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학교4주차 발제문과 질문 여기에 올려주세요

요요
2024-03-17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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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학에 입문한지 어느새 4주차가 되었습니다. 

지난 4주전과 지금, 유식학이 어떤 내용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마음이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유식학이 알려주는 아뢰야식, 말나식, 의식, 전오식 등의 마음의 구조를 알게 되었고,

마음에는 변계소집성, 의타기성, 원성실성의 존재양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4주차에 읽는 책에서는 그동안 배운 개념들과 함께 심소법과 수행계위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심소법은 마음의 작용을 변행심소, 별경심소, 선심소, 번뇌심소, 부정심소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좀 복잡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습니다만.. 매일 매일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큰 범주로는 5가지로, 세부적 범주로는  51가지로 분류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마음의 작용을 세세하게 분류한 까닭은 번뇌에서 해탈로 향하게 하려는 것임을 잊지 맙시다.^^

 

수행계위는 점차적으로 상승하는데, 자량위, 가행위, 통달위, 수습위, 구경위의 다섯 단계로 나뉩니다.

이 구분 역시 수많은 요가 수행자들의 수행경험을 녹여낸 구분이 아닐까 합니다.

유식에서는 삼아승지겁의 수행을 해야 부처가 된다고 하는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수행을 해 왔길래

우리가 지금 유식학을 만나게 된 것일까요?ㅎㅎ

 

발제문은 월요일 낮 12시까지, 질문은 오후8시까지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책의 말미(221쪽)에 <<숫타니파타>>에 있는 <다니야의 경>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저도 <다니야의 경> 일부를 옮겨봅니다.

다니야의 시와 부처님의 응답이 여러편의 게송으로 이어지고 다니야가 부처님께 귀의하자, 악마 빠삐만이 등장합니다.

집착에 붙들려사는 우리 중생들의 항변과도 같은 악마 빠삐만의 시와 부처님의 응답을 음미해봅시다.

 

[다니야]

나는 이미 밥도 지었고, 우유도 짜 놓았고, 마히 강변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고, 

내 움막은 지붕이 덮이고 불이 켜져 있으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세존]

분노하지 않아 마음의 황무지가 사라졌고, 마히 강변에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내 움막은 열리고 나의 불은 꺼져버렸으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다니야]

다 자란 송아지도, 젖먹이 송아지도 있고, 새끼 밴 어미소와 성년이 된 암소도 있고,

암소의 짝인 황소 또한 있으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세존]

다 자란 송아지도 없고, 젖먹이 송아지도 없고, 새끼 밴 어미소도 성년이 된 암소도 없고,

암소의 짝인 황소 또한 없으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악마 빠삐만]

자식이 있는 자는 자식으로 인해 기뻐하고, 소를 가진 자는 소로 인해 기뻐합니다.

취착으로 말미암아 사람에게 기쁨이 있으니, 집착이 없는 사람에게는 기쁨도 없습니다.

 

[세존]

자식이 있는 이는 자식으로 인해 슬퍼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 때문에 슬퍼합니다.

취착으로 인해 사람에게 슬픔이 있으니, 집착이 없는 사람에게는 슬픔이 없습니다.

 

댓글 13
  • 2024-03-18 08:09

    마음공부 첫걸음 발제 올립니다.

