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철학학교1] 시즌 1 마지막 시간, 방학이다!

진달래
2024-04-09 10:28
175

『순수이성비판1』이 끝났습니다

 

지난 목요일 철학학교 시즌1의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해 말 2024 철학학교는 안 하겠다고 했는데, 서양철학을 공부하려고 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칸트를 읽어보겠다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어서 철학학교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근데 시작을 하고 보니 또 ‘아. 이거 괜히 시작했구나.’하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됩니다. 오죽하면 공부하던 동양고전 관련 책을 펼 때마다 ‘마음이 편안하다~’는 생각을....

그럼에도 간신히 조금씩 칸트를 입에 붙여보려 합니다. - 중간에는 정말 그만두고 싶었는데 - 여러 현대 중국 철학자들이 칸트를 언급하고, 모종삼은 칸트를 직접 번역했다고도 하니 힘을 좀 더 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흑흑

 

 

시즌1 마지막 시간이었는데 아렘샘이 참석을 못하셔서, 몹시 아쉬운 마음으로 세미나를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읽은 부분은 ‘순수 지성의 원칙들의 체계’에서 네 번째 ’경험적 사고 일반의 요청들‘과 '대상 일반을 현상체와 예지체로 구별하는 근거에 대하여'입니다.

 

여기서 ‘요청’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요청의 지위에 대한 아렘샘의 질문) 경험이 있고 경험이 가능하다면 이것은 요청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매커니즘, 즉 과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요청을 ‘~ 해야 된다’ 정도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요.

 

지난 시간에 이은 질문이라고 하신 ‘경험=인식’인가에 대한 아렘샘의 질문에 대해서는 여전히 ‘경험을 토대로 인식한다’이지, ‘경험이 바로 인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이어 ‘무의식적 경험’이라는 것이 칸트에게 가능한가에 대해 호수샘이 질문하셨는데 칸트에게 있어서는 가능하지 않다고 합니다. ‘무의식적 인식’이라는 말도 성립되지 않는다고. 수학과 같은 ‘비경험적 인식’은 있다고 합니다.

 

세미나에서 논점이 되었던 것은 “예지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세븐샘이 이번 시즌 중 “문학적 느낌이 물씬 풍기는 부분”이라고 짚어 주신 망망대해, 섬 등의 비유로 시작한 감성세계(감각적 세계), 예지세계(예지적 세계)입니다. 여기서 예지체를 물자체로 불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하셨는데, 그렇게 볼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 긴 토의(토론, 논쟁?)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것은 이후에도 논란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순수이성비판』 수준에서는 예지체를 물자체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습니다.

물자체는 인식할 수 없지만 실제 감각 가능한 것으로 실재하는 것이지만 예지체는 감각과 관계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같은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물자체 역시 그 자체로는 인식될 수 없으므로 물자체를 다른 측면에서 예지체로 볼 수 있지 않는가에 대한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건 조금 더 가 봐야 한다고 하시네요.

 

칸트의 라이프니츠 비판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 사실 제가 잘 이해를 못하고...

라이프니츠의 ‘구별 불가능자의 동일성 원칙’에 따르면 개념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면 두 사물이 동일하다고 했는데 칸트는 개념적으로 동일하다고 해도 직관의 구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 다르면 서로 다르다고 봐야 한다고 합니다. 이는 라이프니츠에게 있어서는 감성적 직관이 무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라이프니츠의 실체, 모나드는 다른 존재들과 상호관계를 맺을 수 없어서 신을 필요로 합니다. 모나드들이 서로 조화롭도록 신에 의해 규정되어야 (예정조화) 하는 것입니다.

제가 세미나 시간에 헷갈렸던 공간에 대한 것은 이수영샘의 『순수이성비판강의』 278쪽 부분으로 이해해보려고 합니다. - 「부록」 부분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절대적 의미의 안이란, 초월적 반성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능력이 접근할 수 있는 가능한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는 영역이고 인식의 한계를 넘어선 초험적 의미의 밖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공간 안의 모든 현상들은 원래 관계들의 총괄입니다. ‘직관 중에는 사물 일반의 순전한 개념에는 전혀 들어 있지 않은 무엇인가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공간’으로서 이것은 ‘실재적인 관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라이프니츠는 공간을 실체들의 상호적인 질서, 시간을 실체들의 역학적 잇따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에게 시공간은 실체들 자체를 연결하는 예지적 형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이를 현상들에 타당한 것으로 만들려 한 것에 라이프니츠의 오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지체에 해당하는 시공간적 관계를 현상적 관계라고 간주한 것, 그것이 바로 논리적 반성의 오류가 되겠습니다.”

