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중간하면 자연선택에 불리하다고요?!

곰곰
2024-04-16 00:52
55

<종의 기원> 두번째 시간이다. 4장 자연선택과 5장 변이의 법칙들을 읽었다. 

 

“이러한 유리한 변이의 보존과 유해한 변이의 배제를 나는 자연선택이라 부른다. 유용하지도 않고 유해하지도 않은 변이들은 자연 선택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고, 다형적이라 일컬어지는 종에서 볼 수 있듯이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요소로 남겨질 것이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다윈이 주장하는 ‘자연선택’에서 살짝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선택’이라는 단어를 보면 ‘누가’라는 말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사람에 의한 인위적 선택을 <종의 기원> 제일 앞부분에서 설명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다윈은 ‘선택’을 ‘누가’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변이를 지닌 생물들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환경에서 (유리해서) 살아남으면 ‘선택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유해해서) ’선택되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다. 자연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적합한 변이를 가진 생물들이 살아가게만 할 뿐이다. 선택이라는 단어가 지니는 의미를 ‘여럿 가운데서 필요한 것을 골라 뽑음’이 아니라 ‘생물 가운데 환경이나 조건 따위에 맞는 것만이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것은 죽어 없어지는 현상(멸절)’으로 보는 것이 맞겠다.    

 

“인간이 체계적인 선택과 무의식적인 선택의 방법을 통해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고 실제로도 그랬다면, 하물며 자연이 그리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인간은 눈에 보이는 외부형질에만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면 자연은 외부 요소들이 그 유기체에 유용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양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 자연은 생명의 전체 조직 내의 모든 내부 기관과 모든 미묘한 체질적 차이에 작용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 선택하지만 자연은 자신이 돌보는 존재의 이득을 위해서만 선택한다.” 

 

인위선택과 비교할 때 자연선택이 지닌 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다. 육종사가 몇 십 세대만에 목도리 두른 비둘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하물며 자연이 훨씬 더 긴 시간동안 어떤 생명체든 못 만들어 내겠냐, 역자는 이 ‘하물며’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하물며라 한다. 인위선택은 짧은 시간에 외부 형태에만 관심을 가지고 진행되었지만, 자연선택은 지질학적 시간이라는 엄청난 시간에 걸쳐 눈에 보이지 않는 체질이나 내부 기관의 변형을 초래한다는 차이가 있다. 인위선택의 결과는 불충실하지만, 자연선택 결과는 아주 충실하다! 

 

자연선택은 형질분기가 일어나게 만든다. 분기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의미한다. 즉 분기하면 할수록 차이는 점점 더 커진다는 의미다. 다윈은 같은 종에 속하는 개체들 사이에서 변이가 나타나야만, 이들 사이에서 자연 선택이 작용하게 되며, 자연선택이 작용해야만 새로운 종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달리 말해 진화의 전제조건이 바로 변이인데, 이 변이가 나타나서 개체들이 서로 달라지는 것을 형질분기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다윈은 형질분기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변종들 사이의 사소한 차이가 어떻게 해서 종들간의 큰 차이로 늘어났는지(종이 어떻게 기원하는지) 질문한다. 이른바 단순한 우연으로 종과 종, 변종과 변종들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 이보다는 변이를 유지시키는 자연선택이 더 중요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이 기르는 생물들은 사람이 원하는 형질만 선택해서 개량시키나, 자연에서는 변이가 만들어지고, 변이에 따라 생태계 내에서 자신만의 생태적 지위를 차지하고, 또 다른 변이가 나타나고 그에 따라 또 다른 생태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새로운 형질들이 만들어진다. 구조, 체질 및 습성에서 더욱더 다양해 질수록 다양한 생태적 지위를 차지하고 그 수를 늘려 나갈수록 더 많은 생물들이 한 생태계 내에서 존재할 수 있다. 

 

다윈은 형질이 분기하는 과정, 즉 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명의 나무’ 도표로 보여준다. 

 

 

그는 임의로 A부터 L까지 종들을 구분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와 같은 종들이 더욱 다양한 종으로 분화됨을 보여주었다. 살아가는 조건이 변이를 만들며, 이렇게 만들어진 변이는 대물림을 통해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런 과정에서 생물에게 도움이 되는 변이가 자연 선택된다. 자연 선택은 절멸을 유도하나, 형질이 분기하도록 하여 다양한 후손을 남기도록 한다. 형질 분기 과정을 거쳐 생물들 사이에 점점 큰 차이가 날 것이다. 그렇게 뚜렷한 형질이 되면 새로운 종이 만들어진다. 

 

 

형질 분기 원리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인위선택에서도 자연에서도 변이에 대해 ’어중간한 것’은 싫어하는 듯 하다는 점이었다. 애조가들은 비둘기의 부리를 선택할 때 “어중간한 것을 싫어하고 극단적인 것을 좋아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했다. 식물의 경우에 대해서도 “가장 뚜렷한 특징을 가진 것이 생존해 그 수를 늘릴 기회를 가지게 되고, 이로써 특징이 덜 뚜렷한 다른 변종들은 없어진다는 사실, 그리고 변종들이 서로 매우 다른 특징을 가지게 되었을 때 종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한다. 생명의 나무에서도 극단적인 종 A와 I를 선택해 이것들에게서 매우 많은 변이가 일어나 새로운 변종들과 종들이 탄생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종에서 덜 개량된 상태와 더 많이 개량된 상태 사이에 있는 모든 중간적인 형태들은 일반적으로 멸절되는 경향이 있다”고 썼다. 문득 요즘 정치나 사회 문화적으로도 어중간한 것은 점점 인기가 없고 극단적인 것만 선호하는 것도 이러한 경향으로 볼 수 있을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세미나에서는 두루미샘과 내 성향이 완전히 극단적이라며 그래서 과학세미나에 같이 있나보다.. 뭐 그런 얘기도 나눴던 것 같다. ㅋㅋ

 

처음 시간에는 다들 예상보다 재미있어서 놀랐다는 반응이었다면, 이번 시간에는 처음과 달리 갑자기 어렵고 복잡해져서 놀랐다고 했다. 다윈은 혹시 형질분기식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다음 시간은 어떨지 갑자기 기대가 된다. 

댓글 1
  • 2024-04-17 10:13

    아.. 새록새록 지난 세미나가 생각나네요. 구조 체질 습성이 더 많이 다양할 수록 살아남을 가능성(생태적 지위)이 많다는 의미에서 인간의 잡식성이 지금의 최상위 포식자가 된 이유인가 싶어 소름돋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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