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몸으로 살아가기 / 노을

문탁
2023-12-0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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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몸은 흐른다 _노년과 장애

 

요즘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학생들과 ‘장애를 만드는 사회구조’라는 주제로 사람들이 이동할 때 겪는 불편함에 대해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 ‘평균’이라는 몸을 기준으로 사회가 암묵적으로 지정한 특정한 속도에 대해서 질문하는 조사이다. 예를 들면 횡단보도를 건널 때의 신호 변경이 자신의 보폭에 적당하지, 지하철이나 버스 승차시의 단차에서는 어떤지 등을 묻는다. 한 번은 동네 공원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계신 노인 분들에게 질문을 했을 때였다. 80대의 한 할머니께서는 우리의 질문을 듣고는 ‘횡단보도 신호가 너무 빨리 바뀐다’, ‘안내판의 글자들은 너무 작아서 보기가 힘들다’고 맞장구를 치셨다. 또 이런 조사를 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하시며, 사탕까지 주고 가셨다.

 

설문조사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쉽게 특정 연령층의 사람들로부터 ‘무릎이 아파서 오래 걷기 힘들다, 핸드폰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잘 안 들린다’라는 말을 듣는다. 나는 이것이 각자의 생애주기에 따라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몸의 변화라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장애와 무관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시력도 저하되고, 귀도 어두워지고, 무릎도 아프게 된다. 말하자면 누구나 장애를 갖게 되기 마련인 것이다. 하지만 ‘평균 몸의 속도’를 기준으로 구축된 사회에서는 노년층이 스스로를 ‘정상신체’에서 배제된 몸으로 살게 만든다. 나이 듦은 우리 모두가 맞이할 존재 상태이다. 우리의 질문만으로도 ‘고맙다’고 하신 할머니의 말씀은 노년의 존재 상태가 어떻게 배제되고, 비가시화 되었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노년의 존재 상태는 장애와도 교차한다. ‘전국장애인투쟁보고서_버스를타자’(2002)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시위 당시, 역사의 스피커에서는 ‘현재 장애인들의 집단 승하차로 인해 열차가 지연되어 선량한 시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라는 말이 울려 퍼졌다. ‘선량한 시민’이라 칭해진 한 시민은 장애인들을 향해 ‘왜 시민들을 괴롭히냐!’며 힐난한다. ‘선량한 시민’ 대 장애인 시위는 2023년 지금까지도 주입되는 인식 틀이다. 올 봄에 읽었던 김도현의 <장애학의 도전>은 사회적 모델론자들의 장애학 이론을 소개하면서 장애의 역사, 연대의 철학, 노동권 쟁점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다루었다. 장애를 치료나 치유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아닌, ‘장애를 만드는 사회’에 초점을 두고 서술한다. 근대 이후 형성된 ‘에이블리즘(ableism)’에 따라 ‘손상’을 ‘장애’로 규정한 일, 그렇게 ‘장애의 몸’에 대한 배제와 차별이 전면적으로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내가 스스로 장애와 비장애의 이분법적 형식의 틀을 깨고, 다양한 ‘장애’ 스펙트럼 선상에 놓인 몸들의 존재 상태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자기 몸의 장애를 인식할 때는 지하철과 버스, 보행로, 가게 앞의 수많은 단차를 마주할 때이고, 맹인이 장애를 인식할 때에는 점자로 된 정보가 없을 때이며, 농인이 장애를 인식할 때에는 수어라는 언어를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없을 때이다. 또, 무릎 관절이 아픈 노인들이 횡단보도를 주어진 시간 내에 건너야 할 때, 시력 저하로 작은 글씨를 읽을 수 없는 노인들도 장애를 경험한다.

 

