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철학학교 1] 순수이성비판 7주차 질문들

정군
2024-03-27 14:25
146

여기에 댓글 본문으로 목요일 오후 2시 전까지 올려주세요.

(이번주 지나면 시즌1 한 주 남은거 실화입니까?)

댓글 10
  • 2024-03-27 21:12

    1. 402쪽 "내가 경험적 인식에 속하는 것을 선험적으로 인식하고 규정할 수 있는 인식 모두를 우리는 예취(豫取)라고 일컬을 수 있으며, 의심할 것 없이 이것이 에피쿠로스가 사용했던 선취(先取)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바이기도 하다."

    질문 1) 순수지성의 두번째 원칙으로 언급되는 '지각의 예취'와 관련해 예취(Antizipation.영어 Anticipation)라는 단어는 최재희샘의 책에서는 예료(豫料)로 번역돼 있습니다.
    백종현샘은 205주석(402쪽)에서 예취는 에피쿠로스의 프로렙시스(prolepsis)에서 가져온 개념이라고 하는데, 예취 또는 예료라는 번역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합니다.
    아울러 백종현샘이 같은 주석에서 "에피쿠로스의 프로렙시스는 일반적 의미에서 선차(先次)적 표상이라고 할 수는 있겠으나 반드시 선험적 표상(인식.개념)을 지시하는 것이 아닌 만큼 칸트의 이끌어댐이 꼭 적절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2. 436쪽 "예컨대 방 안에는 외기(外氣)에는 없는 따뜻함이 있다. 나는 둘러보면서 그 원인을 찾다가 가열된 난로를 찾는다. 그런데 원인인 난로는 그것의 결과인 방 안의 따뜻함과 동시에 있다...(중략)...여기서 사람들이 충분히 주목해야 할 것은 문제가 되는 것이 시간의 순서이지 시간의 경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시간이 경과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관계는 변함없이 남는다."

    같은 436쪽 "만일 내가 속이 채워진 방석 위에 놓여 그걸 움푹 파이게 하는 공을 원인으로 본다면, 그것은 그 결과와 동시에 있다. 그렇지만 나는 양자를 양자의 역학적 연결의 시간 관계에 의거해서 구별한다. 왜냐하면 내가 그 공을 방석 위에 놓을 때 앞서 평평했던 방석의 모양에 움푹 파임이 뒤따라온 것이지, 방석이 움푹 파이고 그것을 따라 납으로 된 공이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질문 2) 칸트는 인과가 경험 속에 들어있는 '주관적 습관'이라고 주장한 흄에 반대해 대상 사이의 인과 관계를 전제조건으로 하는 '객관적 순서'를 강조했다고 합니다. 위의 난로(원인)-온도(결과) 예시에 이어 공과 움푹 파임 사이에 역학적 연결의 시간 관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역학적 연결'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좋겠습니다.

    3. 442쪽 제3유추(상호작용 또는 상호성의 법칙에 따른 동시에 있음[동시성]의 원칙) "모든 실체들은 공간상에서 동시에 지각될 수 있는 한에서 일관된 상호작용 속에 있다."

    질문 3) 칸트는 경험의 유추에서 제1유추(실체 고정불변성의 원칙)와 제2유추(인과성의 법칙에 따른 시간계기의 원칙)에 이어 마지막으로 '상호성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실체와 인과성, 상호성 등 3가지 유추의 관계를 어떻게 봐야 하고, 또 세 유추 사이에 어떤 '우위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 2024-03-27 22:01

    P436) 아래 컵과 물의 예> 뜻 해석 질문입니다. ‘그렇기에 시간계기는 두말할 것도 없이 선행하는 원인의 원인성에 대한 결과를 나타내는 유일한 경험적 기준이다. 컵은 물이 수평면보다 더 올라감의 원인이다. 비록 두 현상은 동시적이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내가 이 물을 보다 큰 통에서 컵으로 떠내자마자, 무엇인가가, 곧 물의 거기에 있었을 때의 수평상태에서 컴 안에서 취하는 오목한 상태로의 변화가 뒤따르니 말이다.’ 이거 무슨 뜻일까요? 곧이곧대로 직역하다가 한글이 폭망한 전형적인 예 같은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저히 따라가기가 어렵습니다.

    P446) 범주표의 관계 범주(P298, 범주표의 관계 혹은 실체 범주)는 내속성, 원인성, 상호성입니다. 이 부분이 도식으로 넘어와서 시간 순서(P384)라고 했었는데, 세션샘은 납득을 거부하셨던 기억입니다. 이제와서 보니 세션샘이 칸트의 뾰족한 제자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도식에서는 이 시간순서가 ‘경험의 유추’에서 각각 고정(불변성), 계기(잇따름) 그리고 동시적임(P412)이 됩니다. 더 보충하자면 내속의 관계, 귀결의 관계, 합성의 관계(P446) 입니다. 표로 정리하면 아래처럼 될텐데…. 시간짱, 통각짱이 칸트라고 하더라도…. 분량 안배에 완전히 실패를 감수하면서도 이리 길고 지리하게 칸트가 설명을 이어나가는 이유가 뭘까요?

