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일기
              노라 얼마나 놀기 좋아하면...ㅎㅎ.. 문탁의 터줏대감이다. 모르는게 있으면 나에게^^         간호병동 입원 기간은 예상했던 일주일이 넘어 12일 동안이었다. 간호병동은 간호사가 상주하며 환자들을 돌봐주는 시스템인데 가격은 5인실 입원비에 2만원만 추가하면 된다. 나는 그곳에서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되어 계속 잠만 잤다! 걱정 없이 푹 잤기에 회복도 빨랐다. 무통주사 한번 누르지 않는 나를 보고 간호사는 고통을 잘 못 느끼는 체질인 것 같다고 했다. 좋은 뜻인가? 무뎌서 암세포가 그리 커지도록 못 알아챈 거 아닐까? 보호자 없는 병실에서 그 긴 날을 보내는 동안 남편과 아이들은 잠시 휴가를 얻었다. ‘골룸’처럼 돌아다니는 환자가 집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가족들은 해방감을 느꼈으리라. 아이들이 집을 엄청 깨끗하게 치웠다고 카톡으로 알려왔다. 그동안 책장 가득히 쌓여 있던 내 책들도 다 버렸다. (나쁜 놈들!) 밤마다 맥주파티를 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수술이 잘 된 것을 축하하며, 집이 깨끗해진 것도 축하하며! 주치의가 도전정신을 갖고 수술한 덕분에 수술은 잘 되었고, 네 개씩 맞던 항암제 ‘약빨’이 잘 들었기에 ‘완전관해’도 되었다. 완전관해란 암 세포의 흔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뜻으로 나와 같은 종류의 유방암에선 30~40%의 환자들에게 해당된다.     암 진단을 받고 항암을 하는 동안 커다란 고민 중 하나는 부모님께 나의 상황을 알려야 하느냐, 마느냐 이다. 부모님의 연세가 80이 넘으셨기에, 나는 이 소식을 듣고 매일 밤 울고 계실 엄마를 상상하는 것조차...
              노라 얼마나 놀기 좋아하면...ㅎㅎ.. 문탁의 터줏대감이다. 모르는게 있으면 나에게^^         간호병동 입원 기간은 예상했던 일주일이 넘어 12일 동안이었다. 간호병동은 간호사가 상주하며 환자들을 돌봐주는 시스템인데 가격은 5인실 입원비에 2만원만 추가하면 된다. 나는 그곳에서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되어 계속 잠만 잤다! 걱정 없이 푹 잤기에 회복도 빨랐다. 무통주사 한번 누르지 않는 나를 보고 간호사는 고통을 잘 못 느끼는 체질인 것 같다고 했다. 좋은 뜻인가? 무뎌서 암세포가 그리 커지도록 못 알아챈 거 아닐까? 보호자 없는 병실에서 그 긴 날을 보내는 동안 남편과 아이들은 잠시 휴가를 얻었다. ‘골룸’처럼 돌아다니는 환자가 집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가족들은 해방감을 느꼈으리라. 아이들이 집을 엄청 깨끗하게 치웠다고 카톡으로 알려왔다. 그동안 책장 가득히 쌓여 있던 내 책들도 다 버렸다. (나쁜 놈들!) 밤마다 맥주파티를 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수술이 잘 된 것을 축하하며, 집이 깨끗해진 것도 축하하며! 주치의가 도전정신을 갖고 수술한 덕분에 수술은 잘 되었고, 네 개씩 맞던 항암제 ‘약빨’이 잘 들었기에 ‘완전관해’도 되었다. 완전관해란 암 세포의 흔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뜻으로 나와 같은 종류의 유방암에선 30~40%의 환자들에게 해당된다.     암 진단을 받고 항암을 하는 동안 커다란 고민 중 하나는 부모님께 나의 상황을 알려야 하느냐, 마느냐 이다. 부모님의 연세가 80이 넘으셨기에, 나는 이 소식을 듣고 매일 밤 울고 계실 엄마를 상상하는 것조차...