몸은 무시간성 속에 놓인 고정된 입자가 아니다. 각자의 생애주기에 따라 존재 상태가 변화한다. 올해 일흔이 되신 나의 아버지는 1톤 화물 트럭을 운전하신다. 그리고 3년에 한 번씩 운전적성검사를 받으신다. 재작년에는 백내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운전을 할 수 없는 시력이 나와 수술을 받으셨다. 그 해에는 뇌경색도 경미하게 나타나기도 했다. 그리고 올 여름, ‘돌발성 난청’으로 아버지는 또 한 번 위기를 겪으셨다. 오른쪽 귀의 회복 가능성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아빠는 곧 죽음을 앞에 둔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곤 하셨다. 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꾸준히 걷기 운동과 식이조절도 철저히 하신다. 매일 건강 관련 유투브도 보신다. 다행히도 이후 난청이 사라져 지금은 다시 운전을 하시지만, 언젠가는 운전을 못하게 되실 거다. 아버지에게 운전적성검사는 이 사회가 자신의 상품성을 판가름하는 고통스런 검문대다. 그런 운전적성검사와 관련된 기사들을 찾아보니, 고령자의 차 사고 수치를 통계 내린 자료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고령화 사회에 65세 이상의 감각 손상에 따른 사고는 느는데, 운전면허소지 비율은 높기에 75세 이상의 경우는 적성검사 주기를 1년 단위로 단축하고, 자진해서 운전면허를 반납하게 해야 한다는 말들이었다. 일종의 ‘권고퇴직’과도 같은 기사들이었다. 차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노년층을 향한 금지와 배제의 언어는 가득한데, 대책이나 대안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트럭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노년층이 스스로 면허를 반납하게 하려면 그들에게 적절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는 지자체마다 다르게 시행하며, 있더라도 지역화폐로 약 10-15만원을 지급하는 정도라서 생계를 위해 운전대를 잡는 노년층은 구조적으로 운전을 그만두기 어렵다고 한다. 아버지의 근심은 운전 노동자에 대한 사회의 대책 없는 권고와 배제의 말들을 통해서도 다시 해석해 볼 여지가 있다.

 

근대 이후, 노동은 하나의 상품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노년의 몸, 장애를 가진 몸은 생산성도 없고, 위험 요소까지 크다. 전장연이 만들고, 서울시가 2020년에 도입한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노동을 상품이 아닌 하나의 권리로 주장하는 이론적 기반 위에서 만들어진 제도이다. 장애를 이유로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중증장애인들이 1년 계약직으로 일주일에 15-20시간씩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할 수 있게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들은 문화예술, 장애인식개선, 권익옹호행위 등을 하면서 급여를 받는다. 하지만 현재 권리중심 일자리는 폐지될 예정이다. 여기에 종사하는 많은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 갑작스런 해고위기에 처했다. 나는 곧 폐지될 예정인 이 제도가 상품화 된 노동의 한계를 뛰어넘어, 노년의 노동에도 적용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안무가 고권금 씨는 ‘버티는 몸(sustaining flow)’이란 주제로 노들야학에서 중증장애인과 함께 ‘나는 나를 기대한다’라는 군무 공연을 열었다. 군무는 전체가 동시에 같은 춤동작을 하는 무용이지만, 그녀는 하나의 무용을 개인의 시차에 따라 춘다는 개념의 ‘시차군무’를 고안하였다. 다른 시간성을 표현하는 몸들이 동시에 펼치는 군무 공연이 그렇게 열렸다. 노년의 몸도 다른 시간성을 표현한다. 그들을 배제하지 않는 사회 구조에서만이 가능해지는 ‘시차군무’의 무대가 계속 나타나길 바란다. 각기 다른 속도로 흐르는 몸들이 하나의 군무를 춘다.

 

 

2. 이것도 제 몸입니다 _장애와 퀴어

 

장애를 가진 몸은 한편 ‘퀴어’하다. ‘별난, 이상한’이란 영어 단어의 뜻을 가진 퀴어(queer)는 ‘이성애 정상성’에 맞서는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그 단어를 장애의 몸과 교차해서 쓴 경우를 알게 되었다. 일라이 클레어는 자신의 퀴어성을 처음 경험했던 때가 자신의 섹슈얼리티나 젠더가 아닌 자신의 장애를 통해 처음 느꼈다고 고백했다. ‘손목이 괴상한 각도로 뒤틀리고, 옹이 진 근육들이 미세하게 떨리고 느리게 움직이는 그녀의 몸’을 보고는 그녀의 친구들이 ‘말도 안 되게 퀴어해’라고 말했을 때다. 그때 그녀는 자신의 장애를 퀴어보다 더 퀴어한 일로 겪었다고 한다.

