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의 똥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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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5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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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자는 정말, 정말정말정말 오줌, 똥을 못 가렸다. 만 3살이 지나, 한국 나이로 5살이 되었는데도, 기저귀를 못 뗐으니 말 다 했지. (네이버에 쳐보니 ‘기저귀를 떼는 시기는 18개월에서 24개월이 적당하다.’라고 쓰여있다) 발육이 남다른 감자에게 맞는 기저귀 사이즈가 더 이상 없어서, 더 큰 기저귀를 찾으려면 성인용으로 가야 할 판이였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일단 벗기고 팬티를 입혀 놓으면 자신도 축축한 것을 알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떼게 된다나? 그 말을 믿고 덜컥 어린이집 적응과 배변 훈련을 동시에 해버리자는 안일한 생각을 해버렸다. 어린이집 적응도 힘든 마당에 배변 훈련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나도 울고, 감자도 울고, 어린이집 선생님도 (아마도) 울었다.

 

 

  기저귀 벗기 강제집행을 시행한 후, 어린이집에서 하루 평균 2~3번 오줌을 쌌다. 여벌 바지와 팬티를 수도 없이 챙기고, 심지어 바지가 모자라는 날은 친구 것을 빌려 입고 오는 일도 허다했다. 외출 시에는 무조건 화장실만 보이면 억지로 오줌을 뉘었다. 내가 신경 써서 화장실을 보내면 괜찮지만, 조금만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있거나, 내가 집안일이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실수했다. 외출도 불안하고, 늘 둘 다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도 늘상 실수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줌은 나았는데, 똥 문제는 정말 심각했다. 갈수록 똥 누는 걸 너무 무서워한 나머지, 나중에 가서는 변을 5일에서 일주일 정도에 한 번 눴다. 똥은 딱딱해질 대로 딱딱해져서 더 누기 힘든 악순환. 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만 그럴수록 둘의 관계는 악화되어서, 나중에는 한 번에 싸지 못하고 똥을 하루에 10번씩 찔끔찔끔 나눠 싸는 불상사가 발생하기까지 했다. 맙소사! 하루에 팬티 10장을 빨아야 한다니. 진짜 진절머리나게 힘든 나날들이었다. 혼내도 보고, 달래도 보고, 책도 읽어주고, 영상을 보여주고 별의별 방법을 다 써도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살펴보는 똥 누는 것에 대한 깊은 고찰, 감자는 왜 배변을 어려워 했는가. 단순히 먹고 싼다고 생각하는 것에도 이런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1. 배가 아픔을 느낀다.
  2. 어느 정도에 화장실에 가야 하는지 판단한다.
  3. 화장실에 바지를 내리고 앉는다.
  4. 힘을 준다.
  5. 힘을 주면서 동시에 항문을 느슨하게 만들어서 똥을 밀어낸다.
  6. 똥을 닦고 뒤처리한다.

 

  서로 연계된 이 일들은 긴밀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이 사이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사실. 선택과 집중의 여러 단계가 감자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문제였다.

 

  특히나 맨 첫 번째 관문, 어느 정도에 화장실을 가야 하는지 판단하는 문제부터 걸렸다. 감자 생각에 정말 똥이 나올 확률 99% 정도는 되어야, 정말 폭발 직전에 이르러서야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미 99%일 때는 배가 너무 아파서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화장실에 가는 도중에 실수하기도 했다. 집에 있다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변의는 어디에서나 온다. 밖에서 실수한다면 아찔하다. 그리고 우리는 알지 않는가. 똥이 끝까지 차오르고, 급격한 변의가 생겨서 등 뒤에 식은땀이 흐르다가도, 그 시기를 살짝 벗어나면 다시 평온기가 찾아온다는 것을. 그러니까 다시 찾아온 평온기의 똥들이 쌓이고 쌓여서 딱딱해지는 거지. 정말 심할 때는 배가 남산만 하고, 안색까지 시커멓게 변할 정도였다. 배는 계속 꾸륵거리고…. 정말 울면서 똥을 쌌다.

