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시 10월 8일 후기

겸목
2023-10-11 08:28
145

 

추석연휴가 끝났지만 10월 9일 월요일이 한글날 휴일이라, 10월 8일 세미나도 '휴일'에 연장 느낌이었다. 새봄, 꿈틀이, 묘선주님이 여행을 가신다고 빠져 더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날 세미나는 시소, 윤아, 천유상, 비료자, 겸목 다섯 명이 오붓하게 했다. 이날 주제가 버지니아 울프의 <런던을 걷는 게 좋아>와 같은 산책 형식의 글쓰기여서 더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네 명의 산책기를 들으며 그들의 사는 동네의 모습과 그 속에서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의도하지 않았지만' 포착될 수밖에 없는 '스냅사진'이나 '다큐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어 흥미로웠다. '산책'이라는 '형식'이 갖는 매력인 것 같다. 걷다보니, 내가 걷고 있는 것을 두리번거리고, 무수히 널린 볼거리들 중 도대체 내 눈을 잡아 끄는 것은 무엇인지 '의식하지 않았지만' 드러날 수밖에 없어서 그랬다. 그래서 이런 형식의 글쓰기를 더 해보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시소님의 <전광판이 나에게 말을 건다>는 잠실에 대한 글이다. 우리 대부분이 한껏 꾸미고 롯데월드에 놀러가거나, 백화점에 쇼핑하러 가거나, 경조사가 있어 잠시 들르는 곳이 시소님의 거주지이다. 우리가 가끔 보는 휘황찬란한 전광판을 일상적으로 집에서 본다는 건 감각의 차이를 불러오는 일 같다. 풀메이크업을 하고 오는 사람들 사이에 후질근한 추리닝을 입고 나온 자신이 편안하지 않다고 시소님은 쓰셨지만, 우리는 그게 더 '스웩' 넘치는 모습 아닐까 얘기했다. 그리고 '잠실'이 갖는 특수성, 강남에 진입하기 전에 머무는 곳 또는 강남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잠실이 아닌 곳으로 밀려나면 안되겠다는 안간힘, 이 힘들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곳이라 시소님의 '욕망'에 대한 생각들도 복잡할 거란 느낌이 들었다. 그 동안 '남에게 좋게 보이는 삶'에 대해 글을 써오신 시소님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될 수 있었다. 직장이 아니라 집에서도 '경쟁'과 '비교'가 만연한 곳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시고 정리해보시면 좋겠다. 윤아님은 시소님의 글에서 충돌하는 욕망이 엿보인다고 코멘트 하셨다.

 

윤아님의 <명절 재래시장 산책>은 이번 추석에 다녀온 시댁 근처의 재래시장 순례기다. 명절이고 재래시장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럴 수 있겠지만, 윤아님의 글은 '음식'을 키워드로 연결되는 산책이었다. '밤-어묵-족발-커피-갈비찜-인스턴트 혼밥.' 다른 글보다 물음표가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내가 보게 되는 풍경에 대해 단정하지 않고 짐작만 해보는 태도가 좋았다. 사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시장 입구에서 어묵을 먹고 있는 남녀가 연인인지? 부부인지? 남매인지? 동업자인지? 채권채무자인지? 어찌 알겠는가? 음식이야기다 보니 '관계'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고,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기보다는, 제대로 된 음식을 해먹이고 싶은 윤아님의 마음에 대해 그건 '꼰대'의 생각인가 아닌가 이야기를 나눴다.  '제대로 된 음식을 해먹이고 싶은 마음'은 꼰대의 생각인가? 무릇 누구나 '좋다'고 생각하는 인지상정인가? 윤아님이 더 생각해보시면 좋겠다.

 

유상샘의 <내가 걷고 싶은 거리는>에서는 워킹맘의 바쁜 일과 중에 '산책'이 들어올 수 없는 현실이 잘 드러나는 글이었다. 직장과 육아, 집안일이 겹쳐 있는 유상샘께는 아직 그런 '여유'가 없다. 유상샘은 글에서 산책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에 대해 "상품 가치에 따라 언제든 옮길 수 있는 곳, 오래된 것들이 잘 보존되기보다는 새 것으로 쉽게 대체되는 곳에서 '곧 사라질 수 있는 것'에 대한 허무한 감정"이라고 쓰셨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아파트생활'이라는 것이 이런 허무한 감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공감을 나눴다. 그런데 허무한 감정을 그대로 둬도 괜찮을까?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내 아파트 평수와 그 내부 공간 이외의 공간은 나와 무관할까?라고 질문을 던져보면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게 '진한 농도와 밀도'를 갖는 것이 아닐지라도 나와 무관하지는 않을 터인데, 이걸 나와 무관하다고 여기는 것이 내 삶을 공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지 더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비료자님의 <설계자의 목소리>는 집 근처 광교 호수공원에 대한 글이다. 누가 이렇게 세심하게 배려해서 하나하나 잔손질을 해주었을까? 감탄하며 비료자님은 설계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경탄'으로 가득한 글은 그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기 어렵다. 글보다는 비료자님의 설명을 들으며 비료자님이 왜 그 공간에 감사의 마음을 느끼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간극'이 우리가 글을 쓰며 줄여가야 할 지점인 것 같다. 생각과 느낌과 글이 일치할 수는 없지만, 일치하도록 애써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겸목의 <'처음' 읽는 버지니아 울프>는 산책기가 아니라 <지난날의 스케치>에 대한 간략한 리뷰글이었다. 요즘 통 산책을 하지 못해 산책기를 쓸 수 없었고, 대신 짬짬이 버지니아 울프를 읽고 있다. 신기하게도 얇은 책인데도 불구하고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은 잘 넘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되도록 그녀의 생각을 따라가보려 해보고 있다. 기억과 망각, 선명함과 중요성, 존재와 비존재를 구분해보면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의 상념이 왜 그러한 궤도를 그리고 있는지 추적해간다. 그녀의 추적을 따라가다보니, 문득 10대와 20대 사이 10여 년 동안 어머니, 큰언니, 아버지, 오빠의 죽음을 맞은 그녀의 생애가 나에게 쑥 들어왔다. 이렇게 난데없이 가족의 죽음을 맞는 일! 인생의 불확실성에 휘둘린 그녀의 생애가 그녀에게 민감함과 예민함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버지니아 울프를 읽게 된다면, 이 느낌을 가지고 읽게 될 것 같다. 

