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다시 생각해보기

천유상
2023-09-16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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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다시 생각해보기

 

1. ‘나’의 행복은 ‘운’일 수 있다

 

“인류사에서 우리 시대보다 행복을 오래 누린 시대는 없었다.” 라는 주장은 실제로 “현대 개인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자신의 삶을 더 계획할 수 있고, 과거에 비해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누리고, 더 많은 선택지를 부여받았고, 자아실현에 훨씬 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고, 자기가 의지를 보이기만 하면 자기를 개선함으로써 목표에 도달할 가능성의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는 생각에 기반을 둔 것이다. (해피크라시, 102쪽, 에바 일루즈)

 

  책 속의 이 문장을 읽고 이 ‘문장’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사실일까 생각했다. 70년생인 나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비장애인이자 이성애자 여성이며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대학 교육(비록 낮은 학점으로 간신히 졸업했지만)을 받았고 직업이 있다. 또한 나는 소위 ‘인 서울’ 거주민은 아니지만 수도권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4인 가족의 한 구성원이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눈에 보이는 ‘차별’을 그다지 실감하지 않을 수 있었던 나의 조건에서 위의 문장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고 느껴졌다.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보편성’이라는 기준이 있다면 나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조건은 현재까지는 ‘여성’이라는 것 정도인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여성’이었음에도 나는 교육의 기회에서 제외되지 않았고 나의 직업을 나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었다. 연애와 결혼, 출산, 주거지의 결정 등 삶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에 있어서 ‘선택권’은 어느 정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행복’이 ‘자유’, ‘선택권’, ‘자아실현’, ‘목표 의식’과 같은 말을 포함하고 있다면 감히 말하자면 ‘나’는 ‘행복’을 가질 수 있는 혹 추구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긍정심리학자와 행복학자들이 주장한 위의 문장에 동의할 수 있나? 긍정심리학자와 행복학자들이 주장한 ‘개인’의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생각하다가 ‘나’는 그냥 조금 더 ‘선택’할 ‘기회’가 많았던 ‘운’이 좋은 위치에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만약 우리나라가 아닌 ‘백인’들의 사회에 가게 된다면, 혹은 우리나라에서 ‘백인’이 아닌 인종의 이주민이라면, 우리나라보다 ‘여성 차별’이 훨씬 심한 어떤 곳에 가게 된다면, 혹은 어떠한 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된다면. 그때도 ‘나’는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라고 느낄 수 있을까. 내가 겪어보지 않았고, 들어보지 않은 삶에 대해 판단할 수 없지만 ‘본래부터 있었다고 생각했던’ ‘나의 자유’와 ‘선택권의 기회’가 ‘누군가’에게는 ‘자연스럽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행복’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긍정심리학자와 행복학자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행복할 수 있는 개인’에는 어떤 ‘기준선’이 있는 느낌이었다. 비록 그들은 ‘피자 배달을 하든 실력 있는 전문가로서 외과 수술을 하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 자기가 하는 일을 어떤 식으로 지각하느냐다’ (143쪽) 라며 ‘기준선은 없다. 그것은 오로지 개인의 능력에 달려 있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말이다.

 

2. ‘행복하고’ 싶다

 

   ‘장애인인데 넌 참 글도 잘 쓴다’. 중학교 때 이 말을 들었다고, ‘나는 그 때 친구의 앞의 말보다는 뒤의 말에 더 집중하기로 했었다. 내가 만약 앞의 말에 집중했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 그렇지만 뒤의 말이 있었기에 대학교도 가고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군가의 가능성에 집중해야한다’. 이번 주 학교에 학생들에게 장애의 인권에 대해 강의하러 온 강사분의 이야기이다. 나는 ‘나는 뒤의 말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그의 말(생활 속에서 숱한 어려움을 겪어왔을)이 단순히 차별적 상황에 대한 포기나 외면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긍정심리학자나 행복학자의 견해에서 보면 그의 말은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긍정심리학자의 견해로 굳이 해석해보자면 ‘그’는 ‘부정성’보다는 ‘긍정성’에 집중하기로 한 ‘바람직한 선택’을 한 사람일 수 있다. ‘그’의 말을 그렇게 규정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 ‘성찰과 반성’(236쪽)이 없는 ‘행복’이 가정되고 유포되는 위험성이 아닐까?  ‘그’의  ‘행복’과  ‘긍정심리학자’의  ‘행복’에 차이가 있다면 ‘아픔’, ‘고통’, 그것이 사회의 이데올로기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거치는 과정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행복’을 생각하면서 어린 시절의 나의 집 앞에 골목이 떠올랐다. 서너 집이 골목을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붙어있었고 골목은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언니들 그리고 동생들이 뒤섞여서 이집 저집을 오가며 저녁까지 놀았고 밥도 함께 먹으며 지냈었다. 탐험을 한답시고 동네 여기저기를 뒤지고 다니기도 했었다. 아직 ‘행복’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즐거움’의 감정이 행복에 속한다면 그때 어린 시절 ‘나’는 행복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즐거웠던 기억 속 분명 나에게는 싸우고, 속상하고, 울고 그리고 화해하는 과정들이 있었다. 그런 과정 없이 마냥 ‘즐거움’만 가득하지 않았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함께 이야기하며 의견을 조율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는 과정, 다른 사람의 고통과 나의 고통을 성찰해가는 과정, 그 과정에서의 즐거움과 기쁨, 불편함 혹은 고통과 슬픔, 애도와 같은 다양한 감정들을 헤아려보는 것 이 모든 과정 어딘가에 ‘행복’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행복’하고 싶은 사람인 것 같다. 한참 직장생활로 힘들 때 유튜브로 ‘자존감 높이는 방법’ 이런 주제를 밤마다 검색하곤 했었으니까 난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이다. 이전의 내가 ‘행복’을 ‘내가 잘하면’, 혹은 ‘고통이 없는 상태’ 라는 틀에서 생각했었다면 이제는 조금 다르게 행복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조금 더 건강하게 ‘행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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