 

 

 

 

  그사이에 좋다는 유산균, 한약, 마사지 오만가지 민간요법(?)을 시행했다. 그것과 동시에 나는 감자에게 이야기할 때 아픔을 수치화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가 조금 아프고 많이 아프고의 정도는 개인적인 수치라 감자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감자는 고통에 둔감한 편이었다) 배 아픈 정도를 퍼센트로 나누어서 주기적으로 상기시켰다. 이 정도면 50%, 이 정도면 80%, 이 정도면 90%인데, 적어도 85% 정도가 되면 화장실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90% 넘어가면 늦다고 끊임없이 아픔을 쪼개어서 이해시켰다.

 

 

  그리고 동시에 힘을 주면서 빼기 연습을 시켰다. 엄마가 힘을 주라고 하니까 아이는 정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힘을 줬다. 하지만 똥구멍은 닫혀있는 상태. 이걸 정말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할까. 밀어내면서 동시에 느슨하게 풀어야 하는 이 미묘한 진리를 이해시키는 것이 두 번째 관문이었다. 길고도 지난한 과정..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정말 느리지만 감자는 자기의 속도대로 배변 훈련을 진행해 갔다. 그러고는 어느 순간! 감자는 삶의 위대한 진리를 이해했다. “엄마! 드디어 똥구멍에 힘을 주면서 힘을 빼는 걸 알 거 같아요!” 그 이후로 더 울지 않고 화장실을 다녀왔으며, 똥을 싸는 텀도 점점 줄어들었다. 지금은 배가 아프지 않아도 이틀에 한 번 (강제적이지만) 화장실을 가서 밀어내고, 혼자 씻고 나오는 패턴을 유지 중이다. 진짜 다시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하네. 만세!!

 

 

  배변과의 전쟁이 4살 무렵에 시작해서 9살에 마무리되었으니, 장작 5년이 넘는 세월이었다. 처음에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미래의 내가 살짝 “야, 너 그거 알아? 지금 이거 5년 뒤에나 해결돼!”라고 귀띔이라고 해주었다면 달랐을까. 혹시 내가 마음이 준비가 덜 된 감자에게 억지로 강요를 해서 더 오래 걸린 건 아닐까. 이렇게 오래 계속될 것을 그때 알았다면, 일 이년 기저귀를 더 채우는 것이, 하다못해 어른 기저귀를 채우는 것이 무엇이 대수였을까 싶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은 일을 반복하겠지. 사람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니까.

 

 

 

 

  다행인 것은, 나는 감자와 함께 아직도 성장 중이다. 지독하게 길고 길었던 똥과의 전쟁을 치르다 보니, 다른 것들도 조금은 감자의 속도에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지금 감자의 가장 큰 화두는 사회성이다. 아스퍼거 아이들이 그렇듯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다. 특히나 어른들은 자기에게 다 맞춰주니 어느 정도 대화가 되는데, 또래 친구들은 그렇지 못하니 어려워 했다. 더 어릴 때는 내가 나서서 엄마들 모임도 만들었다. 몇몇 또래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고, 다른 집에 놀러 가기도 하면서 친구를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번번이 실패했다. 그래도 저학년 때는 어느 정도 엄마의 노력이 가능했지만,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그런 것도 어려워졌다. 이제 더이상 아이들은 엄마들을 끼고 놀지 않고, 서로 메신저나 게임 등으로 연락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오히려 내 마음이 편해졌다. 이젠 정말 내 손을 떠난 문제구나 싶어서.

 

 

  언젠가 아이의 사회성 때문에 고민을 토로했을 때, 한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해주었다.

“아이마다 부모에게 받고 싶은 사랑의 크기가 서로 달라요. 어떤 아이는 그 그릇이 작아서 금방 엄마의 품을 떠나지만, 어떤 아이는 부모에게 받고 싶은 사랑의 크기가 커서 늦게 떠나는 아이도 있지요. 하지만 충분히 사랑을 주다 보면 언젠가는 그 그릇이 가득 차서 넘치고, 그렇게 타인에게로 흘러갈 겁니다. 이 아이는 엄마를 통해서만 세상과 접촉할 수 있을 거예요.”

