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연대기 #6 - 다시, 새롭게 접속하다

문탁
2023-12-21 10:55
240

 

 

 

해야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한국을 탈주한 퀴어다.

판에 박힌 일상과 화폐 증식의 압력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공부를 시작했다.

 

 

 

2015년, 난 유부남(有婦男)이 아닌 유부남(有夫男)이 되었다. 당시 4년 째 만나고 있었던 파트너와 결혼을 했다. 그 해 연방 대법원의 판결로 미국 전역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덕분이었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결혼은 인생의 선택지로 존재하지 않았다. 동성혼이 언제 현실화될지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 안정된 관계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은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여전히 나의 베프가 되어주고 있는 파트너와의 합법적인 결혼으로 나는 (물질적 성공으로서가 아닌) 게이로서의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한 셈이다. 동네에서, 직장에서 우리를 법적 커플로 존중해 주었다. 세금 감면, 의료 보험의 배우자 등록, 병원에서의 보호자 역할 등 이성애 커플과 똑같은 혜택들도 받게 되었다. 결혼 후 난 공공 영역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얻었다.  드디어 내 인생에서 길운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나의 성정체성이 받아들여지는 환경에서 살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코로나 위기가 터지기 몇 달 전, 일종의 번아웃을 겪었다. 몇 달 동안 불면증이 지속 되었고 우울감과 무기력이 찾아왔다. 여러 모로 볼 때 삶의 통상적 지표들은 우상향하고 있는 중이 었다. 번아웃은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여러 원인으로 인해 일어났을 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건 이로 인해 나를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 생활이 12년 째였지만 난 많은 부분에서 여전히 ‘한국인’으로 살고 있었다. 아침엔 반드시 쌀밥에 나물 반찬을 먹어야 속이 편하고 든든했다. 내 혀와 위장은 어릴 적 먹고 자란 전라도 시골 음식들을 여전히 갈망했다.  미국 대통령의 혐오적 선동과 그칠 줄 모르는 거짓말에 혈압이 올라갔지만, 이보다는 차별 금지법 통과에 무관심한 한국 양대 정당의 정치인들을 볼 때 나의 분노 게이지는 더욱 높아졌다. 저녁마다 즐겨 보는  넷플릭스의 Watch list엔 미드보다 더 많은 한국 드라마로 채워졌다. 

 

 

 

 

‘한국’은 내게 모순 그 자체였다. 일 년 정도 휴직하고 한국 살이를 해볼까 생각하다가, 파트너의 법적 지위 문제와 혹시라도 그가 겪을 차별이 염려되어 금세 마음을 접었다. 자발적으로 한국을 탈주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한국 사회에 의해 유배 당했다는 억울함이 자주 올라왔다. 한국의 친구와 지인들과 관계가 멀어진 데 대해 아쉬움도 컸다. 이들과 계속 인연을 유지하고 싶었으나 어느새 연락이 끊어져 있었다. 대부분 내가 한국을 떠났는지 잘 알지 못하는데, 원거리에서 관계를 어떻게 지속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들과 거리를 둔 건 나였지만, 내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가슴이 아려올 떄가 많았다. 가장 큰 모순은 내가 수치의 땅으로 기억되는 (그리고 가까이 하게 되면 이를 다시 경험하게 될) 한국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해석되지 않은 채 두려움과 상처로 남아 있는 한국에서의 경험들과 ‘한국’과 점점 멀어지면서 느끼는 상실감이 번아웃의 원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공부가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불교와 노자 등을 공부할 수 있는 한국인 모임을 찾았다. 돌이켜 볼 때 당시 나에게 공부만큼 중요했던 것은 한국인들과의 연결이었다.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내 모습 드러내고 싶었다. 한국에서 신뢰할만한 몇몇의 이성애자들에게만 커밍 아웃을 했었다. 미국에서도 나처럼 한국에서 탈주한 게이 친구들 이외의 다른 한국인들과 연결되기 쉽지 않았다. 특정 종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한인 사회는 매우 보수적이고 소수자에 대한 배제가 정교하게 이뤄지는 공동체였다. 한국인들과 가까워지게 되면 차별과 소외를 다시 겪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여전히 갖고 있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계속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해답이 없다고 생각하여 그냥 묻어두고 살았다.  