문탁 2023.04.19 조회 87
몸의 일기
              노라 얼마나 놀기 좋아하면...ㅎㅎ.. 문탁의 터줏대감이다. 모르는게 있으면 나에게^^       항암 중 ‘잘 먹어야 한다!’는 꼭 지켜야 하는 암환자 수칙이다. 그러다 5차쯤 되니 꾀가 생겼다. 항암하고 3주째는 어쨌든 몸이 회복되더라는 기억을 가지고 있던 나는 5차, 6차 때 먹는 것을 소홀히 해 버렸다. 몸은 회복되지 않았다! 기력은 거의 바닥이었고 이러다간 수술도 못 받을까 걱정 될 지경이었다. 이전에 항암 하시던 아빠가 뭐 드시라 할 때마다 짜증을 내셨는데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겪어봐야 알게 된다! 설상가상 항암제 부작용으로 손톱이 곪고 빠졌다. 마치 백설공주에게 독 사과를 권하던 마귀할멈 손톱처럼 검게 되었다. “더 늦었으면 큰일 날 뻔 했지요?” 심각한 표정으로 치료하던 외과의사에게 물었다. 대답은 “이미 많이 늦으셨어요.” 데쟈뷰다! 처음 검사한 유방외과에서 한 질문이 “혹시 심각한가요?”였다. 그 때 대답도 “예. ……”     항암 중 나는 문탁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특히 이 병을 미리 거쳐 간 바람님과 간호사였던 달팽이, 여여님과 상의했다. 어느 병원에 가야 할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언제 마음이 아픈지, 문탁 친구들은 병명이 나오지 않았을 때부터 심난한 나와 가족들이 먹을 반찬을 준비해 주었다. 매일 아침 친구들로 구성된 ‘써포터즈’가 카톡으로 안부를 물었다. 지난 밤 얼마나 아팠는지? 무얼 먹었는지? 잘 잤는지? 그들과의 대화로 나는 하루를 시작했다. ‘하이 에브리원!’ 이라는 인사는 내가 몸이 좀 나아졌다는 신호였다....
              노라 얼마나 놀기 좋아하면...ㅎㅎ.. 문탁의 터줏대감이다. 모르는게 있으면 나에게^^       항암 중 ‘잘 먹어야 한다!’는 꼭 지켜야 하는 암환자 수칙이다. 그러다 5차쯤 되니 꾀가 생겼다. 항암하고 3주째는 어쨌든 몸이 회복되더라는 기억을 가지고 있던 나는 5차, 6차 때 먹는 것을 소홀히 해 버렸다. 몸은 회복되지 않았다! 기력은 거의 바닥이었고 이러다간 수술도 못 받을까 걱정 될 지경이었다. 이전에 항암 하시던 아빠가 뭐 드시라 할 때마다 짜증을 내셨는데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겪어봐야 알게 된다! 설상가상 항암제 부작용으로 손톱이 곪고 빠졌다. 마치 백설공주에게 독 사과를 권하던 마귀할멈 손톱처럼 검게 되었다. “더 늦었으면 큰일 날 뻔 했지요?” 심각한 표정으로 치료하던 외과의사에게 물었다. 대답은 “이미 많이 늦으셨어요.” 데쟈뷰다! 처음 검사한 유방외과에서 한 질문이 “혹시 심각한가요?”였다. 그 때 대답도 “예. ……”     항암 중 나는 문탁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특히 이 병을 미리 거쳐 간 바람님과 간호사였던 달팽이, 여여님과 상의했다. 어느 병원에 가야 할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언제 마음이 아픈지, 문탁 친구들은 병명이 나오지 않았을 때부터 심난한 나와 가족들이 먹을 반찬을 준비해 주었다. 매일 아침 친구들로 구성된 ‘써포터즈’가 카톡으로 안부를 물었다. 지난 밤 얼마나 아팠는지? 무얼 먹었는지? 잘 잤는지? 그들과의 대화로 나는 하루를 시작했다. ‘하이 에브리원!’ 이라는 인사는 내가 몸이 좀 나아졌다는 신호였다....
문탁 2023.04.19 조회 103
몸의 일기
              노라 얼마나 놀기 좋아하면...ㅎㅎ.. 문탁의 터줏대감이다. 모르는게 있으면 나에게^^           3기에 걸맞게 나의 암 사이즈는 7.5센티였다.(보통 1,2기는 1,2센티) 게다가 암세포는 왼쪽 림프절까지 많이 침범하였다. 늦어도 많이 늦었다! 쇄골조직검사를 하러 갔는데 연세 지긋하신 의사 샘이 초음파를 여러 번 보시더니 조직검사 안 해도 된다고 했다. 그날 나는 남편에게 처음 칭찬을 받았다. 만약 암세포가 쇄골이나 다른 장기까지 옮겨갔으면 4기인데 그것은 끝없는 항암을 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난 84차까지 항암을 하는 환자를 봤는데 그건 5년 가까이 항암제를 맞았다는 뜻이다. 저절로 감사의 인사가 나오는 순간이었다. 검사하는 내내 병원에 있는 의사들에게 내 가슴을 보여줬다. 처음엔 여의사를 찾아 헤매더니 이제 부끄럽다는 생각은 간데없이 아무에게나 즉각즉각 보여줬다. 하루 종일 내가 보시를 하고 다녔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그게 과연 보시였는지 의심해보라고 했다.     유방암은 크게 4종류로 나뉜다. 조직검사에서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양성과 HER2 양성이 나왔다. 여성호르몬과 HER2유전자로 인해 내 암이 자란다는 뜻이다. 요즘엔 유방암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기에 각 원인에 따른 치료법과 새로운 항암제가 많이 나와 있다. 내가 받아야 하는 표준치료는 3주 간격으로 선항암 6차, 수술, 방사선 19차, 후항암 12차로 총 14개월 동안 진행된다. 게다가 5년 동안 호르몬 억제약도 먹어야 한다. 긴 치료이기에 가깝고 좋은 병원의 선택이 제일 중요하다. 서울 메이저 병원으로 가야 하나 본인이 사는 곳에 있는 병원을 가야하나...