 

 

 

 

  찰랑찰랑. 드디어 물이 넘칠랑 말랑 하는 소리가 들린다. 5학년이 되자, 가끔 친구에게서 웃긴 짤로 가득 찬 이상한 개그의 문자도 오고, 같은 아파트 친구와 집에 같이 오기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친구들이 오며가며 인사를 해주고, 놔두고온 신발 주머니를 챙겨주고, 말을 걸어준다. 서툴지만 감자도 거기에 답하며 인사를 해주는 변화된 모습이 보인다. 너무나 늦은 한 발. 그리고 너무 소중한 한 발을 내딛는 감자. 아직도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겉도는 감자의 모습은 보는 건 어렵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 척해도,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확연하게 다른 아이의 모습을 마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시작을 하기만 한다면, 가기만 한다면 언젠가 성인이 되었을 때 비슷하게 근처에라도 서 있을 수 있겠지. 늘 생각하는 거지만 다행인 건, 우리 감자는 결코 뒤로 가는 법이 없다. 언제나 어떠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자신의 속도대로.

 

 

 

 

 

 

 

 

 

모로

올해부터 일리치 약국에서 일하고 있다.

열심히 쌍화탕을 달이며, 공부와 삶이 연결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항상 궁리중.

 

 

댓글 11
  • 2024-04-25 11:15

    "감자는 결코 뒤로 가는 법이 없다!" 감자뿐 아니라 우리도 그러리라 생각해보니 힘이 납니다!! 자기 속도대로 가봅시다~

  • 2024-04-25 14:47

    혹시 위에 나오는 '한 선생님'이 저는 아니죠?
    근데 내가 맨날 하는 이야기하고 너무 비슷해서...ㅋㅋㅋㅋ

    이번에도 아주 자~알 읽었습니다.

  • 2024-04-25 15:29

    행간의 지난함이 어찌 다 알 수 있을까요. 애쓰셨어요. 삶의 속도를 알아차리는 일은 결코 남일 같지가 않네요. 고맙습니다. 잘 읽었어요 ^^

  • 2024-04-25 21:04

    뒤로 가는 법이 없는 감자, 그런 감자 곁에서 함께 성장 중인 모로~ 똥의 연대기가 이렇게 심오하고 감동적이라니... ㅎ
    자신의 속도로 살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고마워요^^

  • 2024-04-26 08:03

    모로의 성장기이기도 하네! ^^
    똥땜에 고생 정말 많았수! 수고혔어~~~

  • 2024-04-26 09:38

    인간적이고 문명적인 똥누기의 어려움과 고단함을 새삼 느낍니다.
    글 읽는 동안 가슴 찡했고, 글 읽고 나서는 인간적 삶에 대한 모순적인 생각이 몰려와요.

  • 2024-04-26 13:45

    찰랑찰랑 넘치는 사랑..
    엄마에게 받은 사랑 남들과 나누는 감자로~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길을 함께 나눠주어 감사합니다 ~

  • 2024-04-28 10:43

    똥이 참 쉽지가 않아요.
    어른이 됐어도 아직도 어려운데ㅋ
    그걸 자신의 속도로 해낸 감자도, 애태운 모로님도 기특하당^^

  • 2024-05-02 15:50

    과민한 대장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감자의 똥이 남일 같지 않네요...
    감자와 엄마의 속도대로 같이 성장해가는 모습 계속 나눠주세요^^

  • 2024-05-02 23:48

    만성 변비로 한평생 살고 있는 저도 감자의 똥이 참 남일 같지 않습니다. (경덕쌤 찌찌뽕!)
    캠핑의자에 앉아있는 뒷모습이 사랑스러운 모자의 사진이군요.
    예쁜 모습 글로 사진으로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4-05-04 08:20

    감자도 모로샘도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넘 멋진 것..