 

 

마침 코로나의 여파로 한국의 몇몇 인문학 강의가 온라인으로 개설 되었다. 불교와 주역의 기초적인 것을 훑는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 처음엔 나를 드러내기가 망설여졌다. 한국인 공부 모임에서의 커밍 아웃은  미국 생활에서 비교적 자연스럽게 나를 드러내는 일과 다르게 느껴졌다. 자신을 숨기게 만들었던 한국 사회의 폐쇄성과 폭력성이 고정된 이미지로 자리잡고 있었다. 기회가 생겼을 때 난 약간의 용기를 내어 내가 퀴어라는 것과 한국에서 살기 어려워 미국으로 이주한 사실을 털어 놓았다. 다수의 한국인들이 모인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뤄진 최초의 커밍 아웃이었다. 같이 공부하는 선생님들은 다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 이후 난 보다 자유롭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몇몇 선생님들과는 학기가 끝난 이후에도 모임을 이어가는 관계가 되었다. 나에겐 자신을 오픈한 상태에서 ‘한국’과 다시, 새롭게 관계를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셈이었다.   

 

그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2022년 “나이듦과 자기 서사” 세미나에 참여하게 되었다. 난 한국어로 글을 쓰고 싶었다. 소수자 작가들이 쓴 다양한 서사들을 접하면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경험과 복잡하게 응어리진 감정들을 하나씩 해석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글쓰기는 쉽지 않았다. 텍스트를 재해석하여 자기 성찰에 이르는 글쓰기는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해야하는 노동 집약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진심을 갖고,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는 발심을 한 게 가장 큰 수확이었다.  

 

 

 

 

 

난 소수자로서의 위치로 인해 세상에 대해, 권력에 대해 많은 두려움을 갖고 살았다. 나에게 저항할 힘이 없다고 느꼈다. 그 과정에서 배제되었던 삶의 경험들을 한쪽 구석에 계속 쌓아 두었다. 이를 곱씹거나 드러내면 자책만 늘어날 것 같아서였다. 세미나에서 미니 자서전을 쓰면서 그간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난 생각보다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불확실함을 무릅 쓰고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는 환경을 찾아 여러 번 탈주를 했다. 내 여건에서 할 수 있는 나름의 저항이었다. 이로 인해 낯선 환경에 적응하여 사는 법을 배웠고 삶의 기예들을 익혔다. 다양한 소수성을 가진 사람들과 접속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두려움이 나의 취약함만은 아니었다. 이는 내 삶의 추동력으로 작동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두려움에 대한 재해석은 자신을 긍정하게 된 중요한 일이었다.   

 

처음 ‘몸의 일기’ 연재를 권유받았을 때 망설임이 있었다. 그럼에도, 나의 초보적 글쓰기 수준을 알고 요청한 것이라 생각해 용감하게 덥썩 받아들였다. 나름 많은 공을 들여 글을 썼지만 거칠고 성근 서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글을 연재하면서 개인의 서사는 유동적이고 모순적이며 계속해서 새롭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사가 내게 생명력을 주는 삶의 비전으로 변용되기 위해선 꾸준한 공부가 우선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끝으로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만든 장을 마련해 주신 문탁샘과 매 회의 글에 꼼꼼한 피드백을 주신 겸목샘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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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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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2023-12-22 09:32

    해야님 연재 무한 잘읽었습니다.
    회가 넘어갈수록 편안하게 읽어지네요.

