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골당에 간다. 검정 비닐봉투를 들고

묘선
2023-10-07 21:13
77

부득이 이번주에 참석하지 못함에 죄송합니다.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벌써 14년이 되어간다. 갑자기 쓰러지신 아빠는 의식이 없으신 채로 일주일 정도 병원에 계셨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료진의 권유로, 일주일 동안 나는 장례 준비를 했었다. 인생에서 설렘 가득했던 다양한 첫 경험들도 많았지만, 장례 준비 첫 경험은 눈물 가득, 애환 가득 상태였던 걸로 깊이 남아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화장을 할 것인지, 매장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아빠가 묻힐 선산은 전라북도 김제로, 우리 자식들이 김제까지 왕래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에 따라 우리는 화장하기로 했다. 그러고 났더니 유골함을 미리 준비해야 했다. 남편과 함께 도자기나 항아리를 많이 파는 곳을 다니며 적당한 가격과 적당한 빛깔을 갖춘 하얀색 유골함을 구입했다.

 

자, 그럼 이젠 납골당을 정할 차례였다. 설이나 추석 명절에 꼭 찾아뵐 수 있는 곳. 여름휴가철 또는 자식들이 문득 시간을 내어 쉽게 들릴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거기에 또 하나, 우리의 경제적 상황으로 감당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마침 시댁이 있는 담양에 군에서 직접 운영하는 곳이 있다고 하여 시어머니와 납골당을 다녔다. 아직 살아계신 아빠를 병원에 두고 엄마도 아닌 시어머니와 납골당을 보러 다니다니, 이 역시 난생처음 하는 경험이 되었다.

 

시어머니와 방문한 납골당은, 넓게 펼쳐진 평야에 앞과 뒤에는 높다란 산들이 아늑하게 에워싸고 있었고, 큰 도로엔 차들이 자주 오갔다. “쓸쓸하진 않으시겠네!”라는 시어머니 말씀에 시댁 근처로 납골당을 정했다. 그리고 2년 후 엄마도 그곳에 모셨다.

 

그리고 나는 시댁을 갈 때마다 납골당에 간다. 시댁에서 며느리로 할 일들을 마친 후 꾸미지 않은 옷차림에 남편과 항상 동행한다. 운전은 언제나 남편의 몫이다. 마치 나를 조심히 모셔가듯 그의 운전은 차분하다. 그리고 우린 항상 같은 시골 마트를 들린다. 나는 아빠가 좋아했던 달달한 캔 커피, 때론 즐겨 드셨던 박카스를 산다. 기분 내키는 대로. 남편은 엄마가 좋아했다며 과자 한 봉지를 하나 고른다.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가 좋아했던 게 무엇인지. 그래서 아빠를 위한 건 낚아채듯 “오늘은 이걸로!” 하며 사지만, 항상 엄마를 위한 것 앞에서는 머뭇거렸었다. 그걸 남편은 아는 듯하다.

 

그렇게 구입한 먹을꺼리를 검정 비닐봉투에 담아낸다.

 

납골당 가는 길은 매우 한적하다. 시골길이지만 쭈욱 뻗은 도로와 잘 가꾸어진 백일홍 가로수는 항상 그 모습 그대로다. 평온한 시골의 들녘과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동네들을 지난다.

 

그러다 하천의 뚝방길 바로 옆에 아담하게 꾸며진 자그마한 “쌍교다방” 커피숍을 지나며, 나는 항상 같은 생각을 한다. ‘도시 생활 다 접고 내려와서 저 커피숍을 인수받으면 좋을텐데..., 시아버님께 알아봐달라고 할까!....’. 쌍교다방을 지날 때마다 드는 이 생각에 혼자 웃는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건만 지나갈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되었다.

 

시댁이 있고, 납골당이 있는 담양은 볼거리도 많지만, 먹거리도 참암 많은 곳이다. 납골당 가는 길엔 유명한 맛집들이 있다. 어떤 식당은 날이 갈수록 몸집도 커지고 주말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최근에 그 식당 바로 옆으로 대형 커피숍이 들어섰다. 이런 시골에 저런 규모의 대형 카페라니.., 우리는 서로 놀랬다. 그리고 조금 더 가면 몇 년 전 인기 있었던 ‘한식대첩’ 요리 경연프로그램 우승자가 운영하는 식당도 있다.

 

오래전 우승 축하 현수막을 보고, 납골당 다녀오는 길에 남편과 둘이서만 음식을 사 먹기도 했었다. 여전히 아이들과 시댁 식구들에겐 그 식당은 아직 가보지 않은 곳 중 하나이지만 말이다.

 

납골당에 도착하면, 우린 주차하고 검정비닐봉지를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엄마, 아빠를 보러 간다. 납골당에는 대부분 바리바리 싸 온 음식과 휴대용 제기, 돗자리로 격식을 갖춘 방문객들이 많다. 그들과 정면으로 마주쳤을 땐, 검정 비닐봉투 하나 가볍게 들고 있는 내가 머쓱해질 때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자그마치 14년 동안을 항상 검정 비닐봉투를 들고 납골당을 찾고 있다.

 

물론 명절엔 종종 과일 1~2가지와 접시를 챙겨오기도 한다. 이 역시 검정 비닐봉투에 담아.

 

왜일까? 검정 비닐봉투를 고수하고 있는 나. 특별한 이유는 없다. 굳이 이유를 만들어 보자자면..., 어릴적 아빠가 동네 점방에 들려 좋아하던 캔 커피, 박카스, 막걸리, 때론 우리를 위한 과자를 사 오실 때 항상 한 손에 들린 검정 비닐봉투여서인 건 아닐까. 그 모습이 선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은 아닐지….

 

두 번째 무언가를 막 준비해서 방문하기보다는 정말 가볍게, 준비 없이 아빠와 엄마가 모셔진 납골당에 가고 싶기 때문은 아닐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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