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후지명> 후기

자작나무
2021-07-21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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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은 <문후지명>은 진나라 '문후의 명'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사실 동주의 평왕이 자기를 옹립해준 문후에게 감사의 말과 당부의 명령을 내리고 있는 글입니다. 

그렇게 잘나가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나라인 주나라가 어느샌가 시들고, 

평왕 자신도 힘이 없을 터인데, 그는 천자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전부터도 천자들은 너=문후의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옆에서 보좌해주었다. 그래서 우리 주나라가 지금껏 

잘 왔다. 그러니 지금 너도 나에게 잘하면 나의 자리는 물론이고 나로 대변되는 주나라도 영원토록 편안할 것이다. 

뭐, 이런 식으로 도와준 문후를 치하하는 거죠.

그러면서 말로만 공치사할 수 없었던 그는, 

이전부터 큰 공이 있는 자에게 내리는 '검은 울창주와 붉은 활과 화살과 말'을 하사합니다. 

감사의 표시이고 당부의 선물인데, 왠지 평왕이 짠합니다. 

다시 주나라를 부흥시키겠다는 열망과 다짐으로 불타도 모자랄 판에, 좋은게 좋은거야 라면서 묻어두는 것 같아서죠.

그래서일까, 채침은 소식의 신랄한 의견을 주석에 답니다. 소식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문후편>을 읽고 동주가 다시 흥하지 못할 줄을 알아노라. 주가 무너짐에 화가 지극하니, 평왕은 마땅히 위나라 문공과 월왕 구천과 같이 하여야 할 터인데, 이제 그 글은 마침내 편안하여 평강한 세상과 다름이 없다."

 

이제 주나라가 끝나가려 하나봅니다. 글의 내용에도 히마리가 없으니. 소식 말마따나 말이죠. 

그러면 또 이런 의문도 듭니다. <서경>을 정리했다는 공자는 왜 이 편을 남겨두었냐는 거죠.

게다가 평왕은 바로 포사를 총애해서 왕후를 폐위하고 태자까지 버렸던 유왕의 아들(태자)입니다. 

외조부인 신후의 도움으로 왕의 자리에 올랐다고 하나, 그래서 그에게 개인적으로는 은덕이 있다고 하나,

또 한편으로 신후는 부친인 유왕을 시해한 자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를 주벌하지도 않고 도리여 중용하다니!

그래서 채침은, "어버이를 잊고 의를 저버려 하늘에 죄를 얻음이 너무 심하다"고 말했죠. 

 

그럼 공자는 왜?

평왕이 문후에게 명령을 내릴 때, 그는 문왕과 무왕의 옛 일들을 논거로 삼아서 너도 이래라는 식으로 했습니다.

아마도 평왕이 남긴 문왕과 무왕의 옛 사적 때문에, 그렇지 않으면 천하 후세의 경계를 보이기 위해서 공자가

이 글을 남겼음에 틀림없다고 채침은 말합니다. 

 

한문 원전에 코박고 뜻을 파악하고 번역하고 있다보면, 큰 그림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역사의 큰 그림 속에서 움직이는 평왕이고, 그가 내린 명령일텐데, 생동감이 좀 부족한 듯한 느낌이죠.

아마도 다른 역사서적이나 자료들과 비교해서 읽는다면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장면들이 펼쳐지겠죠. ㅎㅎ

 

 

댓글 3
  • 2021-07-24 18:54

    <주서> 처음의 위풍당당함과 마지막 평왕의 나약한 모습이 비교가 되네요.

    나라의 건국과 쇠망은 글의 기운까지 바꾸는가봅니다.  

  • 2021-07-25 16:36

    글만 읽느라 맥락 파악이 잘 안 되고 있다는 것, 그게 한문강독에서 제가 부딪치는 가장 큰 어려움인 것 같습니다.

    문후지명을 다 읽고 난 다음에야 평왕이 누구인지, 무슨 내용이었는지 겨우 파악이 되니..에휴~

    <여형>도 그렇고 <문후지명>도 그렇고 뒤로 갈수록 공자님이 왜 이 글을 서경에 남겼냐가 계속 문제가 되네요.

    자꾸 딴지를 거는게, 쇠하여 가는 주나라의 모습이 <서경>을 주석하는 유가들의 마음에 안 들었나 봐요.ㅎㅎ

  • 2021-08-27 17:10

    문무왕 시절이야기를 할 때는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울려퍼지는 것처럼 대단하더니, 달도 차면 기울 듯 세상사 다 그러한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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