 

나는 이성애자이다. 그렇기에 ‘이성애 정상성’에 맞서는 개념으로 쓰이는 ‘퀴어’라는 개념으로 내 존재 상태를 깊이 사유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일라이 클레어의 사유는 내 몸을 ‘퀴어함’이란 렌즈로 보도록 안내했다. 재생산이 불가한 여성의 몸은 퀴어하다. 나는 결혼했었다. 결혼한 나에게 사회는 재생산의 기대를 갖는다. 여성의 몸, 결혼, 재생산성은 정상 가족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핵심적인 장치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재생산이 쉽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오랜 기간 ‘난임 상태’로 있었다. 난임의 원인은 질경련으로 이성애의 삽입섹스가 어렵게 했다. 이를 난임상담센터에서는 성기능 장애라고 명명하였다. 이성애의 정상섹스가 불가한(성기능 장애)가 있는 몸은 퀴어하다. 연애부터 결혼생활까지 18년. 긴 시간동안 나름의 방식으로 지켜온 부부애, 동료애를 끝내고 이혼을 하는 과정에서도 결혼생활이 끝나게 된 일부 책임이 재생산이 어려운 내 몸의 장애 때문임을 스스로 인정하기도 했었다. 퀴어한 내 몸의 존재 상태를 나조차도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정상성의 기준에 맞는 몸의 존재 상태는 과연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계속 몸은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면서 흐른다. 그런 점에서 모든 몸들은 각자 퀴어하다. 성(sex)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정된 ‘성(sex)’이 아니라 심리, 사회적 현상이자, 성적 욕망으로 유동하는 ‘성(sexuality)’가 있을 뿐이다. 이성애 정상성에 맞서는 섹슈얼리티가 있고, 휠체어를 탄 몸의 섹슈얼리티가 있다. 또 자식 없이 사는 부부의 섹슈얼리티가 있고, 자녀를 낳고도, 동거 파트너로 살아가는 섹슈얼리티가 있다. 다양한 성적 지향의 만남과 결혼 생활이 있다. 모두 퀴어한 몸으로 퀴어한 사랑을 하고, 퀴어한 시간을 보낸다.

 

‘퀴어함’으로 내 몸의 사태를 설명하기 전까지 나는 꽤 오래 우울한 마음 상태로 지냈다. 10대에 겪어야 했던 성폭력의 기억이 내 몸 안으로 들어온 이후, 나에게 성은 우울과 공포의 대상이었고, 몸을 경직시켰다. 나에게 내 몸과 성은 수치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20대에는 종교적 순결 이데올로기에 강렬하게 사로잡혔다. 신성한 생명을 낳는 수단으로서 성을 인식했다. 신성한 수단이 된 몸은 욕망의 실존적 주체가 되지 못하고, 결혼 전까지 지켜지고 보호되어야 할 대상이 되었다. 30대에 시작한 결혼 생활은 재생산이 불가능해진 내 몸을 의료적 치료의 대상으로만 바라봤던 시기였다. 재생산이 불가능한 몸을 가능상태로 만들기 위해 산부인과 및 난임센터를 옮겨 다녔고, 난임 및 만성 우울과 관련된 상담 치료를 받았다. 문제로 정의된 내 몸을 주체적으로 해석하지 못한 채 의료 기관에 맡길 뿐이었다. 그리고 40대. 질경련을 어느 정도 치료했음에도 막을 수 없었던 이혼까지 하게 되자, 나는 내 삶에서 일어난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식욕도 전혀 없었고, 살아가야 할 이유도 찾기 어려웠다. 한두 달 사이에 10킬로그램에 가깝게 체중이 빠졌다. 평생 쏟아야 할 울음, 눈물을 다 쏟은 것 같았다. 홀로 괴성을 터트렸고, 자기 파괴적인 생각에 사로잡혔다.

 

내가 알고 있는 개념 체계로는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사태에 봉착했을때, 우리에게는 새로운 지식과 개념, 철학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지식과 철학을 바탕으로 내 삶의 발명의 순간을 만드는 것이 도약이자 이행이며, 혁명임을 <부분과 전체>(하이젠베르크, 서커스)를 통해서 경험했었다. 마크 플랑크가 열복사 스펙트럼을 해석하고자 했을 때 도저히 기존의 고전물리학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게 되자, 양자역학이란 새로운 이론을 창안하게 되었다. 하나의 인식론적 이행이자, 패러다임의 전환이었고, 과학혁명이었다. 나에게 문탁에서의 공부와 글쓰기는 언어화 할 수 없었던 사태 앞에서 개념과 이론을 장착해 이행의 목적지를 설정하고, 경로를 찾아가며 수행하는 경험이었다. 이번 여름 서평쓰기 시간에 <은유로서의 질병>을 통해 난임의 시간을 해석해보려고 시도했던 일이 그랬고, 지금은 장애로 이름 지어졌던 내 몸의 상태를 ‘퀴어함’이란 개념으로 글쓰기하면서 그렇다. 여전히 때때로 과거의 어떤 기억에 사로잡혀 무기력해질 때가 있기도 하지만, 이것도 내 몸이고, 이런 삶도 이 세계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올 한해 서로 의지하면서 공부하는 가운데 천천히 알아갈 수 있었다.