아스퍼거는 귀여워
  감자는 정말, 정말정말정말 오줌, 똥을 못 가렸다. 만 3살이 지나, 한국 나이로 5살이 되었는데도, 기저귀를 못 뗐으니 말 다 했지. (네이버에 쳐보니 ‘기저귀를 떼는 시기는 18개월에서 24개월이 적당하다.’라고 쓰여있다) 발육이 남다른 감자에게 맞는 기저귀 사이즈가 더 이상 없어서, 더 큰 기저귀를 찾으려면 성인용으로 가야 할 판이였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일단 벗기고 팬티를 입혀 놓으면 자신도 축축한 것을 알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떼게 된다나? 그 말을 믿고 덜컥 어린이집 적응과 배변 훈련을 동시에 해버리자는 안일한 생각을 해버렸다. 어린이집 적응도 힘든 마당에 배변 훈련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나도 울고, 감자도 울고, 어린이집 선생님도 (아마도) 울었다.       기저귀 벗기 강제집행을 시행한 후, 어린이집에서 하루 평균 2~3번 오줌을 쌌다. 여벌 바지와 팬티를 수도 없이 챙기고, 심지어 바지가 모자라는 날은 친구 것을 빌려 입고 오는 일도 허다했다. 외출 시에는 무조건 화장실만 보이면 억지로 오줌을 뉘었다. 내가 신경 써서 화장실을 보내면 괜찮지만, 조금만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있거나, 내가 집안일이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실수했다. 외출도 불안하고, 늘 둘 다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도 늘상 실수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줌은 나았는데, 똥 문제는 정말 심각했다. 갈수록 똥 누는 걸 너무 무서워한 나머지, 나중에 가서는 변을 5일에서 일주일 정도에 한 번 눴다. 똥은 딱딱해질 대로 딱딱해져서 더 누기 힘든 악순환. 온갖...
  감자는 정말, 정말정말정말 오줌, 똥을 못 가렸다. 만 3살이 지나, 한국 나이로 5살이 되었는데도, 기저귀를 못 뗐으니 말 다 했지. (네이버에 쳐보니 ‘기저귀를 떼는 시기는 18개월에서 24개월이 적당하다.’라고 쓰여있다) 발육이 남다른 감자에게 맞는 기저귀 사이즈가 더 이상 없어서, 더 큰 기저귀를 찾으려면 성인용으로 가야 할 판이였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일단 벗기고 팬티를 입혀 놓으면 자신도 축축한 것을 알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떼게 된다나? 그 말을 믿고 덜컥 어린이집 적응과 배변 훈련을 동시에 해버리자는 안일한 생각을 해버렸다. 어린이집 적응도 힘든 마당에 배변 훈련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나도 울고, 감자도 울고, 어린이집 선생님도 (아마도) 울었다.       기저귀 벗기 강제집행을 시행한 후, 어린이집에서 하루 평균 2~3번 오줌을 쌌다. 여벌 바지와 팬티를 수도 없이 챙기고, 심지어 바지가 모자라는 날은 친구 것을 빌려 입고 오는 일도 허다했다. 외출 시에는 무조건 화장실만 보이면 억지로 오줌을 뉘었다. 내가 신경 써서 화장실을 보내면 괜찮지만, 조금만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있거나, 내가 집안일이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실수했다. 외출도 불안하고, 늘 둘 다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도 늘상 실수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줌은 나았는데, 똥 문제는 정말 심각했다. 갈수록 똥 누는 걸 너무 무서워한 나머지, 나중에 가서는 변을 5일에서 일주일 정도에 한 번 눴다. 똥은 딱딱해질 대로 딱딱해져서 더 누기 힘든 악순환. 온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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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5 | 조회 225
아스퍼거는 귀여워
  - 글 속에서 아이의 지칭을 ‘감자’로 변경. 감자를 좋아하는, 감자같이 귀여운 얼굴의 남자아이. 현재 초등학교 5학년생.     새 학기다. 초조하다. 애써 웃음 지어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무겁다. 우리 감자는 이제 5학년. 개학하기 2주 전부터 서서히 어둠이 도사린다.  “엄마,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걸까요?”     몇백 번은 이야기 했을 텐데…. 모르는 게 아니지만 가기 싫은 마음으로 질문한다는 걸 안다. 또 답할 수밖에. 먼저 1단계 협박.    “응,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안 가면 엄마가 잡혀가.”     팩트 체크. 사실 감자는 때에 따라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구구절절 학교의 장점을 이야기해봤자 감자에게 와 닿는 건 없다. 학교 공부도 지루하고 친구도 없는 아이에게 먹힐 리가. 다음은 2단계 공감.    “근데…. 엄마도 진짜 학교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었어. 어릴 때 소심하고 친구도 없어서 맨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종이접기하고 그랬지.”  “진짜 엄마도 그랬어요?”  “그래 진짜지. 아빠한테도 물어봐.”     3단계 동조.    “그래 아빠도 그랬어. 근데 그냥 학교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에이 도움이 안 된다. 쩝, 다시 2.5단계 공감+희망.    “엄마도 그래. 쉬다가 약국에 일하러 가는 거 얼마나 가기 싫은 줄 알아? (오바)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이 정도는 아님) 근데 막상 가잖아? 그럼 또 재미있다?”     협박과 공감과 회유 사이를 무한 반복하면서,...
