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식물] 2회차 공지 - 땅, 식물, 정원 (<땅의 예찬> - 한병철)

문탁
2022-01-17 08:45
297

여기 저기서 <향모를 땋으며>가 너무 좋다고,

동은의 후기처럼 매일 매일 한 챕터씩 그것을 읽고 필사하는 시간이 너무 기쁘다고, 하여

세미나는 연 사람으로서 매우 행복합니다.

확실히 이 책은, 소장각입니다. ㅋㅋ

 

오늘 세미나 시작할 때 다섯 분 정도(참, 김현정, 자누리, 현민, 남현주)에게 필사 낭송을 청해 듣겠습니다. 시간 관계상 지난 일주일 필사 중 한 개를 픽하셔서 읽는걸로 할게요.(앞으로 매주 세미나 시작할 때 그렇게 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세미나 할 한병철의 <땅의 예찬>은 어떠셨나요?

전 구글에서 식물 이름 찾느라 힘들고

유투브에서 슈만과 슈베르트 찾아 듣느라 애쓰고 있습니다.ㅋㅋㅋㅋ

 

 

아시다시피 한병철은 독일에 거주하는 철학자로 2010년 <피로사회>라는 책을 발간하여 엄청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에 따르면 근대사회는 더 이상 푸코가 말한 '규율사회'가 아닙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성과사회'로 이행했습니다. 이 속에서 우리는 '성과주체'의 자기착취를 무한반복하면서 극심한 피로(번아웃)와 만성 우울증에 시달리죠. 대안은?  '활동적 삶'을 넘어 '관조적 삶'(혹은 '사색적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그 책을 읽고 푸코도 넘고 아렌트도 넘자고? 흥미롭군. 어쨌든 경청할 가치가 충분히 있네...라고 생각했었죠. 이후 한병철은 어마무지하게 저서를 쏟아내지요. 제가 최근 읽은 그의 책은 <시간의 향기> 였습니다.

 

그러나 조정환 같은 경우는 한병철의 철학이 결국 신자유주의 옹호로 귀결된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2015)

 

  "왜 한병철은 자신의 사회 이론에서 저항과 반란을 말소하는 것일까? 왜 신자유주의적 삶의 단면들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비판들은 '대안은 없다(TINA)', '혁명은 불가능하다'는 신자유주의적이고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비관주의적이고 억압적인 구호 뒤에 온순하게 정렬되고 마는 것일까?"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26186?no=126186)

 

 

아, 물론 오늘 우리 세미나는 한병철 철학에 대한 세미나가 아닙니다. 그가 초대하는 정원으로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병철 텍스트와 제가 권했던 영화 <모리의 정원>, 그리고 정원 다큐멘터리 두 편 (<엄마의 정원>, <아빠의 정원)을 함께 논의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오늘 메모를 맡으신 느티나무님과 경덕님은 저녁 6시 이전까지 여기에 메모를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모두 이따 봬요^^

댓글 2
  • 2022-01-17 18:06
    <땅의 예찬 / 한병철> 메모
     
    한병철은 땅에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정원일을 시작했다는 고백으로 정원으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그는 정원일을 시작하게 된 구체적인 계기나 과정을 말하는 대신, 정원에 입장한 이후부터 그가 경험한 형이상학적 세계를 절절하게 노래한다. 
     
    베를린의 잿빛 겨울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정원을 상상할 때 한병철의 형이상학적 소망은 발아한다. '내려놓을 줄 아는' 정원사의 지혜보다, 1년 내내 꽃이 피는 형이상학적 열망을 추구하는 정원사는 정원에서 무엇을 발견할까. 무엇보다도 그는 겨울에 피는 꽃을 간절히 기다린다. 약한 빛과 찬 공기에도 꽃을 피우는 '가을시간너머'는 정원에 영원성을 불러오는 형이상학의 꽃이라 말하고(93쪽), 잎 떨어진 사과나무에 매달려 있는 쪼글쪼글해진 고독한 '겨울사과'를 땅의 찬가이자 형이상학적 빛의 반영이라 말하며(121쪽), 반쯤 얼었어도 제 모양과 색깔을 유지하는 '크리스마스로즈'는 숭고하고 신적이라 말한다(126쪽). 그는 겨울정원의 느린 시간을 좋아하고 겨울꽃에서 신을 체험한다.
     