 

또 ‘퀴어한 신체들’을 만난 경험들도 빼놓을 수 없다. 퀴어 퍼레이드, 장애인야학 등의 현장 경험은 이후 읽은 텍스트들과 공명하면서 경험의 시간을 연장시켰다. 성소수자들의 몸과 나의 퀴어한 몸이 보다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연대할 수 있는 지점이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장애해방운동 최전선의 장애인들이 자신의 몸, 그 자체로 차별와 혐오의 벽을 부수는 다큐나 책을 보면서도 내 몸으로 살아갈 때 가졌던 수치심에서 벗어나는 기쁨이 차오르기도 했다. 내가 감당하면서도, 의존할 수 있는 세계의 지평이 넓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자신의 몸으로 살아간다 _장애의 역사를 쓴다

 

“혁명이란 그저 한 사회의 우두머리를 바꾸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사회의 문제설정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가령, 우리 사회의 문젯거리로 여겨진 장애인, 동성애자, 이주민들이 나서서, 오히려 문제는 자신들을 문제시하는 사회적 의식과 질서에 있음을 확인시키며, ‘정상’이란 무엇인지, ‘국경’이란 무엇인지, ‘성(sexuality)이란 무엇인지 다시 정의하는 과정이 사회를 바꾸는 혁명이다. 장애인운동 조직이 혁명의 시작을 외치는 것은 쌩뚱맞은 게 아니다.”(존 맥나이트)

 

중증 뇌병변 장애인 이규식씨는 자신의 몸으로 살 수 있는 세계를 구성하는 최전선의 투쟁에 앞장서서 살아온 사람이다. 양방향 엘리베이터 설치, 장애차별철폐를 위한 각종 법 제정, 탈시설 운동 등 세상의 변화를 자기 몸으로 싸우면서 만든 사람들 중의 한 명이다. 또, 일상생활에서도 이규식씨는 휠체어에 의탁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 몸에 맞게 고치기에 전문가이고, 여행, 바다 수영, 다이빙 등 원하는 바를 적극적 추진한다. 자기의 몸을 지하철 선로에, 버스 바닥에 눕히기도 하고, 제주도 해수욕장 계단 앞에, 감옥 운동장 턱 앞에, 좁은 배의 문 앞에 두고는 계속해서 자기 몸으로 질문하고 싸우며 변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올해는 자서전을 쓰셨다. 언어장애로 생각과 감정을 언어화하는데 어려웠음에도 자신의 음성을 글로 옮겨서 작성해줄 수 있는 동료들과 함께 자기 장애의 역사(『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후마니타스)를 쓰신 것이다.

 

농인의 자녀로 자란 코다인 이길보라씨는 <반짝이는 박수소리>라는 다큐를 찍어 자기 가족의 삶을 보여주었다. 입말보다 손말로 옹알이를 먼저 배우는 등 농인 문화 속에서 자란 이길보라씨는 농인을 의사소통이 안 되는 장애인으로 인식하는 외부의 동정 어린 시선과 달리 그녀가 본 엄마, 아빠의 삶은 그 자체로 온전하고, 단단했다고 말했다. 또, 다시 태어나도 수어를 사용하는 자랑스러운 농인으로 살겠다는 아빠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 역시 다시 태어나도 불구의 역사 속에서 아버지의 딸인 코다로 살고 싶다고 담담하게 고백하기도 한다.

 

<장애학의 도전>을 중심으로 에세이를 준비하면서 노년의 존재방식을 개인의 고유한 생애주기에 걸친 변화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근본적으로 몸은 고정된 입자가 아닌데 입자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 구조와 인식 체계를 비틀어 보게 되었다. 몸과 시간에 대한 사유는 내 몸에 시기별로 새겨진 비정상성, 장애의 역사를 ‘퀴어함’이란 단어로 정리해보게 하였다. 그리고 전장연의 전사 이규식, 코다인 이길보라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장애는 사회가 규정한 것일 뿐, 각자의 욕망과 감각을 중심으로 세계를 구성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자기 몸으로 삶을 단단하게 영위하는 사람들.

