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비밀을 어떻게 다룰까.

비료자
2023-10-22 01:27
228

 

              <무엇이든 가능하다>에서 등장인물들은 크고 작은 비밀이 있지만 그 비밀이 갖는 가치와 힘은 다르다.                                                             그렇기에 그것을 다루는 방법도 사람마다 다르다. 

 

<계시> 에서 토미는 자신의 실수로 농장을 홀랑 태운 화재에서 ‘하느님이, 얼굴은 없으나 하느님인 그분이 그에게 몸을 밀착시키고 무언으로-아주 간단하게, 그리고 아주 순식간에- 괜찮다. 토미, 라고 그가 알아들은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오로지 아내와 자식들 뿐 이라는 깨달음이다. 하지만 자기 실수로 화재가 일어나 가족이 어려운 생활을 해야 하는 그 시점에서 하느님의 그런 계시를 받았다는 말이 얼마나 황당하게 들리겠는가. 토미는 평생 비밀로 품기로 맹세하고, 계시를 선물로 받은 사람 답게 성실한, 좋은 이웃이고 가족으로 살았다. 하지만 그런 삶이 위기를 만난다. 화재가 났던 농장에서 잠시 일했던 이웃 캔 버튼. 그는 참전용사로 극심한 가난과 그의 괴상한 행동 때문에 그의 가족들까지 온 동네에서 따돌림을 당한다. 그 집 아들 피트가 고립되어 살기 때문에 어떻게든 돕고 싶어 오며가며 방문을 하는데, 피트가 그걸 괴로워한다. 자기 아버지 캔이 토미의 농장에 불을 질러(이게 피트의 비밀이었다) 자기를 괴롭히러 방문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토미에게 말한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아버지는 그 일을 했고, 끔찍한 일을 했고, 그래서 아버지에게 끔찍한 일이 일어났던 거예요. 그리고 아버지는 자기 안에서 살아갈 수가 없었어요.” 아버지를 변호하는 피트에게 토미는 비밀을 말 해준다. 그 화재에서 나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그렇다면 아저씨 말씀은 저희 아버지가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었다는 거네요” 물론 그건 아니지만 그걸 어떻게 해석해야 옳을까? 피트는 고립에서 밖으로 한발 내 딛었고 토미는 그를 자주 방문하겠다고 말한다. 피트는 의무감에 오시는 건 바라지 않는다고 했지만 토미는 고집을 부리고, 약속을 잡는다. 하지만 사실 토미는 피트를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고, 이게 새로운 비밀이 되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도 ‘계시’를 말했고, 아내는 쉽게 받아들였다. 이제 평생 자신을 유지해주던 플러그가 뽑힌 토미에게 새로운 비밀이 생겼다. 하느님은 결코 그를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는 의심. 소중한 비밀은 삶을 지탱하는 플러그다. 새로운 비밀은 토미의 내면을 한층 더 성장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80이 넘었지만 새로운 비밀이 생긴다는 건 성장을 위한 또 다른 축복이 아닐까.  

 

<풍차>에서 패티는 엄마의 불륜현장을 직관했다. 게다가 자신이 그 비밀을 누설한 것도 아니건만 엄마는 가출, 온 동네에 망신살. 패티는 남자들과 옥수수 밭을 무수히 드나들었지만  끝내 섹스를 즐기는 보통 여자가 될 수 없었다. 좋은 남자를 만났지만 그 남자는 어렸을 때부터 반복된 계부의 강간으로 섹스 불능, 더 고약한 건 그 공포로 악몽을 꿀 때만 발기가 된다는 점. 패티는 그 남편과 사이 좋게 손 잡고 잘 지냈지만 뚱뚱한 숫처녀 패티, 라는 별명이 돌아다닌다. 남편은 죽고, 비밀을 가진 패티는 병들고 가난한 엄마를 자주 보러 다닌다. 이 답답한 삶은 같은 동네에서 자랐던, 토미의 농장에 불을 지른, 캔 버튼의 딸이 뉴욕으로 가서 쓴 회고록을 읽으며 풀리기 시작한다. “그 책을 읽고 저는 기분이 더 나아졌어요. 혼자라는 느낌도 훨씬 덜해졌고요. 우리가 늘 혼자인 건 아니에요.” 그렇다. 우리는 책을 통해 이해를 받고, 비밀이 공유되기도 한다. 작가님들은 부지런히 글을 써야 할 일이다.