    범주중 관계범주 --> 도식중 경험의 유추
    내속성 --> 고정(불변성), 내속의 관계, 양으로서의 시간 자체에 대한 관계
    원인성 --> 계기(잇따름), 귀결의 관계, 계열로서의 시간상에서의 관계
    상호성 --> 동시적, 합성의 관계, 총괄로서의 시간상에서의 관계

    P448, 정리 및 예습>
    도식의 흐름을 좀 살펴보시지요. ‘공리-->예취-->유추-->요청’으로 이어지는 큰 흐름에서 유추까지 읽었습니다.
    네 단어 모두 그 저변에 선험적 종합명제를 함유하고 있습니다. 즉 그 명제들은 보편적이고 필연적이고 선험적인 명제일 것입니다. 단어상으로는 점점 강도가 떨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칸트는 이게 모두 선험적 종합명제를 나타냄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앞의 두개는 수학적 원칙이고, 구성적 원칙입니다. 뒤의 두 개는 역학적 원칙이고 규제적 원칙입니다. 칸트적 의미에서 공리/예취/유추/요청 및 수학적/구성적/역학적/규제적이란 말들의 함의를 정리해 봤으면 합니다.

  • 2024-03-27 22:30

    (질문) 칸트의 객관에 대해서
    “인식의 객관과의 합치가 진리이므로, (중략) 오로지 그것이 그것을 여느 다른 포착과는 구별지어 잡다의 일종의 결합을 필연적으로 만드는 규칙 아래 있음으로써만, 포착의 표상들과 구별되는 그것들(포착의 표상들)의 객관으로 표상될 수 있음을 안다. 현상에서의 포착의 이 필연적 규칙의 조건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 ‘객관’이다.(p.425-426, B236)“ 인과성의 법칙에 따른 시간계기의 (잇따름)원칙의 적용을 ‘객관’이라고 합니다.
    한편, 칸트는 흄의 인과개념 형성에 대해서, “우리는 지각되고 비교되는 많은 사건들이 일치되게 선행하는 현상들 뒤이어 잇따름을 보고서 그에 의해 특정한 사건들이 특정한 현상들에 항상 잇따르는 한 규칙을 발견하도록 비로소 이끌려지고, 그럼으로써 이제야 원인의 개념을 갖도록 유도된다는 것이다.(p.429. B241)”고 소개하면서, “이 개념은 한낱 경험적이고, 이 개념이 제공하는 규칙, 곧 ‘발생하는 모든 것은 원인을 갖는다’는 것도 경험 자체와 마찬가지로 우연적일 것이다(p.430)” 따라서, “이 개념의 보편성과 필연성은 꾸며낸 것이다”라고 비판합니다.

    그렇다면, 실험에 의한 어떤 사실을 발견하는 현대의 과학적 방법론은 인과규칙에 따라서 발생되었어도 객관적이지도 않고 보편성과 필연성을 담지하지 못한다. 결코 우연적이며 진리가 아니다-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는 말로 이해되는데, 제대로 읽은 것인가? 왜냐하면, "도대체 무엇인가가 변할 수 있는가, (중략)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선험적으로는 최소한의 개념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현실적인 힘들애 대한, 오로지 경험적으로만 주어질 수 있는 지식이 요구된다.(p439, A207)이라고 말해서, 과학의 근거도 제시하고 있는 것같아서.......

    (질문) 지각의 예취들....
    “내가 경험적 인식에 속하는 것을 선험적으로 인식하고 규정할 수 있는 인식을 우리는 예취라고 일컬을 수 있다.(p.402, A167)"
    “그런데, 현상들에는 결코 선험적으로 인식되지 않는, 곧 (지각의 질료인)감각이 있으므로, 그러니까 이 감각이야말로 본래 결코 예취될 수 없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모든 감각에서 감각 일반으로서의 감각에서 선험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가정하면, 이것은 특별한 의미에서 예취라고 일컬어질 만 하겠다.(p.403 B209)”
    이후에는 밀도적 크기인 도(度)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그리고는, “모든 현상들 일반은 연속적인 크기들[연속량]이다. 직관의 면에서는 연장적 크기들이고, 순전한 지각(곧, 감각과 그러니까 실재성)의 면에서는 밀도적 크기들이다.(p.405 B212)"라고 합니다.

    ‘감각은 밀도적 크기로써 예취가 가능하니, 순전한 지각은 선험적으로 인식하고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인가요? 아니면, ‘감각은 결코 선험적이지 않는데, 일부 밀도적 크기를 갖는 지각들(실재적인 감각)은 예취를 가진다’는 말인가요?