  • 2024-03-18 13:43

    삼성설에 대한 질문입니다. 변계소집성에 대한 설명은 대략(?) 알 것 같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가 보이는 것처럼 실체가 아니라 연기적 조건에 따라 일어나고 변하고 사라지는 무상한 것이라는 것. 이것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논리적으로 납득할 수 있습니다.
    P. 202 "이공소현진여라는 말은 "눈에 보이는 현상 그 자체에는 실체가 없고(공), 실체가 없는 것(공)이 바로 눈에 보이는 현상(색) 그 자체이다." 라는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런데 새끼줄과 뱀의 예에서 다시 헷갈리네요.
    뱀인 줄 알고 놀랐을 때 뱀은 없고 있는 건 새끼줄입니다. 그러니 놀라게 한 원인이라고 착각한 그 뱀은 상상의 뱀이지 실재하는 뱀이 아닙니다. 변계소집성입니다. 우리가 보는 세계도 실은 이처럼 없는 뱀을 상상하고 놀라듯 실체가 마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놀라고 기뻐하고 괴로워한다는 것이 유식학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가장 집착하는 자아도 오온과 별개로 존재할 수 없는 이름 뿐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새끼줄 뿐 아니라 모든 것이 의타기성입니다. 연기적인 조건에 따라 그저 그곳에 놓여있을 뿐이라는 의미이겠지요?
    그런데 원성실성을 실유, 실재라고 표현하는 게 헷갈립니다. 뭔가 있다는 언어적 습관에 집착하기 때문일까요? 저자는 뱀도, 새끼줄도 마음의 영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원성실성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실유, 실재는 그것이 물질적이든, 추상적이든 언어로 분별한 개별 대상은 없다. 있는 것은 오직 변화하는 흐름 그 자체만 있다는 것을 강조한 표현일까요? 마치 이치가 있다는 말처럼요? 쓰고 보니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깨달음 그 자체를 원성실성이라고 하는 것 같군요. 그 깨달음을 얻은 후에 보이는 세상은 변계소집성과 같아도 변계소집성의 착각에서 벗어난 상태이니 같아도 같지 않겠네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어도 이전과 같은 마음은 아닐테니... ^^

  • 2024-03-18 15:31

    p. 103 선이란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이익을 주는 마음이나 행위’를 말합니다. 반대로 불선이란 ‘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서 손해를 초래하는 마음이나 행위’를 말합니다. 무기는 ‘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서 이익도 손해도 가져다주지 않는 마음이나 행위’입니다.
    p. 127 과거에 경험한 어떤 것에 대해 계속해서 집착하고 기억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집착하는 념인 집념이며,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원한을 품어 계속해서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원망이나 원념 등의 나쁜 념입니다. 반면 붓다의 가르침이나 진리를 계속해서 기억하고자 하거나, 붓다에게 진심으로 염불하거나 염원하는 것은 좋은 념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좋은 념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열심히 수행정진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선/불선(악) 또는 좋은 념/ 나쁜 념으로 행위나 마음을 나누는 저자의 글을 읽으며, 문득 ‘시비분별’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어떤 행위나 마음이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불선하거나 혹은 좋거나 나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요. 모든 것이 인연따라 생멸하는 것이라는 말도 생각나고, 좋은 것/나쁜 것을 가리면 집착하거나 밀어내는 괴로움을 만들어 낸다는 말도 생각이 납니다. 마음을 이야기하며 계속 언급되는 이 ‘선/불선’, ‘좋은/나쁜’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 2024-03-18 16:30

    2장
    82~83
    *유식에서는 몸으로 좋은 일을 하든 나쁜 일을 하든, 남에게 좋은 말을 하든 남에게 나쁜 말이나 거짓말을 하든, 혼자서 좋은 생각을 하든 나쁜 생각을 하든 행위를 한 모든 것은 아뢰야식에 저장된다고 합니다.
    *바로 이 현상이 마음에 잠재적인 힘으로 저장되어 있다가 적당한 조건이나 상황을 만나 의식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78
    *‘이숙’이란 ‘이전의 원인과 결과가 다르게 성숙한다.’는 뜻입니다. 과거의 행위는 선이나 악이지만, 결과로 생긴 아뢰야식은 선도 악도 아닌 무기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선악에 대한 인간의 행위가 원인이 되어 그 사람의 인격은 형성되지만, 그 결과로 결실의 자기, 즉 현재의 자기는 ‘무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앞에 문장만 보면 불교는 업의 실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업이 실체가 있다면 업이 저장되어 있다가 반드시 결과를 낳아야 사라질 것이 아닌가. 이러한 인과 필연적 구조가 되면, 우리는 업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 같다. 예를 들어, 내가 사람을 죽이거나 도둑질하는 것도 다 전생의 업 때문이라고.
    그런데 아뢰야식의 ‘이숙식’의 의미를 보고 앞문장의 ‘인과응보’적인 의구심에서 벗어날 수있었다. 아뢰야식은 선도 악도 아닌 ‘무기’라하니 아뢰야식에서는 선과 악의 실체가 없다는 소리 아닌가. 과거에 했던 행동들은 아뢰야식 속에 모두 저장되지만, 그것이 좋은 결과를 나타낼지 나쁜 결과를 나타낼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한다. 과거에 도둑질했던 사람이 죄책감이 들어 다시는 도둑질을 안 하겠다고 하는 굳은 결심을 하면 더 훌륭한 인격이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P104에 나오는 앙굴리마라의 일화도 무기의 좋은 예이다. 이것이 불교의 매력인 것 같다.