 

함께 합평하지는 못했지만 묘선주님의 <납골당에 간다. 검정 비닐봉투를 들고>에 대해서도 몇 자 남긴다. 우리가 살면서 처음 경험하는 일들이 있는데, 이 글에서는 첫 경험하는 장례에 대한 내용이다. 꼭 해야 할 첫 경험인데, 장례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않은 것 같아 그런 점에서 이 글이 좋았다. 장례, 제사는 의례와 연결되는데 이걸 '검정 비닐봉투'와 겹쳐 놓으니 '언발란스함'이 인상적이었다. 납공당에 아버지가 평소 좋아했던 달달한 커피와 박카스를 사서 검정 비닐봉투에 담아가는 딸의 모습은  '가볍게 준비없이' 서로를 대할 수 있는 '식구느낌'이 난다. 그래서 애틋한 마음이 된다. 그러고보면 '검정 비닐봉투'에 담아왔던 것들은 대개 우리를 즐겁게 해줬다는 생각이 든다. 백화점에서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 검정 비닐봉투, 집 근처 마트나 편의점에서 꼭 필요한 것들을 살 때 넣어주는 봉투, 때로 생리대를 사며 곤혹스런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생리대는 진짜 없으면 안 될 물건이니 그것도 귀하다. 쓰레빠 끌고 편의점에 가서 맥주캔과 주전부리 몇 개 검정 비닐봉투에 담아 올 때 가장 홀가분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묘선주님의 글 가운데서는 왜 엄마를 위한 과자를 사게 될 때는 머뭇거리게 되는지..... 쓰여 있지 않아 궁금했다. 이 공백은 또 무슨 의미인가? 왜 이건 쓰지 않았을까? 이런 궁금증은 다음 글로 미뤄본다.

 

 

댓글 6
  • 2023-10-13 09:01

    후기를 못 올려 죄송합니다.
    지난 일요일 오후부터 오늘까지 내내 아파서 아무것도 못 했습니다.
    충실히 아프기만 했어요.
    24시간 내내 강도를 달리하는 아픔으로만 채워진 시간도 감각도 '충실' 하다는 게 새로웠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나날이었습니다.
    어제 일어나게 된 것도 딸이 자기가 더 아프다며 와 달라고 해서 하는수 없이 ...
    가보니 정말 젊은 사람이라 더 펄펄하게 아프더군요.
    그래서 무지근하게 무겁게 아픈 제가 오늘도 가서 간병, 육아, 가사를 돌보기로 했습니다.

    이런 사정으로 후기를 못 올렸습니다.
    보니, 오늘이 자그마치 금요일이네요.

    새삼 후기를 쓰기도 그렇고 쓸 수도 없을 듯.
    죄송합니다~

    • 2023-10-13 15:26

      아무렇지도 않은 날이 하루도 없네요.... 어여 쾌차하시길~

  • 2023-10-14 11:31

    이번주는 시간나는 대로 틈틈히 아파트 주변을 많이 걸어다녔어요. 어쩌면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였던 것 같아요. 아직 마음에 닿을 만큼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아직은 없지만 틈틈히 걸어다닐 것 같아요.

    • 2023-10-14 17:01

      궁금해지네요~

  • 2023-10-21 16:31

    정신없이 한주를 보내고 이제야 샘들의 지난 글과 후기를 찬찬히 읽어보네요.
    일본 여행으로 빠진 수업이라 궁금했는데 후기로 궁금증이 조금 풀렸어요.
    산책이라는 형식의 글이 무엇인지 '의식하지 않았지만'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말에 저도 다음 기회엔 써봐야지 다짐합니다.
    비료자님의 글과 생각의 간극은 무엇이었을지는 기회 있을 때 듣기로 하고 샘들의 두번째 글 잘 읽었습니다!
    한번 빠졌더니 세번째 글쓰기가 더 어렵게 느껴지네요.
    글쓰기 마무리는 안하고 이렇게 샘들의 글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ㅎㅎ

    • 2023-10-21 23:00

      ㅋㅋㅋ 잘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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