  • 2024-03-28 13:11

    p399 '7+5=12' 는 분석 명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7'이라는 표상에서도-중략-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가 이 수를 양자의 더함에서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은 여기서 논의거리가 아니다. 분석 명제에서는 내가 술어를 실제로 주어의 표상에서 생각하느냐 않느냐만이 문젯거리이니 말이다.)
    질문) 이 부분이 앞에서도 나온 건 아는데 그 때 제가 없었을 때라 질문합니다. '주어의 표상'에서 생각한다는 게 무엇인가요? 그렇다면 예를 들어 분석명제에서 자주 나오는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다'라는 명제가 있을 때 총각의 표상은 무엇인가요? 이 명제의 경우 분석명제인 것은 총각이라는 개념을 분석한 걸로 아는데, 7+5=12에서는 분석/ 종합 명제의 판단 기준으로 왜 주어의 개념을 분석하지 않고 표상이야기가 나온 건지 궁금합니다. 두 명제는 경우 자체가 다른 건가요?
    p425 '그것들이 단지 표상들로서 동시에 의식의 대상들인 한에서는, 그것들은 포착과 다시 말해 상상력의 종합에 받아들임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상들의 잡다는 마음에서 항상 순차적으로 산출된다'고 말해야 한다.
    질문) 간단한 질문인데요, 연역에서도 '상상에서 재생의 종합'이 나옵니다. 재생 자체는 경험적인 법칙이지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에 의한 선험적 종합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는데요, 그 때도 시간의 선행과 그것의 잇따름으로 상상력의 종합을 설명했습니다. 위의 문장은 도식에서 말하는 상상력의 종합인데 근본적으로 연역에서든 도식에서든 그 메카니즘은 똑같은 건가요?

  • 2024-03-28 13:36

    p402 "그것에 의해 내가 경험적 인식에 속하는 것을 선험적으로 인식하고 규정할 수 있는 인식 모두를 우리는 예취라고 일컫을 수 있으며 의심할 것이 없이 예피쿠로스가 사용했던 선취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바이기도 하다. ..... 감각이야말로 예취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반해 형태나 크기와 관련해서 공간, 시간상의 순수한 규정들을 현상들의 예취라고 일컬을 수 있다."
    모든 감각의 대상인 것은 밀도적 크기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 밀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잘 모르겠습니다.
    예취라는 단어를 쓰면서 갖는 효과는 무엇인가요?

  • 2024-03-28 13:47

    P421
    "발생과 소멸은 순전히 고정불변적인 것과 관계없이 단적으로는 결코 가능한 지각일 수가 없다." 등, 무에서 유가 생기는 것을 결코 지각할 수 없다는 칸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와 별개로 이 세계의 물질이 생긴 연유에 관한 칸트의 어떤 언급이 존재하는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P428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무엇인가의 발생함을 경험한다면, 그 때에 우리는 항상 그것이 규칙에 따라서 그에 뒤따른 무엇인가가 선행함을 전제한다." 등 칸트가 주장하는 제2유추는, 기계론 혹은 운명론, 뭐라고 불러야 가장 적합할까요? 그리고 칸트는 뭐라고 불리기를 바랄까요?

  • 2024-03-28 14:05

    (424) 칸트는 인식적 경험만을 경험이라고 부르고 있을까요? 가령 칸트가 볼 때, 자신의 몸이 노화해도 스스로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늙음을 경험하지 못한 것인가요? 어느날 거울을 보고 이마에 주름이 생긴 것을 보거나, 어느날 문득 체력이 전만 못하다는 것을 느낄 때 그제야 늙음을 경험한 것이 될까요?

  • 2024-03-28 14:06

    간발의 차이로 진달래샘이 같은 질문을...ㅠㅠ
    조금 더 각을 좁혀보자면 "현상의 시간상의 직관들로서, 현상들은 연장적 크기를 가진다."직관의 공리에 입각해서(397)
    "지각이 감각을 함유하는 한에서 지각은 밀도적 크기를 가진다"지각의 예취들의 원리에 입각해서(401)
    403쪽 에피쿠로스의 프로렙시스는 일반적 의미에서 선차적 표상이라 할 수 있으나, 반드시 선험적 표상(개념, 인식)을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말이나 소를 보고 그것을 '말' '소'라고 인식하는 것은 그 형상을 우리가 경험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선차적 표상이죠. 그렇다면 이것과 선험적 표상은 어떻게 다른가요?

  • 2024-03-28 14:16

    (426) 집 한 채를 둘러보는 것과 강이 상류에서 하류로 흘러가는 것을 비교해서 인과성의 법칙에 따른 시간 계기의 원칙을 설명하는데요, 이 부분의 각주를 보니 흄은 "인과 관념은 (...) 대상들 사이의 어떤 관계에서 나온 것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흄은 대상들이 직접 어떤 관계를 맺고 있고 그 관계에 의해 우리가 그런 관념을 갖게 된다고 말한 것이네요. 반면에 칸트는 (우리가 어떻게 해서 지성의 순수개념들을 갖게 되었는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우리는 시간상에 나타나는 현상들의 계기에 따라 현상들 사이에 인과성을 부여하고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경험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해 인과성을 인간 인식의 한 특징으로 만듦으로써 인과성을 오히려 흄보다도 더 어떤 비본질적인 원리로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2024-03-28 14:31

    질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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