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 프로젝트 1학기 14강 1조 후기

무사
2021-06-06 19:04
322

토요일 수업 직후, 작년 2020 양생 프로젝트에서 함께 푸코를 공부했던 하우스 메이트가 물었습니다. 

“오늘 세미나랑 강의에 엄청 집중하던데, 요즘 뭐 공부해요?”

“아.. 저.. 그게 오늘 후기를 써야해서-.- <젠더 버틀러> 공부요.(세상에 젠더 버틀러라니-.-)”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젠더 트러블> 공부 내용에 대해 메이트에게 말하다보니 제가 모르는 부분이 더 선명해 지더군요. 매번 말의 한계, 말의 바탕이 되는 공부의 왜소함을 실감하게 되는 세미나, ’결국엔 말하기로 모인다’는 정군님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정곡을 찔렀습니다.

 

“공부는 지식이 나를 거쳐 밖으로 나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나를 하나의 노드(node, 네트워크의 분기점)로 만들고, 나에게로 온 지식이 어딘가 다른 곳으로 흘러가야 내가 한 공부가 의미를 얻습니다.” 정승연, <세미나책>, 160쪽

 

한 학기동안 줌으로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조원들에게도 알게 모르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 미안했고, 코로나 바이러스가(박쥐가, 천산갑(천갑산ㅎ)이) 미웠고, 이런 상황을 여차 저차 초래했을 저를 자책했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공부한 티(안한 티를 숨기는데는 오히려 도움이;;)를 낼 수 없었던 게 못내 아쉬웠나 봅니다. 집중해야 겨우 조원들 말을 50% 정도 들을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소통이라는 것은 본디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100% 소통이 과연 가능할까요? ‘나 소통 잘 해’라는 말은 보통 '지레 짐작을 바탕으로 내 맘대로 결정하고 있다’는 말과 같은 의미죠.ㅎㅎ

 

1조 메모(조영, 무사)의 해쉬태그는 단연 ‘#팔루스가뭐길래?’ 였습니다.

세미나 땐 라캉의 팔루스는 ‘신체 기관으로서의 페니스가 아니다. 그것은 환상화되고 이상화된 페니스로서 전능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취약함의 상징’(장-다비드 나지오, <오이디푸스>, 27쪽) 정도로 정리했는데, 강의를 들으면서 좀 더 명확해졌습니다. 팔루스는 대타자, 아버지의 법, 사회의 작동방식, 초월적 기표 등을 의미한다는데, 그러니 ‘난 한번도 ‘팔루스 이다’ 인 적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직 유아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하셨죠. 팔루스가 기표에 불과하다면 대표적 심급이나 의미를 고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요. 그렇기 때문에 사과나 당근도 팔루스가 될 수 있고(in 드랙킹쇼) 결국 원본 없는 모방, 패러디라는 수행적 전략이 가능해지면서 팔루스는 '탈영토화', '재영토화'될 수 있다는 것도요. 

 

프로이트는 성인 임상을 통해 1897년에 이미 ‘오이디푸스’를 발견했지만, 1923년에야 비로소 세상에 내놓았다고 합니다. 세심한 관찰자였던 프로이트조차 ‘오이디푸스’가 환상인지 현실인지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젠더 트러블> 2부를 읽고 정신분석학을 가로지르는 페미니즘을 공부하다보니 만만치않은 두 학문이 서로 연결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어렴풋 하기만했던 각각의 개념들이 좀 더 분명해지기도 했고요.

 

기린샘은 김춘수 시인의 <꽃>을 예로 들며 철학자들의 사유를 엿보고, 나름의 사유를 해나가며 언어화하는 과정은 아름다움을 내려놓는 과정같기도 해서 아쉽기는 하지만 <젠더 트러블>을 읽을수록 ‘버틀러는 너무 멋져’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고. 

느티샘은 1조에서의 특별한 경험(나만 기혼자야?)에서 오는 당황스러움을 토로하며, 오늘 텍스트를 읽으면서는 남편이 아들과 팔씨름 경쟁을 하던 것이 떠올랐는데, 페미니즘과 정신분석에 관심없었던 자신을 돌아봤고, ‘어떤 영향이 있는지’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삶과 연결해보고 계시다고.

조영님은 메모에도 밝혔지만, 무엇이 당연한지가 아니라 왜 당연하게 되었는지를 공부하면서 뿌리깊은 이분법적 체현, 자신도 쓰고 있을지 모를 여성성의 가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나눠주었습니다.

지원님은 자신이 싫어하는 방식(남자를 좋아해서, 꾸미는 것을 좋아해서, 얘기를 들어주는 것을 좋아해서 등)으로 ‘여성’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음을 발견했다고. 

 

저는 직장에서의 고민의 답을 찾고자 2006년에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살면서 수 회의 성폭력과 성희롱을 경험했고, 그로 인해 목숨을 끊거나 고통스런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동료들을 봐왔습니다. ‘2차 피해’ 예방은 커녕 '유책피해자'라는 오명이 다반사였던 직장에서 성폭력 피해자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 라고 말해주고 싶었고, 피해자의 잘못이 아닌 이유와 논리를 찾고 싶었습니다. 혼자 입문서를 읽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입가에만 맴돌뿐이었던 웅얼거림을 언어로 조금씩 발화하기 시작한 이후로 저에게 페미니즘은 나름 현장에서의 발화수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2021 양생 프로젝트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그동안 너무 쉬운 읽기만 해왔구나' 반성하고 있습니다. 진입장벽을 낮추는데 2차 저서가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읽으면서 중간 중간 점핑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젠더 트러블>은 읽기 어려운 책이지만, 차근 차근 따라가다보니 점핑된 간극을 메워갈 수 있었습니다. 작년의 푸코 공부가 올해 <젠더 트러블>를 읽기 위해서였나 싶기도 하고요.(기승전버틀러ㅎㅎ) 정신분석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쓰고 말해야할까요?

