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철학학교1> 4주차 후기

세션
2024-03-10 21:17
223

  철학학교 4주차인 이번주에는 <순수 이성 비판>의 꽃이라 불리우는 ‘연역’ 부분을 읽었습니다. 우선 A판을 읽었고요(p306-343), 호수샘을 제외한 모든 샘들께서 오셨습니다. 호수샘은 아쉽게도 저의 물밑 작업에도 불구하고 피치못할 사정으로 못오셨습니다. 저희 철학학교 분위기는 여전히 화기애애합니다. 새로 오신 휴먼샘의 낯설지만 친숙한 정겨움과 덕영샘의 힘찬(?) 상큼함의 조합까지 더해 적당히 신선하기까지 하니까요. 다만 요요샘의 부재로 정군샘의 표현대로 좀 싱거워진 면도 있습니다. 다음 시즌에는 다소 얇고 말랑해진 철학학교에 많은 분들이 부담없이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는 요요샘의 컴백으로 완전체의 그 날이 오기만을 간절히 꿈꾸지만 말입니다.

 

  늘 담주에는 열심히 읽겠다고 마음 먹지만 그 담주는 제게는 영원히 오지 않을 듯합니다. 이번주에도 아니, 이번주에는 더더욱 대충 읽고 갈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래도 대체로 연역의 의미, 통일과 초월적 통각, 대상X, 인식의 세겹의 종합, 그리고 근친성 등에 대해 궁금해하며 읽었었습니다. 늘 기본 개념에 대한 1차적 질문 보다는 기본 내용은 어느 정도 이해됐다는 전제하의 심화 질문이 많은 철학학교지만(철학학교에 대한 저의 난점입죠) 위의 내용들에 대해 가마솥샘, 휴먼샘, 진달래샘, 봄날샘, 덕영샘, 세븐샘께서 질문해주셨습니다. 특히 세븐샘께서는 매주 바삭하고 부드러운 소금빵과 함께 전 범위에 걸쳐 이야기해야 할 내용들을 고루고루 정리해 질문해주시고 계셔서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선 연역에 대한 질문은 가마솥샘께서 해주셨었는데요. 연역은 마치 법정에서 심판하듯, 법률심에서의 권리에 대한 물음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권리란 경험가능한 세계의 대상들에 대해 개념(범주)을 사용해 경험을 가능하게 할 권리인데요, 만약 경험가능한 대상의 범위를 벗어나 이 권리를 사용한다면 월권이 될 것입니다. 연역은 그 권리의 근거를 밝히는 증명인데 가마솥샘의 질문대로 개념의 선험성이 경험을 가능케하는 필연성과 기능을 설명할 뿐, 정군샘의 지적대로 그 과정이 정말 경험을 가능케 하는지에 대한 ‘실증’이 빠져있습니다. 저도 가마솥 샘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한편 생각해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의 연역이 여전히 이토록 빛나는 설득력을 갖는 건, 현대 과학에서 초끈이론이나 양자 중력이론 등 실험으로 증명된 바는 미미하지만 유력한 이론들로 그 가능성을 높이 평가받는, 사실은 가설에 가까운 이론들의 예와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물론 위의 이론들은 실험으로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수학적으로는 계산이 맞아떨어지기에 이론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칸트 역시 수학적 계산만큼이나 반박할 수 없는 정교한 논리로 탄탄한 개연성을 갖추고 있죠. 그렇게 이해하면 실증이 빠져 있다고는 해도 연역의 증명은 유효해 보입니다.

 

  연역의 전제가 되는 필연성의 근거로서의 초월적 통각 역시 비슷합니다. 그것은 인식의 통일성과 자기 동일성을 보장해주는 것이라지만 그 실제 존재를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없다면 인식이 불가능하다는 필연성으로 그 존재의 정당성을 입증할 뿐이지요. 하지만 없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건 정군샘 이야기대로 두고두고 발생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난점을 남깁니다. 당연히 휴먼샘이 관심을 가지고 계신 신의 문제도 대두될 것이고요. 이런 이유들로 통각의 통일성과 자기 동일성은 아렘샘이 말씀하셨듯 미래에 혹독한 비판과 함께 새로운 해석들에 직면하는 것 같습니다.

