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주역> 44, 천풍구괘 - 천풍구의 인생극장

진달래
2019-07-02 06:52
121

<2019 어리바리 주역>은 이문서당 학인들의 주역 괘 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 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그 단 한 자락이라도 훔칠 수 있을지^^ 

천풍구의 인생극장



 

하늘()이 위에 있고 바람()이 아래에 있으니, 바람이 하늘 아래에 다니는 모양으로 하늘 아래의 만물 사이를 바람이 누비며 접촉하니 바로 만나는 상이다. 또 한 음()이 처음 아래에서 생기니, ()과 양()이 만나는 것으로 구()라 한다.” 서괘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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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 구삼, 구사, 구오, 상구, 다섯 남자가 있었다. 어느 날 나이 어린 여자(초육)가 이들을 찾아왔다. 바람처럼. 다섯 남자는 모두 이 여자와 사귀고 싶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가장 가까이 있던 구이와 여자가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원래 이 여자와 가장 잘 맞는 짝은 구사였다. 이미 친해진 구이와 여자는 서로 헤어지려고 하지 않았고, 구사는 낙심했다. 구사, 구이와 남달리 친했던 구삼은 자기도 이 여자와 사귀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 마음을 드러낼 수도 없고, 오히려 두 사람 사이에서 불편한 처지가 되었다. 구오는 딱히 여자에게 마음이 있진 않았다. 오히려 구이와 함께 벌여 놓은 사업이 있었는데 구이가 그 일에 힘쓰지 않고, 데이트만 하러 다니는 통에 머리가 아팠다. 상구는 다섯 중에 나이가 제일 많았다. 여자에게 관심은 있었지만 나머지 네 명과 자기는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자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다.


평온했던 다섯 남자들의 관계는 겉으로는 여전히 별로 크게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지만 속으로는 다들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 머리 아프게 되었다. 그래서 이 여섯 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이야기에는 사실 결말이 없다. 다만, 여자가 바람처럼 왔고, 언젠가는 바람처럼 떠날 수 있다는 것만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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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천쾌의 다음으로 오는 천풍구괘는 만남()’의 괘이다. 서로 나누어 진 것 다음은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만남은 그 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만남이다. 괘사 역시 이 만남을 좋은 것으로 보고 있지 않다.

 

구는 여자가 건장함이니 여자를 취하지 말아야 한다.”(姤 女壯 勿用取女)

 

그러나 단전에서는 만남 자체를 나쁘게 보진 않았다. 그러나 이 만남이 오래 지속될 수 없는 만남이어서, 만남 자체가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가 썩 달가운 만남으로 보진 않았다. 그래서 때와 뜻이 맞을 때 행해질 수 있다고 보았다.

 

구는 만남이니 유()가 강()을 만난 것이다. 여자를 취하지 말라고 한 것은 더불어 장구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천지가 서로 만나 품물(만물)이 모두 밝아지고, ()이 중정(中正)을 만나 천하에 크게 행해지리니 구의 때와 의()가 크다.”(彖曰 姤 遇也 柔遇剛也 勿用取女 不可與長也 天地相遇 品物 咸章也 剛遇中正 天下 大行也 姤之時義 大矣哉)

 

이렇게 천풍구괘에서 만남이 좋은 만남이 될 수 없는 것은 각 효들이 제대로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괘의 성질이 하늘 아래 바람으로 만남은 필연적인 것이긴 하지만 다섯 개의 양()과 맨 아래 자리에서 막 자라는 음()의 만남은 각 자리의 효들이 서로 만나야 하는 짝을 만나지 못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속칭 잘못된 만남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우연히 만나게 된 이들의 관계를 보고 딱히 길()하다고 하지 않지만 흉()하다고도 하지 않는다. 오래 가지 않을 사이이기 때문에 딱히 좋다고 보지 않지만 역으로 오래 가지 않을 관계이기에 굳이 나쁘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초육과 연애하는데 정신이 팔린 구이가 어느 순간 정신 차리고 구오와 함께 하는 일에 집중할 수도 있고, 구이와 구사 사이에 난처한 입장의 구삼은 초육이 아닌 다른 여자 친구를 알아볼 수 있다. 구오는 구이 때문에 한동안은 속 좀 상했겠지만 정신 차리고 일을 하고 있다 보면 구이가 결국은 돌아오게 되지 않을까?

전혀 다른 결말을 상상해 볼 수도 있다. 밖으로 나가 세상 구경을 하고 싶은 초육을 구이가 꽁꽁 묶어 놓고 아무데도 못 가게 하면 둘은 매일 싸우지 않을까? 그 사이에 구삼이라도 끼어서 삼각관계, 구사까지 사각관계가 되면 이 친구들은 아마 이 생에서 다시 보기 어려운 원수가 되겠지. 거기다 구이에게 화가 난 구오가 사업에 실패하고 구이에게 소송을 걸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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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TV 예능 프로그램 중에 그래, 결정했어!’를 외치며 선택한 서로 다른 인생을 보여 주던 프로그램이 있었다. 마치 천풍구괘의 각 효사들이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아 보인다. 우리의 삶도 아마 별반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이렇게 극적인 선택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결국 그래 결정했어!’의 순간인 듯하다. 다행인 것은 그 바람이 겸손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그래 결정했어!’의 순간에  교만하지 않고 겸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별일 없이 살고 있다면.

 

 

댓글 1
  • 2019-07-03 14:56

    하하하

    재밌게 읽었습니다.

    예전 홍상수 영화 중에 '자유의 연덕'이 생각납니다.

    남자에게 받은 편지의 내용이 영화의 줄거리인데 그 편지에는 순서가 적혀 있지 않고

    헝클어진 편지의 내용들은 어떤 것이 선후인지 알 수가 없지요.

     영화를 보고나서 그들의 과거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엮어보며 수다를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찌 되었던 그것은 과거였어요. 현재가 어떠냐에 따라 재구성 되겠지요.

    천풍구 이 효들의  연애도 그 순간 불타고 나면 재만 남지않을까? ㅋㅋ ㅋㅋ

    이런 망상을 하며 재밌게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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