 

나의 삶에 닥친 난임과 긴 우울증, 이혼이라는 일련의 사건들이 없었다면 어쩌면 여전히 난 난임 치료와 아이를 낳는 일에만 집중해서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내 고통의 무게가 너무 커서 자기연민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타인의 아픔에도 결국 깊이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유한 자기 몸의 상태는 소외시킨 채 정상성에서 빗겨난 몸뚱이를 붙들고 저주하며 고통스러워했을 것이다. 난임과 우울증을 극복 대상으로 볼 뿐 주체로서의 몸에 대해 사유할 시도를 못했을 것이다. 난임, 장애, 이혼과 관련된 사태들은 고통스런 삶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런 삶의 경로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전환도 없었을 것이다. 내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몰랐던 때에 만난 <나이듦과 자기서사>세미나는 나의 삶을 긍정하면서 살아가도록 이끌어 준 장이었다. 장애, 퀴어, 노년의 삶을 중심으로 사유하는 과정, 나의 삶을 관통해서 글쓰기를 시도를 했던 시간은 긍정할 수 없었던 몸으로서의 나를 세상에 새롭게 뿌리내리게 한 시간이기도 했다.

 

 

 

 

 

<장애학의 도전>에는 ‘뿌리내리기’(rooting)과 ‘옮기기(shifting)’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자기 중심을 잃지 않고 뿌리내리면서, 타자의 삶에 접속하는 몸들의 연대에 대한 설명이었다. 지난 글쓰기 시간은 그렇게 뿌리내리고, 옮겨가는 시간이었다. 나를 둘러싼 몸들의 지평 위에서 나라는 몸을 명확하게 보는 일, 동시에 나의 몸을 관통해서 다른 몸으로 횡단하여 그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시간. 이렇듯 내 몸의 역사를 새롭게 언어화하는 일은 마치 내가 나의 미래를 미리 알고 있으면서도 결국 똑같은 경로를 선택하고, 글쓰기로 반복 수행하면서 차이를 만드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글쓰기로 차이를 만들어가는 일이 곧 자기 삶의 이행이며, 혁명의 순간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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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약방 에세이
    1. 잘사는 삶이란?   금천구 호암산 칼바위 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쭉 가난한 달동네에서 보낸 나에게 잘사는 삶이란 가난하지 않게 사는 삶이었다. 돈을 벌어 무조건 가난에서 벗어나 부자가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살았다. 그러나 수많은 투자의 실패로 부자가 되는 것은 나와 인연이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돈 벌기 위해 꾹꾹 참고 다녔던 권위적인 직장을 때려치웠다. 돈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잘살아보고 싶었다. 단순하게 살아보자 생각했다. 다양한 시도를 하던 중 그때 살고 있던 은평마을에 접속하게 되었다.   그 당시 은평은 소위 시민 모임으로 ‘핫(hot)한 동네’였기에 나의 첫 백수 생활은 풍성했다. 이 단체, 저 단체 얼굴을 비치며 활동하다 에너지협동조합의 발기인으로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리고 백수인 내가 사무국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새롭게 시작하니만큼 의욕적으로 잘하고 싶었고, 또 일도 꽤 잘 해내 조합을 안착시키며 1기, 2기 태양광발전소 건설도 착착 진행하였다. 물론 보람도 있었다. 그러나 1인 실무자와 무보수의 다인 이사 구조는 나에게 큰 중압감을 주었다. 유토피아주의자 같은 이사들은 매번 새로운 꿈에 부푼 사업들을 제안하며 나를 불안하게 했다. 나는 이사들과의 의견 차이로 점점 늘어난 마찰에 겁이 났다. 그래서 서둘러 도망치듯 은평마을을 떠나 다시 예전의 임금노동을 하는 직업인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도망쳐온 나는 월급 많이 받는 삶에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았다. 그런데 갑자기 몸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이상한 증상이 나에게 일어났다. 한동안 원인도 모르고 병명도 모른 체 아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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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3.12.18 | 조회 116
인문약방 에세이
