 귀하를 선택하거나 소작농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영필의 영고탑 발해농장 구입과 귀화가 이루어진 것이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북간도에 거주한 한인들은 이 지역을 개척한 주역임에도

대부분 중국인의 소작농이 되어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인은 간민교육회를 설치하고

한인의 교육과 사회문제 그리고 정치, 경제문제에 이르기까지

한인자치단체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신해혁명과 청의 멸망, 중화민국 설립,

원세계의 정권 장악 등 격변기를 맞이하게 되고

이에 따라 간도 지역에 대한 정책도 그 격변에 휘말리게 됩니다.

한인 사회는 간민회와 농무계로 나뉘어 갈등을 빚게 되고

이를 교묘하게 이용한 일본의 계략으로

한인 내부의 대립과 분열이 심화되기에 이릅니다.

한인사회는 새로운 통합을 모색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중에게 광분한 군자금이나 세금의 징수, 그리고 여러 파벌들의 분열과 이탈로

점차 쇠퇴하게 됩니다. 1920년대 이후 민중혁명운동이 파급되자

혁명단체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결국 조선독립과 혁명을 위하여라는 깃발은 중국혁명을 위하여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번 세미나를 통해서는 간도지역의 이주했던 한인들의 업적과

그들의 이민이 만들어낸 이민문화에 대해 주목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저 독립운동의 거점 혹은 중국과의 국경분쟁 지역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간도지역이

민중의 힘이 일궈낸 위대한 장소라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다음 주는

빛나씨와 구미현샘 자매분이 오셔서 세미나를 함께 진행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참석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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