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낯설고도 아름다운 -[망명과 자긍심] 을 읽고 /코투

문탁
2023-12-3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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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금껏 내가 만난 가장 낯선 작가였다.

 

책을 읽기 전, 단톡방에 올라온 저자 일라이 클레어의 사진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여자라고 들었는데, 두 귀가 다 드러난 반삭에 가까운 짧은 머리, 두툼한 안경을 낀 얼굴에 넓은 어깨, 지퍼 달린 낡은 녹색 점퍼... ‘남자같은 여자’ 내가 갖고 있는 단어의 수준에서 나는 이렇게밖에 정의내릴 수 없었다. 그런데,

 

 

 

 

 

 

글을 보니, 그는 ‘젠더 퀴어’란다. 무슨 뜻이지? 동성애자인가? 소수자 용어에 낯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퀴어는 동성애자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퀴어란, 태어날 때 사회(의사)가 지정해준 생물학적 성과 자기 정체성으로서의 성이 일치하지 않은 사람을 통칭한다. 거기에는 여자지만 남자보다 여성에게 성적으로 더 끌리는 사람, 남녀 모두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는 사람, 사회에서 훈육되는 여성성에 부합하지 않는 여자, 자신을 굳이 남녀이분법에 놓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 … 그러다 보니 나도 퀴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가부장제 사회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미디어와 문학의 일방적인 이성애적 세례가 없었다면, 혹은 대학 시절 다이크 공동체를 만났다면, 나도 지금과는 다른 젠더가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에 대한 소개를 좀 더 해보자. 그는 1963년생, 미국 오리건주 시골 벌목 노동자 마을에서 백인 중산층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지정성별로는 여성이지만 자신이 소녀라는 걸 확신할 수 없는 젠더 퀴어였고, 선천적 뇌병변 장애인으로 어려서부터 지진아, 불구, 원숭이 같은 조롱과 비난을 들으며 자랐다. 그는 아주 어린 시기부터 아버지와 그 친구들로부터 성폭력과 물리적 폭력을 당한 친족성폭력 생존자이기도 하다.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기 위해 큰 도시로 온 뒤 다이크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퀴어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퀴어, 장애, 노동, 환경 운동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지금껏 내가 만난 가장 낯선 작가이다. 다양한 소수자성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렵다. 그에게 공감하고 싶은데, 공감은커녕 이해조차 쉽지 않다. 그런데 시인이기도 한 그의 글은 나를 매료시켰다. 그래서 그가 표현한 인상적인 비유 세 개를 중심으로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1.은유로서의 산

 

은유로서의 산은 자본주의, 가부장제, 백인 우월주의의 고된 일상 속에서 뼈가 으스러진,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의 삶 속에 크게 다가온다.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버둥거리며 힘겹게 산에 오르고, 그 산을 기준으로 스스로를 평가하고, 거기서 실패를 겪고, 그 그림자에 묻혀 살아 왔을까.(41쪽)

 

은유로서의 산은 두 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먼저, 산이 갖는 높이와 모양의 특성상 계급 피라미드가 떠오르고, 그 다음엔 산꼭대기를 뜻하는 정상(頂上)이라는 단어가 갖는 동음이의어로서의 정상(正常, normality)이라는 단어도 떠 오른다. 일라이 클레어는 ‘뼈가 으스러진’ 그래서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에게 산은 슈퍼장애인의 이미지로 다가온다고 한다. 슈퍼장애인, 자신의 장애를 극복한 혹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비장애인(정상인)보다 우월한 혹은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의 위대함. 사회적 성취와 인정, 귀함과 명예를 얻은 사람, 돋보임. 우린 이런 사람들이 부럽다. 그때 어디선가 이런 말이 들린다. ‘너희들은 게으르고 어리석고 나약하고 추하기 때문에 거기 아래 바닥에 살고 있는 거라고.’(41쪽) “누구든지 능력만 있다면,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사다리 위로 오를 수 있다고.”