    1. 나에겐 너무나 무서운 개   아파트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니 이번에도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정면에 몇 종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무심히 훑어보다 담배 냄새가 불쾌하니 실내 흡연을 삼가달라는 내용의 경고문에 눈길이 멎었다. 같은 종이에 누군가 갈겨쓴 손글씨 때문이었다. ‘개 짖는 소리도’. 종이를 가로질러 대각선으로 급하게 흘려 쓴 글씨에서 짜증이 묻어난다. 시끄러우니 조용히 시키라는 거겠지. 근데, 살아있는 개의 입을 막아버리란 말인가? 성대 수술을 시키라는 것일까? 아무리 자기가 기르는 개가 아니라고 해도 그건 좀 아니지 않나? 도대체 얼마나 시끄러우면 저런 걸 썼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개 짖는 소리를 자제시켜 달라는 항의에 어이없어하긴 했지만, 사실 나는 개를 무서워한다. 세상에 무섭지 않은 게 별로 없다고 할 정도로 나는 쫄보다. 유전자의 힘도 있고 안전한 길로만 걸어온 나의 삶의 행로도 겁 많은 나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일단 유전자부터 살펴보자. 엄마와 동생들 모두 개를 무서워한다. 동생들과 함께 외출하러 밖으로 나와 몇 발짝 떼었을 때 어느 집에선가 나온 개를 보고 우리는 단 한 마디의 말도 없이 거의 동시에 돌아서서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마치 군인들이 사열할 때 일제히 ‘뒤로 돌아’ 자세를 취하듯. 저놈의 개새끼가 우리 뒤를 쫓아와 물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만들어낸, 언어 없이도 통하는 마법적 합일의 순간이었다.   개를 무서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빨 때문이다. 사납게 짖고 으르렁대면 나에게 위해를 가할 것만...
    1. 나에겐 너무나 무서운 개   아파트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니 이번에도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정면에 몇 종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무심히 훑어보다 담배 냄새가 불쾌하니 실내 흡연을 삼가달라는 내용의 경고문에 눈길이 멎었다. 같은 종이에 누군가 갈겨쓴 손글씨 때문이었다. ‘개 짖는 소리도’. 종이를 가로질러 대각선으로 급하게 흘려 쓴 글씨에서 짜증이 묻어난다. 시끄러우니 조용히 시키라는 거겠지. 근데, 살아있는 개의 입을 막아버리란 말인가? 성대 수술을 시키라는 것일까? 아무리 자기가 기르는 개가 아니라고 해도 그건 좀 아니지 않나? 도대체 얼마나 시끄러우면 저런 걸 썼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개 짖는 소리를 자제시켜 달라는 항의에 어이없어하긴 했지만, 사실 나는 개를 무서워한다. 세상에 무섭지 않은 게 별로 없다고 할 정도로 나는 쫄보다. 유전자의 힘도 있고 안전한 길로만 걸어온 나의 삶의 행로도 겁 많은 나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일단 유전자부터 살펴보자. 엄마와 동생들 모두 개를 무서워한다. 동생들과 함께 외출하러 밖으로 나와 몇 발짝 떼었을 때 어느 집에선가 나온 개를 보고 우리는 단 한 마디의 말도 없이 거의 동시에 돌아서서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마치 군인들이 사열할 때 일제히 ‘뒤로 돌아’ 자세를 취하듯. 저놈의 개새끼가 우리 뒤를 쫓아와 물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만들어낸, 언어 없이도 통하는 마법적 합일의 순간이었다.   개를 무서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빨 때문이다. 사납게 짖고 으르렁대면 나에게 위해를 가할 것만...
문탁
2023.12.18 | 조회 201
인문약방 에세이
    1.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   『짐을 끄는 짐승들』의 저자는 관절굽음증이라는 장애를 갖고 있는 예술가 수나우라 테일러이다. 수나우라와 형제들은 어린 시절 닭들을 층층이 쌓아 싣고 빠르게 지나가는 거대한 트럭을 바라보며 끔찍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독한 냄새를 피하기 위해 숨을 참으며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그 후 이 문제가 그를 사로잡은 것은 미술학 석사학위를 받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서다.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은 공장식 축산으로 동물들이 불구가 되고, 그 산업에 말도 안 되는 저임금을 받는 이주노동자들이 동물들과 같이 갇혀 일한다는 사실이었다. 축산과 도축 노동자들은 과로, 스트레스, 트라우마로 심신의 장애를 입거나 장애를 입은 채 해고된다. 그 자리는 또 다른 저임금노동자들에 의해 쉽게 대체된다. 수나우라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전자레인지, 패스트푸드점, 조리 식품의 효율성이 장애인, 노인, 저소득층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을 실감한다. 동시에 산업화된 음식 시스템이 남용되는 현실과 그 부적절성에 대해 문제제기해야 한다는 사실도 의식하고 있다. 식사때마다 반복되는 수나우라의 딜레마는 우리의 일상에도 적용된다. 공장식 축산과 불안정한 노동과 건강불평등과 신자유주의는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수나우라는 이 책에서 장애와 동물을 교차시킨다. 종종 장애와 동물은 서로의 알리바이로 악용되어 왔다. 장애에 대한 폄하의 표현으로 ‘동물 같다’, ‘동물만 못하다’는 수사가 관용적으로 사용되어 왔고, 일부 동물권 활동가들은 ‘언어/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들보다 ‘쾌고감수능력’을 갖는 동물을 돌보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위계를 세우기도 한다. 수나우라는 우선, 우리가 장애와 동물에 대해...
