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된 7분은 어떤 시간인가? -탈정치 vs 정치 / 겸목

문탁
2023-12-18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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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

 

『짐을 끄는 짐승들』의 저자는 관절굽음증이라는 장애를 갖고 있는 예술가 수나우라 테일러이다. 수나우라와 형제들은 어린 시절 닭들을 층층이 쌓아 싣고 빠르게 지나가는 거대한 트럭을 바라보며 끔찍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독한 냄새를 피하기 위해 숨을 참으며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그 후 이 문제가 그를 사로잡은 것은 미술학 석사학위를 받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서다.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은 공장식 축산으로 동물들이 불구가 되고, 그 산업에 말도 안 되는 저임금을 받는 이주노동자들이 동물들과 같이 갇혀 일한다는 사실이었다. 축산과 도축 노동자들은 과로, 스트레스, 트라우마로 심신의 장애를 입거나 장애를 입은 채 해고된다. 그 자리는 또 다른 저임금노동자들에 의해 쉽게 대체된다. 수나우라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전자레인지, 패스트푸드점, 조리 식품의 효율성이 장애인, 노인, 저소득층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을 실감한다. 동시에 산업화된 음식 시스템이 남용되는 현실과 그 부적절성에 대해 문제제기해야 한다는 사실도 의식하고 있다. 식사때마다 반복되는 수나우라의 딜레마는 우리의 일상에도 적용된다. 공장식 축산과 불안정한 노동과 건강불평등과 신자유주의는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수나우라는 이 책에서 장애와 동물을 교차시킨다. 종종 장애와 동물은 서로의 알리바이로 악용되어 왔다. 장애에 대한 폄하의 표현으로 ‘동물 같다’, ‘동물만 못하다’는 수사가 관용적으로 사용되어 왔고, 일부 동물권 활동가들은 ‘언어/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들보다 ‘쾌고감수능력’을 갖는 동물을 돌보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위계를 세우기도 한다. 수나우라는 우선, 우리가 장애와 동물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문제시하며, 이러한 문제제기를 통해 장애해방과 동물해방을 동시에 기획하고 있다. 고정관념과 의심되지 않는 전제들에는 권력의 역학과 정치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은폐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장애해방과 동물해방을 교차하는 수나우라의 주제가 아니라 수나우라의 관점에 따라 장애를 ‘정치’의 스펙트럼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하며, 현재 한국에서 진행중인 전국장애인차별철페연대(이후 전장연)의 이동권 투쟁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장애는 질문한다

 

치료의 문제는 자신의 장애에 대한 자긍심 대 의료적 개입이라는 잘못된 이분법을 만들어낸다. (중략)우리가 문제시해야 할 것은 이러한 사실들이 뜻하는 바가 장애란 객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으며 그런 감정들만이 장애에 대한 합리적인 반응이라고 보는, 아주 뿌리 깊고 만연한 전제 자체다. 우리가 보았듯 장애는 실제로 사람이 살며 겪는 체험일 뿐 아니라, 비판적으로 맞서야 할 이데올로기이자 정치적 문제다. (『짐을 끄는 짐승들』, 247~248쪽)

 

수나우라는 『동물해방』의 저자 피터 싱어가 가지고 있는 장애에 대한 통념에 반론을 제기한다. 피터 싱어는 장애인들의 모든 조건이 똑같다고 가정한 다음, 단돈 2달러로 장애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있다면,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그 약을 먹고 장애의 고통에서 벗어나려 할 것이라 추론한다. 이를 통해 피터 싱어는 장애에 수반되는 고통이 삶의 질을 낮게 한다는 공식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장애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 삶의 질이 낮은 것으로 규정된다. 진짜 그럴까? 수나우라는 피터 싱어가 장애를 알지 못하며 ‘모든 조건이 똑같다고 가정한다면’이라는 불가능한 가정을 통해 논리의 비약을 가져온다고 지적한다. 모든 장애인의 현실은 동일하지 않다. 그 조건을 동일하게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런 불가능한 가정 속에 장애의 치료 욕망을 장애에 대한 부정으로 등치시킴으로써 장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고 고정시킨다. 장애에는 고통이 뒤따르지만, 그 고통이 장애로 비롯된 모든 경험을 부정할 만큼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고통이 삶의 질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도 아니다.

 

수나우라의 관절굽음증은 미군이 무단 방류한 폐기물 때문이다. 그의 장애는 불의의 결과이고 구조적 문제이다. 그러나 수나우라는 장애가 자신의 정체성의 중요한 특질이며 그것이 가져다준 새로운 감각과 경험에 자긍심을 갖고 있다. 그는 장애인의 권리를 주장하고 현재의 불평등에 저항하지만, 장애인의 삶이 사회 구조적 피해자이며 사회적 약자로 한정되는 것 또한 원하지 않는다.