              노라 얼마나 놀기 좋아하면...ㅎㅎ.. 문탁의 터줏대감이다. 모르는게 있으면 나에게^^           3기에 걸맞게 나의 암 사이즈는 7.5센티였다.(보통 1,2기는 1,2센티) 게다가 암세포는 왼쪽 림프절까지 많이 침범하였다. 늦어도 많이 늦었다! 쇄골조직검사를 하러 갔는데 연세 지긋하신 의사 샘이 초음파를 여러 번 보시더니 조직검사 안 해도 된다고 했다. 그날 나는 남편에게 처음 칭찬을 받았다. 만약 암세포가 쇄골이나 다른 장기까지 옮겨갔으면 4기인데 그것은 끝없는 항암을 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난 84차까지 항암을 하는 환자를 봤는데 그건 5년 가까이 항암제를 맞았다는 뜻이다. 저절로 감사의 인사가 나오는 순간이었다. 검사하는 내내 병원에 있는 의사들에게 내 가슴을 보여줬다. 처음엔 여의사를 찾아 헤매더니 이제 부끄럽다는 생각은 간데없이 아무에게나 즉각즉각 보여줬다. 하루 종일 내가 보시를 하고 다녔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그게 과연 보시였는지 의심해보라고 했다.     유방암은 크게 4종류로 나뉜다. 조직검사에서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양성과 HER2 양성이 나왔다. 여성호르몬과 HER2유전자로 인해 내 암이 자란다는 뜻이다. 요즘엔 유방암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기에 각 원인에 따른 치료법과 새로운 항암제가 많이 나와 있다. 내가 받아야 하는 표준치료는 3주 간격으로 선항암 6차, 수술, 방사선 19차, 후항암 12차로 총 14개월 동안 진행된다. 게다가 5년 동안 호르몬 억제약도 먹어야 한다. 긴 치료이기에 가깝고 좋은 병원의 선택이 제일 중요하다. 서울 메이저 병원으로 가야 하나 본인이 사는 곳에 있는 병원을 가야하나...
문탁 2023.04.18 조회 101
몸의 일기
                            노라 얼마나 놀기 좋아하면...ㅎㅎ.. 문탁의 터줏대감이다. 모르는게 있으면 나에게^^           정말? 엄마가 암이라는데 저 친구는 왜 웃지? 알고 보니 ‘아미’란 방탄소년단 팬클럽 ‘ARMY’를 말하는 것이란다. 그 이야기에 애들과 같이 웃던 내가 어느 날 암환자가 되었다. 아. 나도 이제 아미다! 암 선고에 밤새워 고민했다. 온갖 인터넷 정보를 찾고 카페커뮤니티를 들락거렸다. 그곳에서 난 위안과 불안을 얻었다. 치료가 끝난 지금도 매일 습관처럼 카페커뮤니티에 들른다. 오늘도 수많은 환자들이 생겼다. 그들은 두려워하고, 원망하고, 고통스러워한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말한다. “힘내세요! 시간은 금방 흐릅니다.” 내 주변에도 이전에 비해 유방암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내가 먼저 투병했기에 그들의 연락을 직접 받기도 하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기도 한다. 나는 이참에 암 선고를 받은 이후의 과정들을 글로 쓰면서 내가 알고 있는 팁들을 친구들과 나누고 싶다.     윤구병 선생님이 방문하셨던 2012년 사진, 당시 문탁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자주 출몰했던 노라 딸 채원, 채린     작년(2021년) 1월 나는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그간 건강검진을 잘 받지 않았던 나는 누구를 원망할 겨를도 없이 온전히 책임을 져야했다. 솔직히 유방암은 내가 걱정하던 병은 아니었다. 난 아이들에게 모유수유도 짧게나마 하였고, 하루 8시간 이상 브레지어를 하면 유방암에 걸린다고 하길래 브레지어를 즐겨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는 갱년기에 필수라고 하는 호르몬약도 먹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노라 얼마나 놀기 좋아하면...ㅎㅎ.. 문탁의 터줏대감이다. 모르는게 있으면 나에게^^           정말? 엄마가 암이라는데 저 친구는 왜 웃지? 알고 보니 ‘아미’란 방탄소년단 팬클럽 ‘ARMY’를 말하는 것이란다. 