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행합일, 앎이 곧 삶이요, 삶이 곧 앎이다

요요
2024-04-24 12:17
35

<전습록> 중권을 읽고 있습니다. 우리가 읽는 <전습록>은 상, 중, 하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상권은 제자들과 양명의 문답이고, 중권은 제자들이 보내온 편지에 대한 양명의 답신입니다. 하권은 양명 말년에 양명에게 배운 제자 7명의 노트를 모은 것입니다.(음! 기록은 중요해!!) 상권은 양명이 강학을 시작한 초기(40대)의 대화록이라 아직 양명의 사상이 무르익지 않은 때라고 하고, 중권에서 양명이 직접 쓴 글(50대)이야말로 양명 사상의 정수를 드러내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 만들어진 <전습록>은 남원선(남대길)이라는 제자가 1524년(양명 53세)에 양명과 제자들의 대화록(상책)과 양명이 직접 쓴 '학문을 논한 글'(하책)을 합쳐서 판각한 것이었습니다. 남원선이 판각한 <전습록>의 하책에는 양명의 글 9편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덕홍이 1556년(양명 사후 28년 뒤)에 상, 중, 하로 편집하면서 위 하책에 있던 9편의 글 중 두편의 글을 빼고 다른 글 한 편을 보충하여 중권에 수록했습니다. 중권의 구성을 보면 고동교, 주도통, 육원정(2편), 구양숭일, 나정암, 섭문울(2편) 여섯 사람에게 보내는 8편의 편지와 그외 두편의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읽는 <전습록>은 전덕홍이 편집하여 완성한 판본입니다.

 

전덕홍의 편집본의 특징은 양명의 '학문을 논한 글'을 제자가 보낸 편지의 대목vs그 대목에 대한 양명의 답으로 편집하여 문답체로 구성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읽는 중권은 각 조목마다 제자의 편지-양명의 대답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제자가 한 말에 대해 양명이 한 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동의하거나 비판하는 내용을 아주 살뜰히 챙겨볼 수가 있습니다. 양명선생의 답을 보면 한 마디로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이 깐깐하고 치밀합니다. 지금 중권의 첫번째 글인 고동교의 편지에 대한 답신을 읽고 있는데 주자의 주장과 양명의 주장이 무엇이 다른지 헷갈려 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고, 답글은 주자와 양명 자신의 차이를 명료하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따라 읽는 것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사서와 주자의 사서 집주를 다 외우고 있는 사람들이 주고받은 편지라 더욱 그렇습니다.)

 

고동교의 편지에 대한 답신은 130조목에서 143조목까지입니다. 이번에 읽은 134조목에서 고동교의 질문은 이렇습니다.

 

"선생님의 치지(致知)는 맹자가 말한 진심(盡心)의 취지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주자도 마찬가지로 허령한 지각이 마음의 능력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마음을 다하는 것(盡心)은 성을 아는 것(知性)에서 말미암고, 치지(致知)는 격물(格物)에 있지 않을까요?"(제가 이해한 방식으로 입말로 고쳤습니다.ㅋ)

 

고동교는 <맹자>의 '진심'장에 대한 주자의 해석에 근거하여 양명에게 선생님 말씀이 좀 잘못된 것 아니냐고 묻습니다. 

 

<맹자, 진심>의 대목은 "그 마음을 다하는 자는 그 본성을 알고, 그 본성을 알면 하늘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주자는 " 성을 알아야 마음을 다할 수 있다고 하고, 성을 알면 하늘을 알고, 성을 알고 하늘을 알면 그 마음을 다할 수 있다, 성을 알지 못하면 그 마음을 다할 수 없다"고 해석합니다.

 

주자의 해석의 근거는 대학의 격물치지, 성의, 정심, 수신의 순서에 따르는 것입니다. 주자의 말입니다. "'성을 아는 것'은 격물이고, '마음을 다하는 것'은 치지다... 마음을 다하고 성을 알아서 하늘을 아는 것은 그 이치에 나아가는 것이며,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길러서 하늘을 섬기는 것은 그 일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늘을 알아서 요절하거나 장수하는 것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은 지혜가 극진한 것이며, 하늘을 섬겨서 몸을 닦으며 죽음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은 어짊이 지극한 것이니 성인의 일이다."

 

그런데 양명은 자신의 주장은 주자가 말하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라고 합니다. 허걱! 고동교도 놀랐겠지만 우리도 놀랍니다. 뭐라고? 왜 그렇지? 격물치지 성의 정심 수신의 순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양명의 주장은 낯섭니다. 주자와 정반대인 양명의 주장을 봅시다.

 

"진심, 지성, 지천은 나면서 부터 알고 편안히 행하는 성인의 일이요, 존심, 양성, 사천은 배워서 알고 이롭게 행하는 현인의 일이요, 요절과 장수에 흔들리지 않고 수신하여 기다리는 것은 애써 알고 힘써 행하는 학자의 일이다." "어떻게 진심, 지성을 앎으로만 여기고, 존심, 양성을 행으로만 여길 수 있겠는가?"

 

양명은 주자의 주장을, '앎 이후에 행하는 것'으로 읽어내고, 자신의 주장은 '알고 행하는 것이 하나, 즉 지행합일'이니 각자의 수준에 따라 알고 행하는 것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진심, 지성, 지천이 성인의 일이라는 근거를 <중용>에서 가져옵니다. 또 지천은 하늘과 하나된 자(성인)의 일이고, 사천은 하늘과 분리된 사람(현인)의 일이라고 갈파합니다. 하늘을 아는 자는 하늘을 섬기지 않고, 하늘을 섬기는 자는 아직 하늘을 모르기에 하늘을 섬기는 자라는 것이지요. 요절과 장수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에 대하여 양명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은 흔들리지 않으려 하는 것이므로 흔들리는 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니 아직 마음을 보존하는 것도 제대로 못한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천명을 기다리는 것 또한 모르기 때문에 기다린다고 합니다. 아는 자는 기다릴 것도 없다는 것이지요. 이 말의 근거로는 <맹자>의 '천명을 세운다'를 가져오고, <논어>에서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아니다'를 가져옵니다. 그러니 애써 배우는 자, 학자의 일이라고 합니다.

 

양명이 살았던 명대에는 주자의 해석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과거시험용 정답이 되어서 모든 사람이 그것이 마땅하다고 여겼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양명은 주자의 해석에 문제를 제기하고, 지행합일을 주장합니다. 알고 나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앎과 함 사이에는 어떤 간격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그 근거는 이치가 마음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앎은 마음의 능력이며, 함 역시 마음의 의욕에서 시작된다는 것이지요. 결국 마음에서 시작하여 마음으로 돌아가되, 앎과 실천의 일치, 지행합일의 근거를 사서에서 찾아내고 있는 것이지요.

 

일산에 오는 바람에 오늘 세미나에 결석했는데, 긴 후기를 쓰며 지난 세미나 복습을 했습니다.ㅎㅎ

댓글 1
  • 2024-04-27 23:30

    이번 주도 양명선생의 깐깐, 치밀이 여지없이 계속되었지요.
    본인도 편지에 자기의 논의가 너무 각박하다고 여기지 말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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