 

장애가 있는 내 친구들이 스스로를 불의를 나타내는 표상으로밖에 여기지 못한다면 이 세계는 더욱 공허해질 것이다. 대안적인 존재 방식, 소통하고 공간을 이동하는 대안적인 방식, 서로를 사랑하고 돌보며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대안적 방식 그리고 특히 우리에게 영향을 끼쳤거나 지금도 끼치고 있는 그런 불의에 저항하는 대안적인 방식들의 가능성이 더욱 사라져버린 그런 공허한 세계 말이다. 단순히 좋거나 나쁜 것으로 치부하기에 장애는 너무나 복잡하다. (『짐을 끄는 짐승들』, 321쪽)

 

우리에게 익숙한 장애 서사는 슈퍼장애인의 극복 서사다. 이는 자본주의 신화인, 자신의 조건을 극복하고 성취를 이룬 자수성가 서사와 동일한 패턴이다. 이런 주류 서사 문법에서 성공하지 못한 장애 서사는 개인적 비극으로 치부된다. 수나우라는 슈퍼장애인 대 나약한 장애인의 이분법을, 구조적 불평등과 차별을 부인하고 가리는 정치적 수법이라고 비판한다. 수나우라는 장애가 환기하는 구조적 불의에 저항하며 동시에 장애가 가져오는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가능성으로 사유할 것을 제안한다. 장애는 문제이며 동시에 해법이 될 수 있다. 장애는 인간의 이성, 고통, 삶의 질, 이동방식, 우리가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 같은 것들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 수는 없는지 질문하게 한다.

 

 

 

3.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

 

2023년 11월 20일 월요일, 전장연은 두 달간 멈추었던 지하철 탑승 시위를 재개했다. 전장연은 2021년 12월 3일부터 현재까지 2년에 걸쳐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펼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출근 방해는 사회적 테러”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에서 이후 있을 강경대응을 시사했다. 언론은 “‘전장연 지하철 시위’ 발목 잡힌 시민, 2년간 1060만명”(뉴시스, 2023. 11. 21), 손실비용 4450억원(국민일보, 2023. 11. 22) 등 서울시가 계산한 손실비용과, 시위로 인한 열차 지연시간 총 86시간 33분, 서울교통공사가 입은 손실액 약 7억8000만원(매경이코노미, 2023. 11. 23)으로 공사가 계산한 손실비용을 기사화했다. 조선일보는 서울교통공사 MZ노조 올바른 노조의 “법 제정을 요구할 거면 당신들부터 정당하게 법을 준수하라”, “무고한 자들의 소중한 하루를 멋대로 짓밟지 마라”는 전장연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게재했다(2023. 11. 27). 반면 한겨레신문은 공사가 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시위를 원천 봉쇄한다며 지하철 역사 출구 진입부터 막겠다는 방침에 대해 집시법 위반임을 밝히는 기사(2023. 11. 24)와 주간경향에서는 현재 저상버스 달성률이 32.8%에 불과하고, 내년 저상버스 도입 보조금은 1674억 9500만원으로 올해보다 11.6% 줄어 “이동할 자유를 무시한 예산”(2023. 11. 27)이라는 전장연의 주장을 지지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는 몇 가지 쟁점을 갖고 있다. 전장연의 시위로 그간 한국사회가 간과하고 있던 장애인의 이동의 권리가 정치의 장 안으로 들어왔다. 이동권은 교육권과 노동권을 수행하기 위한 전제로서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동권 투쟁은 이동권의 제한을 받은 장애인의 기본권이 지금까지 배제되어 왔다는 사실도 드러내고 있다. 전장연은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통해 기본권이 보장되지 못한 장애인에게 시민권이 있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내놓았다. 이에 대한 서울시와 공사의 대응은 무고한 시민들의 교통권을 침해하고 사회적 손실을 가져오는 범죄행위임을 강조하며, 전장연을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법질서를 어지럽히는 가해자로 몰아가고 있다.

 

양쪽 모두 권리 침해의 부당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한 정의로운 해법은 무엇인가? 서울시와 공사가 들고 있는 원칙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념으로 하는 공리주의다. 하루 평균 700만 명이 이용하는 서울 지하철의 운행을 소수의 장애인들이 방해하는 것은 부정의하다는 것이다. 이때 부정의의 근거는 모두의 행복이 동일하고 측정 가능하다는 전제에 의해서만 제시 가능하다. 모두의 행복의 질과 양이 동일하고 측정 가능해야,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가 피해를 감수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계산이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다면, 서울시와 공사가 피해의 증거로 들고 있는 손실액에 대한 평가가 어렵다. 2년 동안 시위로 인한 열차 지연시간 총 86시간 33분을 1일로 계산해보면 하루 7분 남짓의 시간이다. 장애인의 권리 투쟁을 위해 지연된 7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 있는 시간이다. 이것의 정도를 누가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동료 시민의 부당함을 들어주기 위해 감수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절대로 손해 볼 수 없는 ‘금쪽같은 내 시간’일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합법/불법’, ‘안전/위험’, ‘피해자/가해자’의 구분이 아니라, 이 시간(지연된 7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토론하고 협의하는 일이다. 서울교통공사 백호 사장은 “지각으로 비정규직들이 해고당하고 있”(이데일리, 2023. 11. 27)다고 호소하며 전장연의 시위 중단을 요구했다. 시위로 인해 지각한 비정규직들을 해고하는 기업의 처분은 상식적인가? 장애인의 이동권/교육권/노동권을 주장한 전장연의 시위는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제멋대로 해고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시대의 노동이 갖는 불안정성 또한 드러냈다.

