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론강독시즌1> 이제 비로소 중론을 읽을 준비가 되었....나? ㅋ

문탁
2019-06-25 08:10
614

1. 올해는 망했쓰~~

포부가 컸었다.

2019년!! 주역, 들뢰즈, 장자와 더불어 중론꺼정 공부를 하게 되니 내 기필고 이것들을 회통/횡단하리라! 으라찻^^

올 해의 반이 다 지나가고 있는 요즘, 매일 속으로 생각한다.

" 올 해는 망했어~~" ㅋㅋㅋ

 

어쨌든 토요일 아침 10시(비공식적으로는 9시)부터 오후 4시(비공식적으로는 5시)까지 5주 연속의 중론 강좌가 드디어 끝이 났다.

난 그 5주 동안 책가방만 들고 왔다리 갔다리 했다. 예, 복습은 커녕 수업시간에도 틈틈이 유체이탈,  "여긴 어디? 난 누구"라며 몽롱해지다가 겨우 정신을 수습해 텍스트로 돌아오곤 했다. 매주 지리산에서 올라오는 싸부의 열정에 비하면 정말 불량하고 게으르기 그지 없는 학생.

 

그래도 신기한게, 그렇게 불량하게 5주를 보냈는데도, 하루 6시간-5주 연속이라는 이 '인텐시브'한 수업방식은, 들은 것에 대한 망각속도를 계속 늦추게 했다는 점이다. 어느덧 나(우리)는 선생이 "空은?" 이렇게 물으면 "스모킹"이라고, "연속된 것은?"이라고 물으면 "한 놈만 팬다"라고, "인도사상에 없는 것은?"의 질문엔 마치 노량진 학원의 수강생(들)처럼 입을 모아 큰 소리로 "無"라고 대답했다.

뿐만 아니라 선생의 지시에 따라 별 둘에서 별 다섯까지 중요도를 마킹하고, 또 '밑줄 쫙'이라는 말에 색색의 펜으로 줄을 쫙~ 그었다. 간만의 주입식 암기수업. 짜릿^^했다. 

 

물론 오해는 금물이다. 우리의 싸부는, 그렇게 단순한 인물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5주 동안 만난 싸부는, 오래 공부했고, 문제의식이 분명했으며, 매 순간 발심하고 사는 듯 했으며, 무엇보다 지금도 치열하게 공부 중인 사람이었다.

우리가 수업 중에 그의 말을 따라가지 못했다면, 어쩌면 그것은 그가 '정리된 것'(남의 이야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정리하고 있는 것'(자기 이야기)을 말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 난 생각하곤 했다.

덕분에 불량+게으른 나도 뭔가 머리 속에 정리된 게 있는 듯도 하다. (이 자발적 후기는 고것마저 잊어버리지 말자는 다짐?!)

 

KakaoTalk_20190625_064339631.jpg

 

 

2. 중론 이전에 구사론이 있구나. 거참!!

우선. 난 그동안 수 없이 들어왔고, 그 때는 알았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렸던 불교 교학의 용어 혹은 불교 교학의 역사를 머리 속에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최소한 중관학의 등장까지는 말이다. 그 이야기는 <중론>이 철저하게 아비달마와의 길항 속에서 형성된 텍스트라는 것을 비로소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난 <중론>을 처음 읽는 게 아니다. (오래 전 내가 속해있던 인문학 공동체에서는 <중론>, <무문관> <벽암록> 같은 게 필독서였다. ㅠㅠ) 그러나 그 때는 <천의 고원>을 무작정 읽어야 했듯이, <에티카>를 꾸역꾸역 읽어야 했듯이, 그렇게 교학적 배경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중론>을 읽어야 했다. 그리고 그 '이상한'^^ 논리를 파악하려고 애썼지만 대부분은 실패한 채 책을 덮었다. 

그런데 이제는 <중론>의 위치가 대충 감이 잡힌다. 다시 말하면, 이제야 비로소 '유7중3' (첫날 내가 들은 그 이상한 이야기)가 뭔지를, 특히 구사론이 뭔지를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구사론. 'Abhidharma kosa'. 부처님이 설하신 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창고(kosa)^^. 즉 부처님의 말씀을 모아 놓은 초기 경전(아함경)을 해체, 종합하여 그것을 5개의 카테고리(5위)와 75개의 테마(75법)으로 정리해놓은 논서.

