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세미나] 『모방의 법칙』 5회차 후기

우현
2024-02-08 17:57
118

 매주 세미나가 끝난 후에 바로 후기를 써서 올리다가 한번 그 리듬을 잃으니 어떻게 후기를 써야하나 싶네요ㅎ. 아무튼 한 주 쉬고 돌아온 사회학 세미나, 이번 주는 가브리엘 타르드의 <모방의 법칙> 5장입니다.

 이제 정말 거의 다 왔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5장의 내용은 모방의 논리적 법칙을 다루고 있습니다. 모방이 실제로 어떤 과정으로 일어나는지, 앞에서 다루던 내용의 디테일을 짚는 느낌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모방행위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실제로 누군가를 따라해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겁니다. 유행하는 옷을 입어본다던가, 춤이나 노래를 따라해본 경험은 있을테지요. 그 이유는 뭘까요? 대답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어도, 그 내제한 근본적인 원인을 타르드는 ‘욕망’이라고 짚습니다. 그리고 욕망은 꼭 효율에 따라 움직이는 녀석이 아니죠. 왜 굳이 바빠 죽겠다는 제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2시간 가까이 공을 차고 오겠습니까. 재밌으니까요. 그러고 싶으니까요ㅎ. 이처럼 타르드는 인간들에게는 어떠한 욕망이 내재되어 있고, 그것이 어떤 발명과 만나면 실체화된다고 합니다. 그런 개인들의 욕망이 모이고 모이면, 하나의 ‘믿음’을 이루기도 하지요. 이를테면 ‘축구는 멋진 운동’이라던가, 좀 더 사회적으로 나아가자면 ‘국가’, ‘종교’, ‘학교’ 등이 있겠습니다. 개인의 욕망을 넘어 하나의 믿음을 이루게 된 ‘성공적인 발명’인 셈이죠.

 

세계에는 수많은 발명들이 있지만, 패러다임을 바꾼 발명들을 중심으로 바라본 세계를 ‘역사’라고 부른다고 지난 시간에 말했었죠. ‘역사’와 구분되어 다양한 발명들과 욕망의 흐름을 살펴보는 게 ‘고고학’이라고 했고요. 이처럼 세상에 발명이 성공한 발명과 실패한 발명들만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발명은 기존의 발명을 ‘대체’하기도 하고, ‘축적’하기도 하니까요. 기존의 지배적인 발명, 즉 지배적인 욕망을 밀어내고 새로운 욕망을 대중화시킨 것을 ‘대체’라고 할 수 있겠죠. 기존의 발명과 새로운 발명 사이에 ‘결투’가 일어나고, 그 시기에 더 많은 욕망을 발현시킨 발명이 ‘승리’합니다.(앞에서 언급했듯이 ‘효율’이나 ‘논리’로 승부가 결정나지만은 않습니다.) 반대로 타르드는 발명들이 기존의 발명들을 변주시키고 확장해나가기도 한다고 해요. 그게 ‘축적’입니다. 이 경우에는 ‘결투’가 아니라 ‘연합’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럼 결국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꾼 ‘강력한 발명’이 중요한 게 아닐까? 라는 게 제가 계속 가지고 있는 질문입니다. 타르드가 계속 ‘역사’와 구분되는 ‘고고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지만, 결국 ‘역사’를 이루는 강력한 발명의 영향이 큰 건 맞으니까요. 기존의 욕망 A와 대치 중인 B를 화해시키고 전혀 다른 방향성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도 대부분 강력한 발명이지 않겠습니까? 타르드 또한 근대 문명이 ‘대체’ 보다는 ‘축적’에만 힘을 쓰고 있어서 욕망의 변화가 일어나기 보다는 그 수단(산업이나 예술)의 발전만 일어나고 있다고 꼬집고 있으니 말이예요. 지금 다시보면 타르드는 딱히 어떤 쪽을 강조하고 싶었다기 보다는 ‘모방’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려면 발명의 다양한 형태를 볼 수 있어야한다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제 좀 머릿 속에 수월하게 들어오는 느낌이라 재밌습니다. 처음부터 재밌었던 책이지만요. 다음주는 ‘논리 외적인 영향’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타르드의 약점이자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타르드가 말하듯이 ‘모방은 논리적 형태로만 이루어지지 않’으니 말이에요. 다들 새해복 많이 받으시고, 저는 연휴에도 열심히 공부해보겠습니다.

댓글 1
  • 2024-02-10 19:56

    이번 장에 이르러 타르드는 아주 재미있고, 중요한 이야기들을 쏟아냅니다. 가령 '진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진보는 일종의 집합적 성찰'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고유한 뇌는 없지만, 연속적인 발견들을 교환하는 발명가들과 학자들의 수많은 뇌의 연대에 의해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사회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두 개의 개념 쌍으로서 '대체와 축적' 개념을 이끌어내고요. 그런데 당연하게도 '발명'의 연대기는 단순히 A->B로만 단선적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무수한 A들이 서로 다투는 가운데 B가 출현하죠. 그런 점에서 타르드는 '발명은 사회적 갈등'의 '치료제'라고 말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물질적 발명부터, 시스템의 발명, 사실의 발명까지 인간 문명 전체를 '발명'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사실 이 부분에서 타르드가 대단히 혁신적인 생각을 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작년 1234에서 제가 살펴봤던) '가속주의'와 연관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외에 '이데올로기론'을 생각나게 하는 구절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언제나 우리는 국민으로서든 개인으로서든, 의식하지 못한 채로 어떤 지배적인 욕망의 영향 아래 있거나 아니 오히려 우리 마음속에서 지속되고 있는 이전의 어떤 해결책의 영향 아래 있다'는 구절이 그렇습니다. 다시 말해 어떤 '발명'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를 지탱하는 '발명'의 영향력을 부수는 '발명'은 미래에서 오는 법이죠. 이를 타르드는 '집합적 성찰'로서 '진보'라고 부르고요. 흥미로운 점은 타르드의 서술 방식이 그러한 '진보'를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발전'이나 '목적론'을 떠올리게끔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대체'라고 말하죠.

    동시대에 대한 평가도 흥미롭습니다. 모든 시대는 당대를 대표하는 건축물들을 갖게 마련인데, 19세기 당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은 피라미드도, 신전도 아니고 '산업 도구'로서 공장, 역, 기계들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합니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시대는 '과학이 과학을 위해 있는 것처럼 산업이 산업을 위해 있는' 시대라고 말합니다. 이 통찰은 현재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법한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재미있는 점은 이 평가가 욕망을 충족시키는 발명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한 사회의 발명이 그 시대의 미적 성취와 뗄 수 없다고 설명하는 부분에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타르드는 이른바 '인더스트리얼' 장르까지 예견하고 있달까요? ㅎㅎㅎ

    이제 대략 네 차례만 더 하면 <모방의 법칙>이 끝납니다. 차후에 우현이가 본격적으로 세미나를 진행한다면, 아마도 더 많은 이야기를 생산할만한 잠재력이 있는 텍스트라는 걸 매주 실감합니다. 언젠가 열릴 우현의 <사회학 학교>를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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