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판이 나에게 말은건다

시소
2023-10-07 19:35
81

                                                                      전광판이 나에게 말을건다

 

 

 

  이른 아침 산책을 위해 한강을 향한다. 이곳 잠실은 옛 잠실 나루터가 있던 곳이라는 표지판과 뽕나무를 많이 키웠다는 설명도 읽고 고개를 들고 보니 롯데 시그니엘이 보인다. 저기는 하루 숙박하는데 얼마일까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와서 작은 아들과 등교길에 나선다. 삼성동 코엑스를 지나 청담동으로 가는 길에 전광판 광고가 번쩍인다. 롤렉스에서 새로 시계가 나왔는지 멋진 여자가 시계를 차고 있는 손을 들어 보인다. 시계가 예쁘다. 갖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하다가 집에 있는 것도 안차고 다닌다는 생각이 들어 갖고 싶다는 마음을 접는다. 옆자리 아들이 저런 건물 사려면 얼마 있어야 하느냐고 물어본다. 나의 시선이 전광판이라면 우리아들이 보는 건 전광판이 달리 건물이다. 광고료 수입이 꽤 되는걸 알아 차린걸까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우리 내부에서 새롭게 자라는 욕망이 무엇이고 거부감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무역은 초조하게 우리를 주시한다.(p26) 과거 무역이 우리를 주시했다면 현재는 전광판이 우리의 욕망을 조정하거나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전광판을 볼 때마다 잊고 있던 욕망이 솟아난다.

버지니아 울프는 ‘런던은 쉴 새 없이 나를 매혹하고 자극하고 내게 극을 보여주고 이야기와 시를 들려준다. 두 다리로 부지런히 거리를 누비는 수고만감내하면 아무것도 걸리적거릴 것 없다. 혼자 런던을 걷는 시간이 내게는 가장 큰 휴식이다. (1928.5.31.버지니아 울프의 일기중에서)라고 하지만 나에게 도심을 걷는 다는 건 이성적으로 눌러놓은 욕망을 자극하는 시간이다.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욕망하고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물건을 선택해야 하나 고민하게 하는 장소인 것이다. 사무실이 강남이었던 나에게 도심을 걷는다는건 남보다 똑똑해 보여야하고 잘나 보여야 하기위해 나를 벌크 업하는 장소인 것이다. 사회생활은 언제나 긴장의 연속이고 남과의 비교가 필수이다 보니 도심에 들어가면 부지불식간에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 나의 주거지는 도심 한가운데 이며 젊음의 거리. 그래서 나의 산책은 버지니아 울프와는 다르게 한강을 지나 올림픽공원을 돌고 집으로 들어온다. 1930년대 급변하는 시기에 도심이 울프에게 많은 자극과 휴식을 주었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나에게는 신자본주의 물결에 휩싸여서 살라는 신고를 주는 것 같은 장소인 것이다. 가끔 롯데월드 몰에 물건을 사기위해 갈 때도 있다. 나에게 동네인 곳이 다른 이들에게는 놀러오는 곳이라는 생각이 그곳에 가면 든다. 편하게 입고 온 추리닝을 입은 나와 갖추어 있고 나온 선남선녀들. 입고 나온 추리닝이 후질 근하게 느껴지는 나에게 도심의 산책은 편안하지 않다.

아파트 오른쪽으로는 삼성동 왼쪽으로는 잠실 뒤쪽은 한강을 접하고 있다.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 나의 산책방향은 달라진다. 사람이 그리울 때(또는 소음 속에 있고 싶을 때)는 시장으로 간다. 이 동네는 특이하게도 시장이 있다. 그곳에 가면 한강공원에 놀러 가기위해 먹거리를 사는 사람들과 야구장에 가지고 갈 간식을 고르는 연인. 친구들이 있다. 그들의 젊음은 언제나 시끌시끌하다. 그들의 시끄러움이 나의 마음을 고요 하게 할 때도 있다. 저 사람들은 무슨 대화를 하기에 저렇게 시끄러울까 저 사람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을까 등 사람들을 보고 생각하다보면 내속의 생각들은 잠시 잊어진다.

 

   옥스퍼드 거리에는 이런 천 가지 목소리들이 항상 아우성친다. 모두 긴장으로 팽팽한 현실의 목소리다. 먹고살기 위한. 잠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 무심하고 무자비하게 넘실대는 거리의 파도에 어떻게든 가라앉지 않기 위한 압박감이 화자들을 다그쳐 뱉어낸 목소리다. -삶은 투쟁이고 , 모든 건축물은 소멸하며 모든 과시는 허영임을 이 촌스럽고 천박하고 번잡한 거리가 우리에게 상기시킨다는 사실 말이다. (p41)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101동부터 170동까지 있다. 1단지부터 3단지까지 이렇게 큰 단지가 3곳이나 있다. 아파트 안에 유치원부터 고등하고 우체국과 파출소 까지 있으니 웬만한 마을의 크기이다.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아파트 상가의 풍경도 여느 아파트와는 다르다. 비싼 세탁소와 저렴한 세탁소 파마한번에 3~40만원하는 미용실과 5만원하는 미용실 등 서비스를 받기위해 지불하는 대가의 폭이 넓다. 그러다 보니 내가 가는 상가가 나의 경제적 위치를 드러낸다. 큰애 중2때부모님이 맞벌이 하는 애가 학생회장이 된 적이 있다. 학부모 모임에 회장엄마는 파리바게트에서 빵과 슈퍼에서 야쿠르트를 사왔다. 그 상황에 대해 뒤에서 말들이 많았다. 누가 이런 야쿠르트를 먹는다고 사왔냐고 하는 사람과 촌스럽게 빵을 사왔다고 하는 사람들. 어리둥절한 상황이었다. 누군가 성의를 표현하기위해 준비한 다과인데 이게 뭐지 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 잘 꾸민 엄마가 한마디 했다. “ 난 파리바게트 빵은 안 먹어. 거기 버터가 안 좋아 빵은 태극당 빵이 맛있지” 파리바게트 빵집도 비싸져서 못 사겠다는 사람과 파리바게트 빵은 버터가 별로가 못 먹겠다는 사람들 사이 어디쯤 나도 위치해 있을 것이다. 강남으로 입성하기위해 대치동으로 라이딩하는 엄마와 옛날 잠실주공1단지의 원주민이었던 어른들. 이곳은 안착하는 곳이 아니라 경유하는 경유지 같다. 더 높은 곳을 향해 가고자 하는 욕망과 사회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버티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2008년 입주 후 16년을 살아온 아파트지만 나는 아직도 이곳이 낯설다.

  크로 부인에게는 이 거대한 메트로 폴리스를 교회하나. 영주의 저택하나. 농가 스물다섯채 정도의 작은 마을처럼 보이게 만드는 대단한 재주가 있었다.(p92) 크로 부인에게 그런 재주가 있었던 것은 모든 일에 관심이 많아서 였던 것일까? 같은 동네 같은 아파트는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살거라는 막연한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에게는 우리 동네가 대한민국 축소판 같이 느껴진다.

가끔 가는 아파트 단지 내 상가인데도 업종은 매번 바뀌어 있다. 떡집이었던 곳이 커피숍으로 반찬가게로 핸드폰가게로. 2008년에 입주 할 때는 상가의 반은 부동산이었다. 입주한지 16년이 지난지금 많은 상점은 인테리어 가게로 바뀌었다. 아마 10년쯤 지나면 다시 부동산이 들어올 것이다. 사람의 인생 사이클처럼 아파트의 사이클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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