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예가 아니다"

토용
2022-04-10 21:53
98

7월에 주나라 왕이 재상 선을 보내 혜공과 중자의 장례 예물을 보내온다.

전에서는 예물이 오는 시기가 늦었고, 또 아직 죽지도 않은 중자(혜공의 부인)의 것까지 같이 보낸 것은 예에 맞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이름을 기록했다고 적고 있다. 보통 경에 천자의 경대부 이름은 적지 않는데, 특별히 이름을 기록한 것은 예에 어긋난 점을 꾸짖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 왜 예가 아니었을까. 혜공은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장공의 아버지이다. 보통 군주가 죽으면 새로운 군주는 다음 해부터 원년이 된다. 지금이 장공 원년이니까 혜공이 몇 월에 죽었는지 모르나 최소한 죽은 지 7개월은 넘은 셈이다.(음력이니 아마도 8개월 이상) 그러니 예물을 보내오는 시기가 매우 늦었다고 할 수 있다. 또 당시 주 왕실에서 중자가 중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혜공의 것을 보내면서 중자의 것도 같이 보낸 것은 흉사를 미리 예측한 것이기 때문에 예가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에는 천자가 죽으면 7개월 만에 장례를 치르는데 모든 제후들이 빠짐없이 다 와야 한다. 제후는 5개월 만에 장례를 치르는데 동맹국이 참석한다. 대부는 3개월, 사는 2개월이다. 그렇게 보면 혜공은 제후로서 죽고 나서 5개월 후에 장례를 마치는데, 최소한 7개월이 지나 예물을 보냈으니 매우 늦은 것이다.

전에서는 장례를 치르기 전에 예물을 보내야 하고, 조문은 장례를 다 마치기 전까지는 와야 한다고 적고 있다.(贈死不及尸 弔生不及哀) 장례는 입관하고(停棺) 장사 지내고(擧棺) 사당으로 돌아와 곡(哭)을 하는 과정을 말한다.

 

양백준 선생이 주석에 순자를 인용한 부분이 있어서 찾아봤다.

 

상을 당한 집에 조문 갈 경우 보내는 금품 재화를 일러 부(賻)라 하고, 수레나 말을 일러 봉(賵)이라 하며 의복을 일러 수(襚)라 하고, 애완용품을 일러 증(贈)이라 하며, 옥이나 조가비류를 일러 함(唅)이라 한다. 부와 봉은 살아 있는 자를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 증과 수는 죽은 자를 보내기 위한 것이다. 죽은 자를 보냄에 있어 그 염을 다 마치기 전까지 이르지 못하거나 살아 있는 자를 조문함에 있어 그 졸곡 때까지 이르지 못하는 것(送死不及柩尸 弔生不及悲哀)은 예가 아니다. 그러므로 길사(吉事)일 경우는 하루 오십 리를 걸어가더라도 상사(喪事)에는 하루 백 리를 달려가야만 한다. 부조는 장례행사에 맞추어야 된다는 것이 예의 가장 중대한 요점이기 때문이다.『순자』 <대략>

 

앞으로 좌전에 ‘예가 아니다(非禮也)’라는 말이 몇 번이나 더 나올지 자못 궁금해진다.

댓글 1
  • 2022-04-11 10:03

    전에 <소학>을 읽을 때도 상례에 대해 나올 때마다 우샘이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는데, 사실 귀에 잘 안 들어오더라구요. 

    지금은 많이 사라진 절차들이라 그런지 언제, 어떻게 하는지 설명을 들어도 잘 모르겠고  복잡하게만 느껴졌어요.

    앞으로 토용샘 말대로 여러 번 나오겠죠? 이번엔 확실히 친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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