 

누구나 산의 높은 곳으로 오르고 싶어하지만, 누구는 너무도 쉽게 그곳에 오르지만, 누구는 아무리 애를 써도 오를 수 없다. 설령, 만에 하나 그곳에 오른다 할지라도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지독한 외로움’이라고 일라이 클레어는 말한다. 그는 자신의 달리기 경험에서 사람들이 보여줬던 반응들과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떠올리며, 슈퍼장애인 이야기가 결코 장애인을 위한 이야기가 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슈퍼장애인 서사는 비장애인의 우월감을 부각하고 장애는 성취와 모순된다는 믿음을, 장애는 무능과 짝이라는 믿음을 유포한다. 이것은 장애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노들장애학 궁리소 노규호 님의 「마이너 서평」 중에는, 뇌병변 장애인으로 평소 학교에 가지 못한 것이 오랜 한이었던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시위에 참여하게 되면서부터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에 대해 알게 된다. 그것은 자신이 학교에 다니지 못한 것이 자신의 뇌병변 장애 때문이 아니라 뇌병변 장애인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학교 제도, 또 장애인은 공부해도 소용없다는 잘못된 사회적 인식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자기 몸에 붙어있던 무거운 ‘자기 탓’으로부터 벗어나게 됐다는 해방의 이야기다.

 

책을 읽으면서 깨닫는다. 우리들이 높은 곳에 오를 수 없는 이유는 우리들의 장애 때문이라기보다, 다름을 차별로 만들어 놓고 정상/비정상으로 구분지어 온 역사 때문이라는 것을. 거기에는 비장애 중심주의뿐 아니라,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젠더이분법, 인종차별주의 등 수많은 차별의 역사가 맞물려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 나는 일라이 클레어와 함께 정상(正常, normality)으로 오르기를 거부하고, 위계와 불평등에 저항하며 다양한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은유로서의 산의 폭발’에 대해 생각해 본다.

 

 

 

 

 

 

2.집으로서의 몸

 

나는 차별과 억압에 저항하는 다양한 소수자 운동들이 선명한 노선과 치열한 투쟁으로 우리 사회를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모시켜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에 대해 진심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일라이 클레어는 그런 선명성과 단일쟁점 운동이 가져온 문제와 한계를 지적한다. 예컨대, 도시에 거주하는 중산층 환경운동가들이 환경파괴에 대해 논할 때 벌목노동자를 비난하고 배척하는 경우가 많다 벌목노동자들을 ‘무식한 짐승(레드넥)’, 혹은 ‘산림파괴의 공범’이라고 묘사할 때 활동가들과 벌목노동자들은 대립한다. 이에 일라이 클레어는 환경운동가들에게 벌목노동자들과 연대할 것을 제안한다. 벌목노동자 역시 자본주의의 착취 대상이며, 산림파괴로 인해 일자리를 잃고 생계에 위협을 받는 피해자다. 환경파괴에서 막강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자연 파괴에 누가 어떻게 공모하고 있는가? 종이가 나무로부터 온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면서 무분별한 자원개발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우리들은 무고한가? 환경을 지키고 벌목노동자들도 살리는 방법을 찾자. 착취의 구조를 끝내기 위해 피상적인 해결책을 버리고 복잡함(트러블) 속으로 들어가자고. 이런 주장은 그가 지닌 다수적 소수자성으로 인해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장애가 있는 나의 몸... 내 몸은 침해당했다...나의 백인 몸...나의 퀴어 몸... 집으로서의 몸, 하지만 몸이 결코 단일하지 않다는 것이 이해될 때에만 수많은 다른 몸들이 내 몸을 따라다니고 내 몸에 힘을 보탠다는 것이 이해될 때만 몸은 집일 수 있다... 백인, 시골, 노동계급 가치관을 가진 몸...(55~57쪽)

 