그 이야기에 애들과 같이 웃던 내가 어느 날 암환자가 되었다. 아. 나도 이제 아미다! 암 선고에 밤새워 고민했다. 온갖 인터넷 정보를 찾고 카페커뮤니티를 들락거렸다. 그곳에서 난 위안과 불안을 얻었다. 치료가 끝난 지금도 매일 습관처럼 카페커뮤니티에 들른다. 오늘도 수많은 환자들이 생겼다. 그들은 두려워하고, 원망하고, 고통스러워한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말한다. “힘내세요! 시간은 금방 흐릅니다.” 내 주변에도 이전에 비해 유방암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내가 먼저 투병했기에 그들의 연락을 직접 받기도 하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기도 한다. 나는 이참에 암 선고를 받은 이후의 과정들을 글로 쓰면서 내가 알고 있는 팁들을 친구들과 나누고 싶다.     윤구병 선생님이 방문하셨던 2012년 사진, 당시 문탁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자주 출몰했던 노라 딸 채원, 채린     작년(2021년) 1월 나는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그간 건강검진을 잘 받지 않았던 나는 누구를 원망할 겨를도 없이 온전히 책임을 져야했다. 솔직히 유방암은 내가 걱정하던 병은 아니었다. 난 아이들에게 모유수유도 짧게나마 하였고, 하루 8시간 이상 브레지어를 하면 유방암에 걸린다고 하길래 브레지어를 즐겨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는 갱년기에 필수라고 하는 호르몬약도 먹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문탁 2023.04.18 조회 214
먼불빛의 웰컴 투 60
*맘마 미아(Mamma mia)는 이탈리아어로 놀라움이나, 괴로움을 나타내는 감탄사이다. "세상에, 맙소사!", 직역하면 "우리 엄마"다.(엄마는 성모마리아를 의미)/위키백과, 나무위키 참조     지난 2월 나는 딸의 결혼식을 치렀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결혼보다 더 낯설고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딸의 결혼이었다. 나는 언제나 모든 결혼에 ‘축하한다’는 말보다 ‘반댈세’라는 말을 먼저 던졌던 사람이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여성에게 너무나 불리했고, 그런 이유로 나도 이혼했으며, 좌우지간 남녀를 떠나 다양한 삶의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결혼’에 근본적인 회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시대 ‘필수’였던 결혼이 요즘 세대에겐 ‘선택’이 되었다(억울하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3포, 5포 세대(삼포:연애, 결혼, 출산/오포:삼포+취업, 주택을 포기)’처럼 ‘포기’를 하기도 하지만, 자발적 비혼과 동거족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 누구나 다 똑같은 삶이 아닌 자기만의 삶을 다양하게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결혼’이라는 오래된 전통에 대한 저항은 쉽지 않다. 오죽하면 명절 금기어로까지 등장할까. 여하튼 그래서 내 딸만은 좀 다른 선택,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랐지만 그건 내 욕심이었다. 이혼 후 단출한 2인 가족이 늘 외로움과 결핍의 근원이었던 딸은 전형적인 가족주의 안에서 자신의 결핍감을 채우고자 했다. 내가 다르게 살지 못했는데 딸에게 다른 삶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나 결혼은 반대’라는 말과는 달리 나는 딸의 결혼을 ‘축하’해주어야만 했다.     “돈만 주고 가~”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의 관계가 다 그렇지 않을까? 페미니스트 작가 리베카 솔닛의 책...