  - 글 속에서 아이의 지칭을 ‘감자’로 변경. 감자를 좋아하는, 감자같이 귀여운 얼굴의 남자아이. 현재 초등학교 5학년생.     새 학기다. 초조하다. 애써 웃음 지어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무겁다. 우리 감자는 이제 5학년. 개학하기 2주 전부터 서서히 어둠이 도사린다.  “엄마,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걸까요?”     몇백 번은 이야기 했을 텐데…. 모르는 게 아니지만 가기 싫은 마음으로 질문한다는 걸 안다. 또 답할 수밖에. 먼저 1단계 협박.    “응,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안 가면 엄마가 잡혀가.”     팩트 체크. 사실 감자는 때에 따라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구구절절 학교의 장점을 이야기해봤자 감자에게 와 닿는 건 없다. 학교 공부도 지루하고 친구도 없는 아이에게 먹힐 리가. 다음은 2단계 공감.    “근데…. 엄마도 진짜 학교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었어. 어릴 때 소심하고 친구도 없어서 맨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종이접기하고 그랬지.”  “진짜 엄마도 그랬어요?”  “그래 진짜지. 아빠한테도 물어봐.”     3단계 동조.    “그래 아빠도 그랬어. 근데 그냥 학교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에이 도움이 안 된다. 쩝, 다시 2.5단계 공감+희망.    “엄마도 그래. 쉬다가 약국에 일하러 가는 거 얼마나 가기 싫은 줄 알아? (오바)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이 정도는 아님) 근데 막상 가잖아? 그럼 또 재미있다?”     협박과 공감과 회유 사이를 무한 반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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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 조회 350
아스퍼거는 귀여워
  아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진통이 시작된 건 토요일. 39주 차인 만삭의 임산부가 절물휴양림으로 산책을 나갈 참이었다. 그 당시 젤 좋아했던 양념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휴양림 주차장에 주차하는 순간 딱 느낌이 왔다. ‘오늘이다! 오늘 나온다!’ 뭔가 세상 처음 느껴보는 진통인데도 오늘인 거 같다는 느낌이 빡 드는 순간이었다.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해 진통 정도를 이야기하자, “그 정도로 아파서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기다려보고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기 시작하면 병원에 들르란다. 나랑 남편은 그 길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향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아기를 낳으면 한동안은 차가운 것은 못 먹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빠삐코를 사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세차를 하고 미리 사둔 카 시트를 설치했다. 몇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 탓에 출산하는 날 해야 할 것들이 메뉴얼화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집에 들어가선 간단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통 밑에 있는 거름망까지 탈탈 털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조리원에 들고 갈 짐을 싸고 있는데 진통이 왔다 갔다 한다. 어느 정도면 병원에 가야 할까. 왠지 병원에 너무 일찍 가면 혼날 것 같았다. 그래도 편한 집이 낫겠지 싶어서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데, 진통의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제 가자!” 비장한 마음으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에는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오랫동안 산파일을 하신 조산사가 계셨다. 내 주변의 몇몇 지인이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고, 무통 주사도, 회음부...
  아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진통이 시작된 건 토요일. 39주 차인 만삭의 임산부가 절물휴양림으로 산책을 나갈 참이었다. 그 당시 젤 좋아했던 양념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휴양림 주차장에 주차하는 순간 딱 느낌이 왔다. ‘오늘이다! 오늘 나온다!’ 뭔가 세상 처음 느껴보는 진통인데도 오늘인 거 같다는 느낌이 빡 드는 순간이었다.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해 진통 정도를 이야기하자, “그 정도로 아파서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기다려보고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기 시작하면 병원에 들르란다. 