‘집으로서의 몸’이 의미하는 것은 다중적이고 복합적인 정체성이 아닐까 싶다. 몸으로서의 우리가 갖고 있는 정체성은 꽤 복합적이다. 예컨대 장애인의 경우만 하더라도 가령, 장애의 종류에 따라, 장애 정도에 따라, 또 그가 가진 재산 정도에 따라, 성별에 따라, 나이에 따라, 몸이 가진 각자의 고유한 특성에 따라 경험하는 차별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린 이런 차이들을 무시하고, 장애인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 일반화하는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장애여성이면서 장애여성 독립생활 지원센터 소장인 진은선 님은 장애여성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장애남성이 겪는 어려움과 다르며, 오히려 비장애여성들과 공유되는 점이 많다’고 했다. 시설에 있는 장애여성들이 독립생활을 주장할 때 흔히 듣는 말이, “너는 독립할 수 없어, 너 혼자 밥 못해 먹잖아.” “너 성폭력 당할 수도 있어. 넌 위험한 상황에서 도망칠 수도 없잖아”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장애여성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여자는 미숙하고 자기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없으니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인식. 이것은 비장애여성들이 겪는 곤경이기도 하다. 밥 해 먹는 문제는 어떤가? 장애남성이나 비장애남성의 경우, 스스로 밥 해 먹지 않아도, 아내나 다른 사람이 해주는 밥을 먹고 살아도 독립할 수 없다고 하지 않는다. 밥하는 것은 여성의 일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밥할 수 있는 능력이 누구에겐 독립의 요건이 되지만 누구에겐 그렇지 않다.

 

장애여성이 겪는 어려움은 장애인 차별주의와 여성 차별주의의 복합적 산물이며, 젠더 측면에서 장애여성과 비장애여성은 연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소수자성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겹쳐있을 수 있고, 그게 겹쳐질 때는 문제가 좀 다를 수 있다는 것, 이런 것을 다중쟁점 또는 교차성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3. 심장 속의 돌

 

1) 열세 살 때 내가 지속적으로 맺었던 관계의 대부분은 인간 세상에 속해있지 않았다. 나는 돌을 수집했다... 나는 은둔자가 되길 원했다. 소년도 소녀도 아닌 채, 내 돌과 나무들과 함께 홀로 있고 싶었다. (251쪽)

 

2) 때때로 내 심장에 작은 회색 돌이 가득 채워지고, 그 돌들은 결코 내 체온만큼 데워지지 않는 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내 심장 속에서 달그락거리는 돌들이, 내 주머니 안에서 쉬고 있는 돌들이 내 유일한 진짜 몸이었다.(265쪽)

 

3) 내 주머니와 심장을 바깥으로 뒤집어 그 안에 담긴 돌을 늘어놓는다. 한때 내가 뒤에 숨어 살 았고 아직도 피난처로 사용하는 벽의 반질반질한 윗면에 돌을 나란히 올려놓는다. 돌들은 햇살 에 반짝인다.(272쪽)

 

자신을 따돌리는 아이들로부터 돌을 맞고 원숭이, 지진아라 불릴 때마다, 아버지와 그 친구들로부터 고문과도 같은 학대를 당할 때마다, 일라이 클레어는 몸의 감각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버렸다고 했다. 그 정도로 그를 향한 외부의 폭력은 견디기 힘든 상처를 남겼다. 그는 부서진 몸을 안고 숲으로 도망쳤으며, 그곳에서 은둔자로 살고자 했다. 나는 ‘심장 속의 돌’ 옆에 ‘부서진 몸’, ‘상처’, ‘공포’, ‘수치심’ 이라고 적어본다. 그는 아무도 없는 숲에서 자기에게 가장 한결같고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상처(심장 속에 달그락 거리는 돌)를 안고 은둔하고 싶어했다. 자신의 아픔은 치유될 수 없다고 여겼으리라.

