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첫번째 후기-웬수 같은 달

두루미
2024-02-14 15:52
187

웬수 같은 달이다. 

 

작년에 슈퍼문이 난리였다. 달이 커보이는 이유는 달의 궤도가 지구와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달의 궤도가 타원이기 때문에 항상 가까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매년 있는 현상일 텐데 유독 지난해 이슈였던 건 왜일까? 보름달과 슈퍼문 현상이 동시에 관측되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란다. 작년 여름 우리 집 뒤쪽으로 달이 뜨기 때문에 나는 슈퍼문을 보지 못했다. 잠깐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볼까 싶었지만 내키지 않았다. 아무리 대단한 슈퍼블루문이라고 해도 내 고소공포증을 누르지는 못했다. 그때는 그랬다. 

 

작년 여름만 해도 겨울방학 과학세미나가 천문학 세미나가 될 줄 몰랐다. 세미나를 결정 하고 나서도 여전히 천문학이 뭔지 몰랐지만, 막연히 겨울은 별자리  관측에 좋은 계절이라고만 생각했다. 세미나가 시작되고, 내 핸드폰에 별자리 관측 프로그램을 하나 깔았다. 그리고 가까운 천문대에 1월 관측예약을 미리 문의해두었다. 그러나 좀처럼 별보기 좋은 날이 잡히지 않았다. 내가 연락했던 천문대에서도 이후 연락이 없었다. 날씨가 눈으로 보기엔 나쁜 것 같지 않지만 대기가 안좋은가. 미세먼지가 많은가... 도대체 왜 그렇지?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의 저자 마이크 브라운 덕분에 심증만 있던 그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됐다.  그에게 달(빛)은 웬수였다. 매일 밤 새로운 별을 찾기 위해 밤하늘을 관측해야 하는 천문학자였기 때문이다. 천체 관측을 위해 도시의 불빛을 피하고, 아무리 외진 곳, 심지어 우주 공간까지 도망쳐도 달빛만은 피할 수 없었다. 웬수 같은 보름달!

 

2002년 6월 그는 밝은 달빛을 저주하며 "명왕성 너머에 무언가 다른 행성이 있을 것 같은 예감"만으로 시작한 새로운 별 찾기에 대한 결실을 맺을 순간이 찾아왔다. 그와 그의 동료 채드는 "명왕성"보다 더 큰 행성을 찾아냈다고 기뻐했다.(뒤에 나오겠지만 그 별은 명왕성 퇴출의 원인이 된다.) 저자는 언젠가부터 밤을 새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관측 분석이 가능해진 이유로 장비의 컴퓨터화를 몇 년에 걸친 연구방식의 변화로 설명한다. Y2K를 앞두고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한 공포와 기대가 공존하던 짧은 시기. 웹컴퓨팅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나는 마침 이 시기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컴퓨터를 사용했기 때문에 기억이 강렬한데, 바다님 또한 학교로 복직했더니 모든 서류가 전산화 돼 적응하느라 고생했다고 하셨다. 그런데 저자에게는 3년 걸리던 분석이 2시간만에 가능해지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나는 천문학자와 천문대에 매료됐다. 케플러가 천체 연구를 위해 평생 밤하늘을 바라보고 살았다는 얘길 들었을 때도, 뉴턴이 수학적으로 천체의 궤도 운동을 계산해낼 때도 놀랍기는 하지만 내가 직접 해보고 싶은 생각은 안 들었다. 하지만 이제 꿈이 바뀌었다. 천문학자가 되고 싶어! 열역학 책을 처음 봤을 때는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ㅎㅎ 그만큼 자신의 일과 행성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 구성이 흥미진진했다. 고소공포증인데다 밤을 무서워하는 내가, 이제 높은 곳에 올라가서 밤하늘을 보는 일이 멋지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첫 장부터 내가 <코스모스>를 읽으면서 느꼈던 괴리감의 원인을 밝혀준 것이 공감을 일으켰다. 

 

그는 어릴 때 로켓 마을(앨러배마주)에 살았다고 한다.  저자의 아버지를 포함 그 동네 아버지들은 아폴로의 로켓 공학자였고, 동네 친구들은 커서 천문학자가 되거나 천문학자의 아내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그런 동네였다. 그런 그조차도 행성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정작 밤하늘을 바라보는 데는 큰 흥미가 없었다고 한다. 어느 추운 겨울밤 아버지 손에 이끌려 혜성을 보러 나가서도 빨리 집에 돌아가서 잠 좀  자면 안 되냐며 칭얼거렸다고 한다. 그만큼 밤하늘엔 관심이 없었다고. 그 순간 나도 의문이 풀렸다. 생각해보니 나도 천문대 천체 관측을 꽤 여러 번 한 편이고 과천과학관 우주관은 번거롭더라도 예약하고 꼭 들르는 코스였다. 그래서 나는 <코스모스>를 읽을 때 의외로 우주 정보들에 익숙했던 모양이다. 태양계 행성 모형도 집에 하나씩은 천장에 매달지 않았던가. 하지만 행성에 대한 나의 관심은 학교와 도서관, 박물관에서 만나는 지식으로 그쳤던 것 같다. 그래, 내가 예비된 천문학자일런지 누가 알랴... 이제라도 하늘을 보며 살자. 

 

하지만 웬수 같은 슈퍼문 덕분에 별 보기는 그른 것 같다. "달보러 가실래요?"라고 천문대 관측 공지를 어제 올렸는데, 생각보다 신청자가 없어서 걱정이다. 이러다 천문학자는커녕 천문대조차 올라보지도 못하겠다! "별보러 가실래요?"라고 올렸다면 좀더 호응을 이끌었을 텐데... 그럼에도 내게 달 관측은 역사적 의미가 있다. 17세기 초 갈릴레이는 자신이 개발한 망원경으로 달의 크리에이터(운석구덩이)를 확인했다. 더이상 천체는 흠 없는 천상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시초가 되었다. 이후로 망원경은 뉴턴의 반사망원경, 전파 망원경, 제임스웹 우주망원경까지 이어진다. 우리에게 크게 가장 잘 보이는 것 같은 달 덕분에 우리의 우주 역사(개발)가 시작된 셈이다. 달 관측과 더불어 목성도 관측이 가능하다는데. 이번 기회에 태양계 행성들(수/금/지/화/목/토/천/해) 중 목성을 공부해보는 것도 좋겠다... 이렇게 조금씩 다음 주 천문대 강연 주제를 좁히는 중이긴 한데... 과연 천문대에 오를 수나 있을까.

 

웬수 같은 보름달 보러 가실래요? 

댓글 2
  • 2024-02-14 18:03

    천문학자 까진 아니더라도 우주에 대한 관심이 깨어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천문대를 좀더 관심있게 경험 해보고 싶어지기도 하구요.
    저자가 기술한 천문학자로서의 현실적인 삶의 모습들이 구체적이고 진솔해서 호감을 갖고 읽게 되네요.

  • 2024-02-15 23:17

    저는 브라운씨가 동료들과 하루 3교대로 사진 건판을 바꾸어 가면서 하늘 사진을 찍고 비교하는, 순전히 노가다 같은 일을 2년을 꼬박하고, 거기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직접 짜서 분석하기를 또 꼬박 1년을 하고도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 그런데 이어서 다시 똑같은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걸 보고 '와... 천문학자(과학자)는 절대 못되겠다~' 생각하며 읽었는데, 같은 부분에서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는 두루미샘에게 더 놀랐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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