*맘마 미아(Mamma mia)는 이탈리아어로 놀라움이나, 괴로움을 나타내는 감탄사이다. "세상에, 맙소사!", 직역하면 "우리 엄마"다.(엄마는 성모마리아를 의미)/위키백과, 나무위키 참조     지난 2월 나는 딸의 결혼식을 치렀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결혼보다 더 낯설고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딸의 결혼이었다. 나는 언제나 모든 결혼에 ‘축하한다’는 말보다 ‘반댈세’라는 말을 먼저 던졌던 사람이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여성에게 너무나 불리했고, 그런 이유로 나도 이혼했으며, 좌우지간 남녀를 떠나 다양한 삶의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결혼’에 근본적인 회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시대 ‘필수’였던 결혼이 요즘 세대에겐 ‘선택’이 되었다(억울하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3포, 5포 세대(삼포:연애, 결혼, 출산/오포:삼포+취업, 주택을 포기)’처럼 ‘포기’를 하기도 하지만, 자발적 비혼과 동거족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 누구나 다 똑같은 삶이 아닌 자기만의 삶을 다양하게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결혼’이라는 오래된 전통에 대한 저항은 쉽지 않다. 오죽하면 명절 금기어로까지 등장할까. 여하튼 그래서 내 딸만은 좀 다른 선택,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랐지만 그건 내 욕심이었다. 이혼 후 단출한 2인 가족이 늘 외로움과 결핍의 근원이었던 딸은 전형적인 가족주의 안에서 자신의 결핍감을 채우고자 했다. 내가 다르게 살지 못했는데 딸에게 다른 삶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나 결혼은 반대’라는 말과는 달리 나는 딸의 결혼을 ‘축하’해주어야만 했다.     “돈만 주고 가~”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의 관계가 다 그렇지 않을까? 페미니스트 작가 리베카 솔닛의 책...
먼불빛 2023.03.27 조회 699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나의 사업장이 넓혀졌다    몇 년 전에 사 놓고 나 혼자 가끔씩 튕겨보던 기타는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는다. 헌데, 동천동 예술 플랫폼 꿈지락(꼼지락이 아님!)에 기타 강습이 생겼다. 제대로 한번 배우고 싶었는데, 아주 잘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치던 ‘로망스’로 시작했다. 어느 강습 날 저녁, 연습실 앞 복도가 난리가 났다. 어디에서 물이 새는 것인지, 복도에서 물이 넘쳐 계단을 따라서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있다. 추운 날이긴 하였지만 계량기 동파(凍破)는 아니었다. 물이 새는 곳을 살펴보았다. 전기온수기를 쓰고 있었는데, 냉수 파이프를 온수기에 연결하여 물을 데워 사용하고 있었고, 온수 파이프는 그냥 잘려진 채로 있었다. 그 곳에서 물이 펑펑 나오고 있는 것이다. 어랍쇼? 온수 파이프를 왜 이렇게 방치했지? 꿈지락 회원인 바람님이 내일 아침에 주인에게 전화해서 해결하겠다고 해도, 내게는 이미 기타 연습보다 이 문제를 푸는 것이 더 재미있는 일이 되어 가고 있다. 일단 계량기를 잠그고 여기 저기 조사를 하며 해결방법을 강구한다. 잘려진 온수 파이프밖에 다른 원인이 없다. 그런데 가만, 이것이 원인이라면 왜 지금에서야 그곳에서 물이 새는 것이지? 음...... 두께...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나의 사업장이 넓혀졌다    몇 년 전에 사 놓고 나 혼자 가끔씩 튕겨보던 기타는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는다. 헌데, 동천동 예술 플랫폼 꿈지락(꼼지락이 아님!)에 기타 강습이 생겼다. 제대로 한번 배우고 싶었는데, 아주 잘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치던 ‘로망스’로 시작했다. 어느 강습 날 저녁, 연습실 앞 복도가 난리가 났다. 어디에서 물이 새는 것인지, 복도에서 물이 넘쳐 계단을 따라서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있다. 추운 날이긴 하였지만 계량기 동파(凍破)는 아니었다. 물이 새는 곳을 살펴보았다. 전기온수기를 쓰고 있었는데, 냉수 파이프를 온수기에 연결하여 물을 데워 사용하고 있었고, 온수 파이프는 그냥 잘려진 채로 있었다. 그 곳에서 물이 펑펑 나오고 있는 것이다. 어랍쇼? 온수 파이프를 왜 이렇게 방치했지? 꿈지락 회원인 바람님이 내일 아침에 주인에게 전화해서 해결하겠다고 해도, 내게는 이미 기타 연습보다 이 문제를 푸는 것이 더 재미있는 일이 되어 가고 있다. 일단 계량기를 잠그고 여기 저기 조사를 하며 해결방법을 강구한다. 잘려진 온수 파이프밖에 다른 원인이 없다. 그런데 가만, 이것이 원인이라면 왜 지금에서야 그곳에서 물이 새는 것이지? 음...... 두께...
