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직/남효온] 어이쿠나! <소학>이 공산당 선언 같은 것이었다구?

문탁
2020-02-09 15:54
602
  1. 역사를 드라마로 배웠어요

 

연애를 책으로 배웠어요..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역사는? 아마 우리 대부분은 역사, 특히 조선역사는 책이 아니라 드라마로 배웠을 것이다. 태조는 <용의 눈물>을 통해, 태종은 <육룡이 나르샤>를 통해, 세종은 <뿌리깊은 나무>를 통해서 말이다. 내 친구는, 자기는 조선시대 왕들이 다 탤런트 얼굴로 기억된다고 하는데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서 태조하면 김무생 얼굴이 떠오르고 방원(태종)하면 유동근 얼굴이 떠오른다. 세종은? 역시 한석규닷!!

   

그럼 문종, 예종, 성종은?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이니까..) 음..왕 보다는 이들 왕을 둘러싼 여인들 – 어머니, 부인, 할머니 –등의 얼굴이 더 떠오른다. 정희황후 한혜숙(혹은 김미숙), 인수대비 채시라^^ 어쨌든 성종은 경국대전의 반포, <악학궤범> <동국통감> <여지승람>등의 간행...같은 교과서적인 사건보다는 인수대비의 ‘아들-킹 만들기’, 폐비윤씨와의 부부싸움(왕비가 왕의 얼굴을 할퀴었다!! ㅋ) 같은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더 기억되는 인물이다.

 

 

 

 

 

그런 우리에게 정출헌샘은 조선전기가 (<왕과 비>같은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얼마나 중요한 시기였는지, 특히 성종대는 왕조의 교체가 아니라 문명의 교체가 일어난, 즉 진정한 의미의 유교문명(‘선비정신’)이 시작된 시점이라는 것을  강조하셨다. 그런 차원에서 조선의 핵심은 흔히 많은 사람(혹은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18세기 영, 정조시기가 아니라 15세기 성종대일수도 있는 법. 어쨌든 지난 2주 강의를 통해 우리는 그 시기의 특이점이라 할 수 있는 점필재 김종직과 추강 남효온을 배웠다.

 

 

2.사람잡는 예교(禮敎) 대 조선전기 래디컬 사림(士林)

 

루쉰의 소설 <광인일기>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 “만사는 모름지기 따져 봐야 하는 법...나는 역사책을 뒤져 꼼꼼히 살펴보았다....페이지마다 ‘인의(仁義)’니 ‘도덕(道德)’이니 하는 글자들이 비뚤비뚤 적혀 있었다...그러자 글자들 틈새로 웬 글자들이 드러났다. 책에 빼곡이 적혀 있는 두 글자는 ‘식인’이 아닌가!”...... 바로 그 유명한 ‘사람잡(아먹)는 예교’라는 문제의식이다. 루쉰에게, 아니 동아시아 근대 지식인에게 유교는 극복해야 할 무엇, 아니 철저히 버려야 할 무엇이었다. 그러면 당연히 이런 질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왜 <논어>니 <맹자>니를 이다지도 열심히 읽고 있는 것일까? ㅋㅋ

 

아마도 다음 주부터 강의를 오시는 배병삼샘처럼밖에는 이야기 할 수 없을 것이다. “2,500년 전, 춘추전국시대에 태어난 유교 역시 꿈을 품은 젊은 시절이 있었고, 호기롭게 천하를 제어하던 장년의 세월도 있었다. 그리고 ‘예교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루쉰)라는 비난을 들을 만큼 광기에 사로잡힌 노년도 있었다.”(<우리에게 유교란 무엇인가>, 녹색평론사) 고.

    

그리고 정출헌샘 말에 따르면 적어도 조선에서 “꿈을 품은 젊은 시절”의 유교는 아마도 젊은 성종이 등용하려고 한 소위 ‘사림(士林)’이라 불리는 집단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리라. ‘정심지학(正心之學)’을 제창한 점필재 김종직이나 계유정난 이후 표표히 속세를 떠난 매월당 김시습. 이들의 제자 격인 김굉필, 정여창, 김일손, 이심원, 홍유손, 이총, 이정은, 우선언 같은 청년유학자들. 후에 모두 유배되거나 사사되거나 심지어 사후 부관참시된 인물들. ‘사생취의(捨生取義)’의 살아있는 전범들!!