 

그랬던 그의 삶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생긴다. 도시로의 망명과 다이크들과의 만남이었다. 진보적인 도시의 퀴어 공동체에서 그는 안전함과 행복을 느꼈다. 그곳에서 자신의 다이크 정체성을 찾고, 은둔자로 살고 싶었던 마음을 버렸다. 불구자들 사이에서 자신의 뇌병변과 힘센 육체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고, 무엇보다 페미니즘 활동을 통해 과거 자신이 겪은 성적 학대와 폭력을 더 큰 맥락에서 인식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자신의 몸속 깊이 새겨져 집요하게도 사라지지 않을 공포, 상처, 수치심의 기억을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털어놓기 시작한다.

 

내 아버지는 수많은 이유로 나를 강간했다. 그리고 그에게 폭력을 당하면서 나는 여자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이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나의 이 특정한 몸으로 산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를 배웠다. 그리고 그런 훈육은 더 큰 권력구조와 위계를 뒷받침하고 있었다. (260쪽)

 

아버지는 평소에는 그를 거의 아들처럼 대했다. 그런데 어떤 때는 또 굉장히 여성적으로 그를 착취했다. 그의 아버지는 교사였다. 나름 배운 사람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아버지는 그럴 수 있으니까 그랬던 거다. 나는 ‘그럴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구조의 문제’이고 ‘권력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어떤 부모는 아이들을 강간하고 어떤 부모는 때리고 어떤 부모들은 장애인 아이를 그 아이가 싼 똥 위에 몇 시간이고 앉혀 놓는다. 어른들은 그런 행위를 함으로써 무의식적으로 아이들에게 권력이 무엇인지, 소녀로, 아이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게 무엇인지 배우게 한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은 아버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3)의 ‘심장 밖으로 꺼내진 돌’, ‘햇살 아래 반짝이는 돌’은 내면의 억압과 수치심을 해체하고 밖으로 나온 이야기로 해석된다. 세상과 자기에 대한 이해를 거친 뒤 나온 그의 이야기는 과거의 공포와 상처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담백하고 간결하다. 그런 이야기는 힘이 있다. 그 이야기의 힘이 우리를 매료시키는 것 같다.

 

 

 

 

마무리

 