 

<금 간> 에서 패티의 언니 린다도 엄마의 불륜과 가출로 트라우마를 안고 산다. 그녀의 트라우마는 그렇게 가출한 엄마가 빈곤하게 산다는 것. 그래서 린다는 부유하고 똑똑하지만 손님방 관음증에 강간미수범 제이와 결혼한다. 이 결혼이 유지되야 트레일러에서 사는 노후의 인생을 면할 수 있다. 린다는 남편의 범죄에 공범이 되고, 남편을 혐오하면서도 그 비밀을 지킨다. 그 비밀을 들킨 자식들에게 ‘다시는 안 보겠다’는 말을 듣게 만들었지만, 사회엔 안 들켰다. 린다는 안심하고 삶을 위해 금 간 접시 같은 결혼을 유지한다.

 

<미시시피 메리>는 69살에 5명의 딸들이 선물로 보내준 이탈리아 여행에서 거의 20년 연하의 이혼남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부럽긴 한데, 가능한가?) 부유하지만 불통에 꼰대 남편과 51년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이탈리아로 떠난 메리. 그녀의 딸 앤젤리나는 가장 소중한, 낳자마자 바로 ‘너’라는 걸 알게 되는 사랑하는 막내. 앤젤리나는 떠난 엄마에 대한 애착이 깊어 이혼할 지경이다. 80이 다 된 메리는 충실한 삶, 후회없이 살았지만 비밀이 있다. 앤젤리나가 그토록 괴로워할 줄 알았으면 그러지 말걸… 이라는 말이 안 나오는 것. 그리고 앤젤리나가 아무리 엄마에 연연해도 자신은 늙었고, 죽을 날이 과히 멀지 않았으며 그 준비가 되었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하긴, 말해서 뭐 하랴? 아무리 사랑하는 엄마와 딸이라고 해도 가야할 길이 다르고, 보내야 할 시간의 내용이 다른데… 읽으면서 그래, 해 봐야 쓸데없는 비밀 고백은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티의 민박집>에서 도티는 쓰레기통에서 먹을 걸 뒤지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금은 괜찮은 민박집 여주인이다. 가끔은 비밀을 알게 만드는 손님이 있다. 셜리는 도티를 붙잡고 앉아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자신의 비밀을 털어 놓는다. 이혼을 고려하는 결혼생활이지만 은퇴 후 마음에 드는 호숫가에 마음에 드는 별장을 지어 살기로 결정하며 스몰부부로 남았다고. 그 별장은 법이 정한 건축면적을 지켰지만 호숫가의 미관을 해치는 지하 1층 지상 4층의 흉물로 이웃들은 지나가며 비난을 퍼부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셜리의 필생 승부로, 남편 리처드에게 따 낸 것이다. 남편 친구 데이비드 부부를 초대하고, 자랑하고, 특히 데이비드의 두번째 부인, 데이비드보다 29살이나 어린 매력 넘치는 애니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 애니는 감탄해주었지만 데이비드와 헤어졌고, 그래도 혼자 놀러 오라는 셜리의 메시지에 대답도 안 한다. 데이비드는 코웃음을 친다. 애니가 그녀를 ‘백치’라고 말하며 그 별장은 끔찍한 건물로 ‘셜리의 페니스’ 라고 했단다. 즉, 셜리는 애니에게 모욕을 당한 것이다. 며칠을 두고 이 사연을 들으며 질질 짜는 셜리를 연민 이상의 감정으로 볼 수 없는 도티. 그래도 면전에 대고 웃는 실례는 참았지만 그 눈치를 챈 셜리는 자기가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도티를 이용했건만, 오히려 비밀을 말한 자신이 수치스러워 도티를 무시하고 험담하는 한심한 인성을 보인다. 도티는 부엌에서 수준이 맞는 그 부부의 잼에 침을 뱉고 나중에 체크아웃하는 그들에게 ‘니들이 뒷담 하는 거 다 들었다.’ 로 비웃는다. 그 비밀의 수준도 너저분하고, 그걸 비운 후 매너도 한심하니 걸맞는 보답이다. 도티의 쓰레기통 먹거리 시절 비밀에 비하면 솜털같은 허영심 흠집의 비밀을 며칠 간 들어준 도티가 성인군자다.