일상명상
          요요 문탁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화두다     <일상 명상> 연재를 시작하며   작년 1월에 ‘요요의 월간명상’을 시작했는데, 6개월을 쉬고,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셋이다. 지난해에 불교 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들과 번갈아 가며 새로 리뉴얼한 <일상명상>을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요요의 월간명상’ 3회차 글에서 나는 문탁에서 함께 명상하는 친구들을 만들고 싶다는 바램을 밝혔다. 그런데 정말로 명상 친구가 만들어졌다.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 코너는 이제 요요, 오영, 도라지, 세 사람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쓴다. 아마 3인 3색의 명상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이 글은 우리가 어떻게 명상 친구가 되었는지를 돌아보는 이야기이다.     사띠 수행을 공부하다   지난해 가을 불교학교에서 우리가 공부한 것은 사띠(sati) 수행이다. 팔정도 중 여섯 번째가 정념(正念)인데, 정념은 ‘바른 사띠’를 말한다. 그만큼 불교 수행에서 사띠가 중요한 개념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띠에는 ‘기억한다’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핀다’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영어로는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순수한 주의집중(bare attention), 알아차림(awareness, noting) 등을 쓰기도 한다.   우리말 번역어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 최초로 니까야를 한글로 완역한 전재성님은 사띠를 ‘새김’이라고 번역했다. 마음에 새긴다고 할 때의 새김이다. 새김은 사띠의 첫 번째 의미인 ‘기억한다’, ‘잊지 않는다’의 뉘앙스가 좀...
          요요 문탁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화두다     <일상 명상> 연재를 시작하며   작년 1월에 ‘요요의 월간명상’을 시작했는데, 6개월을 쉬고,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셋이다. 지난해에 불교 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들과 번갈아 가며 새로 리뉴얼한 <일상명상>을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요요의 월간명상’ 3회차 글에서 나는 문탁에서 함께 명상하는 친구들을 만들고 싶다는 바램을 밝혔다. 그런데 정말로 명상 친구가 만들어졌다.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 코너는 이제 요요, 오영, 도라지, 세 사람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쓴다. 아마 3인 3색의 명상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이 글은 우리가 어떻게 명상 친구가 되었는지를 돌아보는 이야기이다.     사띠 수행을 공부하다   지난해 가을 불교학교에서 우리가 공부한 것은 사띠(sati) 수행이다. 팔정도 중 여섯 번째가 정념(正念)인데, 정념은 ‘바른 사띠’를 말한다. 그만큼 불교 수행에서 사띠가 중요한 개념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띠에는 ‘기억한다’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핀다’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영어로는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순수한 주의집중(bare attention), 알아차림(awareness, noting) 등을 쓰기도 한다.   우리말 번역어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 최초로 니까야를 한글로 완역한 전재성님은 사띠를 ‘새김’이라고 번역했다. 마음에 새긴다고 할 때의 새김이다. 새김은 사띠의 첫 번째 의미인 ‘기억한다’, ‘잊지 않는다’의 뉘앙스가 좀...
요요
2024.01.10 | 조회 438
로이의 근사한 양생
        건달바와 둥글레를 거쳐 로이로 인문약방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있다. 양생은 가장 가까운 일상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를 빼놓지 않은 近思하고 近似한 양생 이야기를 하고 싶다.        새해는 매번 다르다   2024 갑진년은 청룡의 해다. 갑(甲)은 목화토금수의 오행 중 목(木, 나무)이고 목의 색은 청색이다. 진(辰)이 십이지지에서 용이니 갑진을 청룡이라고 한다. 보통 여기까지 알아보고 청룡 이상의 의미를 찾지 않는다. 다들 재물복, 건강, 마음의 평화를 빈다거나 운동, 금연, 공부 등 비슷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육십갑자로 이루어진 동양의 역법은 매해, 매달, 매일, 매시 달라지는 하늘과 땅의 기운을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라는 글자로 표현하고 있다. 시간의 단위이지만 시간뿐 아닌 공간을 채우는 전체적 기운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매번 오는 새해는 같은 새해가 아니다. 뻔한 새해 계획에서 벗어나 보자.        이렇게 매년 달라지는 간지(천간과 지지)가 의미하는 기운은 운기학과 명리학에서 중요하게 쓰인다. 운기학에서는 간지의 관계성에서 파생되는 기운이 그해의 기후와 몸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요즘처럼 이상 기후가 자주 나타나고 안정적인 주거 환경에서는 운기를 안다고 해도 별 소용이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약국에 있다 보면 기후와 관련해서 비슷한 증상으로 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예컨대 갑자기 추워지면 비위가 약한 사람들이 줄줄이 찾아온다. 추위에 대비할 에너지 비축이 평소에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져 몸에 이상이 온 다. 그러니 운기를 아주 무시할 수는 없다. <동의보감>을 찾아보니 갑진년 운기는...