책을 읽으며 작가가 겪은 고난의 행군과 해방의 기쁨을 보았다. 그것은 도둑맞은 몸을 되찾는 사건이었고, 거짓과 통념으로부터 ‘망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수치심을 버리고 ‘자긍심’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행군 중이다. 단일쟁점으로 나뉘어진 운동세력들 간의 연대를 모색하면서. 비극은 두 세력이 충돌하는데 둘의 입장이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가 정당할 때 생긴다. 사람들은 그런 복잡함을 싫어해서 하나만 선택하라고 강요하기 십상인데, 그 강요가 또 다른 폭력이 된다. 그래서 활동가들에게 필요한 것이 다면적 시각이라고 강조한다. 나는 그런 작가의 논지에 깊이 공감하며 인간과 세계에 대한 작가의 이해에 호흡을 맞추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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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명상
          요요 문탁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화두다     <일상 명상> 연재를 시작하며   작년 1월에 ‘요요의 월간명상’을 시작했는데, 6개월을 쉬고,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셋이다. 지난해에 불교 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들과 번갈아 가며 새로 리뉴얼한 <일상명상>을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요요의 월간명상’ 3회차 글에서 나는 문탁에서 함께 명상하는 친구들을 만들고 싶다는 바램을 밝혔다. 그런데 정말로 명상 친구가 만들어졌다.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 코너는 이제 요요, 오영, 도라지, 세 사람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쓴다. 아마 3인 3색의 명상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이 글은 우리가 어떻게 명상 친구가 되었는지를 돌아보는 이야기이다.     사띠 수행을 공부하다   지난해 가을 불교학교에서 우리가 공부한 것은 사띠(sati) 수행이다. 팔정도 중 여섯 번째가 정념(正念)인데, 정념은 ‘바른 사띠’를 말한다. 그만큼 불교 수행에서 사띠가 중요한 개념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띠에는 ‘기억한다’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핀다’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영어로는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순수한 주의집중(bare attention), 알아차림(awareness, noting) 등을 쓰기도 한다.   우리말 번역어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 최초로 니까야를 한글로 완역한 전재성님은 사띠를 ‘새김’이라고 번역했다. 마음에 새긴다고 할 때의 새김이다. 새김은 사띠의 첫 번째 의미인 ‘기억한다’, ‘잊지 않는다’의 뉘앙스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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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2024.01.10 | 조회 439
로이의 근사한 양생
        건달바와 둥글레를 거쳐 로이로 인문약방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있다. 양생은 가장 가까운 일상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를 빼놓지 않은 近思하고 近似한 양생 이야기를 하고 싶다.        새해는 매번 다르다   2024 갑진년은 청룡의 해다. 갑(甲)은 목화토금수의 오행 중 목(木, 나무)이고 목의 색은 청색이다. 진(辰)이 십이지지에서 용이니 갑진을 청룡이라고 한다. 보통 여기까지 알아보고 청룡 이상의 의미를 찾지 않는다. 다들 재물복, 건강, 마음의 평화를 빈다거나 운동, 금연, 공부 등 비슷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육십갑자로 이루어진 동양의 역법은 매해, 매달, 매일, 매시 달라지는 하늘과 땅의 기운을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라는 글자로 표현하고 있다. 시간의 단위이지만 시간뿐 아닌 공간을 채우는 전체적 기운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매번 오는 새해는 같은 새해가 아니다. 뻔한 새해 계획에서 벗어나 보자.        이렇게 매년 달라지는 간지(천간과 지지)가 의미하는 기운은 운기학과 명리학에서 중요하게 쓰인다. 운기학에서는 간지의 관계성에서 파생되는 기운이 그해의 기후와 몸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요즘처럼 이상 기후가 자주 나타나고 안정적인 주거 환경에서는 운기를 안다고 해도 별 소용이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약국에 있다 보면 기후와 관련해서 비슷한 증상으로 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예컨대 갑자기 추워지면 비위가 약한 사람들이 줄줄이 찾아온다. 추위에 대비할 에너지 비축이 평소에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져 몸에 이상이 온 다. 그러니 운기를 아주 무시할 수는 없다. <동의보감>을 찾아보니 갑진년 운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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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2024.01.08 | 조회 355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2월은 분주한 달이다. 