    한병철은 정원에서 발견하는 대부분의 식물과 동물들을 찬양하지만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존재들도 있다. 이전 주인이 남겨둔 '달리아'는 상스럽고 천박한 요소를 가졌다고 싫어한다. 집도 없이 벌거벗어 너무 속보이는 '민달팽이'에게는 어떤 동정심도 느끼지 못하고, 크고 거칠고 빨리 썩지도 않는 '떡갈나무 잎'은 빨리 태워버리고 싶다고 말한다. 애인과도 같은 버들 나무를 죽인 설치류를 극도로 저주한다. 또 떡갈나무 잎 처럼 죽지 않고 무성한 것들을 싫어한다. 모든 차이를 없애버리는 독일의 신자유주의를, 인간을 작은 손가락 존재로 축소시키는 디지털 문화를, 콘크리트 황무지 같은 서울을 싫어한다. 
     
    한병철은 죽기 전 슈만의 마지막 피아노 작품집인 <아침의 노래>가 이 책의 기본음조라 하고, 그것을 애도노래로 규정한다. 거기엔 다가오는 아침, 새로 깨어나는 삶에 대한 동경이 담겨있다. 겨울 꽃을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과, 아침을 기다리며 부활을 꿈꾸는 마음이 오버랩된다. 한병철의 형이상학적 욕망을 무언가를 향한 애도로 볼 수 있을까. 그는 한국에서 지낸 유년기를 회상할 때 집 근처에 있던 성당, 자신의 세례명 알베르토, 로사리오 기도를 올리던 모습, 누이와 자신에게 꽃을 주던 꽃수녀님을 떠올린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식물 씨앗을 심고 깻잎을 수확해서 맛보는 기쁨을 누린다. "간장에 절인 깻잎이 특히 맛이 좋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108쪽)  
     
    서울에서 죽어가는 아버지 곁을 지킬 때에도 서울의 잿빛 콘크리트는 혐오하지만 인왕산 등산길에서 우연히 만난 영춘화에 마음을 빼앗긴다. 아버지의 병상을 지키다가 돌아오는 길에 만난 산수유 꽃에 깜짝 놀라고, 나무 꽃가지 하나를 꺾어 인왕산 절에 있는 부처님께 바치고 온 마음으로 감사를 드린다. 절에서 만난 목련 꽃봉오리와 비구니 스님들, 목련에 매달린 작은 종이 내는 소리, 한국산 개 두 마리가 컹컹 짖는 소리에서 순수함을 본다. 어린 한병철이 한국에서 사랑한 것들, 지금도 드문 드문 발견할 때도 있지만 거의 상실된 그 무언가를 이국 땅 자신의 정원에서 새롭게 만나며 애도하고 있는 건 아닐까. 
     
    -
     
    슈만의 <아침의 노래>를 들으면서 책을 읽었다. 내 방에도 식물이 있다. 이사 오기 전부터 키운 몬스테라와 디시디아, 집들이 선물로 받은 아비스, 로즈마리, 녹보수, 동네 꽃집을 지날 때 사들고 온 작은 선인장들과 아이비, 그리고 작은 올리브 나무. 내 방의 식물은 아직까지 꽃을 피운 적이 없다. 꽃에 대한 열망이 없고 초록 잎으로도 만족하는 이 집 정원사는 흙이 마를 때나 잎이 처질 때 물 주는 것이 고작이다. 문득 올리브 꽃 피는 상상을 하니 밝은 기분이 든다. 

  • 2022-01-17 18:34

    수정해서 다시 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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