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소송] 첫 시간 후기

노을
2020-05-22 11:46
63

<밤을 사유하다> 세미나를 처음 기획했을 때 시즌 별로 한 권 정도는 문학을 읽고자 했었다. 그런데 어찌하다보니 공교롭게도 처음에 카프카를 읽게 되었고, 카프카의 소설이 난해하긴 했지만 애매하고도 묘한 매력이 있어서 올해도 카프카의 소설을 한 권 끼워 넣었다.  이번 주부터 읽고 있는 [소송]은 지난 해 읽었던 [성]과 많은 부분이 겹쳐지는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그런나 후기를 쓰며 다시 생각해보니 다른 점도 많은 것 같다.) 

 

여성

우선 주인공 이름인 K가 [성]과 동일하다. 그러나 [성]에서 K는 전혀, 아무것도, 측량할 게 없는 곳에 도착한 측량사이고 [소송]에서 K는, 어느날 갑자기 영문 모를 소송에 휩싸이긴 하지만, 아직은 잘 나가는 은행 간부다. [성]에서처럼 K는 여성들하고만 소통을 경험한다. 우리는 세미나 시간에 K가 도대체 왜 여성들하고만 쉽게 사랑에 빠지는 것인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K에게 여성은 구원자인가? K주변의 여성들은 사회적 신분이 매우 낮으면서도, 본인들이 고위관료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힘을 가지고 있다면서 K를 유혹한다. (뭉클샘의 표현처럼) '금사빠'인 K는, 본인에게 도움을 줄 여자들을 모집하고 있다고 스스로도 느낀다.  갑자기 소송에 걸려 피고인의 입장에 놓인 당황스러운 상황에 처한 그는, 능력있고 권위를 가진 남자들이 아니라 자기보다 훨씬 낮은 사회적 지위에 있는 여성들과 관계를 맺어나간다. 소설 속에서 남자들은 모두 업무상으로 만나게 되는 직원이거나 관료이거나 보호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인데, K는 그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그들에게서 배제된다.

그런데 한편으로 여성들은 K에게 자신들이 놓인 열악한 환경에서 구해달라고 말하기도 한다. 고위관료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K를 유혹하면서도 그들은 스스로는 열악한 환경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K가 여성들의 구원자로 보이기도 한다. 구원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구원함과 동시에 그로인해 나 또한 구원되는 상호적인 것인가까지, 우리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죄에 이끌린다

소송에 걸려 피고인이 되었다고 통보하는 감시인에게 K는 묻는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그러나 법은 죄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고, 죄에 이끌려서 감시인을 보내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죄에 이끌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토론을 하기 시작할 때, 우리들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올렸던 것 같다. 무슨 죄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죄인이라는 선고를 받고나면, 자신의 행위가 죄인지 아닌지, 과거에 잘못한 것 중에 잊은 것은 없는지 매 순간 스스로 검열해야 한다. 그러면서 점점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덮어 씌우면서 진정한 죄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피고인이라는 선고를 받은 뒤부터 K의 머리속에서는 소송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잘 나가는 은행간부의 지위에 흠집이 날까봐 직장에서 누가 알까봐 안절부절한다. 또한 그가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함과 동시에 그와는 다른 이들의 죄를 고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그 때문에 타인들이 또다시 벌을 받는 상황이 펼쳐지면서 K는 점점 더 난관, 죄책감의 난관 속으로 빠져든다.   

 

법과 거대조직

재하샘이 의문을 제기해 준 법원이나 심리의 자의성, 그리고 거대한 관료조직의 '열악한' 외관에 대해서도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K는 심리에 참석하라는 통보를 받지만, 거기에 정확한 장소와 시간은 빠져있다. 법이 죄에 이끌린다는 말을 힌트로, K는 자기가 생각하는 시간에 또한 우연히 선택한 곳이 법정이 된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런데 가보니, 그는 시간에 늦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뿔옹샘말처럼, K가 언제 도착했더라도 그들은 K가 늦었다고 하지 않았을까? 법은 죄에 이끌리고, 법을 이끈 죄인은 스스로 소송을 이끌어 나가지만, 그런 소송에서 언제나 불리한 입장에 처해있는...역설이다.

[성]에서는 멀리서만 거대한 성의 모습을 보았을 뿐, K는 결코 성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런데 [소송]의 K는 빈민가의 다락방, 가장 혼탁한 공기 속에 자리한 아주 열악하고 더러운 법원사무처를 발견하고 구경한다. 소설 속에서 내내 법의 '거대한 조직'이라고 표현하면서, 왜 이런 열악하고 엉뚱한 곳에 더러운 법원이 있게 만든 것일까? 재하샘은 겉으로만 거대한 관료체계를 비웃으려는 카프카의 블랙코메디가 아닐까하고 추측했고,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K의 눈에는 진짜로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소송과 같은 사건을 계기로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거대한 조직의 '허울' 이면의 더러움과 적나라함을 그대로 마주할 수밖에 없을테니깐. 

 

* 문학은 할 때마다 세미나를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하기도 하지만, 할 때마다 새로운 재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시대적 배경과 비평가들의 의견을 중심으로 애매한 것들의 의미를 밝히고 파악해나가는 것도 좋을 듯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각자의 설익은 느낌과 의견들을 교환하고 비교해 보면서 자기 안에 고여오는 것은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것도 재밌는 것 같다.

* 뿔옹샘의 말처럼 K가 아직은 여성적인 면모와 남성적인 면모를 모두 가지고 양면적으로 행동하고 있지만...앞으로는...조심스럽게 예측해보건데 [소송]의 결말은 완전한 여성-되기에 성공한 K의 완전한 파멸이 아닐까 싶기도. 그러나 중요한 건 그게 어떤 '과정'인가일 듯하다. 그는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서 파멸에 이를 것인지가 나는 몹시도 흥미진진하다. ^^  

댓글 2
  • 2020-05-23 08:06

    결론은 아직 모르겠지만 추측하자면
    무슨 소송인지 결코 알지 못하고, 알 수 없고,
    그냥 모른 채 그렇게 끝이 날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
    우리가 이세상을 떠날 때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순간을 살고 가는 것처럼.....

  • 2020-05-23 18:25

    저는 카프카의 <성>과 여러 부분에서 겹치는 부분들이 보였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실제로 유사한 부분이 있기도 했겠지만
    제가 그런 연결점들을 애써 찾으려 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네요.

    여튼 <성>에서나 <소송>에서나 주인공 K는
    길 위에서 헤매는 일, 길 위에서 이탈하는 일을 계속 벌이고 있습니다.
    곁길로 빠져 돌연한 사건들과 마주치고 계속 질문하고 다니는 일에서 묘한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은 K.
    구원을 구하기도 하지만 그 자신이 구원자이기도 할... 경계에 선 사람 K.

    그의 행적을 따라가는 길은,
    흥미진진하게 막 빠져드는 길은 아니지만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그런 뻔한 길이 아니라서 마음이 갑니다.
    다음엔 또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일이 생길지 궁금해집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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