 

  대상X에 대해서는 덕영샘이 질문해주셨습니다. 대상X의 정체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지만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대상에 대한 초월적 형식’ 정도로 정리했습니다. 물론 대상X에 대해 생각을 쭉 밀고나간다면 물자체와 만날 수도 있고, 궁극적으로는 객관으로서의 물자체에 대한 주관의 쌍으로서 생각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됐지만 일단은 앞에 이야기한 내용이 현재 연역 부분에서의 대상X에 대한 이해로 더 적합하다는 데에 대체로 의견이 모아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세겹의 종합과 근친성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세븐샘께서 질문하신 것은 ‘근친성이 어떻게 잡다의 연합을 가능하게 하는지’ 였습니다. 이 대목은 연합이라는 경험적 규칙은 자연 법칙에 의거하는데, 자연 법칙은 한낱 우리 마음의 표상들의 집합일 따름이므로 연합이라는 경험적 근친성은 우리 주관의 초월적 근친성(잡다의 근친성)으로부터 기인한다는 내용에서 나오는데요 저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를 않고 있습니다. 경험적 근친성과 초월적 근친성이 반드시 일대일 대응된다는 근거는 어디있는지도 의문이고요. 다른 샘들의 의견도 대체로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는 쪽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제 질문은 포착의 종합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재생의 종합이나 인지의 종합과 달리 포착의 종합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생각해서 질문이 많이 나오리라 생각했었는데 질문이 거의 없어서 좀 의외였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포착의 종합의 주체를 셈나 시간에도 이야기했지만 세겹의 종합을 상식적으로 읽었을 때의 순서 그대로 이해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일단은 감성인 거죠. 그런데 그러고보면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우선 종합은 감성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그럼 포착은 감성이 종합은 지성이 하는 것으로 포착과 종합은 따로따로인 걸까요? (이게 제 첫번째 질문입니다) 하지만 ‘포착의 종합’이니만큼 종합은 최소한 포착과 동시적이거나 아니면 이미 포착 자체가 종합된 포착이어야 했죠. 이에 대해 가마솥샘은 포착을 수동적 종합의 취지로 말씀하셨고 아렘샘은 칸트의 종합의 의미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확대된 의미로 쓰이는 것으로 봐야한다고 하셨죠. 우리의 정군샘은 종합은 이성이 하는 게 아니냐는 멀리 가는 새로운 해석을 던지기도 했고요. 저는 수동적 종합은 칸트에서는 일단 배제하고 생각해보려 합니다. 아렘샘의 의견은 B판에 나오는 내용과 관련이 있을 듯도 해서 다음 진도때 주의깊게 보겠습니다. 정군샘의 이성은….제가 더 공부한 후에 이야기 하죠ㅋ. 비교적 상식적인 저는(모두 비웃으시겠지만) 감성은 포착이 하되 동시에 늘 작동하는 지성의 종합이 없다면 직관에서의 포착의 종합이 불가능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세겹의 종합은 늘 동시적이라고 정군샘도 말씀하셨고요. 하지만 이럴 경우 늘 수용성만을 갖고있다는 감성의 특성상 포착의 포지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의문이고요, 따라서 아렘샘의 잡다는 늘 종합된 것이라는 말씀도 의미심장해 보입니다. 지금은 결론을 낼 수 없으니 이 정도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B판에서 이 내용이 더 해명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호수샘도 의견있으시면 댓글 올려주시고요.

 

  제가 이번 시즌 조금 늦게 셈나에 합류했는데요, 그러다보니 딱히 셈나를 하겠다는 것도, 아예 안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에 놓여 있었죠.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의 셈나 후기는 제가 셈나에 참여했을 때와는 좀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셈나를 참여하지는 않되 관심은 갖고 있는 입장의 사람에게는…셈나 후기는 새삼스럽지만 그 세미나를 통해 관심을 갖고 있는 내용에 대해 감도 잡고 정보도 얻고 새로운 주제도 생각해보게 되는 중요한 자료 같은 느낌? 이었습니다. 셈나에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혼자라도 책을 읽고 계시는 분들에게 후기가 어떤 의미일지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던 거죠. 혼자 멍하니 있다가도 갑자기 ‘그 이상한 사람들, 이걸 읽고 무슨 이야기들을 했을까’ 싶더군요ㅎㅎ. 하여 늘 창의적인 재해석까지 덧붙여 상세히 후기를 써주시는 모든 샘들을 존경하기로 했습니다. 담주는 연역 B판 P344-372까지 입니다.