문탁샘 말씀이 들리는 듯요. "앞으로 천천히 하면 돼. 시간많아. 스피노자부터 공부하자고."

 

댓글 4
  • 2021-06-06 22:24

    ㅎㅎㅎ 저는 처음에 해러웨이를 접하면서 왜 이걸 이제야 보게 되었을까 ?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은 좀 더 젊은 친구들이 부러웠답니다.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내 삶이 달라지지않았을까 ?  뭐 이런 생각을 한 걸까요 ? ㅋㅋ

    버틀러는 다른 분들도 어렵다고 해서 제 속으로는 ' 다행이다. 나만 어려운 건 아닌거지?' 하는 위로를 하지만,

    그렇다고 제겐 앞의 책들도 어느 하나 말랑말랑한 건 없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버틀러를 읽고 있지 않는다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지도 모를 거 같습니다. '페미니즘은 이거지...' 쫌 이런 느낌이 ~ 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책을 보면서 '난 동성애자는 아닌 거 같아' 라는 생각을  한켠에서 하고 있었고 동시에 좀 짜증이

    났습니다. 아마도 어렵고, 피하고 싶고, 생각하기 싫어서....  중요한 건 저 자신을 깨기가 두려웠던 것이었을 겁니다.

    이런 저를 알아차리면서 얼마나 웃긴지... 🤣

     

  • 2021-06-07 08:36

    일단^^ <젠더 버틀러>에서 한 번 웃어주고.. ㅋㅋㅋ 첫 문장에서 혼자 빵 터져서 웃었다니까요^^

     

    올해 양생 프로젝트에서 줌으로 무사를 만나는 덕분에 떨어져 있어도 연결되어 공부하는 방법이 몸에 좀 익었어요^^

    물론 무사님은 50%밖에 못 알아 듣는 고충으로 힘들었겠지만;;

     

    아.. 페미니즘.. 저도 할~ 말 찾아야 하는 지난한 공부시간이었는데요.

    14회 세미나는 너무 몰라서 어떻게든 알아듣겠다고 강의 시간 내내 어찌나 몸에 힘을 주었던지..

    토요일 오후에는 너~ 무 피곤해서 파지사유 의자에 몸을 딱 누이고 한숨 잤다니까요 ㅋㅋ

     

    "팔루스가 기표에 불과하다면 대표적 심급이나 의미를 고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요. 그렇기 때문에 사과나 당근도 팔루스가 될 수 있고(in 드랙킹쇼) 결국 원본 없는 모방, 패러디라는 수행적 전략이 가능해지면서 팔루스는 '탈영토화', '재영토화'될 수 있다는 것도요. "

    : 저 역시 이 부분을 들으면서 뭔가... 아주 미미하지만 반짝 불이 들어오는 느낌이 있었어요..

    어쩌면 페미니즘을 통과한다는 것은 기존의 사유에 대해  끝까지 의심하기를 멈추지 않는 논리적 사유실험의 끝에 도달하는 어떤 해체감 아닐까? 그 해체감이 실천력으로 드러나게 되면 기존의 사유가 더 이상 효과를 내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 그  희망을 기대하며 이 지난한 문장들을 읽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저는 브라이도티가 계속 강도높은 실천을 주장하고... 해러웨이가 사이보그라는 선언까지 하는 '언어의 망치질'로 생각이 마구 마구 뻗어 나가느라... ㅋ 세미나가 끝나고 그 불이 꺼지니 피곤이 엄습한 것 아닐까... 이런 내맘대로 해석을 ㅋ

     

    여튼 올해 공부도 슬슬 끝이 보이고요.. 무엇을 알았는가? 설령 아무 것도 말하지 못하더라도.. 시간은 어딘가에 쌓여 있더라는 경험의

    유효함, 그것이 계속 공부하는 동력이라는 것, 무사님~~ 계속 가보면 뭔가 또 만나겠지요^^?

  • 2021-06-07 12:36

    무사의 이야기는 생생한 현장의 최전선에 있는 이야기네요. 줌이라도 그 긴장감이 전해지곤 합니다. 그래서 이론을 현실의 문제로 인식할 수 있게 해줍니다. 

     무사의 고군분투가 전해지네요

  • 2021-06-07 21:29

    '공부는 지식이 나를 거쳐 밖으로 나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라는 말이 제 정곡도 찌르는 군요.. 누가 나에게 어떤 공부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별다른 설명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슬프네요. (사실 아무도 묻지 않았습니다만 ㅎㅎㅎ) 에세이를 시작하면 절망이 또 깊어져 가겠.. 지요.. 그래도 이해한 만큼의 나를 받아들여야.. ㅎㅎㅎ 

    제가 기린님 조에 있었다면 기혼자2로 활약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네요~ 애 엄마들 사이에서 돌밥돌밥 하면서 살다가 여러 사람들을 다시 만나니 너무 즐거워요~ 나에게도 자유로운 시절이 있었는데..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만, 공부를 씹어서 소화한다면 이 안에서도 다른 것을 만들어 낼 수 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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