 

사회의 모순을 직시한 누군가의 용기를 통해 권리의 개념이 탄생하고, 적당한 이름이 붙고, 모습을 갖추고, 기준 질서와 갈등이 발생할 때 비로소 중재안으로서 법률이 세워진다. 권리가 법률에 앞선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자면,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법에 구속되지 않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어야 할 수밖에 없다. 법체계에 순응하는 인간은 그 너머의 것을 상상할 수 없다. 그러한 합법은 지배자가 구성한 불평등한 조화의 모습일 뿐이다. (『장애시민 불복종』, 227쪽)

 

변재원은 『장애시민 불복종』에서 합법과 불법은 ‘법률 근거’를 기준으로 나뉘는 것 같지만,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합법과 불법은 ‘긴장의 여부’를 담아내는 말에 가깝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실정법에서 인정하지 못하는 목소리는 불법으로 여겨지지만, 현실의 모순을 지각한 누군가의 목소리는 기존 질서에 긴장감을 불러온다. 합법이란 이 긴장이 없는 상황이고 기득권 세력에서 유리한 상황을 탈정치화 하는 표현일 수 있다는 것이다.

 

 

 

 

4.다른 상상을 하는 사람들

 

11월 20일 이후 전장연은 탑승시위가 아니라 승강장에서 선전전을 통해 시민들의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내겠다는 입장인데, 공사는 전장연의 역사 진입 자체를 차단하고 있다. 12월 1일 금요일 전장연은 개찰구에서 경찰의 제지로 승강장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혜화역 2번 출구에서 선전전을 이어갔다. 12월 4일 월요일 전장연은 혜화역 개찰구가 아니라 다른 역에서 승차한 후 혜화역에서 하차하는 방식으로 승강장 선전전을 시도했다. 이때부터는 공권력감시대응팀, 민변, 민주노총, 인권단체, 종교단체 등 20여 시민단체와 함께 릴레이 기자회견을 하는 형식을 갖췄다. 그러나 지하철 승강장 릴레이 기자회견은 이뤄지지 않았다. 12월 4일부터 12월 8일까지 5일간 짧게는 10분, 길게는 40여분 ‘퇴거’를 종용하는 공권력과 그에 저항하는 전장연 참여자들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어떤 발언도 ‘고성방가’와 ‘소란’으로 간주돼 역사 밖으로 나와 기자회견을 이어갔다.

 

전장연은 이 과정을 매일 라이브방송으로 공개했다. ‘라방’이 진행되는 동안 올라가는 ‘화나요’ 이모티콘의 무리와 “병신들 또 저러네” “한가할 때 다녀라” “장애인 이미지만 안좋아진다” 라는 반감과 혐오표현이 난무한다. 그 사이 ‘좋아요’, ‘힘내요’ 이모티콘과 “전장연 지지합니다” “장애인 욕하면 안 된다”는 댓글이 올라오지만, ‘악플’의 기세와 비교하면 미미하다. 실제로 전장연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더 많을까? 그건 알 수 없다. SNS 사용자들은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내기도 하고 감추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지금의 사안에 대해 팩트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전장연이 지하철에서 이동권 투쟁을 하고 있다’ ‘전장연의 불법집회로 무고한 시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프레임’ 안에서 찬반 또는 호불호의 의견을 거침없이 표현한다. 지금 전장연은 장애인콜택시를 운영하는 비용인 특별교통수단 예산 271억 증액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금액은 원래 요청된 3350억에서 턱없이 깎인 금액임에도 이마저도 증액되지 못할까, 내년 예산이 결정될 때까지 지하철 탑승이 아니라 선전전을 이어가겠다는 것인데, 이 사안에 대한 언급은 없다. 언론에 보도되는 패턴 또한 장애인의 이동권과 시민의 이동권, 정책 비판과 장애인 시위 비난, 시위 예고와 서울시 불허 등의 대립각을 반복하며 핵심주제는 사라지고 갈등만 부각된다. 더욱이 단신 위주의 기사처리로 이 내용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가 공론의 장 안에서 확산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지금은 뉴스도 빠르게 휘발되는 시대다.

 

영화 <베테랑>(류승완, 2015년)에서 형사 서도철(황정민분)은 재벌3세 조태오(유아인분)에게 “그냥 사과 한 번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드냐?”고 호통 친다. 12월 4일 월요일 오전 혜화역에서 전장연의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동원된 경찰력을 보며 문득 이 장면이 떠올랐다. “그동안 장애인의 이동권을 생각하지 못했다. 미안하다.” 서울시와 공사는 사과해야 할 일을 인정하지 못하고, 문제 자체를 없었던 일로 만들려고 한다. 문제화하려는 사람들과 무화해버리려는 사람들의 힘겨루기가 진행중이다. <베테랑>에서 ‘아트박스 사장’으로 나오고, <범죄도시>에서 ‘마블리’로 등극한 마동석의 ‘괴력’을 상상하는 것만큼, 우리는 장애인과 함께 천천히 이동하는 것을 상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는 장애인에게도 출근길이 필요함을 기습적으로 보여줬다. 기습적이라고 느낌은 우리가 그간 장애인에게 출근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제로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증해준다. 이제 다른 방식의 이동권이 상상되어야 하고, 그 방식은 효율과 생산성을 맹신하는 신자유주의와는 거리를 두는 길일 것이다. 우리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지하철과 저상버스를 타기 위해 지연되는 시간을 ‘짜증’ 내지 않고 기다려줄 수도 있다. 지연된 시간에 대한 불만은 ‘시간이 돈이고, 성과고, 능력’이라는 생각이 내면화되어 있는 무의식의 발로다. 장애를 가진 동료시민의 탑승을 위해 일정 시간조차 기다려주지 못하는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각박하다.