나랑 남편은 그 길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향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아기를 낳으면 한동안은 차가운 것은 못 먹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빠삐코를 사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세차를 하고 미리 사둔 카 시트를 설치했다. 몇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 탓에 출산하는 날 해야 할 것들이 메뉴얼화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집에 들어가선 간단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통 밑에 있는 거름망까지 탈탈 털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조리원에 들고 갈 짐을 싸고 있는데 진통이 왔다 갔다 한다. 어느 정도면 병원에 가야 할까. 왠지 병원에 너무 일찍 가면 혼날 것 같았다. 그래도 편한 집이 낫겠지 싶어서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데, 진통의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제 가자!” 비장한 마음으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에는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오랫동안 산파일을 하신 조산사가 계셨다. 내 주변의 몇몇 지인이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고, 무통 주사도, 회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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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5 | 조회 366
아스퍼거는 귀여워
모로 올해부터 일리치 약국에서 일하고 있다. 열심히 쌍화탕을 달이며, 공부와 삶이 연결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항상 궁리중.       포르투갈에 갔다. 한국에서 암스테르담까지 14시간 반을 날아간 뒤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시 2시간 반을 비행해야 도착할 수 있는 곳. 유럽의 땅끝마을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거리였다. 남편은 일 때문에 여행 후반에 합류하기로 했기 때문에, 아이랑 둘이 떠나야 했다. 짐도 많고, 환승도 오랜만인 데다, 비행기도 잘 못 타는 쫄보라 이래저래 걱정된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파김치가 되어 도착한 숙소에서 짐을 탁 풀고 창문을 열자 아이가 내뱉은 첫마디.   “엄마, 여기 참 평화로운 거 같아요.”       우리가 도착한 포르투갈의 두 번째 도시 포르투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포르투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첫 번째 숙소는, 앞으로는 도우강이 흐르고, 멀리 동루이스 다리가 보이는 낭만적인 뷰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 라인으로 평범하고 작은 카페가 3개 있었는데, 단골들이 맥주를 한잔하거나, 간단한 요기를 하러 왔다. 나와 아이는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 카페에서 토스트나 에그타르트를 먹고, 시간 날 때마다 집 앞을 산책했다. 매일 비슷한 길을 걸어 장을 보러 가고, 모루 공원에 앉아서 버스킹을 듣거나 갈매기를 구경했다. 저녁에는 숙소로 돌아와서 한국에서 싸 온 햇반에 김, 혹은 삼겹살을 사서 구워 먹거나 미역국을 먹었다. 포르투의 12월은 영상 5도에서 15도 정도로, 낮에는 꽤 포근하다. 우기라고...
모로 올해부터 일리치 약국에서 일하고 있다. 열심히 쌍화탕을 달이며, 공부와 삶이 연결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항상 궁리중.       포르투갈에 갔다. 한국에서 암스테르담까지 14시간 반을 날아간 뒤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시 2시간 반을 비행해야 도착할 수 있는 곳. 유럽의 땅끝마을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거리였다. 남편은 일 때문에 여행 후반에 합류하기로 했기 때문에, 아이랑 둘이 떠나야 했다. 짐도 많고, 환승도 오랜만인 데다, 비행기도 잘 못 타는 쫄보라 이래저래 걱정된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파김치가 되어 도착한 숙소에서 짐을 탁 풀고 창문을 열자 아이가 내뱉은 첫마디.   “엄마, 여기 참 평화로운 거 같아요.”       우리가 도착한 포르투갈의 두 번째 도시 포르투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포르투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첫 번째 숙소는, 앞으로는 도우강이 흐르고, 멀리 동루이스 다리가 보이는 낭만적인 뷰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 라인으로 평범하고 작은 카페가 3개 있었는데, 단골들이 맥주를 한잔하거나, 간단한 요기를 하러 왔다. 나와 아이는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 카페에서 토스트나 에그타르트를 먹고, 시간 날 때마다 집 앞을 산책했다. 매일 비슷한 길을 걸어 장을 보러 가고, 모루 공원에 앉아서 버스킹을 듣거나 갈매기를 구경했다. 저녁에는 숙소로 돌아와서 한국에서 싸 온 햇반에 김, 혹은 삼겹살을 사서 구워 먹거나 미역국을 먹었다. 포르투의 12월은 영상 5도에서 15도 정도로, 낮에는 꽤 포근하다. 우기라고...
모로
2024.01.25 | 조회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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