공동체에서 1년간 공부한 내용을 갈무리한 에세이 발표도 가야하고 드문드문 송년회 일정도 있다. 주일에 이런 일정이 잡히면 휴일 걷기는 자연스럽게 미루어졌다. 그 사이 흐린 날까지 겹치며 걷기가 점점 더 귀찮아졌다. 12월 중순을 넘기니 몸놀림이 둔해졌지만 모른 척 하던 어느 날, 공동체와 연결되어 알게 된 지인이 공간을 새로 열었다고 해서 축하방문을 하게 되었다. 미리 와있던 분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는데 걷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 분은 걷기강좌를 연다고 했고, 지인은 23년 한 해 동안 줄기차게 걸어서 남산 주변으로 열 가지가 넘은 자신만의 코스도 있다고 했다. 그 효과를 간증하는데, 다 아는 얘기도 더 실감나게 들렸다. 지인은 최근 새로운 책을 냈는데 그만큼 걸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했다. 게을러지던 마음에 조금씩 탱탱한 기운이 서려졌다.    집에 돌아와서 지인이 알려준 유튜브를 검색했다. 걷기혁명이라고 적힌 썸네일을 비롯 기적의 걷기라느니 등등 제목도 현란했다. 그 중에 지인이 알려준 걷기 전문가로 소개된 영상을 찾아서 바르게 걷는 방법을 보았다. 영상에서 알려준 바로는, 발뒤꿈치부터 착지하면서 앞으로 내딛으며 걷는데, 이 때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면서 평소 보폭보다 10센티 정도 더 크게 걷는다는 기분으로 걸으라고 했다....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2월은 분주한 달이다. 공동체에서 1년간 공부한 내용을 갈무리한 에세이 발표도 가야하고 드문드문 송년회 일정도 있다. 주일에 이런 일정이 잡히면 휴일 걷기는 자연스럽게 미루어졌다. 그 사이 흐린 날까지 겹치며 걷기가 점점 더 귀찮아졌다. 12월 중순을 넘기니 몸놀림이 둔해졌지만 모른 척 하던 어느 날, 공동체와 연결되어 알게 된 지인이 공간을 새로 열었다고 해서 축하방문을 하게 되었다. 미리 와있던 분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는데 걷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 분은 걷기강좌를 연다고 했고, 지인은 23년 한 해 동안 줄기차게 걸어서 남산 주변으로 열 가지가 넘은 자신만의 코스도 있다고 했다. 그 효과를 간증하는데, 다 아는 얘기도 더 실감나게 들렸다. 지인은 최근 새로운 책을 냈는데 그만큼 걸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했다. 게을러지던 마음에 조금씩 탱탱한 기운이 서려졌다.    집에 돌아와서 지인이 알려준 유튜브를 검색했다. 걷기혁명이라고 적힌 썸네일을 비롯 기적의 걷기라느니 등등 제목도 현란했다. 그 중에 지인이 알려준 걷기 전문가로 소개된 영상을 찾아서 바르게 걷는 방법을 보았다. 영상에서 알려준 바로는, 발뒤꿈치부터 착지하면서 앞으로 내딛으며 걷는데, 이 때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면서 평소 보폭보다 10센티 정도 더 크게 걷는다는 기분으로 걸으라고 했다....
기린
2024.01.06 | 조회 308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세계 끝의 가족 2023.12.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어릴 적 집에 오신 손님들(대부분 친지들)은 내 작은 손에 용돈을 쥐어주시곤 했다. 적게는 만원에서 많게는 3만원. 퍼런 지폐는 어린 내가 봤을 때도 꽤나 듬직해 보였다. 그 용돈은 넉넉치 않은 살림을 사느라 늘 고단해보였던 해피님의 고민거리를 아주 조금이지만 덜어 주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100원, 200원 정도는 남는 이벤트였다. 취학 전 아동 시절이었다. ​ 그 때 배웠다. 어른이 염려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용돈은 적당히 공손하게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그 용돈은 단지 '용돈'만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과한 거절은 '선물 경제'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퇴색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시절 나는 나름 증여와 순환의 정신을 잠시 엿본게 아닐까? 체면을 상하지 않게 선물하는 예절, 받는 사람의 태도 등 '돈과 관계의 철학'을 조금 익힌 셈인지도 모르겠다. ​ ​ 고릿적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연재의 발단과도 조금은 연결되기 때문이다.  ​ 작년 가을. 우리는 그동안 각자 모은 돈에 대출금을 좀 보태 집을 사고 이사를 했다. 문탁에서 공부하다 만난 동학 둘이 '쫌 다른' 가족으로 살아보겠다는 포부를 밝힌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모셔 조촐하나마 집들이를 계획했었는데,...
  세계 끝의 가족 2023.12.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어릴 적 집에 오신 손님들(대부분 친지들)은 내 작은 손에 용돈을 쥐어주시곤 했다. 적게는 만원에서 많게는 3만원. 퍼런 지폐는 어린 내가 봤을 때도 꽤나 듬직해 보였다. 그 용돈은 넉넉치 않은 살림을 사느라 늘 고단해보였던 해피님의 고민거리를 아주 조금이지만 덜어 주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100원, 200원 정도는 남는 이벤트였다. 취학 전 아동 시절이었다. ​ 그 때 배웠다. 어른이 염려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용돈은 적당히 공손하게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그 용돈은 단지 '용돈'만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과한 거절은 '선물 경제'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퇴색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시절 나는 나름 증여와 순환의 정신을 잠시 엿본게 아닐까? 체면을 상하지 않게 선물하는 예절, 받는 사람의 태도 등 '돈과 관계의 철학'을 조금 익힌 셈인지도 모르겠다. ​ ​ 고릿적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연재의 발단과도 조금은 연결되기 때문이다.  ​ 작년 가을. 우리는 그동안 각자 모은 돈에 대출금을 좀 보태 집을 사고 이사를 했다. 문탁에서 공부하다 만난 동학 둘이 '쫌 다른' 가족으로 살아보겠다는 포부를 밝힌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모셔 조촐하나마 집들이를 계획했었는데,...