 

“자신이 겪을 장애를 환영하고 그것을 욕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 수 있는가?” 이러한 정서는 우리가 공간 안에서 움직이고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대안적인 방식들에 깃든 관능성, 예측불가능성 그리고 아름다운 잠재력을 보도록 자극한다. 장애는 해방적일 수도 있고, 신나는 일일 수도 있으며, 또한 우리에게 “정상적이기”를 요구하는 사회의 지속적인 공세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자유의 장소일 수도 있다. (『짐을 끄는 짐승들』, 239쪽)

 

오세훈 서울시장의 말대로 전장연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수차례 지하철 운행을 지연시키고도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 ‘특혜’를 받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두가 의심 없이 뛰어가고 있는 속도경쟁에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전장연은 판타지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다른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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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31 | 조회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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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지금껏 내가 만난 가장 낯선 작가였다.   책을 읽기 전, 단톡방에 올라온 저자 일라이 클레어의 사진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여자라고 들었는데, 두 귀가 다 드러난 반삭에 가까운 짧은 머리, 두툼한 안경을 낀 얼굴에 넓은 어깨, 지퍼 달린 낡은 녹색 점퍼... ‘남자같은 여자’ 내가 갖고 있는 단어의 수준에서 나는 이렇게밖에 정의내릴 수 없었다. 그런데,             글을 보니, 그는 ‘젠더 퀴어’란다. 무슨 뜻이지? 동성애자인가? 소수자 용어에 낯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퀴어는 동성애자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퀴어란, 태어날 때 사회(의사)가 지정해준 생물학적 성과 자기 정체성으로서의 성이 일치하지 않은 사람을 통칭한다. 거기에는 여자지만 남자보다 여성에게 성적으로 더 끌리는 사람, 남녀 모두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는 사람, 사회에서 훈육되는 여성성에 부합하지 않는 여자, 자신을 굳이 남녀이분법에 놓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 … 그러다 보니 나도 퀴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가부장제 사회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미디어와 문학의 일방적인 이성애적 세례가 없었다면, 혹은 대학 시절 다이크 공동체를 만났다면, 나도 지금과는 다른 젠더가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에 대한 소개를 좀 더 해보자. 그는 1963년생, 미국 오리건주 시골 벌목 노동자 마을에서 백인 중산층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지정성별로는 여성이지만 자신이 소녀라는 걸 확신할 수 없는 젠더 퀴어였고, 선천적 뇌병변 장애인으로 어려서부터 지진아, 불구, 원숭이 같은 조롱과 비난을 들으며 자랐다. 그는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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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31 | 조회 112
인문약방 에세이
    혼자 걷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본다. 나란히 걷고 있을 때는 다른 사람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다가도, 혼자서 저 멀리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다르다 싶다. 왼쪽이나 오른쪽, 한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과는 달리 아이는 갈지자로 왔다 갔다 걷는다. 갑자기 달려나갈 때도 있고, 갑자기 멈추기도 하며, 다른 사람들과 바짝 붙어서 걸어갈 때도 있다. 예측이 불가능하다. 더 어릴 때는 그 모습을 보면 꼭 차에 치일 것만 같아서 불안했다. 하지만 지금은 저러다 대충 서겠지 싶어서 놔둔다. 저만큼 앞서서 달려가다가도 건널목이나 갈림길 사이에서는 멈춰서 기다리니까. 옆을 보면서 걷고, 심지어 하늘을 보면서 걸어도 아직은 누군가와 크게 부딪히거나 어디에 빠진 적은 없다. 이쯤 하면 눈이 뒤통수에도, 옆통수에도 달린 건 아닐까 싶다. 아이의 장애를 알게 된 후로 나는 줄곧 되묻는다. 장애란 무엇일까? 다른 사람들과 뭔가가 다르단 의미일까. 그렇다면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수나우라 테일러의 『짐을 끄는 짐승들』과 만났다. 이 책은 강렬하게 나의 의식을 때렸다.   “저기요. 장애는 예술이거든요? 삶을 사는 독창적인 방식이라고요!”     장애는 손상이 아니라, 사회가 구성하는 방식   장애인은 많다. 세계인구의 무려 15~20%나 차지한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장애인들을 만나기가 어렵다. 장애인들은 격리된 시설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고, 고립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는 장애를 개인적인 비극으로 생각하기 때문인데, 장애인들은 사회로 나가는 대신 고립되는 편을 택한다. 하지만 장애를 보이는 부분 만이 아니라 만성적인 질병, 장거리 보행이...