가마솥 2023.03.11 조회 360
먼불빛의 웰컴 투 60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그래서 나는 저항하기 위해 실업급여를 과감히 거부했다”라고 쓸 수 있었다면 얼마나 멋지고 근사할까. 제도의 수혜자로 힘없는 ‘약자’로서의 하소연, 소심한 복수로 이 글을 쓴다. 상상력이 부족한 나는 주관적  감정의 덩어리만 풀어놓았다. 그래서 이 글은 미완성이다. 언젠가 이 주제로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성찰과 깨달음의 글을 다시 쓰는 나를 기대해 본다.     정년퇴직 후 나는 백수가 되었다. 정년 백수. 백수가 되기 위한 필수 아이템, 백수 패션의 완성을 위해 나는 1+1 하는 저가 의류 매장에서 츄리닝 바지 2개와 맨투맨 티 2개를 샀다. 백수 패션은 바깥 생활에 요구되는 눈치와 예의 따위를 버리고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그런 자유로운 백수로 좀 더 살고 싶었으나 정년 백수가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는 놓치기 아까운 혜택이었다. 정년퇴직도 비자발적 실업이므로 실업급여가 지급되는데, 퇴직한 날로부터 1년 이내 받지 않으면 모두 다 소멸하기 때문에 빨리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순간부터 매월 급여를 받기까지 제도는 내가 얼마나 비루하고 하찮은 인간인지를 끊임없이 확인시켜 주었다. 재취업이 전제된 조건부 급여의 성격은 자유로운 백수의 영혼이 아닌 비루한 ‘노인 실업자’가 되는 일이었다. 조건을 맞추기 위해 찾아본 일자리는 나의 취업 의지를 더 꺾었고, 실업급여는...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그래서 나는 저항하기 위해 실업급여를 과감히 거부했다”라고 쓸 수 있었다면 얼마나 멋지고 근사할까. 제도의 수혜자로 힘없는 ‘약자’로서의 하소연, 소심한 복수로 이 글을 쓴다. 상상력이 부족한 나는 주관적  감정의 덩어리만 풀어놓았다. 그래서 이 글은 미완성이다. 언젠가 이 주제로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성찰과 깨달음의 글을 다시 쓰는 나를 기대해 본다.     정년퇴직 후 나는 백수가 되었다. 정년 백수. 백수가 되기 위한 필수 아이템, 백수 패션의 완성을 위해 나는 1+1 하는 저가 의류 매장에서 츄리닝 바지 2개와 맨투맨 티 2개를 샀다. 백수 패션은 바깥 생활에 요구되는 눈치와 예의 따위를 버리고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그런 자유로운 백수로 좀 더 살고 싶었으나 정년 백수가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는 놓치기 아까운 혜택이었다. 정년퇴직도 비자발적 실업이므로 실업급여가 지급되는데, 퇴직한 날로부터 1년 이내 받지 않으면 모두 다 소멸하기 때문에 빨리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순간부터 매월 급여를 받기까지 제도는 내가 얼마나 비루하고 하찮은 인간인지를 끊임없이 확인시켜 주었다. 재취업이 전제된 조건부 급여의 성격은 자유로운 백수의 영혼이 아닌 비루한 ‘노인 실업자’가 되는 일이었다. 조건을 맞추기 위해 찾아본 일자리는 나의 취업 의지를 더 꺾었고, 실업급여는...
먼불빛 2023.02.27 조회 446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외워야 하느니라   문탁에서 10년을 공부하고 있는 마눌님이 손바닥에 쏙 들어가는 논어(論語) 책(?)을 시도 때도 없이 외운다. 특히 승용차 조수석에 앉아 있을 때에는 거의 백퍼센트다. 방금 읽었던 앞 페이지도 다시 봐야 할 때가 빈번한 이 나이에 논어를 통째로 외운다고 시도하니, 무섭기도 하고 멋있기도 하다. 사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먼저 그의 말을 이해하고 나의 말로 누군가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시작은 외우는 것일 게다. 나도 함 해볼까?   문탁 홈페이지를 열어 꼼꼼히 살펴보았다. 공부하는 방식이 크게 보아서 선생님이 하는 강의가 있고, 참가자들끼리 하는 세미나가 있다. 일단 발제없이 듣기를 잘하면 되는 논어 후반부 강의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 공부도 쉽지 않다. 학교 다닐 때처럼 기록하고 정리하여야 따라 갈수 있었다. 외운 것을 까먹어 헷갈리는 상황에서도 ‘그렇지!’하는 문장을 발견하는 재미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강의를 들었다.   반장님이 강의 마지막 날 행사에 대해서 말한다. 다른 강의들은 에세이를 쓰지만 이번 강의에서는 논어 ‘낭송(朗誦)’을 하겠단다. 다만, 책을 보고 읽는 게 아니고 암송(暗誦)하는 것이란다. 나도 외워 본다. 첫 페이지, 논어 학이(學而), 제...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외워야 하느니라   문탁에서 10년을 공부하고 있는 마눌님이 손바닥에 쏙 들어가는 논어(論語) 책(?)을 시도 때도 없이 외운다. 특히 승용차 조수석에 앉아 있을 때에는 거의 백퍼센트다. 방금 읽었던 앞 페이지도 다시 봐야 할 때가 빈번한 이 나이에 논어를 통째로 외운다고 시도하니, 무섭기도 하고 멋있기도 하다. 사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먼저 그의 말을 이해하고 나의 말로 누군가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시작은 외우는 것일 게다. 나도 함 해볼까?   문탁 홈페이지를 열어 꼼꼼히 살펴보았다. 공부하는 방식이 크게 보아서 선생님이 하는 강의가 있고, 참가자들끼리 하는 세미나가 있다. 일단 발제없이 듣기를 잘하면 되는 논어 후반부 강의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 공부도 쉽지 않다. 학교 다닐 때처럼 기록하고 정리하여야 따라 갈수 있었다. 외운 것을 까먹어 헷갈리는 상황에서도 ‘그렇지!’하는 문장을 발견하는 재미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강의를 들었다.   반장님이 강의 마지막 날 행사에 대해서 말한다. 다른 강의들은 에세이를 쓰지만 이번 강의에서는 논어 ‘낭송(朗誦)’을 하겠단다. 다만, 책을 보고 읽는 게 아니고 암송(暗誦)하는 것이란다. 나도 외워 본다. 첫 페이지, 논어 학이(學而), 제...