  • 2024-03-18 16:53

    89-98쪽 말나식에 대한 질문
    말나식은 자아를 무조건적으로 사량하는 마음입니다.
    이 말나식은 나쁜 마음이 아닙니다. 선도 악도 아닌 무기, 특히 유부무기(무색한 마음을 덮거나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데 방해나 장애가 있다)입니다.
    요즘말로 하면 '더러운 마음'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말나식을 염오의라고도 합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을 한번 둘러보십시오. 모두들 얼마나 이기적으로 살고 있습니까! 말나식 때문에.

    -- '더러운 마음'이 무언가에 덮여 있는 마음이라는 뜻으로 가치를 두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 것 같은데(깨끗한건 좋은 것, 더러운건 나쁜 것이라는 것도 우리가 그렇게 가치부여를 한 것일테니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적이며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말나식이 나쁜 마음이 아니라는 것이 혼란스럽네요.

  • 2024-03-18 17:17

    P. 101~102 제6의식을 법상종에서 분류한 것과 관련된 질문입니다.
    오구의식과 불구의식으로 구분되어진 제6의식은 다시 오동연의식, 부동연의식, 오후의식, 독두의식으로 더 세밀해지고
    그 중 독두의식은 선정중 혹은 환각, 환상, 깨달음의 체험이라 할 수 있는 정중의식,
    꿈속의 의식인 몽중의식,
    전오식의 활동을 떠나 6의식만이 자유롭게 활동한다는 독산의식으로 분류된다고 설명합니다.
    구체적으로 사고, 판단, 상상력 이상을 추구하는 등의 마음활동으로 독산의식의 예를 듭니다.
    하지만 사고,판단, 상상력도 전오식의 활동으로 생겨난 부산물 아닐까요?
    감각의 활동은 있으나 제6의식이 전오식과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는 상태와 차이점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2024-03-18 18:11

    2장. 질문

    p.77
    아뢰야식은 저장, 이숙, 일체종자식 세가지 기능으로 현재, 과거, 미래와 관계한다.
    여기에서 이숙식은 과거의 행위(이전의 원인)가 성숙한 결과인 아뢰야식이 다르게 성숙한다는 것. '무기'라는 뜻이다(因是善惡 果是無記).

    p.78
    아뢰야식은 선악 양쪽의 가능성을 가진 무기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p.83~84
    "선한행위를 하면 인격의 근저(아뢰야식)에 선한 행위가 축적되어 점차 선한 행위를 생기시키는 힘이 강한 인격으로 되어 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악한 행위를 하면 인격의 근저에 악한 행위가 축적되어 점차 악한 행위를 생기시키는 힘이 강한 인격으로 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은 어떤 종자(힘)가 축적되는가에 따라 선인이 되기도 하고 악인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선한행위는 아뢰야식에 선한 행위로 축적된다고 하는 본문의 설명과 '이숙식'의 개념은 충돌하는 것이 아닌지? 아뢰야식은 '무기'이지만 선한 업 종자를 계속 쌓는 행위를 하면 그 종자가 선과가 될 가능성이 많아진다는 뜻일까? 암튼 '이숙식'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할 것 같다.