    혼자 걷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본다. 나란히 걷고 있을 때는 다른 사람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다가도, 혼자서 저 멀리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다르다 싶다. 왼쪽이나 오른쪽, 한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과는 달리 아이는 갈지자로 왔다 갔다 걷는다. 갑자기 달려나갈 때도 있고, 갑자기 멈추기도 하며, 다른 사람들과 바짝 붙어서 걸어갈 때도 있다. 예측이 불가능하다. 더 어릴 때는 그 모습을 보면 꼭 차에 치일 것만 같아서 불안했다. 하지만 지금은 저러다 대충 서겠지 싶어서 놔둔다. 저만큼 앞서서 달려가다가도 건널목이나 갈림길 사이에서는 멈춰서 기다리니까. 옆을 보면서 걷고, 심지어 하늘을 보면서 걸어도 아직은 누군가와 크게 부딪히거나 어디에 빠진 적은 없다. 이쯤 하면 눈이 뒤통수에도, 옆통수에도 달린 건 아닐까 싶다. 아이의 장애를 알게 된 후로 나는 줄곧 되묻는다. 장애란 무엇일까? 다른 사람들과 뭔가가 다르단 의미일까. 그렇다면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수나우라 테일러의 『짐을 끄는 짐승들』과 만났다. 이 책은 강렬하게 나의 의식을 때렸다.   “저기요. 장애는 예술이거든요? 삶을 사는 독창적인 방식이라고요!”     장애는 손상이 아니라, 사회가 구성하는 방식   장애인은 많다. 세계인구의 무려 15~20%나 차지한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장애인들을 만나기가 어렵다. 장애인들은 격리된 시설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고, 고립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는 장애를 개인적인 비극으로 생각하기 때문인데, 장애인들은 사회로 나가는 대신 고립되는 편을 택한다. 하지만 장애를 보이는 부분 만이 아니라 만성적인 질병, 장거리 보행이...
문탁
2023.12.31 | 조회 104
몸의 일기
      해야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한국을 탈주한 퀴어다. 판에 박힌 일상과 화폐 증식의 압력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공부를 시작했다.       2015년, 난 유부남(有婦男)이 아닌 유부남(有夫男)이 되었다. 당시 4년 째 만나고 있었던 파트너와 결혼을 했다. 그 해 연방 대법원의 판결로 미국 전역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덕분이었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결혼은 인생의 선택지로 존재하지 않았다. 동성혼이 언제 현실화될지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 안정된 관계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은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여전히 나의 베프가 되어주고 있는 파트너와의 합법적인 결혼으로 나는 (물질적 성공으로서가 아닌) 게이로서의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한 셈이다. 동네에서, 직장에서 우리를 법적 커플로 존중해 주었다. 세금 감면, 의료 보험의 배우자 등록, 병원에서의 보호자 역할 등 이성애 커플과 똑같은 혜택들도 받게 되었다. 결혼 후 난 공공 영역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얻었다.  드디어 내 인생에서 길운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나의 성정체성이 받아들여지는 환경에서 살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코로나 위기가 터지기 몇 달 전, 일종의 번아웃을 겪었다. 몇 달 동안 불면증이 지속 되었고 우울감과 무기력이 찾아왔다. 여러 모로 볼 때 삶의 통상적 지표들은 우상향하고 있는 중이 었다. 번아웃은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여러 원인으로 인해 일어났을 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건 이로 인해 나를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 생활이 12년 째였지만 난 많은 부분에서 여전히 ‘한국인’으로 살고 있었다. 아침엔 반드시 쌀밥에 나물 반찬을 먹어야 속이 편하고 든든했다. 내 혀와 위장은 어릴 적 먹고 자란 전라도 시골 음식들을 여전히 갈망했다.  미국 대통령의 혐오적 선동과 그칠 줄 모르는 거짓말에 혈압이 올라갔지만, 이보다는 차별 금지법 통과에 무관심한 한국 양대 정당의 정치인들을 볼 때 나의 분노 게이지는 더욱 높아졌다. 저녁마다 즐겨 보는  넷플릭스의 Watch list엔 미드보다 더 많은 한국 드라마로 채워졌다.          ‘한국’은 내게 모순 그 자체였다. 일 년 정도 휴직하고 한국 살이를 해볼까 생각하다가, 파트너의 법적 지위 문제와 혹시라도 그가 겪을 차별이 염려되어 금세 마음을 접었다. 자발적으로 한국을 탈주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한국 사회에 의해 유배 당했다는 억울함이 자주 올라왔다. 한국의 친구와 지인들과 관계가 멀어진 데 대해 아쉬움도 컸다. 이들과 계속 인연을 유지하고 싶었으나 어느새 연락이 끊어져 있었다. 대부분 내가 한국을 떠났는지 잘 알지 못하는데, 원거리에서 관계를 어떻게 지속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들과 거리를 둔 건 나였지만, 내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가슴이 아려올 떄가 많았다. 가장 큰 모순은 내가 수치의 땅으로 기억되는 (그리고 가까이 하게 되면 이를 다시 경험하게 될) 한국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해석되지 않은 채 두려움과 상처로 남아 있는 한국에서의 경험들과 ‘한국’과 점점 멀어지면서 느끼는 상실감이 번아웃의 원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공부가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불교와 노자 등을 공부할 수 있는 한국인 모임을 찾았다. 돌이켜 볼 때 당시 나에게 공부만큼 중요했던 것은 한국인들과의 연결이었다.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내 모습 드러내고 싶었다. 한국에서 신뢰할만한 몇몇의 이성애자들에게만 커밍 아웃을 했었다. 미국에서도 나처럼 한국에서 탈주한 게이 친구들 이외의 다른 한국인들과 연결되기 쉽지 않았다. 