가마솥 2023.02.19 조회 510
문탁의 나이듦 리뷰
다른 할배의 탄생 -영화, <그랜토리노>(2009,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 글에는 두 개의 영화가 등장하는데 둘 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1. 왜 내 눈엔 할머니들만 보이는 걸까?   87세에 한글을 깨쳐 “먹고 싶은 것도 없다.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갈 때 대가 곱게 잘 가는 게 꿈이다.”라는 시를 쓴 칠곡의 박금분 할머니가 94세를 일기로 얼마 전 돌아가셨다. 신문 기사를 보니 당신 시처럼, 당신 바람처럼 가신 모양이었다. 다행이었다. 박 할머니 기사를 찾아 읽다가 소위 ‘권안자체’ ‘추유을체’ ‘이종희체’ ‘김영분체’ ‘이원순체’ 등 칠곡할매체의 주인공들의 짧은 글도 읽게 되었다. 폰트 개발을 위해 4개월 동안 한 명당 2,000장의 종이를 사용했다는 할머니들의 글씨는, 내용도 폰트도 따뜻하고 정감이 넘쳤다.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의 저자인 순천 할머니들의 그림일기도 비슷했다. 거기에도 할머니들의 살아온 이야기가 진솔하고 유머러스하게 펼쳐지고 있다. 할머니들의 삶에는 그 험난한 생애 여정에도 불구하고 ‘다정한’ 뭔가가 있다. 노년 구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야기청’의 구술작가 ‘육끼’ 역시 주름진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편안해지며, 그 주름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아카이브 같다고 말한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들의 얼굴은 묘하게 아름답다. 웃을 때마다 물결처럼 움직이는 그 주름들은 길게 이어진 밭의 이랑과 고랑을 연상시킨다...나는 밭의 이랑과 고랑이 만들어내는 굴곡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할머니들의 주름을 볼 때도 비슷한 안도감을 느낀다. 밭의 이랑 고랑도, 할머니들의 주름도 아주 평범하지만 들을수록 찰지고 구성진 이야기를...
다른 할배의 탄생 -영화, <그랜토리노>(2009,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 글에는 두 개의 영화가 등장하는데 둘 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1. 왜 내 눈엔 할머니들만 보이는 걸까?   87세에 한글을 깨쳐 “먹고 싶은 것도 없다.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갈 때 대가 곱게 잘 가는 게 꿈이다.”라는 시를 쓴 칠곡의 박금분 할머니가 94세를 일기로 얼마 전 돌아가셨다. 신문 기사를 보니 당신 시처럼, 당신 바람처럼 가신 모양이었다. 다행이었다. 박 할머니 기사를 찾아 읽다가 소위 ‘권안자체’ ‘추유을체’ ‘이종희체’ ‘김영분체’ ‘이원순체’ 등 칠곡할매체의 주인공들의 짧은 글도 읽게 되었다. 폰트 개발을 위해 4개월 동안 한 명당 2,000장의 종이를 사용했다는 할머니들의 글씨는, 내용도 폰트도 따뜻하고 정감이 넘쳤다.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의 저자인 순천 할머니들의 그림일기도 비슷했다. 거기에도 할머니들의 살아온 이야기가 진솔하고 유머러스하게 펼쳐지고 있다. 할머니들의 삶에는 그 험난한 생애 여정에도 불구하고 ‘다정한’ 뭔가가 있다. 노년 구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야기청’의 구술작가 ‘육끼’ 역시 주름진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편안해지며, 그 주름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아카이브 같다고 말한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들의 얼굴은 묘하게 아름답다. 웃을 때마다 물결처럼 움직이는 그 주름들은 길게 이어진 밭의 이랑과 고랑을 연상시킨다...나는 밭의 이랑과 고랑이 만들어내는 굴곡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할머니들의 주름을 볼 때도 비슷한 안도감을 느낀다. 밭의 이랑 고랑도, 할머니들의 주름도 아주 평범하지만 들을수록 찰지고 구성진 이야기를...