 

미스터션사인의 촬영지가 김종직의 제자이자 김굉필등과 더불어 문묘에 배향된 조선전기 사림의 거두 정여창의 고택이라는 것을 이번에 난 처음 알았다.^^

 

 

 

3. 더할 나위 없이 불온한 ‘소학’이라니~~~

 

사실 여기까지는 대충이나마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번 강의에서 내가 가장 놀란 부분은 이들 ‘사림’의 주체화양식의 요체가 바로 ‘소학’이었다는 점이다. 성인이 된 성종의 새로운 정치적 슬로건도 ‘소학’이었고, 사림의 거두 김굉필의 별명이 ‘소학동자’였으며, 남효온 등의 성균관유생들의 가장 전투적인 조직이 ‘소학계’로 불렸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1980년대  20대 청년들이 자신을 운동권으로 주체화하기 위해 기꺼이 맑스주의자가 된 것처럼 15세기 20대 청년들은 자신을 ‘사림’으로 주체화하기 위해 열렬한 소학주의자가 되었다는 것...이....어....따!!!

   

난 몇 년 전, 진달래가 파지사유 인문학에서 <소학>강의를 할 때 함께 <소학>을 읽었었다. 그런데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다. “물 뿌리고 쓸며, 응대하고 대답하며, 나아가고 물러가는 예절과 어버이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스승을 존경하고 벗과 친하게 지내는 도리”, 즉 “쇄소응대진퇴지절 애친경장융사친우지도 (灑掃應對進退之節 愛親敬長隆師親友之道)”는,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 지당하신 말씀이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규범적인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김종직, 김굉필, 조광조. (소위 후대의 권력층 사림에 의해 만들어진 도학의 계보^^) 

이 중 스스로를 '소학동자'라 불렀던 김굉필은  ‘소학’ 규범을 그대로 재현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꼭두새벽부터 의관(衣冠)을 바르게 정제하고 가묘(家廟)에 들어가 절한 뒤 부모에게 문안인사를 드리고, 온종일 서재에 소상(塑像)처럼 꿇어앉아 ‘소학’을 암송했다고 한다.

이런 모습이 당대에는 엄청난 비웃음 샀는데 때가 어느 때인데 공자나 안연 흉내를 내냐는 것이었다.

현실정치의 논법을 모르는 비현실적인 인물. 유치하거나 무지하거나. 이들이 받은 당대의 평가였다.

 

 

그런데 ‘소학계’로 조직화된 15세기 젊은이들에게는 “악이 작다는 이유로 행해서는 안되며, 선이 작다는 이유로 행하지 않아서도 안된다” (『소학』, <가언>)는 소학의 이야기에 목숨을 걸었다는 것이 아닌가?  맞다!   “다른 모든 것들처럼 책에도 분절선, 분할선, 지층, 영토성등이 있다. 하지만 책에는 도주선, 탈영토화 운동, 지각변동(=탈지층화) 운동들도 있다.” (들뢰즈, 『천의 고원』, <리좀>)  15세기 운동권 청년들은 이 소학과 엉겨붙어 당대의 분할선을 가로질러 새로운 도주선을 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다시 지금 여기로 돌아온다. 우리는? 나는?  나는 <논어>나 <에티카>를 그렇게 읽고 있을까? 우리는 푸코나 장자를 그렇게 작동시키고 있는 것일까?  중요한 건 여전히 무엇을 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읽느냐이다. 

 

 

     “기의든 기표든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묻지 말아야 하며, 책 속에서 이해해야 할 그 어떤 것도 찾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이런 것들을 물어봐야 한다. 책이 무엇과 더불어 기능하는지, 책이 무엇과 연결접속되었을 때 강렬함을 통과시키거나 가로막는지, 책이 어떤 다양체들 속에 자신의 다양체를 집어넣어 변형시키는지, 책이 자신의 기관없는 몸체를 어떤 기관없는 몸체들에 수렴시키는지.” (들뢰즈, 『천의 고원』, <리좀>)

 

 

 

 

피에쑤: 솔직히 나는 조선 전기의 사림, 그들의 선비정신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와 관련해서는 정출헌샘의 주장에 약간 의문을 지니는 바가 있다. 그런데 이게 '유학' 일반의 문제인지, '조선 유학'의 문제인지 약간 헷갈린다. 특히 조선 유학은 내가 아는 것도 별로 없구.... 어쨌든 이 점은 공부를 더 하게 되면 그 때 다시 이야기를 해보는 걸루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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