특정 종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한인 사회는 매우 보수적이고 소수자에 대한 배제가 정교하게 이뤄지는 공동체였다. 한국인들과 가까워지게 되면 차별과 소외를 다시 겪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여전히 갖고 있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계속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해답이 없다고 생각하여 그냥 묻어두고 살았다.       마침 코로나의 여파로 한국의 몇몇 인문학 강의가 온라인으로 개설 되었다. 불교와 주역의 기초적인 것을 훑는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 처음엔 나를 드러내기가 망설여졌다. 한국인 공부 모임에서의 커밍 아웃은  미국 생활에서 비교적 자연스럽게 나를 드러내는 일과 다르게 느껴졌다. 자신을 숨기게 만들었던 한국 사회의 폐쇄성과 폭력성이 고정된 이미지로 자리잡고 있었다. 기회가 생겼을 때 난 약간의 용기를 내어 내가 퀴어라는 것과 한국에서 살기 어려워 미국으로 이주한 사실을 털어 놓았다. 다수의 한국인들이 모인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뤄진 최초의 커밍 아웃이었다. 같이 공부하는 선생님들은 다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 이후 난 보다 자유롭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몇몇 선생님들과는 학기가 끝난 이후에도 모임을 이어가는 관계가 되었다. 나에겐 자신을 오픈한 상태에서 ‘한국’과 다시, 새롭게 관계를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셈이었다.      그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2022년 “나이듦과 자기 서사” 세미나에 참여하게 되었다. 난 한국어로 글을 쓰고 싶었다. 소수자 작가들이 쓴 다양한 서사들을 접하면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경험과 복잡하게 응어리진 감정들을 하나씩 해석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글쓰기는 쉽지 않았다. 텍스트를 재해석하여 자기 성찰에 이르는 글쓰기는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해야하는 노동 집약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진심을 갖고,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는 발심을 한 게 가장 큰 수확이었다.             난 소수자로서의 위치로 인해 세상에 대해, 권력에 대해 많은 두려움을 갖고 살았다. 나에게 저항할 힘이 없다고 느꼈다. 그 과정에서 배제되었던 삶의 경험들을 한쪽 구석에 계속 쌓아 두었다. 이를 곱씹거나 드러내면 자책만 늘어날 것 같아서였다. 세미나에서 미니 자서전을 쓰면서 그간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난 생각보다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불확실함을 무릅 쓰고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는 환경을 찾아 여러 번 탈주를 했다. 내 여건에서 할 수 있는 나름의 저항이었다. 이로 인해 낯선 환경에 적응하여 사는 법을 배웠고 삶의 기예들을 익혔다. 다양한 소수성을 가진 사람들과 접속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두려움이 나의 취약함만은 아니었다. 이는 내 삶의 추동력으로 작동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두려움에 대한 재해석은 자신을 긍정하게 된 중요한 일이었다.      처음 ‘몸의 일기’ 연재를 권유받았을 때 망설임이 있었다. 그럼에도, 나의 초보적 글쓰기 수준을 알고 요청한 것이라 생각해 용감하게 덥썩 받아들였다. 나름 많은 공을 들여 글을 썼지만 거칠고 성근 서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글을 연재하면서 개인의 서사는 유동적이고 모순적이며 계속해서 새롭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사가 내게 생명력을 주는 삶의 비전으로 변용되기 위해선 꾸준한 공부가 우선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끝으로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만든 장을 마련해 주신 문탁샘과 매 회의 글에 꼼꼼한 피드백을 주신 겸목샘에게 감사드린다.              -------------------------------- 편집자 주 전 편을 다시 읽고 싶은 분은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s://moontaknet.com/?page_id=14955&category1=%EB%AA%B8%EC%9D%98+%EC%9D%BC%EA%B8%B0&mod=list&pageid=1
      해야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한국을 탈주한 퀴어다. 판에 박힌 일상과 화폐 증식의 압력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공부를 시작했다.       2015년, 난 유부남(有婦男)이 아닌 유부남(有夫男)이 되었다. 당시 4년 째 만나고 있었던 파트너와 결혼을 했다. 그 해 연방 대법원의 판결로 미국 전역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덕분이었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결혼은 인생의 선택지로 존재하지 않았다. 동성혼이 언제 현실화될지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 안정된 관계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은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여전히 나의 베프가 되어주고 있는 파트너와의 합법적인 결혼으로 나는 (물질적 성공으로서가 아닌) 게이로서의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한 셈이다. 동네에서, 직장에서 우리를 법적 커플로 존중해 주었다. 세금 감면, 의료 보험의 배우자 등록, 병원에서의 보호자 역할 등 이성애 커플과 똑같은 혜택들도 받게 되었다. 