  • 2024-03-18 18:26

    「대반열반경」에서 ‘자신과 법을 섬으로 삼고 귀의처로 삼으라’고 아난다에게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부분을 읽을 때 각자도생이란 말인가라며 마치 우주미아가 되는 기분이었다. 남을 귀의처로 삼지 않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않는 자등명 자귀의, 법등명 법귀의란 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하란 말인가? 특히 왜 자신이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줄곧 따라다녔다. 그 의문이 이번 「마음공부 첫걸음」을 읽으며 아뢰야식 부분에서 스포트라이트가 쫙 비춰지며 살짝 알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들 행위의 결과인 모든 종자를 저장하는 마음인 아뢰야식. 착한 일을 하든 나쁜 일을 하든, 자고 있든 깨어 있든 언제나 활동을 계속하는 심층의 마음인 아뢰야식을 더 살펴보면,
    p. 77) 아뢰야식은 저장의 측면만이 아니고 이숙의 측면과 일체종자적인 측면을 가진 마음이다. 이숙이란 이전의 원인과 나중의 결과가 다르게 성숙한다(익는다)는 뜻. 이전의 원인이란 과거의 행위이고, 성숙한 결과는 아뢰야식을 말한다. 과거의 행위(원인)는 선이나 악이지만, 결과로 생긴 아뢰야식은 선도 악도 아닌 무기라는 뜻이다. 즉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기 때문에 현재의 자기는 선악 어느 쪽도 아니라는 것이다.
    p. 79) 아뢰야식은 말나식이나 의식으로부터 던져지는 종자를 받아 보존하고 유지하는 마음이다. 이것을 훈습, 즉 현행훈종자라고 한다. 아뢰야식 안에서 종자가 성장 변화하는 것을 종자생종자라고 한다. 또한 아뢰야식 안에 훈습된 종자는 조건이 맞으면 구체화되어 말나식이나 의식으로 나타난다. 이것을 종자생현행라고 한다. 현재와 관계하는 아뢰야식, 과거와 관계하는 이숙식, 미래와 관계하는 일체종자식의 세 가지 기능을 가진 마음이 아뢰야식이다.

    「마음의 비밀」 요코야마 코이츠는 인간이란 자신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이다라며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一人一宇宙)라고 했다. 나는 나의 바깥으로 벗어나서 나를 바깥에서 바라보는 것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우주에는 자신만이 있고 자신만이 그 우주를 짊어지고 가야한다면 부처님이 말씀하신 자등명 자귀의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시선은 당연히 나의 내부로 향할 수밖에 없다. 과거의 선악의 행위가 고정되어 쌓이는 게 아니라 무기의 상태라 하니 뭔가 변화 가능성에 대한 안심과 위안을 얻는다. 또한 현행훈종자, 종자생종자, 종자생현행이라는 마음작용이 심층 깊은 곳에서 찰나찰나 이루지고 있었다니 뭔가 나의 역사 안에서 그간의 일들이 이해가 되는 듯하다.

  • 2024-03-18 18:56

    다니아경 오랜만에 다시 읽으니까 낭독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이번 책에서 제6식을 오후의식, 독두의식으로 구분하고 각각을 또 세부적으로 분류하고 있어서 신기했어요. 51가지 심소법을 잘 익히고 활용하면 미세하고 모호한 마음까지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하게 되었어요!

    202. 중국 법상종에서는 이러한 변계소집성, 의타기성, 원성실성의 관계를 뱀과 새끼줄로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우리들이 어두운 밤길을 가다 보면 새끼줄을 보고 뱀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뱀이 아니고 새끼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 뱀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 변계소집성이고, 새끼줄은 의타기성이고, 새끼줄도 뱀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영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깨닫는 것이 원성실성입니다.