 

칸트도 라이프니츠도 공간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칸트는 공간이 감성적 직관의 형식으로 있으며, 라이프니츠는 공간이 모나드 안에 접혀 있다. 이렇게 이해하면 될까요?

 

 

아렘샘도 안 계시고 첫 번째 질문을 호도독 끝내고, 이러다 8시 반에 세미나가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말들이 오갔지만, 9시 반을 (무려) 조금 넘겨 끝났습니다.

 

목요일 철학학교 회식이 있습니다. 

길고 긴, 2주간의 방학을 마치고 시즌 2(4/24부터)에는 『순수이성비판2』을 읽습니다.

댓글 3
  • 2024-04-09 18:49

    진달래샘, 2024 철학학교 시즌1을 마무리하는 멋진 후기 감사합니다. ^ ^
    저도 진달래샘과 동병상련입니다.
    후기 내용 중 (<순수이성비판>을 읽기 시작하고 나서) "오죽하면 공부하던 동양고전 관련 책을 펼 때마다 ‘마음이 편안하다~’는 생각을..."(하게 됐다)는
    말에 공감이 갑니다.
    저 역시 고통스런 읽기의 터널을 통과할 때마다 위안을 삼습니다.
    아마도 정군샘이 <세미나를 위한 읽기책> 북토크 때 '읽기의 효용'과 관련해 이야기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독서(읽기)는 마음의 수용성을 높이는 것이고, 읽다가 막혔을 때의 소득은 이후 다른 책이 쉬워진다는 점"이라는...
    그래도 누군가(아마도 유시민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나라의 0.001%도 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순수이성비판 1>을 완독한 것만으로도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텍스트를 읽을 때마다 칸트가 징글징글하지만 나름 묘한 매력도 느끼게 되구요.
    8주 후의 2주 방학 그리고 오프라인 재개 후 첫 회식. 이것 저것 기대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미 사전투표 했으니 내일(총선일)은 산 속의 멋진 야생화와 만나는 행복을 즐겨보려는 중입니다. 방학이니까요. ㅎㅎ

  • 2024-04-11 11:00

    칸트를 읽어내느라 각기 분투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네요. 칸트는 폈다 하면 시간 잡아먹는 귀신이에요. ㅎㅎ 하긴 철학학교에서 읽는 책이 대부분 그렇지만요. 아마 책 때문만은 아닐 것 같아요. 열의를 일으키는 그 무엇.... X? 가 있어서일 것 같습니다.

    정군샘 보고 집요하다 하시지만 사실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집요함으로는 누구 못지 않은 세션샘이 눈에 아른거려 제가 칸트의 오독(ㅋ)이라 의심했던 부분을 찾아보았어요. 일단 우리가 라이프니츠를 읽다가 그 얘기가 나온 대목은 ‘모나드론’ 9번이고 역주는 12번입니다. 역자 윤선구는 ‘구별 불가능한 것의 동일성의 원리’는 두 가지 해석이 있는데 1) 구별 불가능한 것은 동일하다, 2) 구별 불가능하도록 동일한 두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고 이 둘은 엄연히 다른 것이라고 주장해요. 라이프니츠의 주장은 2번이었고 칸트는 라이프니츠의 주장을 1번으로 보고 반론을 폈다는 것이고요. 제가 찾아보기로는 윤선구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생각해요. 라이프니츠는 구별 불가능한 두 사물이 있다는 전제는 애초에 성립 불가능하다고 말해요. 일단 모나드론 9번에서도 “왜냐하면 자연에는 서로 완전히 동일하고 내적인 또는 고유한 명칭에 근거한 차이가 발견될 수 없는 두 개의 사물은 결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명시하고 윤선구에 따르면 클라크에게 쓴 편지에서도 그렇게 말했다고 하고요. 그리고, 언젠가 라이프니츠를 다시 꼼꼼히 읽을 귀한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라이프니츠가 말하는 ‘일반 개념’과 사물과의 관계를 더 따져보고 싶은데요, 라이프니츠의 철학에서 순수히 추상적인 일반 개념이란 것이 성립할까, 그것은 어쩌면 하위 개념들의 총합으로서 상위 범주들인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요(아무튼 라이프니츠에게서 지성과 사물이 분리될 수 없으니까요). 저는 이 문제가 라이프니츠에서 애매했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라이프니츠는 모나드론 9번에서 자연의 사물에서 차이가 없는 두 개의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이 문제에 대한 칸트의 비판은 B337에 있어요. 저는 구별 불가능 원리 비판이 앞부분에서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부록에 있었네요. 세미나 때 제가 앞에 나왔다고 했는데 이수영 샘 책에 앞부분에 나왔던 걸(48쪽) 제가 착각한 듯요. 정확히는 B338에서 칸트가 라이프니츠가 순전한 개념에서 도외시된 많은 조건들을 사물에게 허용하지 않는 것이 “기이하게 성급한 일”이라고 지적하는데요, 라이프니츠는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봤으니 일단 저는 지금 제가 이해한 수준에서는 윤선구의 주장이 옳다고 봐요.