결혼 후 난 공공 영역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얻었다.  드디어 내 인생에서 길운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나의 성정체성이 받아들여지는 환경에서 살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코로나 위기가 터지기 몇 달 전, 일종의 번아웃을 겪었다. 몇 달 동안 불면증이 지속 되었고 우울감과 무기력이 찾아왔다. 여러 모로 볼 때 삶의 통상적 지표들은 우상향하고 있는 중이 었다. 번아웃은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여러 원인으로 인해 일어났을 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건 이로 인해 나를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 생활이 12년 째였지만 난 많은 부분에서 여전히 ‘한국인’으로 살고 있었다. 아침엔 반드시 쌀밥에 나물 반찬을 먹어야 속이 편하고 든든했다. 내 혀와 위장은 어릴 적 먹고 자란 전라도 시골 음식들을 여전히 갈망했다.  미국 대통령의 혐오적 선동과 그칠 줄 모르는 거짓말에 혈압이 올라갔지만, 이보다는 차별 금지법 통과에 무관심한 한국 양대 정당의 정치인들을 볼 때 나의 분노 게이지는 더욱 높아졌다. 저녁마다 즐겨 보는  넷플릭스의 Watch list엔 미드보다 더 많은 한국 드라마로 채워졌다.          ‘한국’은 내게 모순 그 자체였다. 일 년 정도 휴직하고 한국 살이를 해볼까 생각하다가, 파트너의 법적 지위 문제와 혹시라도 그가 겪을 차별이 염려되어 금세 마음을 접었다. 자발적으로 한국을 탈주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한국 사회에 의해 유배 당했다는 억울함이 자주 올라왔다. 한국의 친구와 지인들과 관계가 멀어진 데 대해 아쉬움도 컸다. 이들과 계속 인연을 유지하고 싶었으나 어느새 연락이 끊어져 있었다. 대부분 내가 한국을 떠났는지 잘 알지 못하는데, 원거리에서 관계를 어떻게 지속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들과 거리를 둔 건 나였지만, 내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가슴이 아려올 떄가 많았다. 가장 큰 모순은 내가 수치의 땅으로 기억되는 (그리고 가까이 하게 되면 이를 다시 경험하게 될) 한국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해석되지 않은 채 두려움과 상처로 남아 있는 한국에서의 경험들과 ‘한국’과 점점 멀어지면서 느끼는 상실감이 번아웃의 원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공부가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불교와 노자 등을 공부할 수 있는 한국인 모임을 찾았다. 돌이켜 볼 때 당시 나에게 공부만큼 중요했던 것은 한국인들과의 연결이었다.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내 모습 드러내고 싶었다. 한국에서 신뢰할만한 몇몇의 이성애자들에게만 커밍 아웃을 했었다. 미국에서도 나처럼 한국에서 탈주한 게이 친구들 이외의 다른 한국인들과 연결되기 쉽지 않았다. 특정 종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한인 사회는 매우 보수적이고 소수자에 대한 배제가 정교하게 이뤄지는 공동체였다. 한국인들과 가까워지게 되면 차별과 소외를 다시 겪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여전히 갖고 있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계속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해답이 없다고 생각하여 그냥 묻어두고 살았다.       마침 코로나의 여파로 한국의 몇몇 인문학 강의가 온라인으로 개설 되었다. 불교와 주역의 기초적인 것을 훑는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 처음엔 나를 드러내기가 망설여졌다. 한국인 공부 모임에서의 커밍 아웃은  미국 생활에서 비교적 자연스럽게 나를 드러내는 일과 다르게 느껴졌다. 자신을 숨기게 만들었던 한국 사회의 폐쇄성과 폭력성이 고정된 이미지로 자리잡고 있었다. 기회가 생겼을 때 난 약간의 용기를 내어 내가 퀴어라는 것과 한국에서 살기 어려워 미국으로 이주한 사실을 털어 놓았다. 다수의 한국인들이 모인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뤄진 최초의 커밍 아웃이었다. 같이 공부하는 선생님들은 다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 이후 난 보다 자유롭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몇몇 선생님들과는 학기가 끝난 이후에도 모임을 이어가는 관계가 되었다. 나에겐 자신을 오픈한 상태에서 ‘한국’과 다시, 새롭게 관계를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셈이었다.      그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2022년 “나이듦과 자기 서사” 세미나에 참여하게 되었다. 난 한국어로 글을 쓰고 싶었다. 소수자 작가들이 쓴 다양한 서사들을 접하면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경험과 복잡하게 응어리진 감정들을 하나씩 해석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글쓰기는 쉽지 않았다. 텍스트를 재해석하여 자기 성찰에 이르는 글쓰기는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해야하는 노동 집약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진심을 갖고,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는 발심을 한 게 가장 큰 수확이었다.             난 소수자로서의 위치로 인해 세상에 대해, 권력에 대해 많은 두려움을 갖고 살았다. 나에게 저항할 힘이 없다고 느꼈다. 그 과정에서 배제되었던 삶의 경험들을 한쪽 구석에 계속 쌓아 두었다. 이를 곱씹거나 드러내면 자책만 늘어날 것 같아서였다. 세미나에서 미니 자서전을 쓰면서 그간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난 생각보다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불확실함을 무릅 쓰고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는 환경을 찾아 여러 번 탈주를 했다. 