문탁 2023.02.15 조회 419
겸목의 문학처방전
  무사(無事), 누군가의 분투의 대가 -위암에 황정은의 에세이집『일기』를 처방합니다     황정은을 좋아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무사(無事)는 누군가의 분투를 대가로 치르고 받는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숨 막히는 ‘말’들이 있다는 걸 아니까, 이 고요의 성질에 질식이라는 성분이 있다는 걸 아니까, 어디로도 가지 않고 이렇게 유지하는 고요가 그래도, 그래서, 나는 좀 징그럽습니다. (황정은, 『일기』, 창비, 2022년, 41쪽)   황정은의 에세이집 『일기』는 작고 예쁘다. 친구에게도 가벼운 마음으로 선물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니 친구도 좋아할 거라는 생각으로 택배를 보냈다. 그런데 읽다보니 좋은 선물이었는지 불안해진다. 나에게는 불편하게 읽히는 책을 친구는 어떻게 읽고 있을지 궁금하다. 나에게는 질책으로 다가오는 황정은의 말들을 친구는 어떻게 독해하고 있을지 걱정스럽다. 이런 걱정으로 나는 황정은의 『일기』를 여러 번 읽었다. 여러 번 읽으며 든 생각은, 내가 힘들게 읽은 만큼 황정은 또한 힘들게 썼겠구나 하는, 이상한 동질감이다. 독자가 작가를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나도 힘들게 읽고 그도 힘들게 썼으니 피장파장이라는 느낌이다.   무엇이 읽기에 힘들었을까? ‘징그럽다’는 그의 생생한 감정이다. 나의 무사(無事)함이 누군가의 분투의 대가라는 것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무한 경쟁과 탐욕의 시대, 무사하고 무탈함을 바라는 것은 욕망의 기본값이 아닐까? 그런데 오늘날은 ‘보통’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결코 보통의 대가로 이루어지지 않는 시대다. 무사한 보통의 삶은 많은 비용을 치룰 수 있어야 가능하고, 무사하지...
  무사(無事), 누군가의 분투의 대가 -위암에 황정은의 에세이집『일기』를 처방합니다     황정은을 좋아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무사(無事)는 누군가의 분투를 대가로 치르고 받는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숨 막히는 ‘말’들이 있다는 걸 아니까, 이 고요의 성질에 질식이라는 성분이 있다는 걸 아니까, 어디로도 가지 않고 이렇게 유지하는 고요가 그래도, 그래서, 나는 좀 징그럽습니다. (황정은, 『일기』, 창비, 2022년, 41쪽)   황정은의 에세이집 『일기』는 작고 예쁘다. 친구에게도 가벼운 마음으로 선물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니 친구도 좋아할 거라는 생각으로 택배를 보냈다. 그런데 읽다보니 좋은 선물이었는지 불안해진다. 나에게는 불편하게 읽히는 책을 친구는 어떻게 읽고 있을지 궁금하다. 나에게는 질책으로 다가오는 황정은의 말들을 친구는 어떻게 독해하고 있을지 걱정스럽다. 이런 걱정으로 나는 황정은의 『일기』를 여러 번 읽었다. 여러 번 읽으며 든 생각은, 내가 힘들게 읽은 만큼 황정은 또한 힘들게 썼겠구나 하는, 이상한 동질감이다. 독자가 작가를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나도 힘들게 읽고 그도 힘들게 썼으니 피장파장이라는 느낌이다.   무엇이 읽기에 힘들었을까? ‘징그럽다’는 그의 생생한 감정이다. 나의 무사(無事)함이 누군가의 분투의 대가라는 것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무한 경쟁과 탐욕의 시대, 무사하고 무탈함을 바라는 것은 욕망의 기본값이 아닐까? 그런데 오늘날은 ‘보통’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결코 보통의 대가로 이루어지지 않는 시대다. 무사한 보통의 삶은 많은 비용을 치룰 수 있어야 가능하고, 무사하지...
겸목 2023.02.03 조회 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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