    1.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   『짐을 끄는 짐승들』의 저자는 관절굽음증이라는 장애를 갖고 있는 예술가 수나우라 테일러이다. 수나우라와 형제들은 어린 시절 닭들을 층층이 쌓아 싣고 빠르게 지나가는 거대한 트럭을 바라보며 끔찍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독한 냄새를 피하기 위해 숨을 참으며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그 후 이 문제가 그를 사로잡은 것은 미술학 석사학위를 받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서다.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은 공장식 축산으로 동물들이 불구가 되고, 그 산업에 말도 안 되는 저임금을 받는 이주노동자들이 동물들과 같이 갇혀 일한다는 사실이었다. 축산과 도축 노동자들은 과로, 스트레스, 트라우마로 심신의 장애를 입거나 장애를 입은 채 해고된다. 그 자리는 또 다른 저임금노동자들에 의해 쉽게 대체된다. 수나우라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전자레인지, 패스트푸드점, 조리 식품의 효율성이 장애인, 노인, 저소득층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을 실감한다. 동시에 산업화된 음식 시스템이 남용되는 현실과 그 부적절성에 대해 문제제기해야 한다는 사실도 의식하고 있다. 식사때마다 반복되는 수나우라의 딜레마는 우리의 일상에도 적용된다. 공장식 축산과 불안정한 노동과 건강불평등과 신자유주의는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수나우라는 이 책에서 장애와 동물을 교차시킨다. 종종 장애와 동물은 서로의 알리바이로 악용되어 왔다. 장애에 대한 폄하의 표현으로 ‘동물 같다’, ‘동물만 못하다’는 수사가 관용적으로 사용되어 왔고, 일부 동물권 활동가들은 ‘언어/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들보다 ‘쾌고감수능력’을 갖는 동물을 돌보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위계를 세우기도 한다. 수나우라는 우선, 우리가 장애와 동물에 대해...
문탁
2023.12.18 | 조회 104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삼살제왕이 이 땅에 내려 오실 제, ...(중략)..... 계백장군 백살신, 관우장군 백살신.....” 나의 할머니는 우리들 생일이 되면, 하얀 백설기 시루떡 앞에서 아래 아(·)자가 나오는 옛 한글로 쓰여 있는 백살기를 읽으신다. 대략 삼십여 분이 걸린다. 어릴 적에는 그 것이 마냥 싫었다. 어서 저 따뜻한 떡을 먹어야 하는데, 할머니 고사(?) 때문에 군침만 삼키고 있으니...... 그러다가 아마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이다. 나에게 백설기 떡은 그저 그런 떡이 되었는데, 내 생일날 할머니가 그 백살기를 읽으신다. 연신 손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리며 읽으시는 뒷모습에서 보며, ‘나는 커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였다. 귀신이 있어서 나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할머니의 정성이 나의 마음에 들어 온 것이다.    형제들만의 제사.       우리 집은 이제 방안에서 지내는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하였다. 제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큰 형님 댁에서 기제사(忌祭祀)로 일 년에 네 번, 조부모와 부모님의 제사를 지내다가, 어느 해인가 두 분이 성당에 나가신 뒤로는 연미사로 대체하겠다고 선언하셨다. 그렇게 하신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무언가 섭섭하기도 또 죄스럽기도 하였다. 특히 성당에 나가지 않는 나로서는 신부님의 말씀에 앉았다가 일어 섰다를 반복하며 정해진 댓구를 따라해야 하는 미사는 매우 껄끄러웠다. 큰 형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보다도 큰 형수님과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해 제사 날에, 우리는(우리집과 작은 형님네) 큰 형님네 아파트 문 앞에서 저녁이 다 될...
“삼살제왕이 이 땅에 내려 오실 제, ...(중략)..... 계백장군 백살신, 관우장군 백살신.....” 나의 할머니는 우리들 생일이 되면, 하얀 백설기 시루떡 앞에서 아래 아(·)자가 나오는 옛 한글로 쓰여 있는 백살기를 읽으신다. 대략 삼십여 분이 걸린다. 어릴 적에는 그 것이 마냥 싫었다. 어서 저 따뜻한 떡을 먹어야 하는데, 할머니 고사(?) 때문에 군침만 삼키고 있으니...... 그러다가 아마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이다. 나에게 백설기 떡은 그저 그런 떡이 되었는데, 내 생일날 할머니가 그 백살기를 읽으신다. 연신 손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리며 읽으시는 뒷모습에서 보며, ‘나는 커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였다. 