    다만 이 문제는 칸트가 자신이 설정한 현상과 예지체의 구분, 그리고 ‘개념’을 라이프니츠의 철학에 곧바로 적용하는 데에서 비롯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B320, “라이프니츠는 현상들을 사물들 그 자체로 그러니까 예지적인 것으로, 다시 말해 순수 지성의 대상들로 받아들였다.”) 저는 일단 현상과 예지체 구분을 라이프니츠에게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가 싶고요, 칸트가 말하는 개념과 라이프니츠가 말하는 개념이 다르지 않나 싶기도 해요. 사실, 이건 세션샘께서 지적하셨던, 라이프니츠가 말하는 ‘일반 개념이라는 개념’이 가진 난점과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공간과 시간 문제도 더불어서요. 칸트도 이 점을 지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라이프니츠, 그러니까 당신은 허용할 수 없는 이 전제를 허용한 꼴이지 않소... 하고 말이지요. 조심스럽게 말해보자면 저는 여전히 (‘상위 범주’로서의 ‘일반 개념’을 포함해!) 라이프니츠가 말하는 모든 개념에는 기본적으로 공간과 시간이 포함되어 있었지 않을까 하고 발칙하게 추측해보지만, 나중에 라이프니츠를 다시 읽어볼 귀한 기회가 또 있을지 모르겠네요.

    저는 1권에서 그치게 되었지만 이번에도 철학자의 생각과 말을 받아들인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는 귀한 시간이었어요. 글은 쓰일 때에도 읽을 때에도 언제나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는 부분이 남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좋은 글쓰기이고 좋은 독해라는 신호인지도 모르겠어요. 순수이성비판은 어쩐지 수학책만큼이나 철저한 논리로 무장되어 있을 것 같았지만 여기에서도 여지없이 읽으며 메워가야 하는 부분들이 발견되었던 것 같아요. 칸트의 초기 저작이고 또 독특하게도 2개의 판본이 함께 배치된 텍스트라서 더 그렇게도 하겠지요. 지난 시간 예지체와 물 자체의 관계나 경험과 인식의 관계를 이야기한 것이 저는 참 흥미롭고 즐거웠습니다. 아 참, 제가 지난 시간 언급한 논문 첨부할게요. 누가 과연 보실까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 시점에서 한 번 읽어보기 좋을 것 같아요. (여기에서는 ‘초월 철학’을 ‘선험 철학’으로, ‘예지체’를 ‘가상체’로 옮겼네요.) 이 논문은 칸트가 다소 모호하게 쓴 ‘물 자체’를 섬세하게 나누어 설명하고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어요. 중간에(PDF 파일 기준 10쪽) “경험적 사물 자체를 선험 철학적[초월 철학적]으로 지칭하는 것이 가상체[예지체]”라고 정리하네요.

    나름 칸트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장문의 하드코어 댓글을 달았네요. 너른 마음으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ㅎㅎ

    • 2024-04-17 14:50

      어이쿠...허허참..허허허...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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