 

다른 이야기들도 비밀에 대한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비밀을 갖고, 그걸 어떻게 다루는가? 제대로 말하고 들으며 위안을 받으면 <풍차>에서 패티처럼 ‘달이 뒤를 따라오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처음 자리를 함께 한 사람끼리 그런 ‘선물’도 가능하다.

 

무엇이든 가능하다

댓글 5
  • 2023-10-27 01:26

    와 '비밀'이라는 키워드로도 글 한 편이 되네요.
    특히 <계시>의 비밀이 새롭네요. 저는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서로 비밀 하나씩을 주고 받은 거네요. 토미와 피트가...
    이제 공평해 졌네요. 피트는 후련해졌을 테고, 토미는 플러그가 뽑히고..
    밑지는 장사하고도 2주마다 찾아오겠다는 토미,
    오고 싶지 않음에도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 오겠다는 토미, 진짜 어른이네요.

    • 2023-10-29 12:51

      단편들을 관통하는, 무수한 키워드가 나오는 좋은 소설이었어요.
      저는 비밀, 이라는 단어로 단편들을 읽어보니 그런 관점도 괜찮더군요.
      그리고 뒤를 이어, 사람들은 어떤 비밀을 갖고, 어떤 비밀을 나에게 말 했으며
      내가 품고 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등등
      계속 생각이 이어나갔습니다.
      글로 쓰고 싶어졌고 숙성하면 제법 긴 글이 나올 거 같은데 물론 혼자만 잘 간직할 겁니다.
      비밀은 비밀이니까요. ^ ^

      가치있는, 무게있는 비밀은 그 사람을 그사람 답게 만드는 플러그가 되겠구나, 공감했습니다.
      사실 다시는 피트를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진심인 토미.
      그동안 그의 삶을 지켜준 비밀은 입 밖으로 나가면서 본인은 맥이 풀렸는데
      맥이 풀리지 않았다는 비밀은 절대 들키지 말고 평생 끌고 가기를 바라지만
      토미의 그 비밀을 어떻게 다루고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지 궁금합니다.

  • 2023-10-27 10:47

    저는 <풍차>를 인상적으로 읽었는데 "달이 뒤를 따라오는" 장면에 대한 기억이 없어요. 세미나에서 여러 샘들이 이 부분을 이야기해서 좀 놀랐어요!! 눈에 불을 켜고 읽는다고 해도 내가 보고 싶은 부분만 보고 있구나 싶었어요. 쓰기에도 읽기에도 사심이 그득그득합니다~

    • 2023-10-29 13:00

      저는 그 장면과, 패티가 꽃을 사는 장면이 인상깊었어요.
      패티가 사람들의 입, 소문, 평가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연과 자신만을 느끼는 부분이라서요.
      <풍차>는 루시가 쓴 책의 어떤 부분이 패티를 움직였는지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패티는 평생 이웃들의 소문, 그들의 입을 두려워하며 살았는데
      그 입들의 주인들도 사실은 수치심이나 비밀들을 간직하고 시달린다는 사실을
      그 책에서 알게 되었던 때문일까요?

      우리는 타인의 소문, 평가, 험담을 두려워하거나 (거북아 거북아 네 목을 내 놓아라)
      아예 철판 깔고 무시하며 살기도 하는데
      예민과 뻔뻔함의 중간 지점도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그 지점이 그 사람을 만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 2023-10-30 14:59

        꽃을 사는 장면도 다시 찾아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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