    203쪽. 용수보살이 창시한 중관학파는 이제설, 즉 승의제와 세속제를 설하면서 언어[변계소집성]와 현상계[의타기성]를 구별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중관학파에서 변계소집성과 의타기성을 세속제 속에 일괄적으로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관학파의 이제설과 유식의 삼성설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요. 이제설로 법상종의 뱀과 새끼줄 비유를 설명한다면, 뱀과 새끼줄 모두 세속제이고 어떤 분별도 없는 세계를 승의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담주에 뵙겠습니다..^^)

  • 2024-03-18 19:06

    p56 자은대사가 버린 것은 세상의 모든 욕망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전도 버렸다는 것 입니다……아마도 이책을 다 읽으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하는 섣부른 기대를 해 봅니다.
    =>경전을 버린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책을 다 읽어도 해석이 어렵습니다.경전도 집착하는 대상이라고 이해해야하는 걸까요?일 때 벌써

    p71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든지 그 행위는 종자가 되어 야뢰야식에 차곡차곡 저장되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저는 이부분에서 야뢰야식이 "이기적 유전자"에서밈이 떠오르는데 비슷하게 이해해도 될까요?

    p125"승해"는 어떤 대상에 대해 확인하고 단정하는 마음의 작용입니다……다른 생각이나 주장에 이끌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사고 방식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은 자신의 생각 또는 신념이나 가치관을 너무 쉽게 버리거나 포기하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갑니다.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또한 어떻게 확신할수 있을까요?잘못된 신념은 타인을 힘들게 할수도 있고 급변하는 사회에선 과거의미덕이 현재의미덕으로 이어지지않는 경우도 많은것 같습니다.개인적으로 어느정도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구절이 조금 받아들여지지가 않았습니다.

    p149 "치"어리석은 마음의 작용
    세상에 이치나 도리에 대한 어리석음.진리에 미혹하고 어둡다는 것입니다……치는 모든 번뇌에 관계한다.
    =>어리석음이 번뇌라고 한다면 어리석음 혹은 무지로 인해 의도치 않은 죄도 불교에서는 죄가 있다라고 말하고 있는걸까요?

    p154 "의"의심하는 마음
    유식에서는 의심하는 것 자체를 번뇌라고 합니다.
    결국 진리 자체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모든것을 의심하게 되어 긍적적 사고가 나올수 없습니다.
    =>진리자체가 어떤건지 알지 못하는 우리는 모든 것에 의심을 하는 마음을 가져야 어리석음인 "치"에서 벗어나지 않을까요?

  • 2024-03-18 21:15

    질문모아서 올립니다. 추가질문 있으면 올려주세요. 내일 아침에 질문지 수정할게요.^^

  • 2024-03-19 06:29

    유식학에 대한 개념들을 하나하나 풀어서 설명해주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만, 진리와 믿음의 영역으로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종종 언급되고 있어서 조금 불편하더라고요. 이런 제 마음도 사견일까요?^^::

    154p. 의란 의심할 의(疑) 자이기 때문에 의심하는 마음의 작용입니다. ... 그런데 유식에서는 의심하는 것 자체를 번뇌라고 합니다. ... 의란 진리 자체를 의심하는 마음의 작용입니다. 진리 자체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의심하는 사람이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 의심하고 궁금해 하는 마음을 단순히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행복해질 수 없는 태도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158p. 사견은 ... 일반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인 연기 또는 인과의 도리를 인정하지 않는 견해입니다. ... 견 중에서도 사견은 가장 나쁜 것입니다.
    159p. 견취견이란 자신의 주장만을 절대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심소

    -> ‘부처님의 가르침인 연기와 인과의 도리를 인정해야 한다 ...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견은 가장 나쁜 것’ 이라고 이야기하는 태도도 견취견일 수 있지 않을까?

  • 2024-03-19 07:23

    질문모음 최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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