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기 힘들지만 사실이다'

겸목
2023-11-04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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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요일, 갑작스런 부고가 날아왔다. A와 나는 왕복 4시간 고속도로를 달려 문상을 다녀왔다. 그날 아침 집을 나서며 2시간 뒤에 내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으리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날씨가 좋아 장거리 운전이 나쁘지는 않았다. A는 가는 동안 올여름부터 시작한 새로운 일에 대해 입을 열었다. 자격증과 관련된 그 일이 내년 여름에 끝이 나고, 이런 계획 속에 나와 같이 하고 있는 일은 올해로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A가 일을 그만두겠다는 선언 이후 두 달 만에 듣는 이유다. A의 말투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어색했다. 종종 어색한 말을 할 때가 있지 않나? 꼭 해야 할 말이지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요지만 간단히 전달한다. A의 어색한 말투에서 두 달 동안, 혹은 그 이전부터 그가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전해졌다. 여기서 나는 그간의 서운함이 좀 줄어들었다. “니가 새로운 일을 한다고 하면 우리가 뜯어 말리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말을 안 해?”라는 나의 힐난에 A는 “말할 때가 올 거라 생각했고, 나는 지금이 그 때인 것 같아.”라고 짧게 대답했다. A와 나 사이의 ‘다른’ 시간감각이 운전하는 내내 머릿속에 꽂혔다. A와 나는 적당한 때라는 생각하는 시기가 달랐다.

 

 

“걔가 그러더라. 나는 너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너는 나한테 뭘 해줬냐고?” A는 ‘같이 한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친구는 그걸 ‘희생’이라는 뉘앙스로 말하고 있는 것이 A에게는 노엽게 독해되고 있었다. 그 이야기가 오고가는 자리에 나는 같이 있었다. 나는 또 다른 친구의 말이 직설적이었지만 화가 많이 났음을 표현한 것이지, ‘희생의 대가’를 운운하는 생색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흘려들을 수 있는 말과 그렇지 않은 말 사이에서 다시 한 번 A와 나 사이의 ‘간극’을 느꼈다. 나는 A가 아닌 친구와 같은 입장에 있으니까. 그의 말이 거슬리지 않게 들렸을 것이다. 문장(대화)을 독해하는 데 있어 모두가 입장과 견해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소통할 수 있을까? A와 보내온 시간이 10여 년을 넘기 때문에 이런 오해와 간극이 나에겐 혼란스럽고 착잡했다. 1인 가구로 오래 살아온 A에게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이 자동프로세스처럼 작동하는 것일까? 이런 경험과 감각의 차이를 확인한다는 것이 오랜 친구 사이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 위로라면 위로일까? A에 대한 서운함은 줄어들었지만, A와 나 사이에 벌어진 거리는 분명히 있었다. 우리는 지금 친구에서 남이 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

 

 

2.

수요일, B를 만나기 위해 카페로 갔다. B는 독특하다면 독특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B는 재작년과 올해 내가 하는 글쓰기 클래스에 참여했었다. 작년엔 출산과 함께 한 해를 쉬었고, 올해는 육아휴직기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다는 야망을 가지고 다시 참여했다. 그녀의 야망은 글쓰기에 정신과 시간이 뺏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남편의 질투심으로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는 B의 독특함이 없다. 익숙한 스토리 전개이다. B는 글쓰기 클래스에 못 오는 대신 친구들과 온라인으로 소규모 독서모임 열어 우리가 읽고 있는 책을 같이 읽었다. 가끔 우리의 게시판에 등장해 댓글로 글을 읽은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댓글을 읽으며 뭉클했다. ‘아! 이렇게 함께 할 수 있구나!’ 그녀의 적극적인 의사표현이 반갑고 고마웠다. 글쓰기에 대한 B의 콩깍지가 아직 안 벗겨져서일까? B는 아직 인문학공동체에 대한 판타지가 깨지지 않은, 허니문 기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출산과 육아라는 ‘격변’의 시기를 보내는 중이라 B에게는 동아줄이 필요한 것일까? 전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내년에는 다시 직장으로 복귀하는 B가 언제 다시 글쓰기 클래스에 복귀할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B와 나는 3시간을 내리 떠들었다. 사실 3시간도 부족했다. 남편, 언니, 혼자되신 친정아버지, B의 최측근들은 모두 B의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고, B가 보기에 그들은 너무 손이 많이 간다. 소중하고 친밀한 사람들이라 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B에게는 그들의 고민이 공감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어왔지만, 나는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무시하라기도, 적극 공감하라기도 어려운 문제였다. B와 나는 실속 없는 대화만 나눴다.

 

 

B와 내가 할 수 있는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글이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 흥미롭다”는 거였다. 왜 글쓰기 클래스를 좋아할까 이야기하며 우리가 이른 결론이다. 도대체 저 사람의 글이, 또는 이 사람의 글이 다음에는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 그의 생각은 어떻게 바뀌어갈 것인가? 지켜보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 지금 나에겐 어떤 드라마나 소설보다도 매주 만나는 사람의 글이 바뀌어가는 것이 가장 생생하고 흥미진진하다. 여기엔 내 글은 어떻게 변화해갈 것인가? 하는 호기심과 기대감도 있다. 나는 어떻게 바뀌어갈 것인가? 나는 어떻게 내가 생각하지 못한 누군가로 되어갈 것인가?

 

 

3.

금요일, 오전에 청계산 산책로를 걸었다. A와 B, 두 사람과 나눈 대화의 온도차가 걷는 내내 생각을 붙들었다. A와의 만남도 B처럼 산뜻했고, 수다로 만리장성을 쌓은 날도 많다. 그러니 B와의 만남도 A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 예측해야 할까? 깊어지지 않은 관계에서만 서로가 통한다는 ‘착각과 착시’가 가능한 것일까? 오래 알고 지낸 A와의 간극이 뼈아픈 만큼, 새롭게 알게 된 B와의 공감이 기쁜 것도 사실이다. 두 사건은 형태만 비슷하지 아주 다른 방정식인지 모른다. 개별 사건을 연달아 붙여놓으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으려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끝나가는 인연이 아쉽고, 시작되는 인연이 반갑고, 모순적이 감정이 양립하고 있다. 만감이 교차한다. 모두 다 친구라고, 얼버무리고 싶지는 않다. 하나의 사건은 종료되고 하나의 사건은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때로 우리는 정말로 놓아버리고 싶은 것에 두 손으로 매달린다.

인정하기 힘들지만 사실이다. 어떤 것이 지켜야 할 것이고 어떤 것이 스스로에 대한 낡은 관념일 뿐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도시를 걷는 여자들』, 「파리, 동네」, 3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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