 

댓글 8
  • 2024-03-11 09:49

    세션이닷! (언제 산에 한번 갈까유?)

    • 2024-03-11 12:45

      기린샘이랑 다같이 한번 가요!

  • 2024-03-12 07:56

    상세한 후기 넘 감사합니다. 그날 주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는 물론이고 어디에서 분위기가 요상스럽고도 심각해지며 열기가 튀어올랐는지까지 얼추 짐작이 가는 입체 모형 같은 후기네요. 밖에 있으니 세션샘 말씀대로 궁금했어요^^ 세션샘 후기는 늘 핵심을 짚어주시지만 이번에는 상세하기까지 하니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번주에는 꼭 참석할게요.

  • 2024-03-12 09:40

    불가피한 개인 사정으로 세미나에 함께하지 못했던 호수샘을 위한 '맞춤형 후기'라고 할 만큼 내용을 잘 정리하셨네요.
    꼼꼼한 요약에 더해 세션샘의 창의적인 재해석도 돋보이구요. 좋은 후기 감사합니다.
    덕영샘이 질문했던 '대상X'에 대해 정군샘이 말했던 '의식이 종합해 만들어낸 어떤 것'이라는 개념 규정이 직관적으로 이해됐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질문했던 '근친성'은 여전히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잡다들이 이종적이고 이질적인 면이 있지만 그 나름대로 '동종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체계적 통일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근친성과
    연결돼 있다는 정도가 지금 이해할 수 있는 최선인 듯 합니다.
    b칸트사전의 해당 용어 설명이 근친성을 막연하게나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해요.
    "자연은 다양한 종에 속하는 이런 저런 개체들로 이뤄지지만 이들은 좀더 고차적인 유의 관점에서는 동종성의 원리 아래에 서며,
    좀더 저차적인 관점에서는 다종성의 원리에 복종한다. 이들 두 가지 원리를 결합하는 것이 연속성의 원리라고 할 수 있는 친화성(근친성)의
    원리이다."(b칸트사전 423p 친화성 설명)
    친화성(Verwandtschaft)과 근친성(Affinitat)의 독일어 단어는 다르지만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아요.

  • 2024-03-12 13:07

    우와... 일요일이 다 가기 전에 후기를 올리시다니 ㅎㅎㅎ
    저는 지난 세미나의 주요 논점들 ‘종합이 어떻게 가능하냐’, ‘무엇이 무엇을 종합하냐’, ‘경험적 종합의 근거로서 초월적 종합을 내세울 때, 초월적 종합의 객관적이고 타당한 근거는 무엇인가’ 같은 논점들 덕에 칸트가 B판에서 ‘연역’ 장을 새로 썼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볼 때, 우리가 비교적 잘 읽어낸 셈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나아가 세븐샘께서 물으신 ’근친성‘에 관한 질문도 두고두고 생각해 볼 만합니다. 특히나 댓글에 달아주신 칸트 사전의 개념 정의에 따라서 보자면 칸트가 애써 피하고 있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형이상학적 원리가 ‘근친성’ 개념 안에 전제되어 있다고 봐도 될 것 같고요.
    이번주가 벌써 5주차네요. 철학학교의 시간은 매번 어째 이렇게 빨리 가는지 새삼 놀랍습니다 ㅎㅎㅎ

    • 2024-03-12 20:34

      저도 세븐샘이 " " 안에 써주신 칸트 사전의 근친성 개념정의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휴먼샘은 신을 떠올리실 것 같고, 정군샘도 그 점을 지적해 주신 것 같이 읽힙니다. 그런데도...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윈의 진화 개념을 저 괄호 안의 글로 읽어도 잘 읽힙니다.

      B판을 읽어보니 새삼 새로 쓴 이유가 읽히기도 하지만...상상력이.... 그 많던 상상력은 다 어디로가고...마지못해 등장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A판 출간후 칸트가 엄청 물어뜯기기는 한 것 같습니다.

  • 2024-03-13 12:51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심각한 내용'을 다루는 와중에 유쾌하게 분위기를 만들어주시는 세션 선생님 덕에 재밌게 배워가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4-03-13 18:51

    세션샘 멋진 후기 넘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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