        건달바와 둥글레를 거쳐 로이로 인문약방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있다. 양생은 가장 가까운 일상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를 빼놓지 않은 近思하고 近似한 양생 이야기를 하고 싶다.        새해는 매번 다르다   2024 갑진년은 청룡의 해다. 갑(甲)은 목화토금수의 오행 중 목(木, 나무)이고 목의 색은 청색이다. 진(辰)이 십이지지에서 용이니 갑진을 청룡이라고 한다. 보통 여기까지 알아보고 청룡 이상의 의미를 찾지 않는다. 다들 재물복, 건강, 마음의 평화를 빈다거나 운동, 금연, 공부 등 비슷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육십갑자로 이루어진 동양의 역법은 매해, 매달, 매일, 매시 달라지는 하늘과 땅의 기운을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라는 글자로 표현하고 있다. 시간의 단위이지만 시간뿐 아닌 공간을 채우는 전체적 기운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매번 오는 새해는 같은 새해가 아니다. 뻔한 새해 계획에서 벗어나 보자.        이렇게 매년 달라지는 간지(천간과 지지)가 의미하는 기운은 운기학과 명리학에서 중요하게 쓰인다. 운기학에서는 간지의 관계성에서 파생되는 기운이 그해의 기후와 몸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요즘처럼 이상 기후가 자주 나타나고 안정적인 주거 환경에서는 운기를 안다고 해도 별 소용이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약국에 있다 보면 기후와 관련해서 비슷한 증상으로 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예컨대 갑자기 추워지면 비위가 약한 사람들이 줄줄이 찾아온다. 추위에 대비할 에너지 비축이 평소에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져 몸에 이상이 온 다. 그러니 운기를 아주 무시할 수는 없다. <동의보감>을 찾아보니 갑진년 운기는...
로이
2024.01.08 | 조회 354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생업의 기회를 잡아 3년간 일리치약국 정규직으로 지냈다. 2024년 나이듦연구소로 적을 옮겨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를 꿈꾼다.         12월은 분주한 달이다. 공동체에서 1년간 공부한 내용을 갈무리한 에세이 발표도 가야하고 드문드문 송년회 일정도 있다. 주일에 이런 일정이 잡히면 휴일 걷기는 자연스럽게 미루어졌다. 그 사이 흐린 날까지 겹치며 걷기가 점점 더 귀찮아졌다. 12월 중순을 넘기니 몸놀림이 둔해졌지만 모른 척 하던 어느 날, 공동체와 연결되어 알게 된 지인이 공간을 새로 열었다고 해서 축하방문을 하게 되었다. 미리 와있던 분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는데 걷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 분은 걷기강좌를 연다고 했고, 지인은 23년 한 해 동안 줄기차게 걸어서 남산 주변으로 열 가지가 넘은 자신만의 코스도 있다고 했다. 그 효과를 간증하는데, 다 아는 얘기도 더 실감나게 들렸다. 지인은 최근 새로운 책을 냈는데 그만큼 걸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했다. 게을러지던 마음에 조금씩 탱탱한 기운이 서려졌다.    집에 돌아와서 지인이 알려준 유튜브를 검색했다. 걷기혁명이라고 적힌 썸네일을 비롯 기적의 걷기라느니 등등 제목도 현란했다. 그 중에 지인이 알려준 걷기 전문가로 소개된 영상을 찾아서 바르게 걷는 방법을 보았다. 영상에서 알려준 바로는, 발뒤꿈치부터 착지하면서 앞으로 내딛으며 걷는데, 이 때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면서 평소 보폭보다 10센티 정도 더 크게 걷는다는 기분으로 걸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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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4.01.06 | 조회 307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세계 끝의 가족 2023.12.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어릴 적 집에 오신 손님들(대부분 친지들)은 내 작은 손에 용돈을 쥐어주시곤 했다. 적게는 만원에서 많게는 3만원. 퍼런 지폐는 어린 내가 봤을 때도 꽤나 듬직해 보였다. 그 용돈은 넉넉치 않은 살림을 사느라 늘 고단해보였던 해피님의 고민거리를 아주 조금이지만 덜어 주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100원, 200원 정도는 남는 이벤트였다. 취학 전 아동 시절이었다. ​ 그 때 배웠다. 어른이 염려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용돈은 적당히 공손하게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그 용돈은 단지 '용돈'만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과한 거절은 '선물 경제'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퇴색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시절 나는 나름 증여와 순환의 정신을 잠시 엿본게 아닐까? 체면을 상하지 않게 선물하는 예절, 받는 사람의 태도 등 '돈과 관계의 철학'을 조금 익힌 셈인지도 모르겠다. ​ ​ 고릿적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연재의 발단과도 조금은 연결되기 때문이다.  ​ 작년 가을. 우리는 그동안 각자 모은 돈에 대출금을 좀 보태 집을 사고 이사를 했다. 문탁에서 공부하다 만난 동학 둘이 '쫌 다른' 가족으로 살아보겠다는 포부를 밝힌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모셔 조촐하나마 집들이를 계획했었는데,...