내 여건에서 할 수 있는 나름의 저항이었다. 이로 인해 낯선 환경에 적응하여 사는 법을 배웠고 삶의 기예들을 익혔다. 다양한 소수성을 가진 사람들과 접속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두려움이 나의 취약함만은 아니었다. 이는 내 삶의 추동력으로 작동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두려움에 대한 재해석은 자신을 긍정하게 된 중요한 일이었다.      처음 ‘몸의 일기’ 연재를 권유받았을 때 망설임이 있었다. 그럼에도, 나의 초보적 글쓰기 수준을 알고 요청한 것이라 생각해 용감하게 덥썩 받아들였다. 나름 많은 공을 들여 글을 썼지만 거칠고 성근 서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글을 연재하면서 개인의 서사는 유동적이고 모순적이며 계속해서 새롭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사가 내게 생명력을 주는 삶의 비전으로 변용되기 위해선 꾸준한 공부가 우선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끝으로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만든 장을 마련해 주신 문탁샘과 매 회의 글에 꼼꼼한 피드백을 주신 겸목샘에게 감사드린다.              -------------------------------- 편집자 주 전 편을 다시 읽고 싶은 분은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s://moontaknet.com/?page_id=14955&category1=%EB%AA%B8%EC%9D%98+%EC%9D%BC%EA%B8%B0&mod=list&pageid=1
문탁
2023.12.21 | 조회 240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 (2022. 7~2023.12).     ** <2023 양생프로젝트 '취약한 몸들의 연대와 돌봄사회' - 파이널 에세이 데이(12.9)> 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난잡함 선언 - 새벽이생추어리 돌봄과 글쓰기     돌봄care에 연루되고 있다. 매주 돼지를 돌보면서, 돌봄을 주제로 하는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그리고 매월 돌봄 에세이를 연재하면서.   돌봄은 반복된 행위이자, 확장된 실천이었고, 이질적인 존재들과 함께하는 세계 만들기, 읽기와 쓰기였다. 돌봄을 중심으로 과거를 재구성하면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돌봄'과 '글쓰기'가 분리되지 않고 상호의존적일 때 어떤 실천으로 이어질까?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만드는 세계에 참여할 때 존재는 어떻게 변형될까? ‘난잡함promiscuousness과 함께하기’라는 다종multispecies간 돌봄 정치학을 구상해볼 수 있을까?   이 글은 돌봄 현장에서 난잡하게promiscuous 뒤얽히는 종들species의 자취를 더듬는다.     1. 돼지와 마주침   2022년 어느 여름날.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 모집 공고를 읽고 있다.   “돌봄으로 새벽이와 잔디의 삶에 연대하는 보듬이를 모집합니다."   생추어리sanctuary란 동물이 가능한 평생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조성된 안식처를 말한다.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돌봄 활동가)로 지원해서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구조된 돼지 새벽, 그리고 실험동물로 태어나 안락사 직전에 구조된 돼지 잔디를 만났다. 나는 매주 그들을 돌보았다. 밥과 물을 주고, 설거지를 하고, 똥을 줍고, 땅을 정비하고, 약을 바르고, 잠자리를 정돈하며 그들과 밀접 접촉했다. 그러다 연말에 도착한 문탁 선생님의 메세지.   "내년에 생추어리 돌봄일지를 인문약방에 기록해보면...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 (2022. 7~2023.12).     ** <2023 양생프로젝트 '취약한 몸들의 연대와 돌봄사회' - 파이널 에세이 데이(12.9)> 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난잡함 선언 - 새벽이생추어리 돌봄과 글쓰기     돌봄care에 연루되고 있다. 매주 돼지를 돌보면서, 돌봄을 주제로 하는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그리고 매월 돌봄 에세이를 연재하면서.   돌봄은 반복된 행위이자, 확장된 실천이었고, 이질적인 존재들과 함께하는 세계 만들기, 읽기와 쓰기였다. 돌봄을 중심으로 과거를 재구성하면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돌봄'과 '글쓰기'가 분리되지 않고 상호의존적일 때 어떤 실천으로 이어질까?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만드는 세계에 참여할 때 존재는 어떻게 변형될까? ‘난잡함promiscuousness과 함께하기’라는 다종multispecies간 돌봄 정치학을 구상해볼 수 있을까?   이 글은 돌봄 현장에서 난잡하게promiscuous 뒤얽히는 종들species의 자취를 더듬는다.     1. 돼지와 마주침   2022년 어느 여름날.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 모집 공고를 읽고 있다.   “돌봄으로 새벽이와 잔디의 삶에 연대하는 보듬이를 모집합니다."   생추어리sanctuary란 동물이 가능한 평생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조성된 안식처를 말한다.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돌봄 활동가)로 지원해서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구조된 돼지 새벽, 그리고 실험동물로 태어나 안락사 직전에 구조된 돼지 잔디를 만났다. 나는 매주 그들을 돌보았다. 밥과 물을 주고, 설거지를 하고, 똥을 줍고, 땅을 정비하고, 약을 바르고, 잠자리를 정돈하며 그들과 밀접 접촉했다. 그러다 연말에 도착한 문탁 선생님의 메세지.   "내년에 생추어리 돌봄일지를 인문약방에 기록해보면...
경덕
2023.12.21 | 조회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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