무사
2023.12.31 | 조회 386
인문약방 에세이
      2학기 공부는 유독 일상과 교차되었다. 길을 걷다 장애를 가진 동물과 마주친다든가 갑자기 호떡이 먹고 싶어져 농인인 상인과 소통을 해야하는 일 등으로 말이다.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던 수십 년 동안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다’는 것과 장애를 나와 관련된 이슈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차별이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공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관련없어 보였던 군대와 장애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군에서는 운동신경이 없어서 혹은 경험이 많지 않아 헛발질을 일삼고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의 스포츠 경기를 일컫어 ‘장애인 00’이라고 불렀다. 병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장병들은 “장애인이냐? 고문관이냐?”는 폭언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군대야말로 인간 사회를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와 우생학 정책’의 생생한 현장으로 보였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한국의 징병제도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만을 전쟁에 필요한 자원으로 호명해왔다. 군에서 장애인은 철저하게 비가시화되어 있었지만, 비하할 만한 상황이나 대상이 필요하면 여지없이 소환되었다. ‘군인되기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며 그 누구도 장애인되기를 원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에이블리즘의 원형, 군대    군에는 장애인이 ‘없다’. ‘신체의 정상성’으로 대표되는 조직인 군은 입영단계에서 법령(국방부령 병역판정신체검사등검사규칙)에 근거하여 ‘그냥 인간’을 ‘등급내 인간’과 ‘등급외 인간’으로 분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의 군내 진입은 ‘원천’ 차단된다. 장애인이 없으니 장애인 편의시설도 필요없다. 장애인 화장실은 고사하고 휠체어 픽토그램조차 보지 못했다. 군 복무 중 장애가 생기는 경우는 어떨까? 장애의 원인이...
      2학기 공부는 유독 일상과 교차되었다. 길을 걷다 장애를 가진 동물과 마주친다든가 갑자기 호떡이 먹고 싶어져 농인인 상인과 소통을 해야하는 일 등으로 말이다.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던 수십 년 동안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다’는 것과 장애를 나와 관련된 이슈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차별이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공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관련없어 보였던 군대와 장애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군에서는 운동신경이 없어서 혹은 경험이 많지 않아 헛발질을 일삼고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의 스포츠 경기를 일컫어 ‘장애인 00’이라고 불렀다. 병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장병들은 “장애인이냐? 고문관이냐?”는 폭언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군대야말로 인간 사회를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와 우생학 정책’의 생생한 현장으로 보였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한국의 징병제도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만을 전쟁에 필요한 자원으로 호명해왔다. 군에서 장애인은 철저하게 비가시화되어 있었지만, 비하할 만한 상황이나 대상이 필요하면 여지없이 소환되었다. ‘군인되기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며 그 누구도 장애인되기를 원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에이블리즘의 원형, 군대    군에는 장애인이 ‘없다’. ‘신체의 정상성’으로 대표되는 조직인 군은 입영단계에서 법령(국방부령 병역판정신체검사등검사규칙)에 근거하여 ‘그냥 인간’을 ‘등급내 인간’과 ‘등급외 인간’으로 분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의 군내 진입은 ‘원천’ 차단된다. 장애인이 없으니 장애인 편의시설도 필요없다. 장애인 화장실은 고사하고 휠체어 픽토그램조차 보지 못했다. 군 복무 중 장애가 생기는 경우는 어떨까? 장애의 원인이...
문탁
2023.12.31 | 조회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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