  세계 끝의 가족 2023.12.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어릴 적 집에 오신 손님들(대부분 친지들)은 내 작은 손에 용돈을 쥐어주시곤 했다. 적게는 만원에서 많게는 3만원. 퍼런 지폐는 어린 내가 봤을 때도 꽤나 듬직해 보였다. 그 용돈은 넉넉치 않은 살림을 사느라 늘 고단해보였던 해피님의 고민거리를 아주 조금이지만 덜어 주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100원, 200원 정도는 남는 이벤트였다. 취학 전 아동 시절이었다. ​ 그 때 배웠다. 어른이 염려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용돈은 적당히 공손하게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그 용돈은 단지 '용돈'만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과한 거절은 '선물 경제'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퇴색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시절 나는 나름 증여와 순환의 정신을 잠시 엿본게 아닐까? 체면을 상하지 않게 선물하는 예절, 받는 사람의 태도 등 '돈과 관계의 철학'을 조금 익힌 셈인지도 모르겠다. ​ ​ 고릿적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연재의 발단과도 조금은 연결되기 때문이다.  ​ 작년 가을. 우리는 그동안 각자 모은 돈에 대출금을 좀 보태 집을 사고 이사를 했다. 문탁에서 공부하다 만난 동학 둘이 '쫌 다른' 가족으로 살아보겠다는 포부를 밝힌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모셔 조촐하나마 집들이를 계획했었는데,...
무사
2023.12.31 | 조회 385
인문약방 에세이
      2학기 공부는 유독 일상과 교차되었다. 길을 걷다 장애를 가진 동물과 마주친다든가 갑자기 호떡이 먹고 싶어져 농인인 상인과 소통을 해야하는 일 등으로 말이다.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던 수십 년 동안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다’는 것과 장애를 나와 관련된 이슈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차별이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공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관련없어 보였던 군대와 장애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군에서는 운동신경이 없어서 혹은 경험이 많지 않아 헛발질을 일삼고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의 스포츠 경기를 일컫어 ‘장애인 00’이라고 불렀다. 병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장병들은 “장애인이냐? 고문관이냐?”는 폭언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군대야말로 인간 사회를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와 우생학 정책’의 생생한 현장으로 보였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한국의 징병제도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만을 전쟁에 필요한 자원으로 호명해왔다. 군에서 장애인은 철저하게 비가시화되어 있었지만, 비하할 만한 상황이나 대상이 필요하면 여지없이 소환되었다. ‘군인되기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며 그 누구도 장애인되기를 원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에이블리즘의 원형, 군대    군에는 장애인이 ‘없다’. ‘신체의 정상성’으로 대표되는 조직인 군은 입영단계에서 법령(국방부령 병역판정신체검사등검사규칙)에 근거하여 ‘그냥 인간’을 ‘등급내 인간’과 ‘등급외 인간’으로 분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의 군내 진입은 ‘원천’ 차단된다. 장애인이 없으니 장애인 편의시설도 필요없다. 장애인 화장실은 고사하고 휠체어 픽토그램조차 보지 못했다. 군 복무 중 장애가 생기는 경우는 어떨까? 장애의 원인이...
      2학기 공부는 유독 일상과 교차되었다. 길을 걷다 장애를 가진 동물과 마주친다든가 갑자기 호떡이 먹고 싶어져 농인인 상인과 소통을 해야하는 일 등으로 말이다.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던 수십 년 동안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다’는 것과 장애를 나와 관련된 이슈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차별이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공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관련없어 보였던 군대와 장애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군에서는 운동신경이 없어서 혹은 경험이 많지 않아 헛발질을 일삼고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의 스포츠 경기를 일컫어 ‘장애인 00’이라고 불렀다. 병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장병들은 “장애인이냐? 고문관이냐?”는 폭언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군대야말로 인간 사회를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와 우생학 정책’의 생생한 현장으로 보였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한국의 징병제도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만을 전쟁에 필요한 자원으로 호명해왔다. 군에서 장애인은 철저하게 비가시화되어 있었지만, 비하할 만한 상황이나 대상이 필요하면 여지없이 소환되었다. ‘군인되기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며 그 누구도 장애인되기를 원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에이블리즘의 원형, 군대    군에는 장애인이 ‘없다’. ‘신체의 정상성’으로 대표되는 조직인 군은 입영단계에서 법령(국방부령 병역판정신체검사등검사규칙)에 근거하여 ‘그냥 인간’을 ‘등급내 인간’과 ‘등급외 인간’으로 분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의 군내 진입은 ‘원천’ 차단된다. 장애인이 없으니 장애인 편의시설도 필요없다. 장애인 화장실은 고사하고 휠체어 픽토그램조차 보지 못했다. 군 복무 중 장애가 생기는 경우는 어떨까? 장애의 원인이...
문탁
2023.12.31 | 조회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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