어쩌면 그것은 여불위의 <여씨춘추>(그때까지 제가백가의 논의를 종합한 백과사전)같은 것일지도 모르겠고, 또 어쩌면 주자/여조겸의 <근사록>(북송 5자의 사상을 모두 14개의 장으로 정리해놓은 것), 아니 <사서집주>와도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불교의 개념들은(예를 들어 '색수상행식' 같은 거?), 사실상 이 구사론에서 정리해놓은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중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사론을 먼저 알아야 하는 거시어따!!!!!! (물론 텍스트로만 보면 나가르주나의 <중론>이 세친의 <구사론>보다 먼저이긴 하지만^^) 그들(설일체유부의 논사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려고 애썼는지, 그렇게 정리해놓은 방대하고 치밀한 불교의 우주론, 인간론, 윤리학이 무엇인지, 그런데 왜 그것이 나가르주나의 시대에 이르러 오히려 득이 아니라 독이 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중론>의 체계, 논지, 뉘앙스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어따!!! ㅋㅋㅋㅋ (갈 길이 정말 멀~~~ 다.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아비달마의 철학>이라는 책 한권을 주문했다)

 

장자1555-horz.jpg

 

 

3. 해체의 방법론, 空

 

난 장자 강의를 할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텍스트가 있는 것 같다고. 하나는 '진리'를 설파하는 텍스트들. (대표적으로는 플라톤의 텍스트들) 또 하나는 '방법'을 제시하는 텍스트들. (대표적으로는 <장자> 혹은 선문답)

우리의 싸부는 이렇게 말하셨다. 중관 이전은 모두 구축적 텍스트였다구. 그렇게 쌓아놓은 교학적 지식들을 부수는 것은 반야와 중관밖에 없다구. 굳이 서양철학의 용어를 써서 말한다면 용수나 장자 모두 해체주의자인 셈이다.

그들은 정전화된 어떤 텍스트 혹은 권력이 되어 버린 어떤 개념을 비판하고 해체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그 해체의 방법으로 용수는 '사구부정'이라는 논리적 형식을 동원하는 (논리를 깨기 위한 논리)한편, 장자는 '우언'('치언''중언')이라는 문학적 형식을 동원한다(버뜨 장자도 용수만큼이나 지적이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난다.

내 관점에서는 지적이면서 동시에 미학적이기도 한 <장자>가 좀 더 매력적이긴 하다. ㅋㅋ (팔이 안으로 굽는 것!) 

 

"연기인 그것

바로 그것을 공성이라고 말한다.

바로 그것에 의지하여 시설된 것

그 자체가 바로 중도이다" (<중론> 24-18, 싸부의 제본 <중론> 534쪽)

 

첫날 가장 먼저, 마지막 날 가장 마지막에 싸부가 강조한 것은 바로 24품의 18번째 계송, 즉 '공'='연기'라는 것이었다. 천태지의는 그 중 첫줄을 빼고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만 말을 해 '공가중'이라고 했는데, 바로 그것이 문제란 말도 했다.

곰곰이 생각한다. 공은 연기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 되풀이 강조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연기를 빼고 공가중이라고 하면 실천적으로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 (솔직히, 여전히  아리송하다.)

다만...이런 생각이 들긴 한다.

그것은 공=가중이라고 생각하지 말 것. 공을 주어로 놓지 말 것. 공에 대해 what이란 질문을 던지지 말것. 

공이 있는게 아니라 다만 내 앞에 닥친 문제들. 내가 느끼는 고통들이 있을 뿐이라고. 그 다가오는 것들 ("Things to Come")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사유'(정관쌍수)와 그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있을 뿐이라고. 

 

 

이제야 난 <중론>을 일품부터 읽을 준비가 된 게 아닐까?

5주 동안 가르쳐주신 신상환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피에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몇가지 더 따져보고 싶은 것, 혹은 비교하고 싶은 것들도 있긴 하다. 그건 다음 기회에.

댓글 2
  • 2019-06-25 16:47

    저도 5주동안 무슨 정신으로 공부를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강의 중간중간 사부님의 발심?은 저에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질문에 멈춰서게

    했습니다.

    고통이나 슬픔 기쁨 모두 조건의 변화에 의해

    펼쳐지는 무엇일뿐

    고통이라 기쁨이라 슬픔이라 이름짓고

    쌓아가는 건 저 자신의 무지함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워봅니다

    저는 중론을 이렇게 표현해보고 싶네요

    '나의 삶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같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보게하는 철학?'

  • 2019-06-27 12:55

    음... 구사론을 공부해야 할까요?

    사실 처음에 강의를 들으면서 구사론과 중론이 섞여서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사사키 아타루의 책 <<야전과 영원>>에서 푸코를 말하는 장에서

    스토아 학파 부분에 미친 듯이 밑줄을 쳤는데

    나중에 푸코가 깊은 오류였다고 말하는 통에

    그 밑줄을 어쩌지도 못하고 난감했었던 기억도 납니다.

    구사론을 들으면 그 말이 맞는 것 같고,

    논쟁자의 말도 맞는 것 같고...

    강의 후반부에 가니

    이건 논쟁자의 말이고 이건 용수의 말이구나가 겨우 알겠더라구요.

    암튼

    가을에 마저 중론 강의를 듣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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