귀신이 있어서 나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할머니의 정성이 나의 마음에 들어 온 것이다.    형제들만의 제사.       우리 집은 이제 방안에서 지내는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하였다. 제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큰 형님 댁에서 기제사(忌祭祀)로 일 년에 네 번, 조부모와 부모님의 제사를 지내다가, 어느 해인가 두 분이 성당에 나가신 뒤로는 연미사로 대체하겠다고 선언하셨다. 그렇게 하신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무언가 섭섭하기도 또 죄스럽기도 하였다. 특히 성당에 나가지 않는 나로서는 신부님의 말씀에 앉았다가 일어 섰다를 반복하며 정해진 댓구를 따라해야 하는 미사는 매우 껄끄러웠다. 큰 형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보다도 큰 형수님과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해 제사 날에, 우리는(우리집과 작은 형님네) 큰 형님네 아파트 문 앞에서 저녁이 다 될...
가마솥
2023.12.15 | 조회 340
인문약방 에세이
    그 어떤 죽음이 안타깝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죽은 자에게도 산 자에게도 가장 담담할 죽음은 없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그 순간을 선택할 수 있다면 늘 하던 일을 하다가, 그냥 스르르 가는 것이겠다. 서재에서 책을 보다가, 침대에서 잠을 자다가, 노병이 겹쳤다면 딸,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다가 그렇게 가면 좋겠다. 마치 잠을 자듯, 꿈을 꾸듯.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큰 소란 없이 가는 길. 그렇게 갈 수 있으면 좋겠다.     1. 폴: 용기 있는 죽음   『숨결이 바람 될 때』에서 폴 칼라니티는 자신이 암인 걸 알고도 삶의 방향을 급선회하거나 멈추지 않고, 암이 아니었으면 계속했을 그런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흐름출판, 145쪽) 않고 신경 외과의로서, 작가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의 삶을 살아내었다.   폴이 폐암 진단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아내 루시와 함께 울었다. 아내에게 재혼을 권하고, 담보대출을 이자가 적은 곳으로 바꾸라고 하고, 레지던트 근무 복귀 계획을 언급하는 동료의 말을 막았다. 의사로 일하는 동안 그에게 익숙했던 죽음은 막상 자신의 것이 되었을 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은 정해져 있지만 누구도 자신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심지어 주변 사람의 죽음조차 받아들이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린다. 죽음 앞에서는 자신이 가장 비극적인 사람이 된다. 하지만 폴은 남은 시간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살지...
    그 어떤 죽음이 안타깝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죽은 자에게도 산 자에게도 가장 담담할 죽음은 없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그 순간을 선택할 수 있다면 늘 하던 일을 하다가, 그냥 스르르 가는 것이겠다. 서재에서 책을 보다가, 침대에서 잠을 자다가, 노병이 겹쳤다면 딸,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다가 그렇게 가면 좋겠다. 마치 잠을 자듯, 꿈을 꾸듯.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큰 소란 없이 가는 길. 그렇게 갈 수 있으면 좋겠다.     1. 폴: 용기 있는 죽음   『숨결이 바람 될 때』에서 폴 칼라니티는 자신이 암인 걸 알고도 삶의 방향을 급선회하거나 멈추지 않고, 암이 아니었으면 계속했을 그런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흐름출판, 145쪽) 않고 신경 외과의로서, 작가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의 삶을 살아내었다.   폴이 폐암 진단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아내 루시와 함께 울었다. 아내에게 재혼을 권하고, 담보대출을 이자가 적은 곳으로 바꾸라고 하고, 레지던트 근무 복귀 계획을 언급하는 동료의 말을 막았다. 의사로 일하는 동안 그에게 익숙했던 죽음은 막상 자신의 것이 되었을 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은 정해져 있지만 누구도 자신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심지어 주변 사람의 죽음조차 받아들이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린다. 죽음 앞에서는 자신이 가장 비극적인 사람이 된다. 하지만 폴은 남은 시간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살지...
문탁
2023.12.11 | 조회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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