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첫 시간 후기

아렘
2020-01-08 22:50
120

작년 말 어느 일요일 이른 아침에 모여 남한산성을 산책하던 사람들이 나눈 대화가 있었습니다. 같이 모여 읽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화요일에 안 모이니 뭔가 허전하더라... 이렇게 해서 시를 읽기로 했습니다. 언제나 남다른 감수성을 글에서 드러내던 미나리꽝샘이 저와 이라이졍샘, 신짱샘, 뿔옹샘에 떠밀려 총대를 메고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단기 시 읽기 모임.

 

드디어 첫 시간.... 우리는 자그마치 '이성복'을 읽었습니다. 

 

첫 시간.... 바람 넣던 이라이졍샘은 신청도 안하고, 신짱샘은 사정상 결석, 뿔옹샘은 지독한 치통으로 잠시 있다 조퇴...... 그래서 허전했느냐 하면 꼭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게는 여전히 히말이신 살로메 샘이 오셨고, 여여 샘이 봉옥이란 이름으로 참가를 하셨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각자의 마음에 와닿은 시를 읽고 가벼운 이야기로 채워질 줄 알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매우 진중했습니다. 우리는 평소 퇴근길 세미나보다 더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네 명이 모여 10시를 훨씬 넘겼으니 대단들 했다는 생각입니다. 

 

봉옥샘은 '정든 유곽에서'를 읽어 주셨고, 저는 '밥에 대하여'를 읽었습니다. 꽝샘은 '편지'를 꼽아 오셨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모인 사람들은 시를 읽는 시대의 끝자락을 경험했고(이는 늙었다고 표현해도 무방하려나요?) 이제 더 이상 시를 읽지 않는(하긴 뭔들 읽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이 시대를 살아가다 보니 기억은 나는데 매우 낯선 읽기 경험을 한 듯 합니다. 뭔가 말은 해야겠는데 이걸 어쩐다 뭐 딱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그럴때마다 꽝샘이 중간중간 시 이야기, 시인 이야기 그리고 본인이 생각하는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주셨습니다.  매우 진중하셨고, 매우 말씀을 잘 하셨고 거기다 한 장 짜리 유인물도 나눠주셨습니다. 봉옥샘과 살로메샘은 모르셨겠지만 제게는 엄청난 경험이었습니다. 저를 사로잡은 한 마디는.... '시가 우리를 떠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를 떠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제 시로 좀 걸어가 보면 어떻겠느냐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그러면서 이성복의 극지와 김수영의 미지로 시를 풀어 주셨고, 명확한 김우창, 새로운 백낙청, 따뜻한 김현으로 당시 상황을 압축하실때는 매우 수긍이 가기도 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시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론까지 생겼습니다. 끝날 줄 모르던 모임은 시간이 늦어져 다음주를 기약하고 마무리했습니다. 

 

생각보다 깊고 진중했던 첫 모임인데 후기가 좀 초라한 것 같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우리는 최승자를 읽습니다.  슬픔의 덩어리인 이성복과 최승자를 넘어서면 송찬호와 허수경은 조금 다를 것이라고 합니다. 이 번 모임을 위해 이성복 시집을 네 번째 사신 (도저히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 합니다) 꽝샘과 함께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댓글 4
  • 2020-01-09 12:35

    아무래도 시 읽기에서는 '미나리꽝'이 아니라 불한당의 모습이 보이는게 아닐까.
    담주가 기대되네요. ㅎㅎ
    색다른 조합의 사진도 좋네요. ^^

    KakaoTalk_Photo_2020-01-09-11-34-58.jpeg

  • 2020-01-09 17:44

    그날의 따뜻한 분위기가 사진에서도 풍겨오네요. 첫시간 이후 매일 한편의 시를 읽어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리고 저도 꽝샘을 따라...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 매일 생각해보는 중입니다. 그런데 어젯밤에 최승희의 시를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시란 짝사랑 같은 것이 아닐까. 말할 수 없는 것들만이 시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느낌적인 느낌이. ㅎㅎ

  • 2020-01-09 18:23

    꿈꿀 수 없는 날의 답답함

    나는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었다.
    아니 떨어지고 있었다.
    한없이
    한없이
    한없이
    ……………
    ……

    아 썅! (왜 안 떨어지지?)

    - 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

  • 2020-01-11 23:36

    눈치 채셨겠지만 사실 저는 시라고는 교과서에 나왔던 시, 가곡이나 가요로 만들어진 시 그런 것 정도만 압니다.
    젊었을적 언젠가는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한번 들춰 봤는데 도대체가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ㅠㅠ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중학교때 암송했던 김영랑의 돌밭에 속삭이는 햇살같이 인데요
    아무런 감흥도없이 외워지지 않는 시를 억지로 억지로 외우다보니(숙제)
    시의 그 서정적인 감흥이 화악~ 일어나는 신비한 체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음시간부터는 참석이 어려울 것 같아요.
    겨울비 내리는 화요일 밤을 인연으로 시를 읽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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